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은 ‘영리한’ 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방송 소재 중 가장 사랑받는 음악을 택했고, 모창가수와 원조가수를 대결시키는 경쟁요소를 넣었으며, 모창가수와 원조가수 사이의 특별한 사연까지 보여준다. 이는 지금까지 화제작이 되었던 예능 프로그램의 장점들이다. 어느 예능에서 본 듯한 장치들이지만 <히든싱어>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새롭게 버무려 졌다. 하지만 <히든싱어>가 내민 히든카드는 따로 있었다.
<히든싱어>의 히든카드는 바로 ‘기본기’
<히든싱어>는 음악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답게 ‘가창력’이라는 기본기에 충실했다. 음악 프로그램은 모름지기 ‘듣는 즐거움’을 보장해야 한다. <나는 가수다>가 사랑 받은 이유도 최정상급 가수들의 가창력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히든싱어>도 신승훈, 조성모, 휘성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가창력을 선보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차별점은 바로 모창가수들의 원조 뺨치는 가창력이다. 원조가수가 경연 과정 중 떨어지는 일이 생겨났으니 모창가수들의 실력은 알 만하다. 특히, 12월 7일에 방영된 ‘휘성’편에서 휘성과 모창가수가 부른 ‘결혼까지 생각 했어’는 분당 최고 시청률 7.3%를 찍으며 출연자들의 소름 돋는 가창력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사실,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맞추는 포맷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진부할지도 모른다. SBS <진실게임>에서도 이러한 포맷을 오래 방영했고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같은 장치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히든싱어는 모창가수들의 연습을 통한 강력한 가창실력을 내세웠기 때문에 포맷의 진부함을 날려버렸다.
히든싱어2가 갈고 닦은 또 하나의 기본기는 바로 ‘게임’이었다. 사랑받는 예능 프로그램의 필수요소는 바로 ‘게임포맷’이다. 놀이의 요소가 빠지면 예능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MBC <나는 가수다>는 음악의 달인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게임을 진행했고, tvN <퍼펙트 싱어>는 가수와 기계를 대결시킨다. <히든싱어>도 강력한 게임을 진행하는데 바로 ‘모창가수와 원조가수의 대결’이다. 언뜻 새로워 보이는 이 포맷은 위에서 말했듯이 자주 사용 되었던 포맷이다. 하지만 <히든싱어>의 포맷이 새로워 보이는 이유는 <히든싱어>가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의 심리를 잘 이용했다는 점이다. 언더독 효과는 절대적인 강자가 존재하는 싸움판에서 약자가 강자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심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원조가수라는 절대적인 강자가 존재하는 무대에서 그저 원조를 따라 하기만 하는 모창가수들의 반란을 지켜보는 재미가 바로 히든싱어의 핵심 매력인 것이다.
<히든싱어>의 보너스 카드는 ‘감동’
기본기에 충실한 <히든싱어>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히든카드 외에 ‘감동’코드라는 보너스카드가 있어 <히든싱어>는 더욱 풍성해진다. <히든싱어>에서는 매회마다 모창가수들의 사연을 선보인다. ‘주현미’ 편에서는 성인가요 가수가 되고 싶은 여고생의 사연부터 주현미의 노래로 대학 수석입학을 한 사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휘성 편에서는 ‘휘성 바라기’로 자란 두 명의 팬의 사연이 돋보였다. 휘성은 직접 “제가 태어나길 참 잘했네요. 정말” 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을 사랑하는 팬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출연자는 원조가수보다 정규 앨범의 곡 트랙넘버까지 잘 알고 있었고, 합동 무대에서 휘성과 쌍둥이인양 똑같은 애드리브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히든싱어>는 ‘대결’이라는 가혹한 경쟁을 내세우면서도 ‘가수와 팬’의 감동코드를 잘 짚어내어 시청자들에게 재미 외에 다른 요소를 선물한다.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보너스 요소까지 가지고 있는 <히든싱어>는 영리한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또한 예능을 좋아하는 시청자로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어 기분이 좋다. 서로의 포맷을 베끼기만 하는 현재 예능 판도에서 자신의 색깔을 지닌 프로그램을 만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재적소에 히든카드와 보너스 카드를 사용하는 <히든싱어>가 더 돋보인다. 앞으로 <히든싱어>가 어떠한 히든카드를 보여주며 웃음을 진화시켜 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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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리
‘배워서 남주리?’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란 사람. 지식을 주기에는 아직 배울 것이 많아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인 TV보기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