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 “사극을 보다 보니, 조선왕조사를 너무 모르더군요”
조선의 역사를 만화로 그려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그 마지막 이야기인 제20권 <망국>편이 출간되었다. 2003년 7월에 제1권 <개국>편이 출간된 이후 꼭 10년만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보다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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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몽고식 변발을 한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은 당대를 담아낸 유일한 정본 기록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일찍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관련 연구자들 외에는 실록을 읽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의 언어로 기록된 까닭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데다, 2천 77책에 담긴 방대한 내용을 모두 읽기 위해서는 하루 10시간씩 투자해도 꼬박 4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선왕조실록은 선뜻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 대상이었다. 적어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 출간되기 이전까지는. 박시백 화백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려 13년 동안 조선왕조실록을 탐구해왔다. 현대적 제책 방식으로는 413권 분량인 실록의 한글 번역본은 물론, 관련 기사와 연구서를 빠짐없이 살피고 시간 순서에 따라 사건들을 정리했다. 그 흔적은 121권의 대학 노트에 빼곡하게 채워졌고,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500명이 넘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그려낸 원고가 4천 장, 2만 5천 컷. 한 줄로 세우면 7km에 달하는 양이다. 이를 위해 박 화백은 하루에 12시간씩 실록을 공부하고 작품을 구성하며 지난 1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노력과 끈기가 맺은 결실이 바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지난 10월 17일, 예스24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의 완간을 기념하며 출판사 휴머니스트, 숭실대학교와 함께 박시백 화백의 강연회를 마련했다. ‘캐릭터로 보는 500년 조선 역사’ 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날의 행사에서 박 화백은 27명 왕들의 삶으로 요약되는 조선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탄생 과정의 숨은 이야기들을 공개했다.

“조선왕조를 선택했던 이유는 마침 제 눈에 조선왕조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사극을 보다 보니까 제가 조선왕조사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굉장히 재밌었어요. 그래서 조선왕조사를 그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조선왕조실록이 국역돼서 CD롬으로 보급됐죠. 그 이전이었다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을 그리기 어려웠을 텐데, 한글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박시백 화백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조선 왕조사를 살펴보며, 드라마틱한 시대의 변화상과 그에 대응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처세에 흥미를 느꼈다. 점점 조선사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삼국지나 사기열전에 버금가는 이 재밌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직장까지 그만둔 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시작했다.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한겨레신문의 만평 「박시백의 그림 세상」 을 4년 넘게 그려오던 시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실록을 다 읽어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이 실록이 편년체(연대순으로 기록한 역사 서술 방식)로 서술되어 있다 보니까, 그 날 그 날 있었던 일들이 중구난방으로 적혀있거든요. 그래서 따로 노트 정리를 하고, 그걸 반복해서 보면서 흐름을 잡아 나갔어요.”

조선왕조실록을 읽는 과정에서 가장 처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사관의 주관과 역사적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이었다. 사관에 의해 기록된 내용인 만큼, 그들의 시각과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한 내용들만으로 『박시백의 조산왕조실록』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던 박 화백은, 실록을 읽는 과정에서 당대의 사관이나 기존의 해석에 얽매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작가 자신의 해석이 개입되는 것 역시 경계했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의 탄생 과정에서 그가 변함없이 지켜온 원칙이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에 등장하는 50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이러한 역사적 고증의 바탕 위에서 탄생했다. 박시백 화백은 실록에 서술된 인물들의 모습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캐릭터의 뼈대를 잡고, 그 위에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색을 입혔다.

“곤룡포 입은 이성계의 캐릭터는 현전하는 초상화에 기초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속에서 어린 날의 이성계를 몽고식 채두변발을 한 모습으로 등장시켰어요. 이성계가 자랐던 동북면은 당시 쌍성총관부라는 원나라의 직할 통치기구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거든요. 그곳은 고려인들 외에도 원나라 사람들, 여진 사람들이 두루 섞여 사는 동네였습니다. 아마 이성계는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성장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린 날의 이성계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세종 역시 박시백 화백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모습이다. 태종이 세종을 일컬어 ‘세종은 비중하다’고 한 실록의 내용에 기초해 통통한 체구로 그려졌지만, 그 눈매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있다. 세종의 혜안과 비범함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박 화백은 각각의 캐릭터 속에 그들의 기질과 업적이 드러나도록 그려냈다.




조선의 왕위 쟁탈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이 날 강연회에서 박시백 화백은 조선의 왕들을 왕위 계승의 유형별로 나누어 소개하기도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록과 조선사 연구 자료들을 탐구하며 작가가 얻은 지식과 해석이 집약된 내용이었다.

“태종에 의해서 시작되었던 장자 계승의 원칙이 지켜진 경우는 9차례입니다. 문종과 단종, 예종, 연산, 인종, 현종, 숙종, 순조와 순종만이 장자 계승된 경우인데요. 그 중에서도 왕으로서의 수명과 권한을 제대로 누린 인물들은 별로 없습니다. 문종과 예종, 인종은 단명했고 연산은 반정으로 폐위됐죠. 순종 같은 경우에는 나라가 망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고요. 현종과 숙종, 순조 이 세 사람 정도가 왕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누린 인물들인데요. 그만큼 조선의 왕세사는 장자들의 수난사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27명 왕들 중 장자 계승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이는 1/3에 불과하다. 나머지 왕들은 자신의 형제 혹은 할아버지로부터 왕위를 계승받기도 했고, 세자의 죽음으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기도 했다. 태종과 중종, 명종과 영조는 형제로부터, 그리고 정조와 헌종은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왕위를 계승받은 경우다. 태종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준 정종과 동복 형제간이었지만, 연산-중종 인종-명종 경종-영조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은 모두 이복 형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세종은 양녕대군이 폐위된 후 왕의 자리에 올랐고, 효종과 정조는 각각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왕위를 이을 세자가 책봉되지 않은 상태에서 왕이 죽음을 맞을 경우, 대비의 선택에 의해 왕이 정해지기도 했는데 성종과 선조, 철종과 고종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27명의 왕 중 나머지 네 명의 왕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른 걸까.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쿠데타였다.

“정종, 세조, 중종, 인조가 쿠데타를 통해 왕위에 오른 경우인데요. 정종은 태조가 일으킨 1차 왕자의 난 이후에 왕이 됐죠. 세조는 계유정난으로, 중종과 인조는 중조반정과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고요. 덧붙인다면 태조도 위화도회군이라고 하는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한 경우고, 태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경우입니다. 모두 여섯 명의 임금이 쿠데타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 왕이 된 거예요. 생각해보면 굉장한 비중이죠. 그렇기 때문에 ‘실패하면 삼족이 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선왕세사에서 그렇게 많은 역모사건이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캐릭터로 보는 500년 조선 역사’라는 주제로 진행된 박시백 화백의 강연회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왕들의 삶을 통해 조선을 들여다 본 시간이었다. 2시간에 가까운 강연을 통해 박시백 화백은 열정적으로, 그리고 막힘없이 실록에 대한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견해를 들려주었다. 그 모두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축적된 것이었다. 이에 강연회에 모인 독자들은 실록과 조선왕조의 역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 작가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강연회는 박시백 화백과 독자들의 질의응답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을 보면 붉은 곤룡포를 입은 왕도 있고 푸른 곤룡포를 입은 왕도 있습니다. 당시에 왕의 복색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실록 상에서 뚜렷하게 기록된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읽으면서 떠올랐던 장면들이 몇 개 있다면, 초기에 태조 이성계의 경우에는 초상화에 전해지듯이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죠. 저는 그 때의 세자들도 빨간 옷을 입은 것으로 그렸는데, 이후의 기록을 보니까 틀렸더라고요. 양녕대군 때 쯤 와서야 중국 사신이 와서 ‘어떻게 조선에서는 세자 옷과 대신들의 옷이 다르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세자는 곤룡포를 입지 않았다는 거예요. 신하의 옷도 색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바뀌어요. 선조 때인가를 보면 ‘신하들이 하나같이 임금이 입는 홍포(붉은 색 옷)를 입고 있다’ 이런 식의 지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딱히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대체로 붉은 옷을 입은 게 일반적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후에 세자는 감청색, 즉 푸른 계통의 옷을 입었던 것은 맞습니다. 다만 붉은 옷만이 아니라 검은 옷도 많이 입었는데요. 저는 만화에서 좀 더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인물들한테 검은 옷을 입혔어요. 이미지 상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딱히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대체로 붉은 옷이었고 검은 옷도 많이 입었다’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조선과 중국과의 외교관계는 어떻게 바라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선 초기에 나라를 건국할 때 세웠던 ‘사대교민’이라는 외교 정책은 중국에 대해서는 사대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자는 정도의 의미인데요. 당시 유교 철학, 성리학 철학을 수용할 경우에 ‘사대’는 곧 실리이자 명분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중심인 중국을 작은 나라로써 섬겨야 한다’는 것이 성리학상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또한 현실적으로도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가 중국에 대적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대라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도 보존하고 실리도 취하자는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과 후기의 유학자들은 많이 다른데요.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을 이것을 이데올로기화 시켜서 나중에 청나라가 승리하고 명나라가 부러진 이후까지도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죠. 하지만 초기의 유학자들은 사대가 굉장히 현실적인 필요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걸 분명히 압니다. 그리고 세조 같은 경우에도 신하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중국과도 겨룰 수 있어야 된다’는 식의 의사를 비치기도 하고요.

조선 시대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어느 왕의 시대가 제일 살기 좋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어떤 왕의 리더십을 추천하고 싶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세종 편(4권 <세종ㆍ문종 실록>)에서 세종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면서도, 세종 시대에 백성이 겪어야 될 고충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세종 때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살기 어려웠겠구나’ 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조선 시대라는 한계 속에서의 태평성대라고 한다면 저는 세종 때가 제일 낫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 유사하게 세조라든가 성종 시절 때까지는 조선의 문물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안정화된 시기였기 때문에 그나마 백성들한테는 굉장히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리더십에서 저는 단연코 세종의 리더십이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은 굉장히 빼어나고 비범한 구상을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았어요. 신하들과의 토론에 붙여서 그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을 밟거든요. 그리고 또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일을 추진시켜서 반드시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리더십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우리의 역사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이거예요. 우리 모두가 조선왕조실록이 대단히 위대한 기록유산이라고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데, 이것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소개한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만큼 야사를 위주로 해서 잘못 알려진 사실들 또한 많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후학들이 그 가치를 인정한다면 더 연구하고 소개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조선사뿐만 아니라 현대사에 있어서도 저는 역사는 자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의 위대함을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대로 그것에서 교훈을 얻고, 자랑스러운 것은 자랑스러운 대로 밝혀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서건 역사 왜곡이라고 하는 것은 후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이념에 따라서 덮을 것은 덮어버리고 키울 것은 칭송하면서 자랑하는 방식이 아니라, 설령 자기가 못마땅한 일이라 하더라도 있었던 것은 사실 그대로 전해져야죠. 평가라고 하는 것은 세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단 사실에 대한 전달만큼은 충실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역사를 기반으로 창작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대 상황에 대한 조명만 충실하다고 한다면 거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 시대 배경 자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증하고 그 과정에서는 틀리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덧붙여서, 정극을 표방하는 각종 드라마들 중에서 사실은 실록과 매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와 같이 적혀 있었다’는 식의 해석을 달면서 진행하는 건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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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글,그림 | 휴머니스트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만화화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은 원전을 바탕으로 정사(正史)를 생생하게 복원한 본격 대하역사만화시리즈이다. 오늘날에도 반추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물과 사건, 처세가 살아 있는 시사교양만화이며, 교양독자층을 위해 새로운 판형과 형식을 가미한 세련되고 품격있는 인문교양만화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글과 재미있는 그림, 각색이 난무하는 함량 미달 역사책의 홍수 속에서 원본 기록에 충실한 내용이 더욱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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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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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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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시사만화가. 1964년 제주도박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총학생회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996년 한겨레신문의 시사만화가로 데뷔했으며, 만평 〈한겨레 그림판〉을 통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사 풍자를 보여줬다. 이듬해부터 연재한 〈박시백의 그림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 많은 독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그 외에도 〈말〉, 〈출판저널〉, 〈뉴스피플〉 등의 매체에 만평을 연재한 바 있다. 박시백의 연재만화는 네컷 만화나 한컷짜리 만평이 아닌, 시사 만화로서는 지면이 넓은 편인 페이지 만화이다. 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희화화하거나 패러디를 하는 보통의 다른 만평들과 달리, 그의 만화는 사건의 전후관계 및 배경과 진행, 그리고 작가의 논평 등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줄거리 시사만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만화는 부드럽고 유연한 제시방식과 긴 호흡을 가진 '수필만화'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사만화로서의 본질적 임무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가 〈한겨레신문〉, 〈출판저널〉, 〈말〉, 〈뉴스피플〉 등에 연재했던 시사만화들은 『박시백의 그림 세상 -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2000년 《조선왕조실록》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이를 만화로 만드는 구상을 하고, 2001년에 그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첫 권이 출간되었고, 그해 대한민국 만화대상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후 10년간 조선시대 사관의 심정으로 500년 역사를 20권의 책에 담아내 2013년 완간했다. 13년간의 대장정을 마친 그해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2020년 일제강점사를 다룬 《35년》(전 7권)을 내놓았다. 2022년 《박시백의 고려사》 첫 권을 출간하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나라 고려의 500년 역사를 탁월한 서사와 독보적인 작화로 생동감 있게 되살려내는 데 전념했고, 2024년 전 5권으로 완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