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에는 첫 번째 독자가 있습니다. ‘책의 또 다른 작가’로 불리는 편집자가 바로 그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저자의 좋은 글을 발견하고 엮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편집자들을 <채널예스>가 만나봅니다. 저자와의 특별한 인연, 책이 엮이기까지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
『공부란 무엇인가?』. 제목만 들어도 뭔가 묵직한 느낌인데, 꽤 가벼운 책 무게에 오히려 신뢰감이 생긴다. 전작 『거대한 사기극』으로 2013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한 이원석 저자의 신간 『공부란 무엇인가?』는 시험공부, 취업공부를 공부의 전부로 여기는 기존 통념을 전복하는 책이다. 암기와 계산으로서의 정신노동, 엉덩이가 무거워야만 성공한다는 공부의 개념을 벗어나, 동아시아와 서양의 고전을 토대로 선현(先賢)들이 말한 공부의 의미를 살펴본다.
현재 문화이론으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이원석 저자는 종교본능에서 말초신경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로 여러 매체에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저자는 전작에서 자기계발서를 권하는 사회를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공부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안녕하지 못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으나, 공부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끊임없이 했던 이원석 저자. 『공부란 무엇인가?』를 통해 우리 시대 공부의 일그러진 초상을 들여다보았다. ‘독서에 토대한 암송’, ‘사유에 토대한 묵상’, ‘우정에 토대한 대화’ 등 그가 말하는 공부법을 듣다 보면, 진짜 공부가 하고 싶어진다.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공부, 나와 궁합이 맞는 좋은 고전을 읽고 싶어진다.
자, 이제 다시 묻자. 공부란 무엇인가? 그렇다고 공부를 육체의 골격과 신경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공부의 일부에 불과하다. 공부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자연적 존재로서의 동물을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무술을 단련하고(쿵후), 기술을 가다듬고(工夫), 심성을 연마하는(마음공부) 것 등이 모두 ‘공부하다’라는 표현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곧 공부는 몸을 새롭게 만들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p.44)
일방적이었던 저자, 이제는 자학개그도 즐겨
이원석 저자는 지난해 8월 출간된 『거대한 사기극』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나, 그를 오래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던 편집자가 있었다. 출판사 책담의 김진형 편집장. 둘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김진형 편집장이 당시 근무했던 출판사에서 열었던 ‘독서와 글쓰기 워크숍’의 강사가 이원석 저자였던 것. 김진형 편집장은 여러 매체에 서평을 연재하던 이원석 저자의 필력을 이미 알고 있었고, 강의와 함께 출판을 제안했다.
“이원석 선생의 강의도 듣고 싶었지만, 실은 저자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강의를 듣고 바로 선생에게 책 출간을 제안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고, 저는 그 출판사를 떠나 선생과의 인연은 잠시 잊혔죠. 이번에 『공부란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이 책은 그때의 인연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물론, 저자와 편집자로 만나 우정의 연대를 쌓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요.”
김진형 편집장과 이원석 저자는 지난해 9월, 출판을 염두에 둔 미팅을 가지며 책의 초안을 잡았고, 저자는 12월부터 두 달간 집필에 들어갔다. 집필한 건 두 달이지만, ‘공부’에 대한 물음은 이원석 저자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던 주제다.
“처음엔 저희 사무실에서 집필하며, 제가 숙제 검사하듯 감시를 하기도 했어요(웃음). 집필 막바지에 마감이 늦어지면서 독촉도 꽤나 했고요. 전화나 문자, 메일은 물론, 쫓아다니면서 압박했죠. 그런데도 저자는 늘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어요. 편집자로서, 그는 매우 좋은 저자였지요. 원고 교열과 디자인 등을 전적으로 편집자에게 맡겼거든요. 저자와 편집자로서 이번처럼 신뢰를 가지고 일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김진형 편집장은 이원석 저자의 첫인상을 어떻게 기억할까. 의외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2007년 당시, 이원석 저자는 강연자로서는 굉장히 말이 빨랐고 발음도 썩 매끄럽지 않았다. 또 청중과 전혀 타협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 ‘일방적’인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2013년 9월, 김진형 편집장과 다시 만난 저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책을 내고 강연회를 진행했는데요. 과거랑은 정말 달랐어요. 일단 ‘자학개그’를 필살기로 청중을 즐겁게 했고 그러면서도 진한 감동을 이끌어냈죠. 적절한 호흡이 배어있는 저자의 강의를 들으며, 말과 글의 간극이 많이 좁혀져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이원석 선생이 무지 잘 나가는 강연가가 된 것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웃음).”
김진형 편집장 추천한 또 다른 책 자기계발이란 허상을 폭로한 것은 이원석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십수 년 전, 문화평론가 서동진은 그 근저에 신자유주의의 욕망이 담겨 있음을 밝혀냈죠(『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2009). 그사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기계발이란 허상은 더욱 공고해졌어요. 그래서 이원석이 나섰고, 이 책은 자기계발서 비판의 종결자로 손색이 없죠. 자기계발의 역사, 형식, 주체, 담론을 이원석은 군더더기 없는 논증으로 파헤치고 폭로하죠. 그리고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월든』은 『공부란 무엇인가』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텍스트로 인용되는데요. 저에게도 매우 소중한 책이랍니다. 소로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실제 그 길을, 그 삶을 살았던 사람이죠. 그리고 『월든』은 그 도전과 승리의 기록입니다. 무엇보다 너무 아름다운 책이에요. 이 책의 문학적 성취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주석 달린 월든』은 출간 150주년을 맞이하여 펴낸 것으로, 『월든』에 상세한 주석과 자료를 덧붙였어요.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죠. 『공부란 무엇인가』를 만들며, 계속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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