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제주도 동경, 직접 게스트하우스 짓고 살아보니… - '레이지박스' 하민주씨 부부
“왜 사람들은 게으른 걸 나쁘다고만 보는 거죠? 아무것도 안 하고 안하무인과도 같은 삶을 방치하는 게으름과 바쁜 생활 중에 잠깐의 게으름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항상 똑같은 속도로 살 수 없잖아요. 가끔은 느릿느릿 게으름도 약간 부리면서 사는 것도 삶에 윤활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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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하민주 Age : 33세 Job : 게스트하우스 & 카페 '레이지박스' 운영 Since : 2010년 7월 In Seoul : 왕복 4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는 남편 In Jeju : 약간의 게으름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 카페 ‘레이지박스’ 오너 | ||
평생 끝이 안 보이는 생존경쟁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게 될 것만 같았다는 그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삶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 끝에, 주저 없이 짐을 챙겼다.
“절대 갑작스럽거나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대학교 다닐 때 제주도에 내려와서 진짜 살아볼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니까요.”
10대 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제주도에서의 삶을 상상해 온 하민주의 제주 생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제주도에 터를 잡는다고 하니 바닷가가 보이는 곳이겠지 하며 지레 짐작하곤 한다. 이들 부부처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고 하면 더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갈 계획은 아니었지만, 사람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어도 심심할 테니까 농가 한 채를 구입해 작게 꾸며보자 싶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남편은 바닷가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처음엔 무슨 일이 있어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자고 졸랐는데, 사계 해안 앞에 있는 민박집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그 말이 쏙 들어갔어요. 습기가 너무 많아서 빨래도 잘 안 마르고, 바람이 심한 날에는 온 집에서 짠맛이 나는 걸 경험한 후로는요.”
그렇게 바닷가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산에 둘러싸인 지금의 장소를 택한 건 낡은 농가 세 채가 어우러진 느낌 때문이었다. 안거리(본채), 밭거리(또 다른 생활공간), 그리고 창고로 나뉘는 세 개의 독채로 된 모양새가 마음에 쏙 들었다. 마을 주민조차 몇 안 되는 시골 마을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집을 본 그날 밤, 부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조약돌을 깔고, 유리문을 달고, 이렇게 꾸미면 되겠다, 저러면 되겠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랫동안 꿈꾸던 집을 발견한 것이다!
“한 번 꽂히고 나니 다른 건 눈에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바로 계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주변에선 겁대가리를 상실했다고들 하면서 극구 만류하셨어요. 어쩜 그렇게 무데뽀로 일을 저지르냐 하면서 말이에요. 지금은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사는 모습에 신기해하지만요.”
그렇게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누추한 집은 부부의 생활공간, 말끔하게 정리된 여행자들의 숙소, 소박한 소품들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카페 등 궁합이 꼭 맞는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지금이야 어엿한 게스트하우스로 변모했지만, 처음엔 다 쓰러져가는 제주의 오래된 50년 된 농가 주택이었다. 외관은 나무 데크를 깔고 페인트 칠만 해서 가능하면 본래의 모습을 살리려고 했다. 내부 역시, 서까래나 나무 기둥 같은 기본 골조는 최대한 건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여유와 게으름의 경계. 하민주는 그 접점을 찾아 제주도에 왔다.
“왜 사람들은 게으른 걸 나쁘다고만 보는 거죠? 아무것도 안 하고 안하무인과도 같은 삶을 방치하는 게으름과 바쁜 생활 중에 잠깐의 게으름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항상 똑같은 속도로 살 수 없잖아요. 가끔은 느릿느릿 게으름도 약간 부리면서 사는 것도 삶에 윤활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레이지박스를 찾는 사람들도 이곳 주인장의 마인드처럼, 쫒기 듯 여행을 하기보다 는 여유로운 일정으로 들르는 이들이 많다.
“겉보기만큼 이곳 생활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비바람이 몰아쳐 앞마당이 엉망이 되는 일이 부지기수고, 양념이나 음료수 같은 소모품이 떨어지면 하나 사러 나가려 해도 작정하고 가야 하는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일투성인 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시골마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자기 자신이 선택해야 할 문제잖아요. 자기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고민해 보세요. 저처럼 게으르고 싶다면 도시를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레이지박스가 입소문이 나면서 제주로 이민(뭍에서 섬으로 이주하는 일)을 문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다짜고짜 집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면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저희는 너무나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지 않을까요? 제주에 터를 잡고 계시는 분들과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다들 이런 고민을 털어놓곤 해요. 발품을 팔아 시간을 들여 알아낸 정보를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대개 그런 분들은 내려온다 한들,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충동적으로 무조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에요. 오직 탈출이 목적이 되면 안 돼요. 제주도에서의 삶도 만만치 않는 구석이 많거든요.”
제주의 겨울은 길고 추웠다. 게스트하우스의 특정상, 겨울엔 대체로 손님이 없어 한가하다. 이를 핑계 삼아 일 년에 한 번은 다른 나라에서 한 달을 보내기로 한 부부는 올 초 싱가포르에서 상주하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지친 일상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여행이라고 믿고 있는 부부. 남들이 보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제주에서의 생활 이외의 또 다른 여행을 그들은 작당하고 감행한다. 일상과 여행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든가.
“결혼 전에 우린 꼭 일 년에 일정 기간은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약속을 했는데,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외국 생활을 한다고 하면 다들 돈이 많나 보다 하더라고요.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지만 제주도에서 쓰는 한 달 생활비 정도로 예산을 짜요. 돈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다양해질 수 있잖아요. 저희는 펀드나 주식투자 대신, 젊은 날의 추억에 투자하고 있는 거고요.”
이들 부부는 여행 같은 하루하루를 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일상의 연속에 놓여 있다. 생소한 장소에서 산다는 것. 그들에게 제주에서의 생활 역시 여행, 그러니까 좀 더 긴 호흡의 소풍인 셈이다.
레이지박스 하민주의 제주 정착 Tip “제주에서 내 집을 갖고 싶다면 일단 살아봐야 한다!” 막상 제주도에 내려와서 살고 싶어도 손 가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직접 집을 살 것인지, 지을 것인지, 연계약을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 번도 도시를 떠나서 산 적이 없다면 무턱대고 땅을 사서 집을 짓기보다 처음 몇 달은 살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제주도에 무조건 집을 사려고 하기보다, 연 250만~300만 원 정도면 풀옵션으로 된 단독주택을 임대할 수 있으니 1년 정도 살아보고 난 후 선택해도 좋다. 그러나 투자가치가 적어서 여윳돈이 아닌, 바로 돈을 빼야 하는 상황이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알음알음으로 현지인을 소개받아 안면을 트는 것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제주도는 다른 곳과 달리, 매매를 할 때 현지인이 아니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비용 또한 천차만별인데, 기본 2~3명이 살 만한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할 때 땅으로 치면 평당 60만~100만 원, 30~40평 정도가 적당하지만 대부분 땅 크기가 상당히 크다. 대개 몇 백 평 정도로 단위가 크니 혼자 부담하려 하지 말고 1-2명의 지인과 함께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주거 지역으로 매입하려면 진입로, 전기선과 상하수도 문제, 편의시설 거리 등을 고려해 심사숙고 후 결정해야 한다. 몇 사람을 걸쳐서라도 제주도에 있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여러 모로 안전하다. 땅이나 집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방심해선 안 된다. 원하는 기한 내에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려면 1.5배 정도 길게 보고 진행해야 한다. 섬이 가진 특성을 잘 모르는 이들은 바다에 가까이 살고 싶어 한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에 대한 로망을 꿈꾸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 일단,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분다. 창문을 닫아놓더라도 집 안 구석구석 모래가 깨알처럼 들어찬다. 두 번째는 습기. 장마기간에는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피지 않는 곳이 없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동산 시세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 공항 근처인 제주 시내는 웬만한 서울 외곽이나 분당 지역과 맞먹을 정도다. 하지만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상대적으로 값이 떨어진다. 가격이 싼 땅은 평수가 몇 백 평 이상이거나 농경지가 많으며, 풍수지리가 괜찮은 위치는 상당히 비싸다. 대략 땅은 평당 30만 원부터 몇 백 만 원을 호가한다. | ||
- 제주 보헤미안 김태경 저 | 시공사
제주에 사는 13인의 자유로운 영혼 혹은 용기 있는 영혼을 담은 책. 저자는 제주에서 만난 13인을 ‘제주 보헤미안’이라 명명했다.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 창조적인 생각, 결단력 있는 행동을 모두 담은 단어 ‘보헤미안’은 제주와 완전한 궁합을 이룬다. 불안함을 이겨내고 제주 행을 택한 보헤미안들은 이 섬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묵묵한 위로와 치유를 경험한다 말하고, 제주는 보헤미안들 덕분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젊음, 자유, 예술, 대안문화 류의 과거에는 감지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뿜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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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태경
1977년 생. 전형적인 천칭자리와 O형 기질의 소유자.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선 출판 잡지를 전공했다. 느리고 번거로운 공정으로 만들어진 인쇄물과 종이로 된 모든 것을 흠모하며, 서재가 생긴 후부터는 책장을 정리하거나 책을 구입할 때 희열을 느끼는 ‘컬렉터형 독서인’으로 성향이 바뀌었다.
패션매거진 <신디더퍼키> <세븐틴코리아> <스타일H> <나일론>에서 15년 동안 패션에디터로 동분서주하다, 2010년 가을 콘텐츠 전문기업 어반북스Urbanbooks를 설립해 분야를 막론한 콘텐츠 기획과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 <에디터T의 스타일 사전> <좀 더 가까이 : 북 숍+북 카페+서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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