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로키산맥 여행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에 잠시 머물렀다. 한국에서 출발 전 밴쿠버 시내 숙소를 알아보던 중 이곳에 사는 지인이 본인 집 거실 쇼파에서 자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숙박비도 아낄 겸 흔쾌히 수락했다. 총 3박을 이 집에서 보냈는데,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기존 여행지의 잠자리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지인의 남편은 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였다. 그와 저녁마다 맥주와 칵테일을 마시면서 마치 가족이 된 것처럼 그날의 일상과 더불어 갖가지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부부의 안내로 관광객이 흔히 다니는 곳 말고 그들만이 알고 있는 동네 맛집과 공원 내 숨겨진 명소를 함께 다녔다. 오만가지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장에서는 그들의 추천덕분에 선택의 고민도 줄어들었다.
캐나다 밴쿠버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 (사진제공: 안수현)
마지막 날에는 부부와 함께 펍(Pub)에 갔는데 마침 캐나다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개막전 날이었다. 펍에는 밴쿠버 아이스하키팀을 응원하는 수많은 손님들로 가득 찼는데 한일전 축구시합 이상으로 열광적으로 응원 중이었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부부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그 덕분에 캐나다 사람들의 절대적인 아이스하키 사랑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로키산맥 여행을 떠나는 내게 코펠과 버너 등 각종 캠핑용 조리 도구를 무상으로 빌려주었고, 저렴하면서도 안전하게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줬다. 여행가이드 책이나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정보였다. 그때만 해도 난 이게 ‘카우치서핑’의 일환인줄 전혀 몰랐다.
캐나다 여행을 다녀오자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를 써서 큰 호응을 얻었던 여행가 태원준이 두번째 책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를 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주된 여행 방법은 현지인의 집을 무료로 이용하면서 때로는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안내를 받으며 여행을 즐기는 것이었다. 가끔은 고급 호텔보다도 예쁘고 잘 정돈된 방에서, 어쩔 때엔 다락방 같은 형편없는 곳에서 잠을 자기도 했지만 태원준과 그의 (환갑이 지난) 어머니의 만족도는 최고였다. 두 모자는 모로코 카사블랑카와 영국 런던 등 총 30여 국에서 40명의 호스트들을 만났다. 호스트와 함께 암벽등반과 하이킹, 버섯 채취, 교회 종탑 오르기 등 일반적인 여행에서 체험하기 힘든 살아 숨쉬는 경험을 했다. 태원준은 이 모든 걸 ‘카우치서핑’ 덕분이라고 치켜세웠다.
6개월간 26개국 56개국 도시 여행을 다녀온 20대 대학생 김대진 씨의 여행비는 600만원의 예산으로 가능했다. 그 역시 카우치서핑이 있기에 가능했다. 북유럽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과 중동, 인도, 네팔 등을 여행했는데 가는 곳마다 카우치서핑을 이용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호스트 덕분에 크리스티아니아라는 ‘자유의 땅’을 찾을 수 있었다. 카우치서핑이 아니었으면 결코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는 『배낭여행 싸.싸.싸.』를 통해 카우치서핑의 매력과 에피소드, 안전하게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파한다. 도대체 카우치서핑이 뭐길래 전세계 배낭여행가들을 흥분시키는 걸까?
카우치서핑 호스트와 함께 방문한 펍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은 글자 그대로 ‘소파(couch)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surf)’는 뜻이다. 집주인(호스트)이 여행객(서퍼)에게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한다. 가정집 민박을 무료로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여행객은 숙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집주인은 낯선 외국인과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카우치서핑 홈페이지 http://www.couchsurfing.org)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잠자리를 찾는다. 카우치 서핑은 누가 만들었을까? 불과 십 년 전인 2004년, 미국 보스턴의 대학생 케이지 펜튼은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아이슬란드 대학생 1500명에게 집에서 나를 재워줄 수 있느냐는 이메일을 보냈다.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어디든 괜찮다고 썼다. 예상 외로 많은 학생들이 답장을 보내왔고, 덕분에 펜튼은 저렴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보스턴으로 돌아온 즉시 이 아이디어를 살려 카우치 서핑 프로젝트를 구체화 했다.
카우치서핑은 웹사이트를 오픈한지 불과 10여년 만에 700만 명이 넘는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카우치서핑에서는 자신의 집으로 여행객을 초대하는 사람을 ‘호스트’, 초대를 받은 사람을 ‘서퍼’라 부른다. 단순히 잠자리 제공은 물론 현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현지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현지인만 아는 맛집과 숨겨진 명소를 방문하는 것은 또다른 선물이다. 남들과 똑 같은 여행이 질색인 사람에게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문화웹진 채널예스에서 ‘카우치서핑’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2개의 기사를 볼 수 있다.
“10일은 터키, 30일은 베를린에 다녀 왔어요. 홀로 카우치서핑(couchsurfing)했거든요. 카우치서핑이 말 그대로 소파에서 잠자면서 그 사람 집에서 묵는 건데요. 사전에 메일로 묵을 곳을 섭외해서 갔죠. 베를린이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 그곳을 체험해 보고 싶었어요.” - 일러스트 작가 아방 (http://ch.yes24.com/Article/View/24641)
“유럽에서는 카우치서핑을 했는데, 그러면서 각 나라의 분위기와 역사도 알게 되고, 현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중략) 어머니께서 유럽 친구들에게 비빔밥이나 칼국수도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참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죠. 유럽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 여행가 태원준 (http://ch.yes24.com/Article/View/22949)
카우치서핑 여행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무료)하여 프로필을 상세하게 기입한다. 여행하려는 나라나 도시의 가입자를 검색하여 원하는 곳을 발견하면 호스트의 공개된 정보와 reference 등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이후 호스트는 여행객의 정보와 신뢰도를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확인하고 회신을 준다. 내가 호스트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우리집을 여행객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면 나와 거주지에 대한 정보를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등록하면 된다. 게스트에게 잠을 잘 공간만 제공하고 가이드나 식사 제공은 안 해도 상관 없다. 집에 찾아온 다양한 여행객과 친분을 쌓고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카우치서핑의 모든 절차는 무료로 이루어진다. 호스트 또는 서퍼에 대한 신뢰는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소지품과 개인 신변에 대한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혼자 여행 중인 여성은 남성 혼자 사는 집을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카우치서핑에는 책임에 걸맞는 기본 예의가 있다. 호스트에 방문하는 서퍼는 자기 문화만의 특별한 선물(복주머니, 부채, 김 등)을 하는 게 좋다. 식사나 맥주를 대접하는 방식도 괜찮다. 호스트에게 여행 가이드를 요청하거나 식사를 차려달라고 말하는 건 볼썽사나운 일이 될 수 있다. 숙박을 마치고 떠날 때에는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는 건 필수이며 감사의 편지를 남기는 것도 괜찮다. 추후 호스트가 한국에 방문하면 내가 그의 호스트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활동을 통해서 서로의 문화를 더 이해하고 유대감은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이 비영리 커뮤니티는 단순히 저렴한 공간을 제공하거나 받으면서 여행을 다니는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적인 의사소통, 즉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 집에 남는 공간을 여행객의 거처로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 뻔한 여행 방식에서 벗어나 외국의 문화만을 접하는 것 외에 실제 그 문화의 일부가 되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내가 밴쿠버에서 머무른 것은 엄밀히 따지면 카우치서핑은 아니다. 카우치서핑 홈페이지를 이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쇼파에서 잠을 잔 덕분에 그들과 수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어디서도 경험하기 힘든 추억을 쌓았다. 어디론가 낯선 여행지를 찾아 떠날 때 카우치서핑만큼 이색적이고 기분 좋은 만남이 또 있을까? 한 젊은이의 아이디어 덕분에 여행의 새로운 기적이 시작되었다.
※카우치서핑 관련 추천 도서
김은지,김종현 공저 | 이야기나무
대기업 직원 시절, 파트너로 처음 만난 김은지와 김종현은 벤처기업 ‘PLUIE(플뤼에)’를 창립해 얼마 전까지 공동 운영했다. 사무실 한 켠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카우치서퍼들에게 내어주고, 때로는 스스로 카우치서핑으로 여행을 떠나며 발견한 소중한 경험과 카우치서핑의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김광섭 저 | 세상의모든길들
저자는 9월부터 자전거를 타고 4년 7개월간 세계를 돌았다. 그 중 터키에서부터 시작해 불가리아, 세르비아,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카우치서핑으로 6개월간 숙박하며 여행했다. 책은 그가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순수한 호의와 반가운 마음이 가득한 그의 에세이는 여행을 즐기는 독자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송우진 저 | 이서원
카우치서핑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교육적인 교제를 창조 하며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로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여행자들에게 단순히 틀에 박힌 외국의 문화만을 접하는 것 외에 실제 그 문화의 일부가 되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카우치서핑을 통해 저자가 보고 느낀 소박한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과의 소통을 담아낸 책이다.
정희창 저 | 비즈니스맵
저자가 처음 '카우치서핑'에 빠지게 된 것은 22살 무렵, 공군 입대를 앞두고 40여일간의 유럽 여행을 다녀왔을 때이다. 누군가의 여행기로는 경험하기 힘든 유럽의 속살을 만져보면서, 친구 집 다녀오듯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여행. 카우치서퍼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네덜란드로, 동유럽으로 끊임없이 카우치서핑 여행을 떠나며 청춘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김대진 저 | 넥서스BOOKS
가이드북에 나오는 추천코스만 ‘찍고’ 돌아오는 ‘관광’은 이제 그만! 카우치서핑으로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는 진짜 ‘여행’을 해 보자. 공짜 잠은 보너스, 운이 좋다면 지역 전문가인 호스트에게 가이드도 받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실제로 ‘카우치서핑’을 이용하여 단돈 600만원으로 6개월 간 유럽 전역을 일주한 저자가 생생한 체험기를 통해 배낭여행과 카우치서핑 노하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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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지구에 춤을 추러 온 화성인입니다. 여행과 영화 감상을 좋아하며, 책을 사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잘 읽지는 못하고 쌓아만 둡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