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아이돌 그룹인 2NE1의 멤버 CL의 아빠, 물리학자, 잡다구리 수집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 모두 한 사람의 이름 앞에 붙는 지칭들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이기진 교수다. 그가 최근 딸과의 여행으로 시작된 1년여의 파리 생활을 한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글과 그림, 사진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앞섰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파리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자 낭만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몇몇 강렬한 인상을 주는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를테면, 에펠탑이나 개선문, 몽마르트 언덕과 같은 식이다. 덕분에 파리를 방문한 많은 이들의 여행패턴은 그런 이름 높은 곳을 찾아 순식간에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식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유명한 장소 사이사이로 이어진 골목의 풍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이 사는 도시의 진면목은 바로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꼴라쥬 파리』를 통해 이기진 교수는 그런 풍경을 여과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수집한 여러 가지 옛 물건들, 가령 오래전 파리사람들이 썼을 법 하지만 대체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깃들었다는 것 또한 이 책의 특별한 매력이다. 고서점과 벼룩시장에서 만난 파리 사람들과의 대화, 그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로 잔잔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1년의 시간 속에서 그의 눈에 비친 파리의 모든 것, 그리고 아이돌 가수로 살아가고 있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물어봤다.
20년 만의 방문
(상략) 채린이 처음 파리에 온 것은 2살 때였다. 나는 먼저 파리에 도착해 다락방을 구하고 가족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공항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는데, 하얀 옷을 입은 채린이 공항 카트 위에 앉아 실려 나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생미셸 근처에 있는 오스트리츠 역 주변 다락방에 살았는데, 당시에는 채린과 함께 다시 파리에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략) 『꼴라쥬 파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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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채린 씨(CL)와의 여행으로 시작해 1년간 파리에 머물며 보고 느낀 것들을 책에 담으셨는데요. 여느 여행 책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집필 기간은 어느 정도가 소요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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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정도, 안식년으로 파리에 간 게 작년 2월인데 그 때 가서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일년 정도 썼죠. 안식년 시기하고 딸의 여행 제의가 맞아떨어진 덕분에 그런 깜짝 선물 같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어요. 채린이는 2년 만에 처음 쉬는 거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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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is 산책’과, ‘Paris is 골동’ 등의 주제로 시작해 맛과 미술, 카페, 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셨는데요. 마치 파리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필 당시 어떤 식으로 써야겠다는 계획이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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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즐겁게 쓰는 게 목적이었어요. 사실 저도 파리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마스터하며 그리고 공부하면서 ‘이것을 젊은이들이 읽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조금씩 조금씩 썼던 것 같아요. 주제를 ‘모아나갔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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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처음은 아니셨잖아요. CL씨가 어렸을 때도 파리에서 사셨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그 때와 최근 파리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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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았어요(웃음). 그게 신기해요. 그러니까 젊은 시절 제가 봤던 풍경과 20년 지났지만 지금이지만, 똑같아요. 기분도 그렇고 풍경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자주 갔던 카페, 즐겨 찾던 음식점들 모두 똑같이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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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도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과 여행하면서 감회가 새로웠을 듯한데요. 딸이 기억 못하는 어린 시절 파리에서의 생활에 대해 질문은 하지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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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많은 이야기를 했죠. 채린이는 그런 게 사실 많이 궁금한 것 같았어요. 자기는 기억 못하는, 저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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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을 묻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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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이요. 기억이 없잖아요. 정말 사소한 것들을 다 궁금해 했어요. 여행하는 내내 간간히 물었죠.
파리에선 느지막이 일어나 미술관에 가는 게 일이었다. 미술관 바닥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감상하고,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어렸을 때를 추억하며 이야길 들려주고, 배가 고프면 양파 수프를 먹고, 기운을 차린 후엔 길거리를 산보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공원 벤치에 앉아 내리는 둥 마는 둥 하는 비를 맞았다. 하는 일이라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이런 이런 여유로움을 만끽하던 채린은 아쉬움이 남았는지 일정보다 하루 더 머물다 서울로 돌아가고 나는 홀로 파리에 남았다. 『꼴라쥬 파리』 中 딸과의 시간을 이야기한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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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스프에 대한 이야기가 뒷부분에도 나오는 것 같은데, 자주 드시는 편이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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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요(웃음). 가장 먹기 편하고 해서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채린이도 좋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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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느끼는 파리사람들의 정서는 조금씩 다른 듯한데요. 교수님이 만난 파리 사람들은 어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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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었던 사람들은 친절했던 것 같아요(웃음). 물론 그 중에 불친절했던 사람도 당연히 많죠. 그런 기억은 금방 없애버렸어요. 그런데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파리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죠. 어떻게 보면 정도 많이 안줘요. 하지만 친해지면 굉장히 잘해줘요. 그 단계가 굉장히 오래 걸려요. 꾸준히 서로 교감을 해야 한다고 할까요. 근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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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종종 낭만과 결부시켜 환상적인 느낌으로 이야기하는데, 실제 생활은 어떠셨나요. 모든 것이 낭만스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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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사실 ‘내가 계속 파리에 살아야 된다’라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니까요. 겨우 1년 정도 머무는 것이기에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 노력을 했죠. 그러면서 글도 쓰고 친구도 만나고 다양한 것을 정리하고 또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물어보고 그렇게 지냈어요.
물리학자, 수집가 & 그림을 그리는 남자
파리에 있는 동안 그는 벼룩시장의 단골손님이었다. 실제로 그의 연구실에는 그 당시 수집했던 다양한 골동품들이 즐비했다. 개중에는 대체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궁금한 것들도 꽤 많았다. 일상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긴 것도 인상적이다. 물리학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의 말투는 꽤나 예술가와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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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메인 직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물리학자인데, 책을 보고 그렇게 느끼기는 쉽지 않았는데요. 다양한 방면에 관심은 타고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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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뭔가 재미있는 것은 해보고 싶고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싶고. 이게 뭘까 그런 생각들을 항상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물리학자라서 그럴 수 있어요. 도움이 되겠죠. 근데 사실 누구나 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 거잖아요. 그런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정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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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1년 생활하시면서 새롭게 배운 것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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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같은 거, 그리고 지식 같은 것 당연히 공부하게 됐고요. 특히 요리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요리책 같은 것도 한 번 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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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그리시고, 도무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의문인 물건들까지 수집하시는 것을 보면 대체 교수님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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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영감을 얻는다고 할까요. 어떤 사람 만나는 것도 그렇고 긴장감도 있으면서 뭔가 그런 영감 교류, 그런 것들이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24시간은 누구나 다 사는 거고 세끼를 먹고 잠을 자는 거죠. 그러면서도 어떻게 감성적으로 시간을 바라보며, 속도를 느끼면서 사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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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라기보다 예술가처럼 말씀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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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웃음)? 근데 물리도 마찬가지예요. 연구실에서 학생들하고 함께 하지만 중요한 건 서로 재미있게 하는 연구, 또 새롭게 뭔가 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출발하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술과 똑같은 거예요. 사실 제가 24시간 동안 물리를 할 순 없잖아요. 재미있게 사는 일종의 취미라고 봐도 좋겠죠. 다른 사람들은 골프를 칠 수도 있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할 수도 있고 다양한 취미가 있잖아요. 저는 그냥 이런 방식이에요. 그게 예술가적인 삶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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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골동품 빗자루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 본인 스스로 멀어진 빗자루와 같은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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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떻게 보면 제 삶의 반은 고난이 당연히 있죠. 어려운 일이 너무 많죠. 쉽게 쉽게 표현을 해서 그렇지 그러한 상황이 꼭 한 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싸리 빗자루처럼 버려지기도 하고 그런 상황은 많죠. 제가 항상 성공만한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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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씨 어렸을 때 다락방서 생활할 때 냄새날까봐 된장찌개도 못 먹던 시절이었나요. 그래도 한편으로 행복했던 기억이라는 느낌도 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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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는 당연히 힘들었겠죠. ‘아, 이거 어떻게 살아야하나’하는……. 무작정 파리에서 생활을 했는데 굉장히 힘들었겠죠. 사실 그 당시에 즐거웠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지나고 나니까 정말 행복한 기억이기도 해요. 제일 어려웠기 때문에 제일 행복한 기억이요. 빗자루처럼 버려진 상황 자체도 지나고 나니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나,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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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씨엘아빠의 파리, 물리학자의 파리, 잡다구리 수집가의 파리, 그림 그리는 이기진의 파리라는 문구가 인상적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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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라는 곳이 저한테는 어떤 동화 같은 곳이에요. 우리 어렸을 때 동화책 볼 때의 기분을 느끼게 하죠. 열심히 살다가 파리에 가고 싶고 그런 충동이 항상 있죠. 가면 행복해질 것 같고, 즐거워질 것 같고 그래서 여기서 열심히 살다가 가는 거예요. 어쩌면 말씀하신 네 가지의 입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 역시 파리가 아닌가 싶어요. 파리에 가면 좀 더 자유스럽다고 할까요.
이방인의 눈에 비친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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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한번쯤 길을 잃고 싶은 도시’라고도 하셨는데, 우리나라 혹은 다른 나라와 파리의 길거리, 골목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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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골목골목을 즐기는 거죠. 어느 나라를 가든 마찬가지에요. 사실 우리 효자동이라던가 골목도 파리와 같이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사실 비교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각각의 매력이 있어요. 우리 서강대 뒤편에 달동네 골목골목도 그 나름대로 괜찮아요. 쓰레기가 많긴 하지만 거기도 서울이에요. 파리만이 그런 매력을 가졌다고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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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에 대해서도 많은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셨는데, 파리 특유의 독특한 문화로 인식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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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벼룩시장은 지속성이 있는 것 같아요. 각자의 자리가 있고, 토요일에 가면 그 주인을 만날 수 있죠. 벼룩시장의 좌판을 보면 주인의 철학이 담긴 물건들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그러 면에서는 안심이 되기도 해요. 그 분이 건강하면 계속 그 벼룩시장이 열리는 거죠. 주인의 입장에서는 물건을 팔기 위해서 가져오는 것이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물건도 많고 어떤 교감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황학동 시장 같은 경우도 그런 면에서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같으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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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기존시설이 특별히 불편하지 않다면 그대로 가져가는 정책을 유지한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와 대비해 봤을 때 차이가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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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파리의 매력이죠. 파리에선 사실 불편하지 않으면 그대로 놔두는 거예요. 우리 입장에서는 많이 바꾸는 거죠. 저는 또 한편으로 그게 서울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장점일 수도 있고요. 파리 입장에서 보면 그게 부족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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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상인 로베르 조나르 씨와의 짧은 인터뷰를 비롯해서 고서점 주인인 알랭 두아이와 인터뷰 등 다양한 파리 사람들을 소개하셨는데요. 그들과의 만남은 꽤 자연스러워 보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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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니까요. 사실 자연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 사람들은 나한테 그냥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는 거거든요. 인터뷰를 해야겠다보다는 궁금하고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났죠. 파리 사람들이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하지만, 저의 진정성이 통했을 수도 있고요(웃음). 사실 얘기하고 싶다고 그러면 그걸 피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마음을 열고 당신하고 얘기하고 싶고 궁금하다고 하고 그 사람들이 바쁘면 끝난 다음에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친구가 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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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는 책방 ‘르박 비자르’의 주인 테오와의 만남에서는 사라진 동네책방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있는 것 같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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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서울은 그게 불행이에요. 어떻게 보면 가장 서울에 결핍된 부분이죠. 책을 사기위해 광화문에 가야하고 그리고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서 2박3일을 기다려야 되고……. 물론 그게 장점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주변의 책방이 있고 애들이 들락날락거리고 그런 풍경이 일순간 싹 사라진 거죠. 그러니까 박원순 시장님 본인도 책을 좋아하시니 서울에 그런 문화에 대해 신경을 쓸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남다른 삶을 사는 아빠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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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CL씨의 중학교 시절 교수님 가족의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취미가 이사 다니기’라고 하신 부분이 인상적인데요.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의 삶이 자녀들에게 꽤 큰 영향을 미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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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는 이사를 그렇게 다닌지 몰랐어요. 그때는 유학을 갔다 와서 전세를 돌아다니던 시절인데, 돈이 없으니까 돌아다닌 거죠(웃음). 제가 그 때 정신을 차렸으면 지금 굉장히 괜찮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살고 싶은 데 살아야 된다고 봐요. 분당에 살면서 서강대로 출퇴근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마치 분당에 살아야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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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면도 있었지만, 딸들에겐 즐겁고 재밌던 시절로 기억되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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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생각할 수 있죠. 어떤 사람들은 계속 한 곳에 살아야 된다는 분들이 많아요. 왜 이사를 다니고 새로운 데를 찾는가. 그런 것들을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였다면 저한테는 교육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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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은 아빠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최근 『꼴라쥬 파리』에 대한 평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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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이는 지금 읽고 있는 것 같고 둘째도 다는 안 읽은 것 같고, 언젠가 다 읽겠죠(웃음). 애들이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자기네들이 여유가 생겨서 파리에 다시 갔다 온 다음 이 책을 봤을 때는 ‘아 이런 얘기가 있었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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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열권의 책을 내시고 자녀를 위해 동화도 썼는데, 직접 그림을 그리시기도 하셨잖아요. 참 자상한 아버지신 듯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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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저 제 일상의 일부죠.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건데, 그것은 ‘꼭 아빠 책을 재미있게 읽어야 된다’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더 시간이 지나면 ‘아 이랬었구나’ 생각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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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지켜보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하셨는데요. 교수님의 아버님으로부터 이어진 방식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시대에는 쉽지 않은 방식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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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도 사실 굉장히 당신이 자유스럽게 사셨기 때문에 어떤 정해진 건 없잖아요. 이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사실 정답이 없잖아요. ‘괜찮잖아, 이렇게 살아도 돼’ 이런 식으로……. 사실 공부보다 다른 중요한 게 있거든요. 그런데 한 면만 보면 문제덩어리로 보이고 해결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런 면에 있어서는 저와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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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CL씨가 데뷔전 양현석 대표를 찾아가 기획사 앞에서 데모CD를 내밀었다는 일화는 유명한데요. 교수님과 상의가 있었던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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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되고 싶은 꿈에 대한 상의는 있었죠. 구체적으로 우리가 결단을 내리면 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열심히 했으니까 그런 진정성이 보인 거라고 생각해요. 당시 제 조언이라면, 그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내 힘닿는 선에선 해주겠다 정도였어요. 사실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거든요. 직접 찾아갔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어요. 좋은 방법이다 싶었어요(웃음). 사실 정답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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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서 살아가는 딸에 대해 아빠로서의 걱정이 있을 듯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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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걱정이죠. 그건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없어요. 구체적인 것도 있겠지만 그건 제가 평생 표현하지 못하고 안고 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부모나 다 마찬가지죠. 우리 부모님도 저를 걱정하셨어요. 그렇지만 부모님이 저한테 표현을 한 건 적어요. 아마 지구상에 있는 모든 부모는 다 똑같을 거예요. 제 경우도 채린이가 바쁘니 간섭할 수도 없고요. 그저 삶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길 바라는 거죠. 이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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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파리 여행은 언제 또 가능할까요. 그때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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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또 어떤 일상을 같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시간이 오길, 그걸 기다리는 거죠. 저는 항상 기다리는 거고 채린이가 문제인데, 시간이 난다면 그러고 싶어요. 가서 뭘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을 공유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항상 준비돼 있어요(웃음).
- 꼴라쥬 파리 collage paris 이기진 저 | 디자인하우스
이제 세상은 한 사람에게서 적어도 네 가지 모습 정도는 보고 싶어 한다. 2NE1 CL의 아빠이자, 물리학과 교수이고, 그림 그리는 동화 작가이자, 잡동사니 수집가인 저자 이기진이 바라본 파리가 재미있는 이유 또한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위치에서 바라본 다양한 시선 혹은 관점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한번쯤 화가를 꿈꾼다. 물리학과 교수로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림은 저자 이기진에게 생활 그 자체다. 대학교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도 틈틈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그림을 끄적거린다. 그러다…
황정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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