먼저 매트나 요 위에 차분히 누워 목의 각도가 최적이 되는 베개 높이를 결정합시다. 물론 위를 향해 반듯이 누운 자세, 옆으로 누운 자세 양쪽 다 시험해야겠지요.
─ 베개 높이는 반듯이 누운 자세를 기준으로 맞추나요,
아니면 옆으로 누운 자세를 기준으로 맞추나요?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반듯이 누웠을 때와 옆으로 누웠을 때의 베개 높이가 다를 거라 생각하시겠지요. “지금 사용하는 베개는 반듯이 누워 잘 때는 편안하지만, 옆으로 누우면 불편하다”며 하소연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베개는 반듯이 눕든 옆으로 눕든 어느 기준에나 딱 맞는 높이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듯이 누웠을 때 목의 기울기와 옆으로 누웠을 때 목의 기울기를 측정해서 양쪽의 허용 범위가 겹치는 높이를 선택하면 됩니다.
반듯이 누웠을 때 목의 이상적인 기울기는 이부자리 표면에서 10˚ 안팎 입니다. 이것은 목뼈에서 목신경이 빠져나가는 ‘추간공’이 가장 크게 벌어지는 각도입니다. 출구가 넓어지면 그곳을 지나는 신경이 느슨해져 혈액순환이 좋아집니다. 너무 낮거나 너무 높은 베개를 베면 추간공이 좁아지기 때문에 목신경이 수축되면서 혈액순환이 나빠집니다. 정형외과에 다녀본 경험이 있다면 경추 편타증 등을 치료하는 방법인 견인치료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턱에 벨트를 걸고 고개를 위쪽으로 당겨 올리는 치료인데 그때 당기는 각도가 10˚ 안팎 입니다.
이 각도를 유지하는 베개의 높이와 위치는 어깨너비와 목 길이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반드시 실제로 누운 자세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수면 자세를 봐달라고 하세요. 나지막한 베개에 타월 이불 같은 것을 포개어 조금씩 맞춰나가면 되겠지요.
이때 베개를 어깨 아래까지 끌어넣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기준점이 올라가 목의 기울기가 달라집니다. 적절한 높이의 베개를 베면 그림 3-5와 같이 뒤통수와 등 두 지점에서 머리 부분을 지지하며, 목 아래에는 손가락 두 개 정도 들어갈 만한 틈만 있으면 됩니다.
한편 옆으로 누웠을 때는 아래쪽 어깨를 조금 앞으로 내밀고 몸의 중심축이 바닥과 평행하도록 맞춥니다. 베개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목이 양옆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역시 추간공이 좁아지고, 어깨와 팔로 이어지는 신경이 압박을 받습니다.
물론 반듯이 누웠을 때와 옆으로 누웠을 때 각각의 이상적인 높이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이란 정말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양쪽 모두 어느 정도 허용 범위가 있고, 특히 반듯이 누웠을 때는 5~15˚로 비교적 허용 범위가 큽니다(도표 3-5). 따라서 양쪽 허용 범위가 겹치는 높이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내 몸을 살리는 5㎜의 기적
─ 베개 전문가도 아닌데 정확하게 잴 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만 하면 이런 불안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문가가 사용함직한 전용 자도 없고 조절이 가능한 베개가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히 맞춘다고 해도 1㎜, 2㎜까지는 아니고 약 5㎜ 단위로 측정하면 됩니다.
저는 베개 조정 작업을 할 때마다 인간의 감각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몸에 안 맞는 베개를 베고 잤을 때 ‘뭔가 다르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고작 5㎜ 차이입니다.
5㎜라고 하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무래도 좋을 수치일지 모릅니다. 일상에서는 치마 길이가 5㎜ 짧든 셔츠 소매가 5㎜ 길든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런데 베개의 경우에는 5㎜ 차이도 나에게 적절한 수치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푹신하지 않은 보통의 타월을 한 번 정도 접은 두께이니, 평소 사용하는 베개 위에 올려놓고 시험해보세요.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할까요. 82세 여성을 위해 베개 높이를 조절하던 때의 일입니다. 워낙 고령인지라 등도 굽고 적절히 맞추기가 무척 어려웠지요. 처음에 이 어르신은 위를 향해 반듯이 누웠습니다. 저는 5㎜씩 베개를 높여가며 목의 각도를 신중하게 측정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높이에 이르렀을 때 어르신이 갑자기 이렇게 외쳤습니다.
─ 아, 이거, 이거! 이게 좋아!
그 즉시 옆으로도 누워보고 몸의 뒤척임도 확인해보았습니다.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그 높이는 모든 수면 자세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헤아릴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무의식중에도 자신에게 가장 좋은 상태를 감지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가령 베개가 5㎜ 낮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자면서도 베개 밑에 팔을 밀어 넣어 높이를 조절합니다. 잠에 취해 있으면서도 베갯속을 두드려 약간 높다랗게 만들고 그 위에 다시 머리를 얹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갯속의 메밀껍질 언덕이 무너질 때마다 몇 번씩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베개 높이가 안성맞춤일 때는 어떤 느낌이 들까요? 예전에 제가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인 코사카이 카즈키小堺 一機(일본의 유명 배우)씨가 매우 멋진 말로 표현해주었습니다.
─ 궁극의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자면, 베개를 베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예를 들어, 잘 지은 맞춤 양복 소매를 꿰었을 때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요?
가볍다고나 할까……. 딱 그런 느낌이지요.
맞습니다. 목의 곡선을 아래에서 받쳐주는 듯한 감각이 있는 한 아직 궁극의 베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목의 위치가 최상일 때는 목에서부터 어깨 주변이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정말로 가벼운 느낌이 듭니다.
고작 5㎜, 하지만 결정적 5㎜. 그것이 베개의 세계입니다.
- 이게 다 베개 때문이다 야마다 슈오리 저/신유희 역 | 위즈덤스타일
베개는 단순히 자는 동안 목을 얹어놓는 도구가 아니다. 숙면을 취하려면 목의 위치, 다시 말해 목신경이 적당한 기울기를 유지해야 한다. 맨 바닥에 눕는다고 가정해보자. 무심코 두 팔을 머리 밑으로 대게 마련이다. 이는 사람 목이 C자형이므로 누웠을 때 편안한 위치를 만들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베개 없이 자는 게 좋다는 낭설을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마다 슈오리
의학박사. 1964년 도쿄 출생. 1988년 도쿄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정형외과 교실을 거쳐 2000년부터 도쿄의 마치다 시 나루세 정형외과에서 원장과 함께 정형외과 베개를 연구 개발했다. 현재 16호 정형외과 원장, 도쿄여자의과대학 닛포리 클리닉 강사, 야마다 슈오리 베개 연구소 대표이사, 일본 아로마 테라피 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베개와 수면에 관한 연구에 전념하면서 정형외과 의사가 생각하는 올바른 잠, ‘정면’을 위한 베개와 아로마 요법에 관한 연구를 천직으로 삼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병은 잠든 사이에 고친다』가 있다.
천사
2012.05.03
prognose
201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