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이름표, 서명
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28세에 그린 자화상과 멋쟁이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한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1890-1918)의 자화상을 살펴보지요.
글ㆍ사진 이명옥
2013.11.29
작게
크게


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가 28세에 그린 자화상을 살펴보지요. 뒤러는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불릴 만큼 유명한 화가예요. 시성 괴테는 독일 문학을, 뒤러는 독일 미술을 대표하지요.

그림 왼쪽에 뒤러의 서명이 보이나요? 뒤러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알파벳 ‘A’와 ‘D’를 결합해 만든 것입니다. 화가가 직접 디자인해 그림에 최초로 사용한 서명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지요.

뒤러는 당시에 독일 최고의 인기 화가였어요. 뒤러의 그림을 똑같이 베낀 짝퉁 그림이 시중에 돌면서 큰 피해를 보았답니다. 진품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림에 서명하게 된 것이지요.

또 자신이 학문이 높고 교양도 풍부한 예술가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서명을 했어요. 그 시절 독일의 화가들은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손재주만 뛰어난 기능공 취급을 받았어요. 그러나 뒤러는 화가와 장인, 기술자들에게 실기와 이론을 가르치는 미술책을 출간할 만큼 학식이 높았어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뒤러는 화가의 지위를 수공업자에서 창조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망을 품게 됩니다. 이름 없는 기능공이 아니라 존경받는 유명 화가라는 사실을 서명으로 보여 준 것이지요. 서명을 직접 디자인한 것도 고급 브랜드 로고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에게 서명은 청춘기의 강한 자의식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자화상>에서 실레는 정장 차림에 나비넥타이를 맨 멋쟁이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했어요.

그림은 언뜻 보면 미완성 작품처럼 느껴져요. 검은색 양복의 어깨 부분까지만 색칠하다 멈추었거든요. 하지만 왼쪽 소매 주름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화가의 서명이 숨겨져 있어요. 미완성작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색을 칠하지 않은 것이지요. 만일 검은색을 양복 전체에 칠했다면 서명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겠지요.

실레는 왜 서명을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숨겨 놓았을까요? 청춘기 특유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서명에 투영한 것이지요. 청춘기에는 두 가지 상반된 특성이 혼재되어 나타나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지요. 자신을 감추고 싶으면서도 드러내고 싶은 청춘기의 모순적인 특성을 서명에 담은 것입니다.

실레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28세로 요절할 때까지 많은 자화상을 남겼어요. 존재에 대한 탐구의 도구로 자화상을 활용했어요. 날카로운 선으로 그려진 얼굴과 색칠하다 만 검은색은 청춘기의 불안, 반항, 방황, 좌절, 허무를, 붉은 입술은 청춘의 열정과 삶에 대한 애착을 말하고 있답니다.


[관련 기사]

-그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프랑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왕의 여자
-자신을 껴안은 남자의 목덜미를 문 여인 - 에드바르 뭉크 <흡혈귀>
-그녀의 눈에는 왜 눈동자가 없을까?
-화장실 소변기가 미술사상 위대한 작품? - <샘>



img_book_bot.jpg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이명옥 저 | 시공아트
미술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명작들을 ‘키워드(key word)’로 감상할 수 있도로곡 안내한 새로운 미술 교과서이다.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인기 칼럼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중 일부를 모아 새롭게 엮은 것으로, 서명, 손가락, 발, 입, 그림자 등 미술을 대할 때 눈에 보이는 요소들부터 소리, 음악, 움직임, 속도, 리듬, 크기, 생각 등 눈에 안 보이는 요소들, 그리고 미술과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까지 다양한 키워드를 제시하며 명화를 감상하도록 안내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알브레히트 뒤러 #에곤 실레 #자화상 #이명옥
0의 댓글
Writer Avatar

이명옥

한국 문화·예술계의 뛰어난 기획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현재 사비나 미술관장,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 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2005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2006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2006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명화 경제 토크』(2007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 도서),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2005년 청소년 권장 도서), 『팜므 파탈』(한국문화번역원 선정 ‘2005년 한국의 책 96’, 일본 사쿠힌 사에서 『妖婦』로 번역 출간), 『아침 미술관 1, 2』, 『그림 읽는 CEO』(네이버 선정 ‘오늘의 책’), TGIF(Twitter, Google, Internet, Facebook) 시대의 주역인 융합형 인재를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신新 인재 패러다임을 소개한 『이명옥의 크로싱』,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선정 ‘2009 올해의 청소년도서’)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센세이션展』,『머리가 좋아지는 그림 이야기』, 『날씨로 보는 명화』,『에로틱 갤러리』,『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등의 책을 집필했다.

주요 전시로는 '교과서 미술전', '미술 속의 동물전', '밤의 풍경전', '키스전', '이발소 명화전', '24절기전', '일기예보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전', '그림 속 그림 찾기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