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냈다. 아직 많은 독자들은 이나영 작가가 생소할 텐데,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수질연구소에서 근무할 때만해도 그 길이 내가 갈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도서관에서 접한 그림책에 반해 닥치는 대로 어린이책을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내 안에 있던 ‘동심’을 발견했다고 할까? 그 세계가 궁금해졌다. 결혼과 육아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아동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니까 또 더 잘 쓰고 싶어지고…… 어린이책 작가교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삶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마음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따랐던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쓸 글, 쓰고 싶은 글만 생각하는 걸 보면 이젠 죽을 때까지 이 길로만 갈 것 같다. 그런 점에선 뭐랄까,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가 아닌 글을 찾는 이야기꾼으로 소개하고 싶다.
사진제공 : 문학동네
『시간 가게』로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을 쓰면서, 아, 이번에는 내가 받겠구나, 이런 확신이 있었나. 확신이 있었다면, 그 이유를 말해달라. 아니라면, 어떤 부분에서 이 작품이 미흡했다고 생각했나.
되겠구나 안 되겠구나, 그거야 심사위원들의 몫이라 감이 오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도 굳이 예감을 말하자면, ‘시간’이라는 소재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나 생각했다. 이미 책과 영화로 많이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제 면에서는 이 작품이 승부를 걸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 가게』가 온전히 시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막연한 미래의 행복만을 위해서가 아닌 ‘지금’을 살자는 동화니까. 특히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런 부분에선 긍정적으로 수상 가능성을 전망했다.
『시간 가게』는 어떤 작품인가.
『시간 가게』의 시작은 4년 전이었다. 시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고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을 수 없다면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더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 그 무렵은 어린이책 작가교실을 다닐 때이기도 한데 단편 동화 쓰기가 과제였다. 나는 글은 작가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때 작가의 에너지가 향하는 곳,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나온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 가게』는 주인공 윤아가 엄마의 바람대로 1등이 되기 위해, 매일 십 분의 시간을 사고 그 대가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자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의 시간을 팔고 기억을 산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윤아는 타자의 욕망에 이끌려 사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되어 지금을 살아야겠다고 깨닫는다.
작품에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 TEPS 850점을 기록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인 중에서도 저 정도 성적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 대한민국 교육열은 갈수록 심해지는데,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입장에서 특히 실감할 듯하다. 한국의 교육열, 어떤가.
사실 윤아가 850점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시간을 사서 대학생 오빠의 답을 보고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실제 그 점수 받는 친구들이 있더라. 토익만 해도 만점 가까이 받는 아이들이 꽤 있다. 한국의 교육열이야 방과 후 학교 앞에 줄 지어 서 있는 학원 버스들, 아이들 없는 놀이터, 낮보다 밤이 더 환한 학원가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는 것도, 무서울 정도다.
첫 독자가 중학생인 아이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이가 읽은 뒤, 어떤 평을 했나?
『시간 가게』 가 책 한 권으로 나오기까지 4년여 시간이 걸렸다. 물론 4년 내내 이 작품에만 매달린 건 아니지만, 아이야말로 처음 30매부터의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셈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덧붙여져야 했기 때문에 아이의 도움이 필요했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 학교 생활, 친구 관계, 학원 이야기 등등에 대해서 말해줬다. 하지만 수정이 될 때마다 봐 달라고 하니까 지쳤는지 정작 책으로 나왔을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덜 기뻐하더라.
일단 시간을 산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한번쯤은 그런 생각하지 않나. 대가로 기억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기억과 엉키고. 그 과정이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또래 아이인 주인공 윤아의 삶에 공감하는 것 같았다. 윤아처럼 학업스트레스가 많은 건 아니지만 (사실 엄마인 내 생각이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크니까.
『시간 가게』에서 등장하는 윤아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다. 윤아가 전교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는데. 아이에게 어떤 어머니인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윤아 어머니처럼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고, 멀티플레이어도 아니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에너지가 아이에게만이 아닌 내게도 많이 향해 있다. 아이의 1등보다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엄마라고 할까?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웃음)
나 역시 엄마니까 우리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 앞에 서서 끌고 가기보다는 아이를 지켜봐 주며 뒤따라가고 싶다. 아이가 하고 싶은, 또는 원하는 길이 있는데 도움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가장 빨리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 집착을 하는 순간 소유하고 싶어진다. 결국 소유라는 건 ‘나’, ‘내 입장’이라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상대방이 소멸되는 거다. 어디까지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느냐 하면…… 모르겠다.
앞으로도 어린이를 독자로 한 글을 쓸 것 같다. 작품에 자연히 작가의 교육철학이 들어갈 텐데, 교육철학을 말해 달라.
교육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이야기에는 크고 작건 메시지라는 게 있다. 하지만 쓸 때부터 어떤 메시지를 주어야 해, 독자들에게 이런 점을 꼭 알려 주어야 해, 그렇게 마음 먹고 쓰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내 안의 무의식을 믿는다. 어쩌면 그게 나의 교육철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밥을 먹을 때도 그렇다. 먹었으면 분명 소화와 배설의 과정이 있다. 그 이후에 성장이라는 과정이 이어진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육아 조급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늘 남보다 앞서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부모가 이미 정해 놓은 것에 아이를 맞추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내는 진짜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그림 작가인 윤정주 작가와는 어떻게 협업했나.
윤정주 작가를 첫 책의 그림작가로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고 그림을 그려 줬는데,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밝은 색채지만 아이들의 힘겨운 생활을 그리는 만큼 그림의 느낌은 어두웠으면 했다. 정확하게 표현해 줬다. 나 혼자 윤정주 작가랑 필(feel)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 다음 작품도 꼭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시간 가게』 전체 모티브가 『파우스트』를 연상시킨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
작품에서 그런 대작을 떠올리다니 영광이다. 좋아하는 작가랑 작품이 정말 많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편이고. 재작년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한동안 죽음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때 『몬스터 콜스』라는 책을 접했는데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위로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람의 위로는 잠깐인데 책과 음악은 그 위로가 오래 가더라. 그렇게 가슴에 와 닿는, 진정성이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 좋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동화작가로 이제 시작이니까, 부지런히 열심히 써야 한다. 현재도 쓰고 있고. 『시간 가게』와 다르게 밝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나라는 사람이 밝지 못해서 그런지 이번에도 우울한 이야기다.
그동안 해 왔던 독서지도 일을 그만둘까 했는데 사실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것이 글쓰기에 많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3월부터는 집 가까운 곳에서 독서지도 관련 강의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요즘 아이가 사진 찍기에 빠져 있어서 봄이 되면 같이 카메라 들고 출사 나갈 계획도 잡고 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시간가게 이나영 글/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입시 광풍으로 온전한 자기를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창작동화. 주인공은 오로지 1등이 되기 위해 매일 십 분의 시간을 사고,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마술적 장치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서사가 진행되며 아이들의 소망을 재미있게 그린 판타지인 것 같던 이 동화는 바로 이곳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잠파노
2013.12.03
큰엄마
2013.12.03
좋은하루 보내세요^^
빛나는보석
2013.11.22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