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국민 작가’가 사람을 많이 죽이는 이유
지난 2월 27일 밤 한국에 당도한 요 네스뵈. 이튿날 기자간담회를 가진 뒤 ‘가장 깊게 만나는 요 네스뵈’라는 이름의 소수정예 독자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에 등장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십여 명의 독자들이 그를 반겼고, 그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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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 극우주의자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일흔일곱 명이 숨졌다. 슬픔이 덮친 가운데 한없이 투명에 가까울 만큼 평화로워 보였던 노르웨이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당시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의 대응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다.”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더욱 궁금해진 이유였다. 요 네스뵈.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라고 불리는 그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성취감을 준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레드 브레스트』 를 꼽았다. 2000년 출간된 이 작품은 총기난사 사건을 예언했다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작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가 아닌 인도에서 인공 암벽등반을 하고 있었다. 이후 뉴스를 보면서 현실이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이라고도 생각하며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회상했다.
한국에는 비교적 생소한 나라의 이 작가는 국내에도 『스노우맨』 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2년 한국어판으로 나온 이 책은 5만부 이상 팔리며 국내 독자들도 사로잡았다. 요 네스뵈가 한국을 찾은 것은 『박쥐』 와 『네메시스』 의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박쥐』 는 1997년 북유럽 최고의 문학상인 리버튼상과 유리열쇠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독자들을 홀린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비행기 연착의 시련(?)을 딛고 지난 2월 27일 밤 한국에 당도한 요 네스뵈. 이튿날 기자간담회를 가진 뒤 ‘가장 깊게 만나는 요 네스뵈’라는 이름의 소수정예 독자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에 등장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십여 명의 독자들이 그를 반겼고, 그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스칸디나비아 느와르’라 불리는 해리 홀레 시리즈에 홀린 독자들은 이날 자연스레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만찬을 즐겼다.
비행은 어떠했나?
(그는 아시아투어를 하는 중인데 태국을 둘렀다가 한국에 왔다) 짐이 중간에 다른 항공사로 가서 당황했었다. 중간에 비행기도 바뀌고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연착은 됐지만, 다행스럽게도 공항에 도착했다. 놀란 것은 스무 명의 팬들이 나를 4시간이나 기다리면서 환영해줬다! 그런 환대는 처음 받아봤다(웃음).
축구선수로도 활동했고, 저널리스트, 경제학자, 증권중개인은 물론 밴드 생활도 하는 와중에 책을 썼다.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듣고 싶다.
밴드나 축구 등은 동료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글쓰기는 다르다. 혼자 할 수 있다. 오늘 바로 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대개 실패할 것을 두려워한다. 그냥 쓰기 시작해라. 내 안의 것을 다 끄집어내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 게으르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나?
못한다(웃음). 다 좋아하는 일이고, 세상은 내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 내 모토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하면 된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것 빼고는 다 좋아하는 일이다(웃음).
여러 장르의 글을 썼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르나 글쓰기는 무엇인가?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썼었다. 그래서 가장 재밌는 건, 어린이 책이다(주. 요 네스뵈는 괴짜 발명가 프록터 박사의 기상천외한 발명 대소동을 그린 동화 시리즈도 내놓았다. <닥터 프록터의 파트 파우더>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해리 홀레 시리즈처럼 인물 캐릭터를 파고들고 발전시키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헤드헌터』 를 쓸 때도 재미있었다.
글쓰기는 주로 어디에서 하며, 어떻게 하는 편인가?
어디든지 문만 닫으면 글을 쓴다. 그게 어디든 상관없이 글을 쓰는 편이다. 사람이 붐비는 카페에서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생각을 하고 머리에서 만들어놓은 인물을 끄집어내면서 쓴다. 글쓰기는 내게 노는 행위다. 다만 얼마 전 오슬로에 큰 아파트를 사면서 무척 좋은 책상을 샀는데,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이 책상에선 글이 써지지 않는다(웃음).
『스노우맨』 영화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영화의 각색은 마음에 드나?
처음에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기로 했었는데, 할리우드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직 모르겠다.(주. 마틴 스콜세지가 스케줄 문제로 하차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각색은 좋아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원작의 배경은 오슬로이나 영화의 배경은 시카고가 얘기됐었다. 두 도시는 비슷한 점도 있다. 시카고는 표면적으로 정리가 돼 있는 한편 마약 등 범죄에 노출돼 있고, 오슬로도 아름다운 도시지만 유럽에서 마약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 이미 만들어진 <헤드헌터>는 영화사에서 내게 감독(연출)을 부탁했었다. 일단 단편을 만들어보고 해볼 만 하면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었다. 9분짜리였는데, 너무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장편은 다른 사람이 연출했다.
요 네스뵈는 질문에 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끼어들어 독자들이 하는 일도 묻고, 나이도 물었다. 노르웨이에서는 남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가 아니란다. 다만 서른이 넘은 여성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며 웃었다. 해리 홀레에 대해선 “야망이 없고, 모든 일이나 사건은 그를 둘러싼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 작명과 관련, 해리는 노르웨이에서 유명한 축구선수에게서, 홀레는 어렸을 때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경찰관 성에서 가져왔다. 해리 홀레가 직면하는 사건은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이미지와 정반대다. 왜 이들 문화권에서는 스릴러물의 인기가 높을까?
실제로 노르웨이를 비롯해 많은 북유럽 국가의 범죄율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꽤 낮다. 특히 노르웨이의 경우 유엔의 인간개발지수 1위로 생활수준이 높고 무료 교육 등 복지 혜택이 많은 안정적 나라다. 한해 50건 이하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지루한 측면도 있단다. 너무 안정적이라서 작가들이 나서서 죽여준다는 것. 작품 속에서 수백 명을 죽여서 독자들에게 흥분을 안긴다. 요 네스뵈는 소설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죽이는 이유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라 굳이 소설을 통해 자극을 받을 필요가 없다. 소설에서까지 비참하고 참혹한 광경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노르웨이는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데, 어떤 나라인가?
‘젊은 나라(Young Country)’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고,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가 함께 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한국보다 크지만(주. 4배가량 면적이 크다.) 인구는 훨씬 작아서 500만 명이다. 정말 춥고 산이 많다. 1920년대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힘이 없었다. 당시 덴마크, 스웨덴에는 큰 기업도 있었으나, 노르웨이에는 농부나 어부가 많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내성적이고 순수하며 정직하다. 그래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기들처럼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이유로 똑똑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웃음).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끼리는 말이 통하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언어가 비슷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경우, 노르웨이의 800년 전 언어에 가까워서 지금은 알아듣기 힘들고, 핀란드어는 너무 달라서 유사점을 찾기가 어렵다. 핀란드어와 비슷한 언어를 굳이 찾자면 헝가리어?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문화적으로는 비슷하나, 핀란드는 언어장벽 때문인지 약간 다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한 번 친구가 되면 영원히 친구다(웃음).
한국에 온 일정 중 자유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요 네스뵈는 살짝 슬픈 표정을 지으며 일 하러 온 스케줄이라며, 그것도 너무 빡빡하다고 말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나눴던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판타스틱’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노래를 부르고 경제를 연구하며 노르웨이 작은 방에서 스릴러물을 쓰는 이 작가는 지구 반대편에 와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음이 아름답고 판타스틱하다고 감탄했다. 디테일한 질문을 받으며 흔쾌히 이를 즐기는 듯 답변을 건넸던 이 작가의 인생의 목표는 쉬운 듯 가장 어려운 무엇이다. 악(惡)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노르웨이, 요 네스뵈를 통해서도 만난 이 나라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문득, 해리 홀레가 살고 있는 오슬로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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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투명우산
2014.03.16
sunnydaler
201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