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뒤흔든 라이벌 ‘남진’과 ‘나훈아’

시간이 흘러 나훈아가 기성세대의 사랑을 장악하면서 남진보다 한 수 위의 중량감을 갖는 국민가수로, 가요계의 레전드로 상승했다. 나훈아가 남진에게 판정승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도 나훈아는 전설적 존재로 인식하지만, 남진은 그냥 옛날 가수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 라이벌전의 승자는 엄연히 남진이었다.

국내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벌전은 무엇인가? 언제든 인기와 파워를 겨루는 경쟁자들이 있지만 팬들마저 가세한 열띤 라이벌전으로는 1980년대 말 김완선 대 이지연, 1990년대 후반 HOT 대 젝스키스, SES 대 핑클, 유승준 대 조성모 그리고 동방신기 대 빅뱅 등이 떠오른다. 이런 인물 대결보다 어쩌면 2000년대 후반 아이돌 그룹들이 솟아난 이후부터는 3대 기획사 SM, JYP, YG의 라이벌 구도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경쟁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까지 전국을 뜨겁게 달군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전에 비교할 수는 없다. 우선 두 사람의 대결은 전 세대와 전 계층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달랐다. 90년대 이후의 라이벌들은 모두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대상이었던 데 반해, 남진과 나훈아의 격돌에는 국민 모두가 참여했다. 할아버지, 학생들, 지성인들, 농부와 상인들까지 남진인가 나훈아인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남진과 나훈아는 모든 것이 대조적이었다. 부잣집 도련님 같은 외모의 남진은 당대 영화배우들도 부러워한 얼짱 꽃미남이었고, 나훈아는 소도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남성적이었고 서민 풍모에 믿음직한 느낌을 주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지만 외모의 영향으로 남진은 대체로 젊은 여성 팬이 많았고, 나훈아는 어른과 남성들이 좋아했다.

게다가 두 사람의 출신지는 공교롭게도 당시 새 정치를 표방한 야권의 젊은 기수이자 정치적 맞수인 김대중과 김영삼의 고향과도 일치했다. 지역감정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다. 그만큼 두 가수는 라이벌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조건이 있었다.

그렇게 긴장감 도는 무서운 신경전은 없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라이벌전이 한창일 당시 직장과 모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집안 식구들마저도 남진 편, 나훈아 편으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도 어른으로부터 “넌 남진이냐, 나훈아냐?”라는 선택을 강요받았을 정도였으니까. 과장하면 남진과 나훈아, 네 편 내 편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난 듯했다. 당시 연예의 흐름을 주도한 주간지들은 온통 두 가수를 비교하는 특집기사로 도배되었다.

1972년 TV <쇼쇼쇼>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을 때 진행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인사를 나누던 모습이 얼마나 어색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일주일 시간차를 두고 공연을 했을 때 양측이 더 높은 열기를 과시하기 위해 살벌한 경쟁을 벌였던 것도 잊을 수 없다. 공교롭게 이 두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한 바 있는 정훈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 두 가수의 세는 우열을 따질 수 없을 만큼 팽팽했다. 객석은 완전 매진이었다. 공연장의 아우성과 환호 때문에 여자로서 무대 서기가 겁이 났다.”－정훈희

시간이 흘러 나훈아가 기성세대의 사랑을 장악하면서 남진보다 한 수 위의 중량감을 갖는 국민가수로, 가요계의 레전드로 상승했다. 나훈아가 남진에게 판정승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도 나훈아는 전설적 존재로 인식하지만, 남진은 그냥 옛날 가수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 라이벌전의 승자는 엄연히 남진이었다. 라이벌전이 극도에 달했던 시절 MBC, KBS, TBC 방송사의 최고인기가수상은 모조리 남진이 수상했다. 남진이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훈아가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심지어 남진이 군에 입대해 공백기를 맞은 때에도 인기조사를 하면 항상 남진이 1위, 나훈아가 2위였다.

맞수답게 두 가수의 노래는 접근법과 색깔이 달랐다. 당시 남진은 ‘젊은 초원’, ‘목화아가씨’, ‘그대여 변치마오’,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 그리고 결정타인 1972년 ‘님과 함께’처럼 대체로 미드템포의 신나는 노래를 불렀다. 반면 나훈아는 대표곡 ‘물레방아 도는데’를 비롯해 ‘고향역’, ‘너와 나의 고향’, ‘머나먼 고향’, ‘녹슬은 기찻길’ 등 향수를 자극하는 애절한 노래가 많았다. 무대의상도 남진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했다면 나훈아는 수수한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차이는 극명했지만 두 맞수의 노래는 서로 다른 눈으로 같은 시대를 말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절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운동으로 개발도상국 진입을 위해 전 국민이 건설과 수출의 깃발을 높이 들던 때였다. 가난해도 노력하면 반드시 도약할 수 있다는 번영의 꿈을 품었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는 그에 상응하는 후유증을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땅을 버리고 도시일터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중가요는 결국 서민을 위한 위로의 장 아닌가. 아기자기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남진의 노래는 화려한 정면을 대변했고, 주로 농촌을 떠난 사람들의 비통함을 다룬 나훈아의 노래는 이면의 아픔을 담아냈다. 남진은 경제성장의 희망, 나훈아는 이농離農의 아픔을 대변했다. 이것이 당시 우리 국민들의 정서였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님과 함께」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
천리 타향 멀리 가더니 / 새 봄이 오기 전에 잊어 버렸나 /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 두 손을 마주 잡고 아쉬워하며
－「물레방아 도는데」

사람들은 남진 노래를 듣고 밝은 기운을 보충했고, 나훈아 노래로는 아픈 가슴을 다스렸다.

새파란 잔디위에 아침햇살 눈부실 때 / 하늘멀리 흘러가는 흰 구름에 젊은 꿈 실어보네
－「젊은 초원」

머나 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머나먼 고향」

남진과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면 왜 두 가수가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달려가고자 하면서 동시에 뒤돌아보곤 하지 않는가. 동전의 양면처럼 그 시절 정서를 반영했으니 취향에 따라 팬들이 나뉠 수밖에 없었고, 그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라이벌전이 벌어진 것이다.

라이벌전은 당사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둘은 지금은 재현하기 어려운 트로트의 찬란한 전성기를 일궈 냈다. 대중가요 전체를 뒤흔드는 파괴력에서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전 시기는 트로트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두 가수의 노래가 그 시대를 반영하지 못했다면 한반도 남쪽 전체를 삼킬 정도의 열기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인의 정서는 남진과 나훈아 노래로 읽을 수 있다. 함께 가요사상 가장 빛나는 축포를 쏴 올릴 수 있었던 데는 대중가요의 시대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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