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매력은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방문해서 원하는 속도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전시를 좋아하는 아트러버라면, 하루에 전시 2개 이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번 집을 나선 김에 여러 전시를 보고 났을 때의 남다른 뿌듯함을 아는 이들을 위해 오늘은 경기도 지역 반나절을 할애하여 알차게 돌 수 있는 전시공간과 지금 하는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1. 건축물이 아름다운 경기도미술관 (경기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
매력적인 미술관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건축물이다. 여러 지역의 아트러버들이 하루를 할애해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뮤지엄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기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 미술관은 건축물이 멋진 미술관 중 하나로 소개하기 충분한 곳이다.
경기도 미술관은 2006년에 1천3백만 경기도민을 위한 미술문화기관으로 웅장한 위용으로 개관했다. 벌써 10주년을 훨씬 넘겨 20주년을 바라보고 있으니 적지 않은 역사를 가진 미술관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미술관은 호수가 인접한 장소성을 고려해 건축물의 외관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돛대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양도시 안산의 이미지를 살린 멋진 건축물은 내부의 구조물 또한 독특하다. 보통 전시장이 1층에 위치해 있지만, 경기도미술관은 2층에 메인 전시장이 있다. 부지가 습지임을 감안해 수장고를 1층에 배치했기 때문인데, 자연 채광이 멋지게 들어오는 덕분에 2층의 전시 공간의 매력이 한껏 강조되어 독특한 감상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경기도미술관에 현재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을 옛 그림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전시로, 삶 가까이에 있었던 한국의 전통 민화로부터 한국적 팝아트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전시의 작품은 작자 미상의 전통 민화 27점과 더불어 현대미술 작가 19의 작품 102점으로 구성되었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민화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팝아트는 어떤 양상을 이루는가?’, ‘한국 현대미술세어 K아트란 어떤 것일까?’, ‘민화와 팝아트 사이에서 K팝아트가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의 네 가지 질문을 통해 열린 가능성 안에 한국 현대미술에서 바라보는 민화와 K팝아트를 동시에 조명한다. 이 전시가 한국 현대 미술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민화의 요소를 살펴보고 K팝아트의 가능성을 질문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온다면 앞서 언급한 건축물의 독특함을 한껏 느끼며 미술관 내외부에 둘러싼 작품들도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강익중, 배영환, 미쉘 뒤포르, 유영호, 최정화 등 국내외 중견 작가 30인의 작품으로 구성돼 펼쳐지는 상설전시 ‘멈춰서서’는 미술관의 입구에서부터 관객들을 맞이한다. 미술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작품들은 일상에서도 새로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영감과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을 제공한다. 지난 18년 동안의 축적된 자산을 발판 삼아 동시대 현대 미술의 다양성을 견인하고 있는 경기도미술관을 꼭 한 번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2. 공공미술의 또 다른 모습 경기안산경찰서_공단파출소(경기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9)
경기도 안산을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파출소가 하나 있다. 지하철 서해선 시우역 앞 경기안산경찰서 소속의 ‘공단파출소’이다. 2018년 안산문화재단의 안산스마트허브 문화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로 미술작품이 공단 파출소의 파사드 위에 영구 설치되어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는 길을 멈추고 여기가 파출소 건물이 맞는지 한참을 쳐다보게 된다.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2018)은 작가 최기창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같은 열린 제12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동명의 작품을 옥외의 파출소 파사드를 감싸는 형태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미술 작품들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시각이미지를 다루지 않고 수많은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도 문장이 되지 않는 파편화 된 문자들이 쉼표로 이어져 있는 이 작품의 명패에는, ‘개인이나 집단 또는 개인과 집단 사이에 주고받는 상투적인 사랑의 고백처럼 유행가나 군가, 국가나 찬송가 등에는 애착의 대상에 대한 사랑과 맹세의 가사로 가득하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애창되는 곡 약 1,500곡에서 추출한 사랑의 인용구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영원히, 변치 않고, 틈이 없이, 온전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끝없는 사랑의 수행을 드러낸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우린 경찰을 비롯한 국가 공무원들의 국가와 시민에 대한 봉사심과 끝없는 사랑의 관계로 읽어 낼 수 있겠다.
스테인레스 스틸에 화이트 우레탄 도장으로 마감된 이 작업은 말 그대로 미술품(?)으로써의 시각적 위용을 보여줌으로써 공공기관, 특히 어쩌면 조금은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경찰서가 친근감을 느낄 만한 외형을 갖춘다. 실제로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마주친 경찰은 지나가는 시민들의 촬영이 잦고, 명품브랜드의 팝업 스토어처럼 보이는 파출소가 신기하고 친근하게 느끼는 시민들이 많다고 했다.
작가 최기창은 이 문화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미술 장식품을 원했던 수많은 안산의 건물들 대신 참여 신청을 하지도 않은 경찰서 건물을 택해 작업 허가를 요청했다고 한다. 작가는 공공건물이 갖는 무채색의 이미지를 예술 작품의 깊이로 중화시켜 지역사회에서 자랑스러워 하는 랜드마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인터뷰에서 공단파출소를 선택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안산시와 안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이 문화재생사업은 미술을 통한 공공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오래 받게 될 것이다.
3. 조선시대 천재 화가를 만날 수 있는 김홍도 미술관(경기 안산시 상록구 충장로 422)
현대 미술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안산에 위치한 김홍도 미술관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김홍도 미술관은 조선후기의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의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지역 미술 활성화의 매개가 되고자 조성되었다. 김홍도는 안산에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살았기 때문에 7~8세 때부터 20세까지 그의 집에서 갈며 그림과 글을 배웠다. 풍속화, 산수화, 인물화, 궁중 기록화 등 다양한 장르에 두루 능통하여 정조대왕의 신임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미술의 도시’를 표방하는 안산에서 다양한 기획전시 및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며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삶을 아름답게 고양시키는 문화 쉼터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단원미술관은 2022년 3월 김홍도 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야심 차게 선보이고 있다. 현재는 상설전시와 기획전이 함께 열리고 있다. 상설전시로 열리는 단원 콘텐츠 전시는 ‘조선의 그림신선, 김홍도’ 전시이다. 이 전시는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장르별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안산에서의 유년 시절부터 화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작품과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안산시에서 수집한 진본 작품 일곱 점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작품 열여섯 점도 함께 전시되어 미술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기획전시로는 경기시각예술 창작지원 성과발표 전시인 ‘편차의 편’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로 여섯 번째 개최되는 2024년 ‘생상화화’는 경기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선정하여 신작 창작을 위한 제작지원금을 비롯하여 창작성과를 발표하는 전시이다. ‘편차의 편자 Pomp and Circumstance’라는 제목 아래 7인의 작가 개개인의 밀도 높은 작업 세계를 펼친다. 김영진, 박준범, 박형진, 신수와, 양지원, 허내훈, 홍자영 등에게 김홍도 미술관은 고전적인 의미의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에서부터 놀이터, 실험실, 관객과의 만남의 장으로까지 외연을 넓히며 조형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1관과 2관, 김홍도 콘텐츠를 선보이는 3관의 사이에 위치한 상상미술공장은 어린이들의 미술 교육 프로그림을 진행하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시라는 범주를 넘어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하는 김홍도 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사랑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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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공동 대표)
널 위한 문화예술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