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바뀐 세상을 수용하려는 이야기
등단 20주년을 맞은 김연수 작가가 11월 22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독자와 만났다. 이날 행사는 최근에 나온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출간을 기념하는 낭독회였다. 420여 명의 독자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메리홀을 가득 채운 장면은 김연수 작가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낭독회에는 뮤지션 짙은이 사회자로, 뮤지션 이아립이 초대손님으로 함께했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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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로 등단,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 등등.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앞으로 그가 타야 할 상은 노벨문학상 정도? 


그가 이번에 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11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제3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도 포함됐다. 대개 소설집이 7~8편 정도 수록하는 데 비해 다소 많은 편수다. 이에 김연수는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겠다”라고 장난스레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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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에 담긴 작품 수가 많으면서도 작품 한 편 한 편이 촘촘하게 짜여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사회자 짙은이 지적했듯, 작품 대부분에 죽음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벚꽃 새해」에는 병마로 아내를 잃은 한 골동품 상인의 쓸쓸한 독백이,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도 병으로 죽은 정감독을 그리워하는 이모의 회상이, 「주쌩뚜디피디를 듣던 터널의 밤」에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육성을 듣기 위해 심야 터널을 질주하는 남매의 사연이,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에서는 이생을 뜨기 전 자신의 유작을 건네는 한 소설가가 등장한다.

 

이처럼 소설집에는 떠나는 자를 그리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죽음을 다루면서도 김연수는 뼈가 으스러지고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는 그리지 않았는데, 담담하면서도 가끔은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책을 지배하는 주제는 상실과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인 듯하다. 이에 관해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후쿠시마 이후로 세상에는 묵시론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좀비, 살인자 등이 등장하는 게 요즘 추세인데, 나는 소심해서 인물이 병 걸려 죽는 정도로 썼다. 마흔 살이 지나니 바뀌더라. 예전에는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열심히 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마흔이 넘으면 주변 사람이 하나둘씩 죽어간다. 사람이 죽으면, 이전의 (그 사람이 살고 있었던) 세상으로는 못 돌아가지 않나. 바뀐 세상을 받아들이려면 고민하고 슬퍼하면서 나름대로 처리를 해야 하는데. 처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음이 자주 등장하지만, 때때로 경쾌한 장면도 등장한다. 제목부터 생기발랄한 「주쌩뚜디피디를 듣던 터널의 밤」에서 남매가 상실에 대처하는 모습이나 「우는 시늉을 하네」의 윤경이 암으로 죽은 남편을 떠올리는 장면은 꼭 슬프지만은 않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보여줬던 김연수의 재치가 발휘된 작품이다.

 

“어른들이 인생을 고찰하면서 해학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뀌는 시기가 있다. 죽음을 인정하면서부터인데, 나는 소설가이니 이야기의 방식으로 풀었다.”

 

해학적이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존재, 하면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오르지만 김연수가 생각한 존재는 ‘할머니’다. 작품에 죽음 못지않게 많이 등장하는 테마가 ‘여성 어른’인데, 김연수는 여성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남자의 말년이 초라하고 할머니의 삶이 풍요로운 데에는 여성적인 가치 덕택이다. 작가는 앞으로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시로 등단했으나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혀온 김연수는 천생 작가다. 소설 쓰는 게 재밌느냐는 질문에 작품을 마감하고 춤을 출 정도라고 답했다. 창작 과정 대부분은 괴롭지만,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쓸 때 특히 쾌감을 느낀다고 밝힌 김연수. 이 때문인지 마감 직전의 자신의 모습이 더 괜찮게 보인다고 말했다.

 

소설가의 개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작가 대부분은 창작을 위해 취재여행을 떠난다. 김연수도 이 자리에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얽힌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서귀포시 정방동 함석지붕집과 덕성원은 실재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물론 나머지는 모두 허구. 작품에서 인물은 게짬뽕을 먹지만, 덕성원의 별미는 짜장면이라는 말에 많은 독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행사는 1시간 반 정도 이어졌는데, 사회자 짙은과 김연수 작가와 대담이 주를 이뤘다. 사이사이 낭독도 이어졌다. 뮤지션인 짙은과 이아립이 특별 공연을 선사해 참석자들의 호응이 높았다. 특히 김연수 작가가 짧은 구절을 노래했을 때 독자의 환호성은 극에 다다랐다. 앞으로 계획을 묻는 말에 김연수는 앞으로는 조금 더 긴 이야기, 장편을 쓰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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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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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Y

2014.07.07

김연수 작가님의 재치와 입담을 육성으로도 들어보고 싶어요. 정말 즐거웠던 시간일 것 같아 웃음 짓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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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