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의 새장을 열었던 ‘혁명적인’ 음반 - < Velvet Underground & Nico >
요즘에는 밖을 거닐 때마다 대중음악 관련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는데요. 그 중 가장 흔한 것은 혓바닥 모양의 롤링스톤즈 로고가 박혀있는 티셔츠일 겁니다. 그 다음으로 자주 마주치는 옷이라면 아마 이 앨범 커버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일 것 같네요. 앤디 워홀의 디자인이라서 그런 걸까요. 가끔 이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볼 때면…
201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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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밖을 거닐 때마다 대중음악 관련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는데요. 그 중 가장 흔한 것은 혓바닥 모양의 롤링스톤즈 로고가 박혀있는 티셔츠일 겁니다. 그 다음으로 자주 마주치는 옷이라면 아마 이 앨범 커버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일 것 같네요. 앤디 워홀의 디자인이라서 그런 걸까요. 가끔 이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볼 때면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좋아하시나요?”라고 묻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음악보다 커버 이미지로 더 유명하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이 앨범은 대중 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근 50년 전의 작품이지만, 복기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 Velvet Underground & Nico > (1967)
히피를 향한 ‘비트 수절파’의 조롱‥ 전위적인 록
히피 이전에 비트(Beat)라는 것이 있었다. 1950년대 중반 뉴욕 일대에서 싹튼 이 비트족은 미국 사회의 일반적 가치를 무시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노스 비치 등지에서 하릴없이 방랑을 일삼던 ‘반사회적’인 부류였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위대한 나라 미국에 대해, 수백달러짜리 양복과 양장을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컬러 TV나 교외의 별장 또는 파리여행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가 버튼 울프는 비트를 이렇게 설명하고 그들을 부르주아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로 분석했다. 비트들은 미국 사회의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목표를 비웃으면서 공원을 거닐거나 해변의 태양 아래 누워 오후를 보내거나 멕시코에 자전거 여행을 다니곤 했다. 밥 딜런도 한때 이러한 비트 제네레이션의 생활방식에 매혹됐던 사람이었다. 그의 히트곡 「like a rolling stone」은 바로 비트 행태를 포크록 리듬에 이입시킨 곡이었다.
비트족은 반(反)문화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히피의 원조가 되는 셈이었다. 50년대 말 정부의 탄압에 의해 꼬리를 내린 비트는 60년대 중반에 등장한 사이키델릭 운동에 발맞춰 부활되었다. 비트는 히피의 태동과 함께 상당수가 그 속으로 편입되었지만 히피가 갖는 사회참여적 성격을 사양하고 개인적인 비트의 순수성을 고집한 수절파(守節派)도 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히피의 극성기에 비트족의 본질을 그대로 지키면서 그것을 록으로 표현한 그룹이었다. 전위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지휘 아래 결성된 이 그룹은 ‘비트 시인’ 루 리드(Lou Reed)와 아방가르드 클래식 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던 존 케일(John Cale)을 주축으로 한 4인조 라인업으로 외롭게 비트의 정신을 표출했다.
이 앨범은 히피와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의 순진성을 향해 던지는, 비트의 비아냥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과 멀찍이 떨어져 개인적인 관심사에 묻혀있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개인집착적이고 파괴적이며 ‘전위적’이었다. 히피와 샌프란시스코 록밴드들이 ‘외적 사회혁명’을 추구했다면 비트와 뉴욕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내적 개인혁명’을 추구했다.
록 역사는 이 작품을 비트의 아방가르드(전위) 정신과 록 음악이 결합된 ‘혁명적인’ 음반으로 정의한다. 비틀스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와 또 다른 면에서 록음악의 새장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운드로 볼 때는 곡마다 변화가 극심해 빠른 것과 느린 템포의 곡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생경하고 음침하다. 비틀즈의 그것처럼 예술적 세련미가 묻어 나오지는 않지만 ‘처음 들어보는 듯한’ 극단의 신선함이 있다. 테크니컬한 정확성보다는 즉흥성이 강조되어 있고 「Venus in furs」와 「The Black Angel's death song」 등에서 보이는 윙윙거리는 일렉트로닉 소음이 전위적임을 느끼게 한다.
루 리드는 앨범의 사운드를 ‘부패한 30년대 베를린 풍경’으로 빗대면서 “그 거리의 한 장면을 그려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곡은, 암시 수준을 넘어 과감한 노출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 마약 테마의 「I'm waiting for the man」, 「Heroin」 두 곡이었다.
노골적인 약물의 찬양은 청취자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며 플라워 파워에 이끌린 웨스트 코스트의 언론으로부터 ‘퇴폐의 전형’으로 매도당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 외에도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가학-피학성 음란증(사도마조히즘)을 다뤄 또 한 번 록계를 놀라게 했다.
전위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듣기에 어렵지는 않다. 「Sunday Morning」, 「Femme Fatale」, 「I'll be your mirror」 등 세 곡에서 부드럽고 진지함에 넘치는 보컬을 들려줘 앨범의 대중적 친화력을 높여주는 데 공헌했다. 사생활이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있던 그녀(Nico)는 앤디 워홀의 적극적 추천에 따라 앨범 작업에 참여했고, 당시 루 리드의 여자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7년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와 같은 해 발표되어 가장 ‘파괴력을 지닌’ 음반으로 함께 꼽히면서도 비틀스의 음반과는 다르게 대중의 인정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까지 겨우 40만장이 팔려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깟 판매실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 진보성을 높이 평가받는다.
1993년 그들이 재결합했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펑크 록, 아트 록, 컬리지 록, 그런지 록, 뉴웨이브 록, 미니멀리스트 록 그것들 모두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음악보다 커버 이미지로 더 유명하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이 앨범은 대중 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근 50년 전의 작품이지만, 복기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 Velvet Underground & Nico > (1967)
히피를 향한 ‘비트 수절파’의 조롱‥ 전위적인 록
히피 이전에 비트(Beat)라는 것이 있었다. 1950년대 중반 뉴욕 일대에서 싹튼 이 비트족은 미국 사회의 일반적 가치를 무시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노스 비치 등지에서 하릴없이 방랑을 일삼던 ‘반사회적’인 부류였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위대한 나라 미국에 대해, 수백달러짜리 양복과 양장을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컬러 TV나 교외의 별장 또는 파리여행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가 버튼 울프는 비트를 이렇게 설명하고 그들을 부르주아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로 분석했다. 비트들은 미국 사회의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목표를 비웃으면서 공원을 거닐거나 해변의 태양 아래 누워 오후를 보내거나 멕시코에 자전거 여행을 다니곤 했다. 밥 딜런도 한때 이러한 비트 제네레이션의 생활방식에 매혹됐던 사람이었다. 그의 히트곡 「like a rolling stone」은 바로 비트 행태를 포크록 리듬에 이입시킨 곡이었다.
비트족은 반(反)문화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히피의 원조가 되는 셈이었다. 50년대 말 정부의 탄압에 의해 꼬리를 내린 비트는 60년대 중반에 등장한 사이키델릭 운동에 발맞춰 부활되었다. 비트는 히피의 태동과 함께 상당수가 그 속으로 편입되었지만 히피가 갖는 사회참여적 성격을 사양하고 개인적인 비트의 순수성을 고집한 수절파(守節派)도 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히피의 극성기에 비트족의 본질을 그대로 지키면서 그것을 록으로 표현한 그룹이었다. 전위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지휘 아래 결성된 이 그룹은 ‘비트 시인’ 루 리드(Lou Reed)와 아방가르드 클래식 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던 존 케일(John Cale)을 주축으로 한 4인조 라인업으로 외롭게 비트의 정신을 표출했다.
록 역사는 이 작품을 비트의 아방가르드(전위) 정신과 록 음악이 결합된 ‘혁명적인’ 음반으로 정의한다. 비틀스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와 또 다른 면에서 록음악의 새장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운드로 볼 때는 곡마다 변화가 극심해 빠른 것과 느린 템포의 곡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생경하고 음침하다. 비틀즈의 그것처럼 예술적 세련미가 묻어 나오지는 않지만 ‘처음 들어보는 듯한’ 극단의 신선함이 있다. 테크니컬한 정확성보다는 즉흥성이 강조되어 있고 「Venus in furs」와 「The Black Angel's death song」 등에서 보이는 윙윙거리는 일렉트로닉 소음이 전위적임을 느끼게 한다.
루 리드는 앨범의 사운드를 ‘부패한 30년대 베를린 풍경’으로 빗대면서 “그 거리의 한 장면을 그려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곡은, 암시 수준을 넘어 과감한 노출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 마약 테마의 「I'm waiting for the man」, 「Heroin」 두 곡이었다.
헤로인은 나의 아내이며 나의 삶이야. 헤로인이 내 피에 실려있을 때, 그 피가 내 머리로 솟구칠 때, 난 죽고싶을 만큼 기분 좋아지는 것을 신께 감사드리지. -「Heroin」 |
노골적인 약물의 찬양은 청취자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며 플라워 파워에 이끌린 웨스트 코스트의 언론으로부터 ‘퇴폐의 전형’으로 매도당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 외에도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가학-피학성 음란증(사도마조히즘)을 다뤄 또 한 번 록계를 놀라게 했다.
주권자여, 그를 용서하지 말아요. 여인이여, 그를 때려 그의 정신을 치료해 줘요... 거리의 불빛에 환상을 갖는 죄악을 무너뜨려요. 그녀가 입게 될 의상을 내버려요. -「Venus in furs」 |
전위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듣기에 어렵지는 않다. 「Sunday Morning」, 「Femme Fatale」, 「I'll be your mirror」 등 세 곡에서 부드럽고 진지함에 넘치는 보컬을 들려줘 앨범의 대중적 친화력을 높여주는 데 공헌했다. 사생활이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있던 그녀(Nico)는 앤디 워홀의 적극적 추천에 따라 앨범 작업에 참여했고, 당시 루 리드의 여자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7년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와 같은 해 발표되어 가장 ‘파괴력을 지닌’ 음반으로 함께 꼽히면서도 비틀스의 음반과는 다르게 대중의 인정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까지 겨우 40만장이 팔려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깟 판매실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 진보성을 높이 평가받는다.
1993년 그들이 재결합했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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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록, 아트 록, 컬리지 록, 그런지 록, 뉴웨이브 록, 미니멀리스트 록 그것들 모두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시작되었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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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ryuyh9
2013.10.28
전영혁을 돌려다오~~
엔냥
2012.08.16
그만큼 그들은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겠죠.
그럼에도 그들의 음악은 잘 찾아듣지 않게되는데 그들의 음에 한발 다가선 느낌이네요.
한번 찾아듣고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