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괴담’이 주는 진정한 공포
실화 괴담은 대부분 ‘누군가’의 경험을 전달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착각이나 혼자만의 망상 역시 세상에는 존재하니까. 하지만 실화 괴담의 맛은 그런 증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20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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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떠돌아다닌다. 어딘가에서 무서운 이야기, 괴담이 만들어지면 입에서 입으로, 지금은 인터넷을 통하여 순식간에 만방으로 퍼지며 디테일이 덧붙여지고, 새롭게 각색되기도 한다. 과거 민담이라는 것은 입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고대, 중세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적이었다. 마을의 신기한 체험이나 귀신 이야기가 밖으로 퍼지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장사꾼이나 유랑자가 필요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이 들려주는 신기한 이야기에 매혹되고, 자기 마을의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것이 밖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 라프카디오 헌의 『괴담』 이다.
지금은 ‘도시 전설’(Urban Legend)이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무수하게 지나쳐 가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익명성의 도시.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는 모른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떠도는 것이 도시 괴담이다. 홍콩할매귀신, 빨간 마스크 같은 귀신 이야기도 있고 톡톡과 콜라를 같이 먹으면 장에서 폭발한다, 는 등 기이한 상식도 있다. 도시 괴담을 모아 만든 일본 공포영화 <시부야 괴담>에는 어느 역의 특정 사물함에 가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거나, 모 백화점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거나, 자동차 아래에서 손이 나와 발목을 잡았다거나 하는 괴담이 줄지어 나온다. 도시괴담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론적으로 분석한 『일본의 도시괴담』 과 잡다한 괴담을 모은 『도시괴담』, 『일본 도시 괴담』 등등의 책이 있다.
‘실화 괴담’이란 말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1998년 일본에서 나온 책 『신 미미부쿠로』(新耳袋)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에도시대 후기의 서민 풍속을 배경으로, 마을에서 전해지는 괴담을 수집하여 기록한 『미미부쿠로』 란 괴담집이 있었다. 그 형식을 가지고 와서, 키하라 히로카츠와 나카야마 이치로가 일본 전역에서 현대의 도시 괴담을 모아 『신 미미부쿠로』 를 출간했다. 이후 ‘괴담’을 제목에 붙인 『괴담 신 미미부쿠로』 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0권이 넘는 책이 나왔고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HD방송채널인 BS-i에서 만들어진 <괴담 신 미미부쿠로>는 방송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 길어봐야 5분 정도로, 그야말로 잠깐씩 전해주는 귀신 이야기들은 꽤 섬뜩하다.
<링>
<주온>
1999년에는 스즈키 코지 원작의 영화 <링>이 개봉했고, 시미즈 다카시가 비디오 영화로 <주온>을 만들었다. <링>은 실화 괴담과는 다른 본격 공포소설이지만, 저주가 ‘전염’되는 과정은 괴담이 전달되면서 증폭되는 양상과도 흡사하다. <주온>은 영화판도 있지만 역시 최고작은 오리지널 비디오다. <여우령>과 <링>의 나카타 히데오가 추구하는 일상의 공포가 아니라 80년대 슬려셔 호러의 팬으로서 ‘보여주는 공포’를 원했던 시미즈 다카시는 억울한 죽음을 당해 지박령이 되고, 원한과 저주가 집에 들어온 모든 이들을 통해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링>과 <주온> 그리고 실회괴담의 인기는 당시 J 호러라고 불리던 일본 공포물의 견인차였다. 실화괴담은 『괴담 신 미미부쿠로』 만이 아니라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 다양한 시리즈가 이어지고 괴담, 공포 전문 잡지 《괴》(怪)와 《유》(幽)도 가세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PC통신, 인터넷 등을 통해서 괴담이 성행하고 유일한의 『어느 날 갑자기』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뉴 나이트메어>
실화 괴담은 대부분 ‘누군가’의 경험을 전달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착각이나 혼자만의 망상 역시 세상에는 존재하니까. 하지만 실화 괴담의 맛은 그런 증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이 있다더라, 기묘한 일이 있더라, 라고 들으면 뭔가 공명하며 스물스물한 기운이 퍼져 오르고 그걸 또 누구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다시 살아난다. 속편은 절대 안 만들겠다던 웨스 크레이븐이 다시 연출을 맡은 <뉴 나이트메어>에서는 영화와 현실을 오락가락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속에서 웨스 크레이븐은 직접 출연하여 ‘무서운 이야기’가 어떻게 시공을 넘나들며 전해지고 생명을 얻어 지속되는가,를 말해준다. 고대의 요정이나 악마, 귀신들이 이름이 바뀌고 시대의 욕망에 조응하여 다른 형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본질은 사라지지 않고 이름과 외양만 바뀌는 것.
실화 괴담은 그 ‘무서운 것’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재미를 준다. 이유도, 결말도 없다. 그냥 누군가 경험했고 섬뜩하거나 짜릿한 기분을 느끼는 것. ‘이게 뭐야.’라며 실망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귀담백경』 에서 독자들로부터 투고 받은 짤막한 괴담을 다듬고 일부 창작하여 ‘실화 괴담’을 제대로 풀어낸 오노 후유미는 괴담과 공포 소설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안에서 호러와 괴담은 달라요. 괴담은 기분나쁜 일이 일어나지만 정체가 분명치 않죠. 가슴이 울렁거릴 만한, 불편한 공포가 묘미 아닐까요? 하지만 호러는 그곳이 출발점이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부풀려나가야 해요.
괴담은 하나의 현상이고, 호러(공포 소설)은 그 현상을 파고 들어가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아무리 터무니없고 별 것 아닌 이유라 할지라도 파고 들어가서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무엇이 더 우월한가, 가 아니라 각각 지향하는 지점이 다를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실화 괴담’이 많이 수집되고 이야기로 전달되면 좋겠지만, 기독교에서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무조건 ‘미신’이라고 몰아붙이는 통에 미디어에 그런 프로그램이 나오기만 하면 주의, 경고를 때리니 도통 살아남지를 못한다. 안타깝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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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괴담’이란 말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1998년 일본에서 나온 책 『신 미미부쿠로』(新耳袋)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에도시대 후기의 서민 풍속을 배경으로, 마을에서 전해지는 괴담을 수집하여 기록한 『미미부쿠로』 란 괴담집이 있었다. 그 형식을 가지고 와서, 키하라 히로카츠와 나카야마 이치로가 일본 전역에서 현대의 도시 괴담을 모아 『신 미미부쿠로』 를 출간했다. 이후 ‘괴담’을 제목에 붙인 『괴담 신 미미부쿠로』 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0권이 넘는 책이 나왔고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HD방송채널인 BS-i에서 만들어진 <괴담 신 미미부쿠로>는 방송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 길어봐야 5분 정도로, 그야말로 잠깐씩 전해주는 귀신 이야기들은 꽤 섬뜩하다.
<링>
<주온>
1999년에는 스즈키 코지 원작의 영화 <링>이 개봉했고, 시미즈 다카시가 비디오 영화로 <주온>을 만들었다. <링>은 실화 괴담과는 다른 본격 공포소설이지만, 저주가 ‘전염’되는 과정은 괴담이 전달되면서 증폭되는 양상과도 흡사하다. <주온>은 영화판도 있지만 역시 최고작은 오리지널 비디오다. <여우령>과 <링>의 나카타 히데오가 추구하는 일상의 공포가 아니라 80년대 슬려셔 호러의 팬으로서 ‘보여주는 공포’를 원했던 시미즈 다카시는 억울한 죽음을 당해 지박령이 되고, 원한과 저주가 집에 들어온 모든 이들을 통해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링>과 <주온> 그리고 실회괴담의 인기는 당시 J 호러라고 불리던 일본 공포물의 견인차였다. 실화괴담은 『괴담 신 미미부쿠로』 만이 아니라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 다양한 시리즈가 이어지고 괴담, 공포 전문 잡지 《괴》(怪)와 《유》(幽)도 가세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PC통신, 인터넷 등을 통해서 괴담이 성행하고 유일한의 『어느 날 갑자기』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뉴 나이트메어>
실화 괴담은 대부분 ‘누군가’의 경험을 전달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착각이나 혼자만의 망상 역시 세상에는 존재하니까. 하지만 실화 괴담의 맛은 그런 증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이 있다더라, 기묘한 일이 있더라, 라고 들으면 뭔가 공명하며 스물스물한 기운이 퍼져 오르고 그걸 또 누구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다시 살아난다. 속편은 절대 안 만들겠다던 웨스 크레이븐이 다시 연출을 맡은 <뉴 나이트메어>에서는 영화와 현실을 오락가락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속에서 웨스 크레이븐은 직접 출연하여 ‘무서운 이야기’가 어떻게 시공을 넘나들며 전해지고 생명을 얻어 지속되는가,를 말해준다. 고대의 요정이나 악마, 귀신들이 이름이 바뀌고 시대의 욕망에 조응하여 다른 형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본질은 사라지지 않고 이름과 외양만 바뀌는 것.
제 안에서 호러와 괴담은 달라요. 괴담은 기분나쁜 일이 일어나지만 정체가 분명치 않죠. 가슴이 울렁거릴 만한, 불편한 공포가 묘미 아닐까요? 하지만 호러는 그곳이 출발점이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부풀려나가야 해요.
괴담은 하나의 현상이고, 호러(공포 소설)은 그 현상을 파고 들어가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아무리 터무니없고 별 것 아닌 이유라 할지라도 파고 들어가서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무엇이 더 우월한가, 가 아니라 각각 지향하는 지점이 다를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실화 괴담’이 많이 수집되고 이야기로 전달되면 좋겠지만, 기독교에서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무조건 ‘미신’이라고 몰아붙이는 통에 미디어에 그런 프로그램이 나오기만 하면 주의, 경고를 때리니 도통 살아남지를 못한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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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앙ㅋ
2014.07.02
활자와 영상물에서 보고 느끼는 환영들이 어느순간 떠올리면 섬뜻해서 외면하거든요.
햇살
2014.02.25
kimhun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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