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에게 주목하는 이유
한 번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예능 유망주로서의 기회를 잃는 건 아니다. 이것이 중요하다. <개그콘서트>는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에서 소위 ‘본진’이라 부르는 근거지라 할 수 있다. 치열한 예능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야 하지만 그 중심에는 탄탄한 ‘본진’이 필요하다. 현재의 <개그콘서트>가 믿음직한 ‘본진’이라면 단순히 시청률 20퍼센트를 기록해서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10년 이상 누적된 서사가 있다.
201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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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가 왕이야, 왕. 예전에는 MC란 타이틀이 있어야 레벨이 위인 거 같았는데 지금은 <개그콘서트>에서 한 자리 하면 끝난 거 같아.” KBS <인간의 조건> 팀의 숙소에 놀러온 유세윤은 자신과 김준호 중 누가 더 위냐는 논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역시 <개그콘서트> 출신이자 버라이어티에 대한 위화감을 공공연히 밝히던 유세윤의 입에 발린 말일까. 하지만 멤버 교체 후 과거의 영광을 아직은 불러오지 못하는 <1박 2일>과 꾸준한 팬덤에도 불구하고 화제의 중심에선 물러난 <무한도전>, 강호동의 복귀 프로그램임에도 몇 달 되지 않아 폐지 수순을 밟은 <달빛프린스> 등의 부진 속에서 여전히 시청률 20퍼센트의 공고한 벽을 지키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위엄은 굉장한 것이다. 물론 <개그콘서트>가 공개 코미디의 대세를 넘어 예능의 대세가 된 건 2011년부터라고 볼 때, 이러한 상찬은 새삼스러울 수 있다. 중요한 건,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의 인기가 아니라 유세윤이 말했듯 ‘<개그콘서트>에서 한 자리 하’는 개그맨의 위상이다.
앞서 인용한 말이 <인간의 조건>에서 나왔다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비록 김준호의 새해 바람처럼 시청률 13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진 못하지만 MBC의 <아빠 어디가?>와 함께 2013년 신작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최근 폐지가 결정된 <남자의 자격>의 과거 전성기를 보는 느낌이다. 요컨대 남자 커뮤니티 특유의 허물없는 태도와 농담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이 프로그램에는 있다. 쓰레기 없이 살기, 자동차 없이 살기 같은 미션의 공익적 성격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재밌는 건 이러한 멤버간의 화학작용이 첫 회, 아니 파일럿으로 방영하던 시절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개그콘서트> 최고참이기도 한 박성호와 김준호는 서로의 어색한 관계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화해를 시도했고, 양상국의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왔을 때 다른 멤버들은 편하고 살갑게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인사를 드렸다. 이것은 그동안 <개그콘서트>라는 울타리 안에서 코너 안과 바깥에서 그들이 쌓아온 관계의 시간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개그맨, 더 정확히는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책을 출간한 개그콘서트 대표 개그맨 박성호, 김준호, 김원효, 최효종, 신보라
개그계의 큰형님 격인 김준호가 종종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듯 개그맨은 연기와 코미디, 버라이어티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장 재능 많은 집단이다. 당장 유재석과 강호동, 정형돈, 박명수, 신동엽 등 최고의 예능인들이 이 집단 출신이라는 것을 떠올려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앞서 언급한 MC들의 시대 이후를 이끌 유망주로 개그맨들을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해피투게더 3>의 G4는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여전히 김원효와 허경환, 김준호 등은 <개그콘서트>에서 ‘갑을컴퍼니’, ‘미필적 고의’ 등의 코너로 건재함을 과시한다. 한 번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예능 유망주로서의 기회를 잃는 건 아니다. 이것이 중요하다. <개그콘서트>는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에서 소위 ‘본진’이라 부르는 근거지라 할 수 있다. 치열한 예능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야 하지만 그 중심에는 탄탄한 ‘본진’이 필요하다. 현재의 <개그콘서트>가 믿음직한 ‘본진’이라면 단순히 시청률 20퍼센트를 기록해서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10년 이상 누적된 서사가 있다. 노하우를 말하는 게 아니다. 황현희의 ‘막말자’는 그 자체로 재밌는 코너지만 그가 ‘남보원’의 일원이었다는 과거사 안에서 더 큰 웃음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비상대책위원회’의 대통령 캐릭터가 그러했듯 ‘갑을컴퍼니’의 진상 사장 역시 김준호가 그동안 만들어온 형님 캐릭터의 맥락 안에서 힘을 얻는다. 즉 <개그콘서트>는 언제나 새로운 웃음을 추구하지만, 또한 과거의 자신들을 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시청자들과 튼튼한 유대를 쌓아왔다.
<인간의 조건>이 <개그콘서트>라는 ‘본진’을 바탕으로 한 효과적인 확장인 건 그래서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조건>이 리얼리티쇼로서 빠르게 출연자들의 관계망을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건 <개그콘서트>에서의 시간 덕분이다. 버라이어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에도 <남자의 자격>에서는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던 김준호도 이곳에서는 마음껏 농담을 던지고 다른 출연자들과 즉흥적인 개그 ‘시바이’(인위적 연출)를 펼칠 수 있다. 가장 버라이어티 경험이 부족한 정태호도 쓰레기 재활용 미술이라는 언뜻 뜬금없어 보일 수 있는 활동을 주눅 들지 않고 시도한다. 타인과 카메라의 관심을 갈구하던 게스트 홍인규의 모습에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본진’ 못지않게 튼튼한 확장 기지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것은 유의미한 걸 넘어 성공적인 한 걸음이다.
하여 현재 ‘<개그콘서트>에서 한 자리’ 하는 개그맨은 단순히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일원 이상의 위상을 가진다. 신보라처럼 그것만으로도 다수의 TV 광고를 찍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을 내는 개그맨도 ‘본진’의 힘을 믿으며 좀 더 용기 있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예능보다는 교양에 가까운 <퀴즈쇼 사총사> 같은 프로그램에 김준호, 김원효가 MC를 맡을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닌, 지금 이곳이기에 가능한 필연이다. 이것은 미래를 향해 그것도 폭넓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열려 있기에 더욱 긍정적이다. <개그콘서트>뿐 아니라 확장 기지로서 <인간의 조건>이 또 다른 무엇을 파생시킬지도 미처 알 수 없는 일이다. 즉 <개그콘서트>의 인기 개그맨이라는 말로도, MC 유망주라는 말로도 그들을 온전히 수식할 수 없다. 재능도 있다. 여차하면 돌아갈 수 있는 근거지도 있다. 그래서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 오랜 시간 시청자들과 공유해온 자신만의 캐릭터도 있다. 대체 이런 존재들을 주목하지 않고 누굴 주목해야 한단 말인가.
[인터뷰] ‘갸루상’ 박성호 “최종 목표는 50세까지 개그하고 싶다”
→ http://ch.yes24.com/Article/View/21672
앞서 인용한 말이 <인간의 조건>에서 나왔다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비록 김준호의 새해 바람처럼 시청률 13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진 못하지만 MBC의 <아빠 어디가?>와 함께 2013년 신작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최근 폐지가 결정된 <남자의 자격>의 과거 전성기를 보는 느낌이다. 요컨대 남자 커뮤니티 특유의 허물없는 태도와 농담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이 프로그램에는 있다. 쓰레기 없이 살기, 자동차 없이 살기 같은 미션의 공익적 성격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재밌는 건 이러한 멤버간의 화학작용이 첫 회, 아니 파일럿으로 방영하던 시절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개그콘서트> 최고참이기도 한 박성호와 김준호는 서로의 어색한 관계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화해를 시도했고, 양상국의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왔을 때 다른 멤버들은 편하고 살갑게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인사를 드렸다. 이것은 그동안 <개그콘서트>라는 울타리 안에서 코너 안과 바깥에서 그들이 쌓아온 관계의 시간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개그맨, 더 정확히는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책을 출간한 개그콘서트 대표 개그맨 박성호, 김준호, 김원효, 최효종, 신보라
개그계의 큰형님 격인 김준호가 종종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듯 개그맨은 연기와 코미디, 버라이어티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장 재능 많은 집단이다. 당장 유재석과 강호동, 정형돈, 박명수, 신동엽 등 최고의 예능인들이 이 집단 출신이라는 것을 떠올려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앞서 언급한 MC들의 시대 이후를 이끌 유망주로 개그맨들을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해피투게더 3>의 G4는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여전히 김원효와 허경환, 김준호 등은 <개그콘서트>에서 ‘갑을컴퍼니’, ‘미필적 고의’ 등의 코너로 건재함을 과시한다. 한 번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예능 유망주로서의 기회를 잃는 건 아니다. 이것이 중요하다. <개그콘서트>는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에서 소위 ‘본진’이라 부르는 근거지라 할 수 있다. 치열한 예능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야 하지만 그 중심에는 탄탄한 ‘본진’이 필요하다. 현재의 <개그콘서트>가 믿음직한 ‘본진’이라면 단순히 시청률 20퍼센트를 기록해서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10년 이상 누적된 서사가 있다. 노하우를 말하는 게 아니다. 황현희의 ‘막말자’는 그 자체로 재밌는 코너지만 그가 ‘남보원’의 일원이었다는 과거사 안에서 더 큰 웃음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비상대책위원회’의 대통령 캐릭터가 그러했듯 ‘갑을컴퍼니’의 진상 사장 역시 김준호가 그동안 만들어온 형님 캐릭터의 맥락 안에서 힘을 얻는다. 즉 <개그콘서트>는 언제나 새로운 웃음을 추구하지만, 또한 과거의 자신들을 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시청자들과 튼튼한 유대를 쌓아왔다.
<인간의 조건>이 <개그콘서트>라는 ‘본진’을 바탕으로 한 효과적인 확장인 건 그래서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조건>이 리얼리티쇼로서 빠르게 출연자들의 관계망을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건 <개그콘서트>에서의 시간 덕분이다. 버라이어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에도 <남자의 자격>에서는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던 김준호도 이곳에서는 마음껏 농담을 던지고 다른 출연자들과 즉흥적인 개그 ‘시바이’(인위적 연출)를 펼칠 수 있다. 가장 버라이어티 경험이 부족한 정태호도 쓰레기 재활용 미술이라는 언뜻 뜬금없어 보일 수 있는 활동을 주눅 들지 않고 시도한다. 타인과 카메라의 관심을 갈구하던 게스트 홍인규의 모습에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본진’ 못지않게 튼튼한 확장 기지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것은 유의미한 걸 넘어 성공적인 한 걸음이다.
하여 현재 ‘<개그콘서트>에서 한 자리’ 하는 개그맨은 단순히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일원 이상의 위상을 가진다. 신보라처럼 그것만으로도 다수의 TV 광고를 찍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을 내는 개그맨도 ‘본진’의 힘을 믿으며 좀 더 용기 있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예능보다는 교양에 가까운 <퀴즈쇼 사총사> 같은 프로그램에 김준호, 김원효가 MC를 맡을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닌, 지금 이곳이기에 가능한 필연이다. 이것은 미래를 향해 그것도 폭넓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열려 있기에 더욱 긍정적이다. <개그콘서트>뿐 아니라 확장 기지로서 <인간의 조건>이 또 다른 무엇을 파생시킬지도 미처 알 수 없는 일이다. 즉 <개그콘서트>의 인기 개그맨이라는 말로도, MC 유망주라는 말로도 그들을 온전히 수식할 수 없다. 재능도 있다. 여차하면 돌아갈 수 있는 근거지도 있다. 그래서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 오랜 시간 시청자들과 공유해온 자신만의 캐릭터도 있다. 대체 이런 존재들을 주목하지 않고 누굴 주목해야 한단 말인가.
[인터뷰] ‘갸루상’ 박성호 “최종 목표는 50세까지 개그하고 싶다”
→ http://ch.yes24.com/Article/View/21672
- 웃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박성호,김준호,김원효,최효종,신보라,위근우 공저 | 예담
『웃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이 프로그램의 위상을 이어가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재기발랄한 신인, 박성호, 김준호 등 중견 개그맨과 김원효, 최효종, 신보라의 인터뷰집이다. '개콘'의 대표 인기 개그맨인 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개그 철학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웃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이 프로그램의 위상을 이어가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재기발랄한 신인, 박성호, 김준호 등 중견 개그맨과 김원효, 최효종, 신보라의 인터뷰집이다. '개콘'의 대표 인기 개그맨인 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개그 철학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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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위근우
前 엔터테인먼트 웹진 <10 아시아> 기자. 현재는 비정규직 마감 노동자, 혹은 동네 글 좀 쓰는 형.
yiheaeun
2013.04.10
십일월사람들
2013.04.04
kzkzoo
201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