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닉 사운드, 인간미를 입다 - 다프트 펑크, 뉴 오더, 바이 바이 배드맨
‘일렉트로닉의 상징’ 다프트 펑크가 돌아왔습니다. 다양한 뮤지션들과의 협업과 1970, 1980년대 음악을 상기시키는 복고풍 사운드가 돋보이네요. 무려 8년만의 정규앨범, 를 지금 소개해드립니다. 를 발매할 당시 수록하지 않았던 곡들로 채운 뉴 오더의 신보와 군살을 빼고 보다 정갈한 음악으로 돌아온 바이 바이 배드맨의 앨범도 놓치지 마세요.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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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트 펑크(Daft Punk)
안드로이드 페르소나를 입은 다프트 펑크는 8년만의 정규 음반 로 더 이상 인간미를 엄폐하지 않으며 일렉트로닉의 건조함에서 벗어난 생동적인 사운드를 통해 헬멧에 가려진 온기를 발산한다. 인간과 로봇을 정반합 한 이 듀오는 여전히 댄서블하고 전자적이지만 음악을 둘러싼 대기(大氣)는 보다 유하다.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주류를 독식한 현 시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무명 시절, 밴드 달링으로 음악계에 걸음마 뗀 시점을 회상하며 음악적인 영감을 재구성한다. 당시 롤링 스톤스와 비치 보이스, 스투지스를 동경하며 커버 곡으로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처럼 이번 음반은 과거에 대한 숨김없는 헌사다.
첫 싱글 「Get lucky」부터 디스코 고전 「Le Freak」의 밴드인 쉭의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와 함께하며 정규 4집의 과녁을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음악에 놓았다.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서머와 파트너를 이뤘던 작곡가 조르지오 모르도의 「Giorgio by moroder」 참여가 이를 더욱 명확하게 한다. 이곳엔 35년 전의 댄스 음악을 개척한 뮌헨 사운드의 탄생이 단편적으로 녹아있다.
디스코의 그루브를 대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다프트 펑크에게 정체성의 희생을 내포한다. 자유로운 흥이 장르의 생명력이기에 단순히 MR로 펑키 리듬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 이 모험은 2010년 영화 사운드 트랙을 작업한 경험으로 과감하게 실행됐다. 오케스트레이션을 음악에 대입하고 여러 뮤지션들과의 협연했던 내적 자산이 스튜디오에서의 자족을 탈피시켰다. 그간의 음반과는 다르게 세션 뮤지션을 모집하고 라이브 연주를 녹음했으며 일렉트로닉 악기를 최소화했다. 음성 이펙터인 보코더의 사용 정도가 그들의 기계적인 이미지를 연장시킬 뿐 샘플링은 「Contact」 단 한곡에서, 드럼 머신은 「Motherboard」와 「Doin' it right」에서만 등장한다.
이른바 다프트 펑크와 그의 백밴드는 전자 악기의 직감적인 반응을 줄이고 활발한 세션작업으로 음향에 층을 쌓았다. 반복과 직선 대신 윤활과 곡선을 택한 이 방법은 1970, 1980년대 음악에 대한 헌정을 구현도 높게 발현시킨다. 나일 로저스의 펑키(Funky)한 기타가 돋보인 「Give life back to music」과 퍼렐 윌리엄스와의 두 번째 싱글 「Lose yourself to dance」는 댄서블한 디스코 넘버이며 토드 에드워드가 노래한 「Fragments of time」은 알엔비 리듬과 팝 록 사운드를 통해 블루 아이드 소울 듀오 홀 앤 오츠를 연상시킨다. 또한 뮤지컬 음악을 작곡한 바 있는 싱어송라이터 폴 윌리엄스와 함께 한 「Touch」는 아트록의 변곡 작법을 차용하고 「Instant crush」는 신시사이저와 록이 결합한 뉴웨이브 스타일까지 덧입었다.
다프트 펑크는 이렇게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과 그 개인적인 추억을 임의적으로 배치했다. 결국 컴퓨터 주기억장치 RAM의 복수형인 타이틀 는 음악적 세례를 보관하는 기억의 저장고인 것이다. 여기에 다프트 펑크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인간적인 이번 음반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사람의 뇌와도 평행선을 달린다.
이번 음반은 라디오 헤드의 완벽한 기계화를 알린 와 대척하는 변곡점에 서있어 기존 팬들에게 거리감을 준다. 다프트 펑크의 맨 얼굴이 담긴 사진이 희소하듯 완전한 인공지능 로봇이었던 그들의 의상이 스토리텔링의 몰입도를 더해주는 글램 록의 변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는 변화의 축적이 낳은 소산물이기에 완성도와 안정감이 있다. 거부감이 들지 않는 수작(秀作)이자 수작(手作)이다.
뉴 오더(New Order)
신보 는 정규 앨범이 아니다. 2005년에 발매했던 을 만들 당시, 제외시켰던 곡들을 그 때의 녹음 버전 그대로 새 CD에 옮겨 넣은 컴필레이션 성격의 음반이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전작의 ‘쌍둥이 앨범’ 정도랄까. 그런데 이 작품에는 조금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다. 왜 정규 앨범이 아닌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뉴 오더는 신보 소식을 장식했을까. 또, 무슨 이유에서 의 미발표곡들로만 새 앨범의 내용을 채웠을까.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자. 갖가지 앨범들과 라이브 공연을 가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뉴 오더는 2007년에 이르러 홍역을 앓았다. 기타리스트인 버나드 섬너(Bernard Sumner), 드러머인 스테판 모리스(Stephen Morris)와 함께 밴드의 원년 멤버로 중추 역할을 해오던 베이시스트 피터 훅(Peter Hook)이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팀이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팬들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향했을 위로를 공식적으로 알렸지만, 버나드 섬너도 곧 대열에서 이탈했고 1993년에 경험했던 해체의 수순을 다시 밟아야했다. 밴드의 두 번째 공백기였다.
그 직전의 앨범이 바로 이었다. 다시 말해, 피터 훅을 포함한 순도 100퍼센트 뉴 오더의 마지막 작품이었다는 뜻이다. 그의 자리를 세션으로 채우며 돌아온 이 시점에서 과거의 행적을 기념함과 동시에 새 출발을 공표하기에는 8년 전의 결과물들을 재조명하는 일은 결코 부족한 과업이 아니다. 이전의 음반에선 ‘놓쳤던’이라는 문구가 의 형태로 신보의 타이틀에 새겨져 있으니 의미가 나름 묵직하게 다가온다.
신보의 콘텐츠가 상당히 좋다. 곡들 자체도 범작 이상이거니와 퀄리티도 일정 수준 이상에 올라있다. 무엇보다도 몇몇 곡에서는 초기의 뉴 오더가 구사했던 뉴웨이브 사운드가 등장하는데, 이는 2001년 이후 펑크와 기타 록으로 점철된 밴드의 행보에서 간만에 재회하는 요소라 적잖은 반가움을 선사한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8년 전의 작품 보다 미발표곡들을 수록한 이번 음반이 더 괜찮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여전히 젊은 록 넘버들로 앨범을 가득 채웠다는 점에서 전작은 매력이 있었지만 잡아당길 흡인력은 확실히 부재했다. 기존의 뉴 오더와도 접점을 형성하지 못 했고 변신이라 하기에도 어딘가 변변치 못한 감이 있었다.
이번에 선보인 ‘신곡’들은 직전의 한계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이 곡들이 왜 당시의 정규 트랙 리스트로 선택받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첫 곡 「I'll stay with you」가 바로 적확한 예다. 촘촘한 비트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멜로디컬한 기타 리프와 신디사이저 사운드는 「Ceremony」나 「Love vigilantes」와 같은 곡들에서 일찍이 만났던 뉴 오더 식 규범과 방법론의 답안이다. 이어지는 「Sugarcane」도 역시 수작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입맛으로 펑키한 리듬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섞어놓은 노래는 30여 년 전의 뉴웨이브를 2000년대로 견인해온다. 쉽게 넘기기 어려운 매력적인 결과물이다.
앨범에 대해 언급해야할 부분이 또 하나 있다면 패러다임에 있어 뉴 오더가 변형을 꾀한다는 점이다. 밴드의 전신인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시절부터 이들은 베이스 리프를 줄곧 강조해왔다. 멜로디 파트 못지않게 두꺼운 비트 음에도 무게를 실었고 피터 훅의 베이스 라인이 전면으로 계속 노출되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부터 이들은 그 비중을 기타로 향하게끔 뒤집어 놓았다. 후반부의 「Hellbent」와 「Shake it up」이 바로 대표적인 샘플이다. 기타 리프가 후두부를 강타하는 「Hellbent」는 록 사운드의 명확한 결정체며 전자음이 수면 위로 부상해있는 「Shake it up」에서도 중심을 끌고 가는 건 다름 아닌 기타 사운드다.
그렇기에 신보는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초기의 뉴웨이브 사운드가 들어있으면서도 동시에 변화의 역점을 담아냈기도 했다. 이는 기존의 결과물에 천착하는 팬들에게도, 행보와 추이를 계속 바라봐온 또 다른 팬들에게도 소구력을 충분히 자극할 부분이다. 2011년의 재기 이후, 아직도 미적지근한 지지자들을 다시 규합하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인다고는 하지만, 내실 좋은 수단이 목적을 적잖이 앞서니 잡음 생길 여지가 존재하기는 할까. 팬들의 입장에서는 역시나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녹음 작업이 꽤나 오래 전에 이루어진 앨범이라 뉴 오더의 향후 방향을 예측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다. 얼마 전까지 보여주었던 록 사운드로 새로운 시스템을 계속 구축해나갈지, 전자음이 곳곳에 배치된 뉴웨이브 사운드로 옛 시절을 복기해낼지, 아니면 전혀 상상치 못한 음악으로 무대 위에 올라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무슨 모습이 되었건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없지 않는가. 듣는 사람들에게는 즐길 음악과 그 음악을 들려줄 아티스트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여기, 당장이라도 흥을 돋아줄 음반과 밴드가 도착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는 의미를 부여받을만하다.
바이 바이 배드맨(Bye Bye Badman)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 진부하지만 이만큼 바이바이 배드맨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도 없다. 평균 연령은 어리지만 독특한 보컬 음색과 빈티지한 음악 스타일로 이미 본인들의 경계를 그어놓은 상태다. 비록 브릿팝에서 많은 것을 수혈 받았지만 그 덕에 정체성만큼은 어떤 신생밴드보다도 두드러진다.
쏟아진 기대에 비해 다음 발걸음을 떼기까지의 시간이 길었다. 예상에 비해 다음 발걸음이 더 멀리 찍혔다. 이번 앨범 는 밴드 스스로 프로듀싱해낸 앨범이다. 이들이 그려온 패기 넘치는 궤적대로라면 당연해 보이는 수순이지만 의욕 과잉이 아닐까 걱정도 생긴다.
가장 큰 차이를 말하자면 명료함이다. 이전 앨범이 울창한 숲이라면 이번에는 가지치기에 공을 들였다. 기타와 키보드가 양립하며 합을 맞추던 이전의 구성은 여전하지만 이번엔 각 파트가 자신들의 비율을 찾아내고자 한다. 기타 디스토션이 옅어지고 키보드도 요란하게 곡을 점령하지 않아서 멜로디의 충돌이 전보다 훨씬 덜하다. 화려한 솔로보다 곡의 매무시에 중시하다보니 자칫 이전과 괴리감이 들지도 모르지만 훨씬 깨끗해진 사운드는 확실한 매력 포인트다.
악기가 물러선 자리에 보컬이 대신 앉았다. 메인 보컬 정봉길의 목소리는 특유의 영국식 억양을 살짝 걷어낸 대신 한 층 밝아졌다. 발음도 또렷해졌고 가사의 몰입도도 좋다. 「Arrow」는 가장 빛나는 순간인데 적절히 공간을 만드는 연주와 빈 공간을 매우는 보컬의 상보관계가 인상적이다. 나긋한 곽민혁의 목소리도 괜찮다.
「Because I want to」처럼 긴장감을 차곡이 쌓아올리는 실력도 여전하다. 예전의 큰 맥락을 모두 바꾸진 않았지만 스스로 몸무게를 많이 줄였다. 곡이 군살을 빼니 듣는 입장에서 혼란스럽지 않고 부담도 적다. 프로듀싱도 한결 나아졌다. 전달력의 측면에선 셀프 프로듀싱은 성공적인 자구책이 되었다.
본인들의 말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해본 듯하다. 멤버들의 군 입대와 소속사 변경 등 외부적인 문제가 앞으로의 활동을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앨범이 밴드와 팬 모두에게 적절한 환기로 작용하리라 예상된다. 많은 기대치를 가진 밴드다. 이 기대치는 시간이 지나 원숙해질 바이바이 배드맨에 대한 기대이며 이 앨범이 심어준 믿음이자 어제의 루키가 맞게 될 내일이다.
안드로이드 페르소나를 입은 다프트 펑크는 8년만의 정규 음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주류를 독식한 현 시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무명 시절, 밴드 달링으로 음악계에 걸음마 뗀 시점을 회상하며 음악적인 영감을 재구성한다. 당시 롤링 스톤스와 비치 보이스, 스투지스를 동경하며 커버 곡으로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처럼 이번 음반은 과거에 대한 숨김없는 헌사다.
디스코의 그루브를 대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다프트 펑크에게 정체성의 희생을 내포한다. 자유로운 흥이 장르의 생명력이기에 단순히 MR로 펑키 리듬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 이 모험은 2010년 영화
이른바 다프트 펑크와 그의 백밴드는 전자 악기의 직감적인 반응을 줄이고 활발한 세션작업으로 음향에 층을 쌓았다. 반복과 직선 대신 윤활과 곡선을 택한 이 방법은 1970, 1980년대 음악에 대한 헌정을 구현도 높게 발현시킨다. 나일 로저스의 펑키(Funky)한 기타가 돋보인 「Give life back to music」과 퍼렐 윌리엄스와의 두 번째 싱글 「Lose yourself to dance」는 댄서블한 디스코 넘버이며 토드 에드워드가 노래한 「Fragments of time」은 알엔비 리듬과 팝 록 사운드를 통해 블루 아이드 소울 듀오 홀 앤 오츠를 연상시킨다. 또한 뮤지컬 음악을 작곡한 바 있는 싱어송라이터 폴 윌리엄스와 함께 한 「Touch」는 아트록의 변곡 작법을 차용하고 「Instant crush」는 신시사이저와 록이 결합한 뉴웨이브 스타일까지 덧입었다.
다프트 펑크는 이렇게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과 그 개인적인 추억을 임의적으로 배치했다. 결국 컴퓨터 주기억장치 RAM의 복수형인 타이틀
이번 음반은 라디오 헤드의 완벽한 기계화를 알린
글/ 김근호 (ghook0406@hanmail.net)
뉴 오더(New Order)
신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자. 갖가지 앨범들과 라이브 공연을 가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뉴 오더는 2007년에 이르러 홍역을 앓았다. 기타리스트인 버나드 섬너(Bernard Sumner), 드러머인 스테판 모리스(Stephen Morris)와 함께 밴드의 원년 멤버로 중추 역할을 해오던 베이시스트 피터 훅(Peter Hook)이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팀이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팬들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향했을 위로를 공식적으로 알렸지만, 버나드 섬너도 곧 대열에서 이탈했고 1993년에 경험했던 해체의 수순을 다시 밟아야했다. 밴드의 두 번째 공백기였다.
그 직전의 앨범이 바로
신보의 콘텐츠가 상당히 좋다. 곡들 자체도 범작 이상이거니와 퀄리티도 일정 수준 이상에 올라있다. 무엇보다도 몇몇 곡에서는 초기의 뉴 오더가 구사했던 뉴웨이브 사운드가 등장하는데, 이는 2001년
앨범에 대해 언급해야할 부분이 또 하나 있다면 패러다임에 있어 뉴 오더가 변형을 꾀한다는 점이다. 밴드의 전신인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시절부터 이들은 베이스 리프를 줄곧 강조해왔다. 멜로디 파트 못지않게 두꺼운 비트 음에도 무게를 실었고 피터 훅의 베이스 라인이 전면으로 계속 노출되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렇기에 신보는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초기의 뉴웨이브 사운드가 들어있으면서도 동시에 변화의 역점을 담아냈기도 했다. 이는 기존의 결과물에 천착하는 팬들에게도, 행보와 추이를 계속 바라봐온 또 다른 팬들에게도 소구력을 충분히 자극할 부분이다. 2011년의 재기 이후, 아직도 미적지근한 지지자들을 다시 규합하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인다고는 하지만, 내실 좋은 수단이 목적을 적잖이 앞서니 잡음 생길 여지가 존재하기는 할까. 팬들의 입장에서는 역시나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녹음 작업이 꽤나 오래 전에 이루어진 앨범이라 뉴 오더의 향후 방향을 예측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다. 얼마 전까지 보여주었던 록 사운드로 새로운 시스템을 계속 구축해나갈지, 전자음이 곳곳에 배치된 뉴웨이브 사운드로 옛 시절을 복기해낼지, 아니면 전혀 상상치 못한 음악으로 무대 위에 올라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무슨 모습이 되었건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없지 않는가. 듣는 사람들에게는 즐길 음악과 그 음악을 들려줄 아티스트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여기, 당장이라도 흥을 돋아줄 음반과 밴드가 도착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바이 바이 배드맨(Bye Bye Badman)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 진부하지만 이만큼 바이바이 배드맨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도 없다. 평균 연령은 어리지만 독특한 보컬 음색과 빈티지한 음악 스타일로 이미 본인들의 경계를 그어놓은 상태다. 비록 브릿팝에서 많은 것을 수혈 받았지만 그 덕에 정체성만큼은 어떤 신생밴드보다도 두드러진다.
가장 큰 차이를 말하자면 명료함이다. 이전 앨범이 울창한 숲이라면 이번에는 가지치기에 공을 들였다. 기타와 키보드가 양립하며 합을 맞추던 이전의 구성은 여전하지만 이번엔 각 파트가 자신들의 비율을 찾아내고자 한다. 기타 디스토션이 옅어지고 키보드도 요란하게 곡을 점령하지 않아서 멜로디의 충돌이 전보다 훨씬 덜하다. 화려한 솔로보다 곡의 매무시에 중시하다보니 자칫 이전과 괴리감이 들지도 모르지만 훨씬 깨끗해진 사운드는 확실한 매력 포인트다.
악기가 물러선 자리에 보컬이 대신 앉았다. 메인 보컬 정봉길의 목소리는 특유의 영국식 억양을 살짝 걷어낸 대신 한 층 밝아졌다. 발음도 또렷해졌고 가사의 몰입도도 좋다. 「Arrow」는 가장 빛나는 순간인데 적절히 공간을 만드는 연주와 빈 공간을 매우는 보컬의 상보관계가 인상적이다. 나긋한 곽민혁의 목소리도 괜찮다.
「Because I want to」처럼 긴장감을 차곡이 쌓아올리는 실력도 여전하다. 예전의 큰 맥락을 모두 바꾸진 않았지만 스스로 몸무게를 많이 줄였다. 곡이 군살을 빼니 듣는 입장에서 혼란스럽지 않고 부담도 적다. 프로듀싱도 한결 나아졌다. 전달력의 측면에선 셀프 프로듀싱은 성공적인 자구책이 되었다.
본인들의 말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해본 듯하다. 멤버들의 군 입대와 소속사 변경 등 외부적인 문제가 앞으로의 활동을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앨범이 밴드와 팬 모두에게 적절한 환기로 작용하리라 예상된다. 많은 기대치를 가진 밴드다. 이 기대치는 시간이 지나 원숙해질 바이바이 배드맨에 대한 기대이며 이 앨범이 심어준 믿음이자 어제의 루키가 맞게 될 내일이다.
글/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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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미미의괴담
201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