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 마이크만으로도 웃기는 여자들, <드립걸즈> 레드의 반란!
웃는 게 그렇게 힘든 걸줄 몰랐다. 그래서 살도 빠진다고들 하나보다. 인터뷰하는 한 시간여 동안 박장대소 웃느라 얼굴에 경련이 일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글ㆍ사진 이예진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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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걸즈의 본질에 대하여

뮤지컬 <드림걸즈>의 의상으로 치장한 배우들을 보고 잠시 헷갈렸다면 잠깐, 노래와 춤을 기대하시진 마시라. 정통 뮤지컬이나 코믹극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 역시 잠깐, 단언컨대 당신은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서은미: 개그우먼 네 명이 공연을 한다는 게 포인트죠. 방송에서 보지 못했던 춤과 노래, 관객과의 소통이 많은 공연이거든요.

박나래: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이라 그날, 그날 애드립이 달라요. 관객의 참여도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매번 색다른 공연인 것 같아요.


본디 공연 도중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여 말하는 즉흥적인 대사라는 뜻의 ‘ad lib’에서 파생된 말 드립. 인터넷 등을 떠돌며 개드립, 섹드립 등 참으로 형이학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 당 공연에서는 대본은 있으나 다양한 드립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드립’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여기면 되겠다.

섹드립, 키드립, 살드립, 신인드립

이미 드립걸즈 시즌 1에서 강력한 섹드립으로 객석을 초토화시켰던 안영미가 속한 골드팀에 대항마로 나선 건 늘씬한 미녀 장도연이나 서은미가 아닌 레드팀의 박나래.

박나래: 영미 씨와 비교하자면 저는 방송에서 섹드립은 해본 적이 없어요. 19금 아닌 600금이거든요. 관객들이 걱정할 정도예요. 저는 지금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나...관객들과 밀당 중이에요.

장도연: 영미 선배는 TV에서 많이 봤잖아요. 나래 씨의 섹드립은 TV에서 볼 수 없는, TV에 나올 수 없는 부분이 있거든요.


거침없는 입담과 과감한 몸짓으로 매회 수위 조절이 고민이라는 그녀, 지면상으로도 그녀의 매력을 다 담기란 불가능하다.

이국주: 저는 살로 가는 거죠. 웬만하면 보시는 분들이 TV보다 날씬하다고 말씀들 해주잖아요. 저는 안 그렇더라고요. ‘TV랑 똑같아요’ 그러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유연한 춤 솜씨에는 감탄사가 나온다.

서은미: 저는 인지도도 없고, 겁나게 예쁜 것도 아니어서 애매한 부분이 있죠. 섹시해서 뽑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나래 씨한테 넘어갔고요.


오프닝에서 ‘창의성과 독창성, 예술성과는 거리가 먼 초저퀄리티 공연’이라고 자신감 넘치게 소개하는 서은미, 참고로 그녀는 KBS 공채 개그우먼이다. ‘백치미’를 앞세워 신인드립 셀프디스를 웃음으로 승화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자신감도 대단하다.

서은미: 저는 올라간 적이 없어서 내려가도 잃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냥 하는 거죠. 그런데 선배님들한테 폐를 끼칠까 그게 걱정이었죠. 하지만 워낙 호흡 하나 하나까지 다 가르쳐주셔서 저도 많이 늘었어요.

박나래: 원래도 잘 해요. 중간에 스스로 신인드립을 치면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요.


레드팀만의 비장의 무기

골드팀 대 레드팀, 은근한 비교가 될 법도.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스탠딩 마이크만 배치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객석은 포복절도.

박나래: 포스터를 보시면 골드팀과 달리 저희만 들쑥날쑥해요. 장동민 선배의 치아처럼. 공연이 시작되면 마이크부터 들어오거든요. 스탠딩 마이크가 하나는 쑥 올라와 있고, 하나는 쑥 내려와 있어서 마이크만 보고도 웃으시는 거예요. 저희는 아직 등장도 안 했는데.

서은미: 천생 개그맨인 거죠. 국주 언니는 춤을 굉장히 잘 춰요. 그동안 비춰진 게 없었잖아요. 그리고 도연 선배는 비주얼이 되잖아요. 조근 조근 말씀하시면서 할 건 다 하시거든요. 그리고 저도 새로운 얼굴이니까 궁금도 하실 거고요. 그게 저희 강점이죠.

이국주: 골드팀과는 다르죠. 저희만의 색깔이 있으니까요. 어디에 가도 저희 같은 캐릭터가 없어요. 같은 대본이지만 다른 캐릭터, 다른 멘트로 가니까 겹치는 게 없거든요.

기자의 코멘트가 전혀 필요 없는 그녀들의 수다, 기자는 그저 리액션만 커질 뿐이었다.

그녀들과 시선이 마주쳤다면 모든 걸 내려놓자!

드립걸즈 그녀들은 객석에 자주 내려온다. 객석의 참여도에 따라 개그 농도가 달라지는 특별한 공연. 남성 관객들이여, 무대에 오르길 원한다면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시라!

장도연: 관객이 참여하는 코너가 있는데요. 자신이 불려나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어느 정도 있으신 것 같고요.

이국주: 제가 보기에 두려워하는 분들도 반이에요. 저희를 안 쳐다보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관객과 함께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가 싶어서 줄인 것도 있어요.

박나래: 도연이가 남자 볼 줄은 모르는데 관객은 잘 골라요. 그래서 관객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무대가 풍성해지죠.


매 회 오는 관객에 따라 공연의 웃음 포인트도 다 달라진다.

장도연: 많이 바뀌죠. 복불복이에요. 괴짜처럼 재미있는 관객이 있을 때가 있어요.

이국주: 저는 매번 같은 공연을 한다는 게 손발이 오글거려서 못 하겠더라고요. 과연 내가 공연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내가 먼저 재미없어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공연은 지치지 않는 게 무대에 매번 다른 관객이 무대에 올라와서 함께 연기를 하면서 늘 다른 그림이 나오니까 지루하지 않아요.


그래서 매 순간을 즐기면서도 매번 긴장할 수밖에 없는 <드립걸즈>의 멤버들. 그래서 객석으로 내려갈 땐 매의 눈이 된다.

무대 위 그녀들도 막막할 때가 있다?

장도연: 웃길 줄 알고 회심의 한 마디를 했는데 안 받아줄 때 막막하죠. 그런데 네 명이 있다 보니까 실수해도 옆에서 잘 메워줘요.

네 명의 호흡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아무래도 위기에 닥쳤을 때. 물론 대부분의 순간은 서로가 힘이 되어주며 슬기롭게 대처하지만, 예상치 못하는 관객의 행동엔 그녀들도 잠깐 땀이 삐질 난다.

장도연: 제가 모시는 관객 분들은 점잖은 분들이었거든요. 그 중에 어떤 분이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와서 벨트를 풀어서 색소폰을 불더라고요.

이국주: 그 때 바지를 벗으시는 줄 알고 저희는 깜짝 놀랐죠. 심지어 약주를 한 잔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올라오셨을 때보다 내려가실 때 점점 술이 깨셨는지 창피해하면서 내려가시더라고요. 아드님을 불러서 확인까지 했는데 한 잔 하셨더라고 하더라고요.

장도연: 나중에 저희가 인사를 드렸더니 숨으시더라고요.

이국주: 퀴즈를 내겠다고 하는 관객도 있었어요.

장도연: 갑자기 퀴즈를 내겠다며 상금으로 만원까지 내건 거예요.

이국주: 실제로 상금을 줬어요. 그래서 관객들이 열정적으로 맞췄죠. 맞춰보실래요? 밥은 밥인데 살이 안찌는 밥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재미없는 개그였지만 관객들의 얼토당토 않는 답 맞추기와 어르신의 진지한 퀴즈 출제, 나름 상금까지 걸리면서 재미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정답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답은 ‘공기...밥’이란다.

이국주: 저희 공연이 만 13세 이상 보는 공연인데 ‘너무 야하다’, ‘너무 과하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수위가 다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공연 후기를 보면서 항상 긴장해요. 과하다는 얘기가 나오면 다음 공연에서 더 신경을 쓰거든요. 무대 내려가서 관객들과 인사할 때 눈을 한 번씩 다 마주치려고 해요. 그러면 마음이 좀 열리거든요.


시종일관 웃음폭탄을 던지던 이국주의 진지한 답변에 그녀들만의 숨은 노력이 엿보였다. 그리고 개그맨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드립걸즈> 관객의 자격요건

한 블로거가 <드립걸즈> 후기로 올린 글이 있었더랬다. 무대 위로 나가고 싶지 않다면 그녀들과 시선을 피하라, 그러나 일단 시선이 마주쳤다면 포기하라, 그리고 무대 위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기라는 것. 이번엔 배우들도 당당히 요구한다. <드립걸즈>를 제대로 즐기는 법에 대하여.

장도연: 국주 씨가 하는 멘트가 있어요. 어차피 또 볼 사람들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하시라고. 그 마음이면 되는 것 같아요. 일반인들이 그럴 기회가 또 별로 없잖아요. 다 내려놓고 재미있게 노시다 가면 됩니다.

이국주: 저희 공연 좌석이 굉장히 편해요. 기대서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조금 더 저희 쪽으로 앞으로 바싹 다가앉아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나래: 관객이 더 웃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관객이 웃기도록 저희가 끌어내는 거잖아요. 관객은 제 5의 멤버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시고 무대에 올라오는 것에 대해 부담을 제대로 갖고 같이 웃기셨으면 좋겠어요.

서은미: 청소년들도 볼 수 있는 공연인데요. 일탈을 하고 싶으시면 저희 공연에 와서 하세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연이고요. 내가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대본은 60%, 40%는 매일 달라지는 부분이란다. 그게 바로 관객의 몫. 기자 역시 다음엔 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 개인기 있을 법한 남성 동반자를 물색 중이다.

나에게 관객의 박수란 000이다.

이국주: 저에게 관객의 박수는 파이팅이죠. 그분들이 박수를 쳐주지 않고 안 웃으셔도 저희는 열심히 하지만 박수와 반응이 있으면 파이팅이 넘치거든요. 공연 전에 저희가 에너지음료도 마시거든요. 파이팅 넘치게 하려고요. 그 에너지음료보다 더 파이팅 넘치게 해주는 게 관객들의 박수거든요.

장도연: 제가 에너지음료라고 하려고 했는데...더 센 에너지음료로 갈게요.

이국주: 이 정도로 저희가 호흡이 잘 안 맞아요.


서은미: 관객의 박수는 자양강장제다! 저는 메이크업 하는 게 힘들어요. 지워야 하니까 귀찮고요. 머리 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거든요. 반응이 좋으면 그날 기분이 좋거든요. 자양강장제를 마신 느낌!

박나래: 나에게 관객의 박수란 연애다. 저는 우리 공연 홍보할 때 그렇게 얘기해요. 남성 관객 분들께 오셔서 여자 연예인들과 사귀고 가시라고요. 저는 그런 기분으로 무대에 올라요. 그래서 관객의 박수가 없으면 안 되죠.

이번 기사에선 ‘괄호 열고 웃음, 괄호 닫고’는 완전 생략이다. 말 한 마디에서 그 다음 말 한 마디로 이어지는 사이사이가 모두 웃음이었으므로. 그녀들의 들쑥날쑥한 마이크 높이처럼 모두 다른 매력으로 무장한 <드립걸즈> 레드, 그녀들은 섹시했다.
#드립걸즈 #서은미 #박나래 #장도연 #이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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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닌 지 벌써 15년.
취미는 일탈, 특기는 일탈을 일로 승화하기.
어떻게하면 인디밴드들과 친해질까 궁리하던 중 만난 < 이예진의 Stage 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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