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은 과정이지, 한 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다 - 윌리엄 폴 영 『갈림길』
『오두막』의 저자 윌리엄 폴 영이 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 『갈림길』을 들고 한국을 찾아왔다. 지난 3월 1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윌리엄 폴 영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시종일관 유쾌한 와중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땐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독자들과의 만남에 설레어하는 그는 영락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20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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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후보로 2번이나 올랐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 『바베트의 만찬』 등을 쓴 덴마크의 작가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 다른 필명 ‘카렌 블릭센 (Karen Blixen)’, 1885~1962)’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All sorrows can be borne if you can put them into a story or tell a story about them).”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인용해 더욱 알려진 이자크의 이 말. 그녀는 슬픔이 속으로 곪아 자신을 삼키기 전에 이야기를 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슬픔을 다스리는 좋은 방안이라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꾼들이 ‘자전적’ 이야기를 꺼내놓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또한 작가 자신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이야기의 치유 기능을 믿게 된다. 이야기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작가 윌리엄 폴 영. 이자크 디네센의 말을 증명하듯,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견디고 치유했다. 그의 첫 책 『오두막』이 그랬다. 미국에서만 800만 부 이상 팔린 이 소설은 그를 치유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책의 제목이자 소재인 ‘오두막’은 누구나 가진 깊은 상처를 의미하는데, 이 책은 기억하기 싫고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응시하면서 화해할 것을 권한다.
많이 알려졌지만, 그는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원주민과 기독교학교 기숙사에서 상급생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은 어린 그가 어찌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그를 구원한 것은 ‘관계’였다. 종교를 비롯해 가족, 친구들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차츰 그를 회복시켰고, 『오두막』을 쓰면서 그는 슬픔을 치유 받았다. 그는 “오두막 문을 열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데 11년이 걸렸으며 이 책이 큰 도움이 됐다”며 “모든 아픔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만 치유할 수 있는데, 사람 간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신의 관계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처지였던 그는 2005년 아내와 자녀 6명의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오두막』을 썼다. 15부를 인쇄하여 지인들에게 돌렸던 이 책, 감동받은 친구들이 출판을 권했으나 출판사에서 족족 거절당했다. 결국 자비 출판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 이 책, 서점에 놓을 수도 없어 인터넷으로만 판매를 했다. 그랬던 책이 입소문을 타고 선풍적으로 나갔다. 800만 부 이상 팔렸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도 10만 부 이상이 팔렸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 『갈림길』을 들고 한국을 찾아왔다. 『갈림길』 역시 ‘관계’와 ‘치유’의 작품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인정받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40대의 앤서니 스펜서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여러 갈림길이 그의 영혼 앞에 나타난다. 이 갈림길들 앞에서 앤서니는 끊임없는 선택의 시간을 겪으며 황폐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마음이 변화하는 여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가치 있는 선택과 진정한 삶을 고민하게 된다.
지난 3월 1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윌리엄 폴 영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시종일관 유쾌한 와중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땐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독자들과의 만남에 설레어하는 그는 영락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윌리엄 폴 영, ‘관계’를 말하다
이번에 한국을 오면서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되도록 많이 주선해달라고 했다. 앞선 『오두막』 때도 4년에 걸쳐 유럽, 남미, 아시아를 넘나들며 직접 독자들을 만나는 북투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윌리엄 폴 영 작가에게 독자들과 직접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북투어를 하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 독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이야기에 초청을 받은 셈이지. 특별한 장소, 그 자리에 내가 갈 수 있다는 허용을 받았다는 의미다. 내겐 영광이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내 전체에 스며든다는 뜻이다. 북투어는 내 이야기를 읽고 독자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기쁨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기회를 많이 갖고 싶다.
이번 소설 『갈림길』이 첫 번째 소설이었던 『오두막』보다 주제의식도 깊어지고 문학적으로 성숙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두막』이 전 세계적으로 워낙 큰 성공을 해서 『갈림길』을 쓸 때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을 품고 집필했는가?
사실 부담을 느낄 만큼 내가 똑똑하진 않다(웃음). 소설을 쓰면서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내가 모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또 다른 인생이라는 느낌을 갖고 책을 썼다. 하루하루 주어진 자체가 기쁨이며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고, 기대를 하면서 책을 쓰지도 않았다. 강물처럼 창의성이 발현되고 강물을 따르는 신뢰성을 갖고 글을 썼으며, 이번 글도 그렇게 써보자고 했다. 『갈림길』이 이전보다 문학적으로 성숙했다고 많은 분들이 평을 해주시는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갈림길』과 『오두막』 모두 종교적인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작가는 종교가 없는 독자들도 느끼는 바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과거와 달리 지금 지나치게 세속화되고 오염된 신과 종교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과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이렇게 묻고 싶다. 종교의 의미가 뭘까? 그것에 대한 정의를 해야 한다. 관행이나 행동 같은 것이 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시스템화 한 것이 종교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세속적인 사람이라고나 할까. 내 책이 종교인, 비종교인 모두에게 영향을 준 것은 진정하고 인간적인, 흔히 말하듯 본질적인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비극과 상실감을 매일 경험하고 나름대로 언어를 통해 신과 대화를 시도한다.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화마다 차이가 있고 다르겠지만, 관계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신에 대한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고, 이는 종교를 초월한 진지 인간적 대화라고 역설했었다. 방금도 관계에 대해 말했는데, 『오두막』 『갈림길』 모두 종교보다 ‘관계’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다룬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관계를 말할 때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직함. 진실함. 그리고 숨기지 않는 것. 즉, 비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함의 여정을 계속 밟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바깥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관계에서의 모든 위험을 쥐고 신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관계의 중심에는 위험이 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위험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뢰를 해보는 것이 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이런 신뢰를 누군가 져버렸다, 침해당했다,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기가 꽤 힘들다. 그렇더라도 이런 위험을 극복하고 다시 신뢰해야 성숙할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떠오른다.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물론 웃을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 진지하지 않나? 웃을 줄 모른다. 웃을 줄 안다면 관계에 있어서의 어떤 압력을 없애 버릴 수 있다. 인간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니까. 실수 이후의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
앤서니 스펜서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에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 관계를 통해 치유를 하고. 작가 스스로 상처로부터 치유된 것도 관계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활용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보다는 피상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작가는 제대로 된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관계에는 여러 관계가 있다. 심원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니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쉬운 것도 있다. 어려운 관계도 있다. 쉬운 관계는 아는 것처럼 느껴서 쉽게 맺어질 수 있다. 어쨌거나 관계를 위해서는 의도성이 있어야 한다.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도 있고, 노력해야 맺어지는 관계도 있다. 사람은 내 인생에서의 여러 관계,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발전하는 성장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관계는 주어진 선물과도 같다. 선물을 수용하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어떤 일을 하던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이런 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윌리엄 폴 영이 말하는 ‘힐링’
『오두막』과 『갈림길』, 모두 ‘치유(힐링)’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지금 한국은 ‘힐링’ 열풍에 빠져 있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진짜 ‘치유’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힐링. 사실 내 스스로는 치유가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사건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내 스스로 인격체가 돼야 한다. 혼자든, 친구나 가족과 있든 간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격체가 돼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개념에 대한 답변이 일관돼야 한다. 나도 통합된 인격체가 아니었다. 어릴 때, 가족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 배반과 손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마음이 찢겨나가 흩어져 나갔던 때도 있었다. 이성과 감성이 분리됐고, 건강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영혼과 정신이 모두 하나가 돼서 인격체가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됐을 때가 있었다. 이것도 관계에 의해서 조금씩 나아졌다. 따라서 힐링(치유)은 과정이다. 한 번 순식간에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녀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썼던 『오두막』이 거둔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은 큰 화제가 됐다. 삶이 확 바뀌었을 텐데, 그럼에도 작가가 잃지 않고자 하는 초심이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어딜 가나 이런 유사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강조하는 점은 하나다. 내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책을 써서 순간적인 성공을 맞보고 있는데, 유명한 건 영구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명성은 진리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내 정체성과 동일화하지 않는다. 명성이나 인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영구적인 것은 신뢰에 기반을 둔 관계가 아닌가 싶다. 나의 본질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한때 아이로 돌아가 초심 같은 때가 있었다. 진정한 관계를 하느님, 친구와 맺으려고 노력했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성공은 내 정체성이 아니다. 내 가치를 지키며 사는 게 하루하루 나의 행복이고 기쁨이다. 사람들이 ‘왜 이리 변하지 않았니?’ 하고 물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나의 아내가 누군지 모르지?’ 하고 농담조로 말한다(웃음). 아내를 비롯한 내 주변의 관계가 그렇게 나를 지켜준다. 언제든 진지해지려거나 아는 척 하려고 하면, 그건 “내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나는 평범하다 가족 모두, 내가 진지해지려고 하면 웃는다. 이상한 모습으로 중요한 척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인들이 보인 반응에 감사하고 놀랍다. 평범한 일반인도 있고, 종교인도 있고, 무척 다양한데, 나의 책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성찰해보고 진면목을 보는 게, 내게도 그렇고 독자에게도 의미가 있다. 한국인들이 나와 책에 대해 보인 반응도 영광이고 기쁘고 놀랍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All sorrows can be borne if you can put them into a story or tell a story about them).”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인용해 더욱 알려진 이자크의 이 말. 그녀는 슬픔이 속으로 곪아 자신을 삼키기 전에 이야기를 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슬픔을 다스리는 좋은 방안이라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꾼들이 ‘자전적’ 이야기를 꺼내놓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또한 작가 자신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이야기의 치유 기능을 믿게 된다. 이야기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이 알려졌지만, 그는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원주민과 기독교학교 기숙사에서 상급생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은 어린 그가 어찌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그를 구원한 것은 ‘관계’였다. 종교를 비롯해 가족, 친구들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차츰 그를 회복시켰고, 『오두막』을 쓰면서 그는 슬픔을 치유 받았다. 그는 “오두막 문을 열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데 11년이 걸렸으며 이 책이 큰 도움이 됐다”며 “모든 아픔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만 치유할 수 있는데, 사람 간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신의 관계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처지였던 그는 2005년 아내와 자녀 6명의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오두막』을 썼다. 15부를 인쇄하여 지인들에게 돌렸던 이 책, 감동받은 친구들이 출판을 권했으나 출판사에서 족족 거절당했다. 결국 자비 출판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 이 책, 서점에 놓을 수도 없어 인터넷으로만 판매를 했다. 그랬던 책이 입소문을 타고 선풍적으로 나갔다. 800만 부 이상 팔렸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도 10만 부 이상이 팔렸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 『갈림길』을 들고 한국을 찾아왔다. 『갈림길』 역시 ‘관계’와 ‘치유’의 작품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인정받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40대의 앤서니 스펜서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여러 갈림길이 그의 영혼 앞에 나타난다. 이 갈림길들 앞에서 앤서니는 끊임없는 선택의 시간을 겪으며 황폐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마음이 변화하는 여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가치 있는 선택과 진정한 삶을 고민하게 된다.
지난 3월 1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윌리엄 폴 영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시종일관 유쾌한 와중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땐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독자들과의 만남에 설레어하는 그는 영락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윌리엄 폴 영, ‘관계’를 말하다
이번에 한국을 오면서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되도록 많이 주선해달라고 했다. 앞선 『오두막』 때도 4년에 걸쳐 유럽, 남미, 아시아를 넘나들며 직접 독자들을 만나는 북투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윌리엄 폴 영 작가에게 독자들과 직접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북투어를 하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 독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이야기에 초청을 받은 셈이지. 특별한 장소, 그 자리에 내가 갈 수 있다는 허용을 받았다는 의미다. 내겐 영광이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내 전체에 스며든다는 뜻이다. 북투어는 내 이야기를 읽고 독자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기쁨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기회를 많이 갖고 싶다.
사실 부담을 느낄 만큼 내가 똑똑하진 않다(웃음). 소설을 쓰면서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내가 모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또 다른 인생이라는 느낌을 갖고 책을 썼다. 하루하루 주어진 자체가 기쁨이며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고, 기대를 하면서 책을 쓰지도 않았다. 강물처럼 창의성이 발현되고 강물을 따르는 신뢰성을 갖고 글을 썼으며, 이번 글도 그렇게 써보자고 했다. 『갈림길』이 이전보다 문학적으로 성숙했다고 많은 분들이 평을 해주시는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갈림길』과 『오두막』 모두 종교적인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작가는 종교가 없는 독자들도 느끼는 바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과거와 달리 지금 지나치게 세속화되고 오염된 신과 종교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과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이렇게 묻고 싶다. 종교의 의미가 뭘까? 그것에 대한 정의를 해야 한다. 관행이나 행동 같은 것이 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시스템화 한 것이 종교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세속적인 사람이라고나 할까. 내 책이 종교인, 비종교인 모두에게 영향을 준 것은 진정하고 인간적인, 흔히 말하듯 본질적인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비극과 상실감을 매일 경험하고 나름대로 언어를 통해 신과 대화를 시도한다.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화마다 차이가 있고 다르겠지만, 관계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인간에 대해 설명한다는 건, 하나의 존재지만 정신, 영혼, 육체로 이루어져 있는 인간을 설명한다는 건, 성령, 아버지, 아들로 이루어져 있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과 같아. 체험과 관계를 통해서 이해해야 해.”(p.163) | ||
정직함. 진실함. 그리고 숨기지 않는 것. 즉, 비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함의 여정을 계속 밟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바깥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관계에서의 모든 위험을 쥐고 신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관계의 중심에는 위험이 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위험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뢰를 해보는 것이 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이런 신뢰를 누군가 져버렸다, 침해당했다,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기가 꽤 힘들다. 그렇더라도 이런 위험을 극복하고 다시 신뢰해야 성숙할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떠오른다.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물론 웃을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 진지하지 않나? 웃을 줄 모른다. 웃을 줄 안다면 관계에 있어서의 어떤 압력을 없애 버릴 수 있다. 인간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니까. 실수 이후의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
“나 혼자서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관계가 곧 내 존재의 핵심이지요.”(p.92) | ||
관계에는 여러 관계가 있다. 심원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니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쉬운 것도 있다. 어려운 관계도 있다. 쉬운 관계는 아는 것처럼 느껴서 쉽게 맺어질 수 있다. 어쨌거나 관계를 위해서는 의도성이 있어야 한다.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도 있고, 노력해야 맺어지는 관계도 있다. 사람은 내 인생에서의 여러 관계,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발전하는 성장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관계는 주어진 선물과도 같다. 선물을 수용하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어떤 일을 하던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이런 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그의 삶을 파괴했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길로 그를 내몰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일을 거뜬히 할 수 있는 강하고 거칠고 유능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여린 갈망이 바윗장 같은 겉모습을 뚫고 들어와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려 할 때면 그는 곧바로 귀를 막아버렸다.”(p.25) | ||
윌리엄 폴 영이 말하는 ‘힐링’
『오두막』과 『갈림길』, 모두 ‘치유(힐링)’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지금 한국은 ‘힐링’ 열풍에 빠져 있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진짜 ‘치유’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힐링. 사실 내 스스로는 치유가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사건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내 스스로 인격체가 돼야 한다. 혼자든, 친구나 가족과 있든 간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격체가 돼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개념에 대한 답변이 일관돼야 한다. 나도 통합된 인격체가 아니었다. 어릴 때, 가족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 배반과 손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마음이 찢겨나가 흩어져 나갔던 때도 있었다. 이성과 감성이 분리됐고, 건강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영혼과 정신이 모두 하나가 돼서 인격체가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됐을 때가 있었다. 이것도 관계에 의해서 조금씩 나아졌다. 따라서 힐링(치유)은 과정이다. 한 번 순식간에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녀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썼던 『오두막』이 거둔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은 큰 화제가 됐다. 삶이 확 바뀌었을 텐데, 그럼에도 작가가 잃지 않고자 하는 초심이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어딜 가나 이런 유사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강조하는 점은 하나다. 내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책을 써서 순간적인 성공을 맞보고 있는데, 유명한 건 영구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명성은 진리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내 정체성과 동일화하지 않는다. 명성이나 인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영구적인 것은 신뢰에 기반을 둔 관계가 아닌가 싶다. 나의 본질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한때 아이로 돌아가 초심 같은 때가 있었다. 진정한 관계를 하느님, 친구와 맺으려고 노력했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성공은 내 정체성이 아니다. 내 가치를 지키며 사는 게 하루하루 나의 행복이고 기쁨이다. 사람들이 ‘왜 이리 변하지 않았니?’ 하고 물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나의 아내가 누군지 모르지?’ 하고 농담조로 말한다(웃음). 아내를 비롯한 내 주변의 관계가 그렇게 나를 지켜준다. 언제든 진지해지려거나 아는 척 하려고 하면, 그건 “내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나는 평범하다 가족 모두, 내가 진지해지려고 하면 웃는다. 이상한 모습으로 중요한 척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인들이 보인 반응에 감사하고 놀랍다. 평범한 일반인도 있고, 종교인도 있고, 무척 다양한데, 나의 책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성찰해보고 진면목을 보는 게, 내게도 그렇고 독자에게도 의미가 있다. 한국인들이 나와 책에 대해 보인 반응도 영광이고 기쁘고 놀랍다.
- 갈림길 윌리엄 폴 영 저/이진 역 | 세계사
『갈림길』은 우리 모두가 성공한 삶이라고 여기는 40대의 사업가 앤서니 스펜서의 이야기다. 냉철한 판단력으로 오직 성공으로 향하는 길만 선택해온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의 앞에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죽음이란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던 앤서니 스펜서가 겪는 갖가지 사건들이 마치 유쾌하고 가슴 뭉클한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전개되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시 다지며 정화해 나가는 과정이 교차 서술된다. 앤서니와 예수, 할머니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죽음 이후,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같은 인간의 본질적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9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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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앙ㅋ
2014.07.12
는 말씀에 겸손함이 배어나오네요.
jawon502
2013.07.15
저에게 너무나 고마운 책이고,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djsslqkqn
201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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