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경주가 매월 공연 예술인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매달 12일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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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 <이>의 작가 김태웅 연출이 신작 <헤르메스>로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다. 오는 4월 30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되는 <헤르메스>는 살아가야 하는 더러움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자본에 대하여 예술로 대응하는 사람, 죽음으로 대응하는 사람, 거짓으로 대응하는 사람, 위악으로 대응하는 사람, 스스로를 똥과 같은 격으로 추락시켜 본인의 죄악에서 벗어나려는 사람 등 자본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모든 것이 자본화 되어가는 동시대의 현실에 눈을 뜨게 만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인 김태웅 연출은 <파리들의 곡예>, <이>, <문>, <풍선교향곡>, <꽃을 든 남자>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다.
자본에 집착하는 인물, 그리고 바깥의 촛불
김경주 : 작품 <헤르메스>에 대한 간략한 과정이랄까.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김태웅 :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1년 반 정도 누워 계셨어요. 그때 병원비를 아버지와 제가 부담을 했죠. 그 무렵 동생에게 제가 돈을 좀 빌려준 게 있었죠.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돈을 악착같이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은 다 받았어요. 동생이 개척교회를 하기 때문에 힘들게 목회 활동을 해요. 그걸 뻔히 아는데도 제가 그 돈을 악착같이 받으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갑자기 제 자신이 참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러워졌다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정말 친한 지인들한테 사기도 몇 번 당하고 나서 돈에 집착하는 내가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누가 내 몸에 똥을 한 번 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돈을 밝히는 내가 그만큼 더러워져서 더 더러운 짓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그 생각이 계기가 되어 <헤르메스>를 쓰게 됐죠.
김경주 : 개인적인 계기에서 출발한 작품이네요. 자본과 욕망을 대변하는 작품은 많이 있었지만 <헤르메스>가 가지는 배경과 설정이 독특합니다.
김태웅 : 남건이라는 인물이 내러티브를 끌어가는데 성인물 연극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노동운동을 하면서 노조활동도 했고, 노동자 연극도 하면서 나중에 대학로 나와서 연극 활동 하다가, 자본의 필요성 앞에서 성인 연극을 하게 되는 그런 친구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작품을 쓰게 됐죠. 거주하는 곳을 P호텔이라고 해서 실제 플라자호텔이 모델인데, 시청광장이 보이는 배경을 설정했어요.
김경주 : 촛불 광장이 보이는 곳이군요.
김태웅 : 자본에 집착하는 인물, 그리고 바깥의 촛불, 이 두 세 개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촛불로 대변되는 광장이라는 공간, 그리고 호텔 방으로 대변되는 배설과 욕망의 공간 ‘이 두 개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썼죠.
김경주 : 몸에 똥을 쌌으면 좋겠다는 건, 사실 연극 안에서도 표현이 되는 부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가 욕망과 닿아 있잖아요. 인간의 죄의식이나 허영이나 수치심이 인간사를 만들어왔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욕망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많이 있었고, 우리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한다면 ‘욕망이 더럽지만 매력 있다’ 라는, 다시 말해 ‘더러운 마성’ 때문에 끌리는 거잖아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마성, 매력, 더럽지만 너무 매력 있는 것, 그리고 어떤 수치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이런 구도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만약 어떤 수치심의 계기로부터 출발했다면, 남건이라는 주인공이 그것을 정화하는 과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태웅 : 남건을 정화 시켜주는 인물이 ‘유정숙’이라는 장님 안마사인데요. 처음에 정숙이 안마를 하러 왔을 때는, 오줌 좀 싸달라고 하니 거부하고 갔다가 나중에 남자친구가 안구 기증을 받아서 수술을 하는 데 돈이 필요해서 똥을 싸러 와요. 그 과정에서 그 여자의 배설로 남건이 치료가 된다고 할까요?
김경주 : 일종의 수치심과 연결되는 건가요?
김태웅 : 정숙의 배설 행위는 그 전의 다른 캐릭터의 배설과 다르게, 남건을 정화시키거나 구원시켜주는 역할을 하죠. 남건은 정숙 앞에서 고해성사처럼 ‘내가 얼마나 더럽고, 돈을 벌기 위해서 위선과 거짓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토해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정숙이라는 장님 안마사한테 위로를 받게 되죠. 정숙은 장님인데 자기 남자친구랑 촛불 집회를 구경 가고 싶어 해요. 배설 행위를 하고 남건의 고해성사를 듣고 난 다음에 같이 촛불집회를 가자고 얘기를 하죠. 그런데 남건은 “못 간다, 나는 똥냄새가 나서 안 된다”고 하면서 플라자호텔와 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보여 지는데요. 그걸 강력하게 촛불집회 현장으로 당기려고 하는 사람이 정숙이죠. ‘축제, 잔치, 이런 세계에서 당신이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그쪽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지만 남건은 못 간다고 하고, 결국은 못 가죠. 나는 그냥 남건이 자본에 붙잡혀 사는 우리 일반인들의 자화상처럼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쁜 놈이 아니라 ‘나도 저렇지’ 이런 느낌이 들게 연출하려고 했고요.
김경주: 관객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김태웅: 여러 가지로 나와요. 작가로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정숙이 입을 통해서 주로 하는데, 일반 평론가나 관객들은 남건이 주인공이니까 남건을 많이 쫓아가요. 어떤 연극 평론가는 ‘김태웅의 이 위악성을 어떻게 한단 말이냐’ 이러면서(웃음), 위에서 그만 쳐다보고 내려와서 사람들하고 지내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하다보면 작가로서나 연출로서 의식의 파시즘 같은 게 있어서 ‘내가 바라보는 식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라는 욕망이 있어요. 그래서 평론가가 그런 글을 쓰면 전투하고 싶은 생각이 생기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그것도 평론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거지 뭐, 어떻게 생각이 다 같을 수가 있어’ 그런 생각에서 대응을 하지 않았어요.
김경주 : 인터뷰를 보면서 살짝 의구심이 들었던 게 작품 속에 있는 인물의 ‘위악성’에 해당하는 단어였는데요. 사실 위악과 위선은 다른 뜻이잖아요. 이 인물이 위악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내러티브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김태웅 : 자기가 왜 위악적이 되었는지를 얘기하죠. 결국은 돈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요.
남건의 촛불과 광장의 촛불, 어떻게 달라지는가
김경주 : 남건이라는 인물이 변태적인 성인 연극 제작자라는 직업군에 있잖아요. 인물의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부분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지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태웅 : 그래서 성인 연극 <교수와 여제자>를 보러 갔어요. 그런데 ‘왜 벗지?’(웃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참 안쓰럽게 느꼈던 게 뭐냐 하면, 여배우가 옷을 벗을 때 파르르 떨어요. 하고 싶지 않은데 돈 때문에 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오더라고요. ‘아, 이거 뭐지’ 싶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가야 되나,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연기가 교감이 잘 안 돼요. 정사 씬 같은 경우도 무대 위의 육체 둘이서 기계적인 동작을 하는 것 같고, 사랑하고 교감하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이런 연극을 해서 부를 축적하고 돈을 버는 건 뭘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경주 : 변태적 성인 연극 제작자라는 캐릭터가 <교수와 여제자>를 보면서 고안해 내신 거군요.
김태웅 : 네.
김경주 : 동시대성 안에서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최근에 많이 야기되고 있는 갑을의 시선이라든지 고용주와 피고용주 이런 이야기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있잖아요. 이 작품 안에도 안마사와 연극 제작자 사이의 관계가 분명히 있고요. 선생님께서 연극 안에서 극성으로 표현하고 싶은 시선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를 바라봤을 때, 갑을의 시선이랄지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에 있어서 연극적으로 녹아들게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태웅 : 대사 중에도 ‘‘왜 갑질 한 번 못해보고 죽고’’라는 말이 있는데요. 노동운동하다가 정리 해고된 선배가 와서, 해고된 다음에 돈이 없으니까 콩팥 하나를 판 선배인데, 7년 만에 찾아와서 2천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는데요. 물론 남건은 빌려주지 않죠. 그 선배가 투신을 해서 죽어요. 그 소식을 접하고 남건이라는 주인공이 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갑질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왜 다들 죽고 지랄이야. 왜! 왜! 왜!’’ 이러면서 절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리고 여배우가 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재계약을 하자고 하는데도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야. 너는 내가 돈 주고 고용한 일용 노동자야’’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갑이라는 걸 주지시키는 장면도 있죠.
김경주 : 넓은 의미로 생각했을 때, 룸으로 대변되어지는 작은 공간과 광장으로 대변되어지는 공간 역시 갑과 을로 볼 수 있는 건가요?
김태웅 : 그렇죠. 촛불이라고 하면 수직적 약속을 갖고 정신의 고양이라든지 이런 쪽으로 많이 얘기가 되잖아요. 그런데 광장의 촛불은 수평적 확산을 한단 말이죠. 이 두 개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질문도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남건의 촛불과 광장의 촛불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달라지는가. 남건은 촛불처럼 계속 서 있으려고 하는데 그 욕망이 자본이나 이런 것으로부터 왔다는 거죠. 그 부분에서 촛불 운동을 두 가지 차원에서 바라보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죠.
고백이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김경주 : 결국 이 작품 자체의 속성이 사실은 ‘고해와 정화’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게 바탕에 깔려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SNS로 대변되기도 하고 너무 많은 입장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이기는 한데, 많은 이야기를 노출하지만 사실은 고백에 더 서툰 시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쓰지만, 시라는 것이 문학의 장르 중에 가장 고백에 가까운 장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이 작품 속에서도 고백적인 질감들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작품 안에서의 고해, 정화적인 측면도 이야기했지만, 인물이 작품 속에서 고백을 하는 차원에서 또 다른 생각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김태웅 : 고백이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죠. 고백조차도 거짓으로. 한편으로는 남건이 그런 고해, 고백을 하고 자기가 갖고 있는 도덕적인 죄의식, 책무감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시 죄를 짓기 위해서, 악을 행하기 위해서 고해를 한 느낌. 나도 좀 그런 것 같고요.
김경주 : 그런 부분에서 블랙 유머랄지, 자기혐오로부터 비롯되는 것들이 중간 중간에 나옵니다.
김태웅 : 코믹한 부분이 좀 있어요. 관객들이 그 부분에서 많이 웃더라고요. 몸을 팔러 온 여자한테 똥을 싸달라고 부탁하는 부분에서. 100만 원을 줄 테니까 내 몸에 똥 좀 싸달라고 하면 관객들이 빵 터져요. 그리고 잔잔하게 웃기는 부분이 몇 군데 있더라고요. 예상하지 않았던 지점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요. 계속 너무 비극적인 거나 슬픔 쪽으로 가다보면 관객이 못 견뎌할 것 같아서 중간 부분은 코믹적인 요소를 배치했죠.
김경주 : 안마사뿐만 아니라 콜걸이랄지, 여러 인물이 등장하잖아요.
김태웅 : 몸 파는 여자가 한 명 나오고, 분신자살하는 선배가 나오고, 장님 안마사가 나오고, 지금 같이 성인 연극을 하고 있는 유가인이라는 성인 연극배우가 있죠. 유가인이 나중에 자살을 해요. 그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동생이 어떻게 알고 누나가 공연하는 걸 보러 왔다가 충격을 받고 자살을 해요. 그래서 공연을 하루 정도 못 하게 된 상황인데, 그때도 남건은 죽음보다는 자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공연을 하자고 해서, 몸 파는 여자를 연습을 시켜서 공연에 투입해요. 그런 이야기가 중간에 나오는데요. 그 정도의 캐릭터가 등장하죠. 다섯 명 정도 나와요.
김경주 : 남건이라는 캐릭터는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이랄지 욕망으로 대변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한 순간의 계기나 사건으로 인해서 정화된다기보다는, 그걸 인지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단계를 갈 수밖에 없는 걸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헤르메스>라는 제목을 지으실 때 생각하셨던 건 무엇이었나요?
김태웅 : 찾아봤더니 ‘헤르메스’가 거짓말쟁이를 보호해주고 상업의 신이라는 의미가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에르메스’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 직접적인 것 같고 의미가 고정이 되는 것 같아서,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게 제목을 <헤르메스>로 바꿨죠.
김경주 : 기획 단계에 있을 때, 이 제목을 듣고 ‘이건 명품 사회로 대변되어지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인가?’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김태웅 : 가장 마지막 대사가 ‘헤르메스’예요. 고급 선글라스를 끼고 ‘‘오, 헤르메스’’ 이러면서 끝나는데요. 어떻게 보면 웃기기도 한데 ‘헤르메스’가 다양하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극은 그냥 선물, 자본 가치로 보면 안 된다
김경주 : <헤르메스>에 대한 리뷰나 기사들을 살펴봤는데 ‘헤르메스’라는 단어로부터 출발되어지는 어원적인 상징이랄까 그 부분의 중의성에 대한 얘기는 사실상 적은 것 같습니다.
김태웅 : <민중의 소리>였나요, 프레스콜 리허설 때 한 기자가 질문을 하면서 ‘헤르메스’의 어원을 찾아보면 ‘경계’라는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작품을 자본과 촛불의 경계, 방과 광장 사이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얘기로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렇습니까, 그런 뜻도 있었나요?’’라고 대답했는데요. 몇몇 분들이 제목에 대해서 쓰신 글이 있더라고요.
김경주 : 아주 심플하게는 ‘헤르메스’가 ‘에르메스’라는 것과 연결되면서 자본의 욕망으로 표현되는데요. 정작 선생님께서 녹아들게 하고 싶었던 욕망의 복합적이고 다의적인 의식망이랄까? 개인적으론 ‘헤르메스’라는 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다양한 상징 또한 작품 안에 잘 녹아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태웅 :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다행이네요.
김경주 : 지금까지 <반성>, <문>, <풍선교향곡>, <불티나> 등의 작품을 해오시면서 <헤르메스>를 그 연장선상에서 혹은 차별성을 두고 싶었던 지점에 대한 연출적 혹은 작가적 측면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태웅 : 앵콜 공연을 시작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 3월 중순경에 공연을 봤어요. ‘이렇게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공연을 해야 하는 가치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소위 말하는 상품 논리나 자본 가치로 접근하면 3월 말까지 상연하고 막을 내려야 하는 게 맞는데, 보면서 정말 많이 갈등을 했어요. 그 갈등은 <헤르메스> 공연의 갈등이기도 하고요. 그 갈등 끝에 ‘연극은 그냥 선물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선물 가치로 바라봐야지, 이걸 자본 가치 입장에서 보면 할 일이 못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지 않고는 지금과 같은 열악한 연극 환경에서는 도저히 이걸 할 동기나 이유가 찾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배우들한테 막걸리 사주면서 “연장 공연 하자, 이건 여러분이 관객들한테 주는 선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자”고 말했어요. 이 작품에서 장님 안마사가 추구하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장님 안마사도 선물로써의 자본을 얘기하죠.
김경주 : 사실 연극이 너무나 어려운 실정이고, 지원금이라는 것도 링거와 비슷해서 맞다 보면….
김태웅 : 지원금을 받아도 그것보다 더 들어가요. 그러니까 애매하게 지원금 받으면 차라리 공연을 안 하는 것만 못한 상황이 돼 버려요. 얼마 전에 했던 <데모크라시>라는 작품이 있어요.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의 이야기인데요. 그 작품을 연출하고 제작한 친구도 돈이 없어서 대출 받아서 공연 제작비를 충당했죠. 사실 연극계가 이렇습니다.
내 혼을 담아낸 선물을 주는 행위
김경주 : 연극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지점에서 선배로서 후배 연극인들 혹은 극장의 환경에 대해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김태웅 : 쓰는 건 그냥 쓰면 되는데, 제작이나 공연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임하는 태도는 ‘이건 정말 내 혼을 담아낸 선물을 주는 행위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좋겠고요. 오히려 저는 역사적인 부분에서 작가들이 얘기를 많이 안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역사와 보편성이 같이 녹아들어가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 줬으면 좋겠고요. 사실 저는 생각이 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지금 제가 작품에서 다루는 생각들은 슬퍼요. 슬픔의 정서예요. 그래서 기쁨의 정서를 사람들한테 줄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냥 울리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렇게 울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프니까 우는 건데, 이 아픔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역사를 만날 수밖에 없잖아요. 역사와 보편성, 그 지점에 작가는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식의 작품들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 대학로에서 잘 되는 공연들은 주로 로맨틱 코미디이거나 코믹물, 이런 것들을 주로 관객들이 많이 찾죠. 그런 것들도 충분히 있을 가치가 있는데, 작가가 문제의식 차원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김경주 : 어떤 화제에 숨겨져 있는 문제의식까지를 끌어낼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성찰이죠.
김태웅 : 어떻게 보면 문화적 허영, 문화적 치장일 수도 있는 연극 행위가 나가서 집회하거나 이런 투쟁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연극이 관객을 만나면서 혁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촛불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나는 왜 여기 있지?’ 이런 죄의식, 책무감이 관객을 만나면서 연극은 혁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요. 후배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작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연극이 참 힘들어서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웃음).
김경주 : 사실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본질적인 얘기잖아요. 예술가들이 시대와 겪는 불화들이 자연스럽게 역사성 속에서 이야기가 해야 하고, 그것들이 관객과 만났을 때 특유의 창조적인 신경질들이 나올 수 있는 거고, 그것들이 시대를 조금씩 변모시키는 혁명이 되는 건데요. 사실은 분명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말초적인 감각들을 자극하는 것들이 대중에게 흡수력이 좋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게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만들었지?
김경주 : 선생님의 작품 대본을 거의 다 읽었고, 작품도 다 봤거든요. 항상 작품을 이야기나 주제로 꽉 채우는 ‘실’도 있지만 어딘가에 밀려오는 ‘허’도 함께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슬픔의 정서랄까요, 저는 그걸 일종의 허무함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김태웅 : 그게 제 문제인 것 같아요. 그걸 벗어나고 싶어서 코미디를 쓰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는데요. 코미디가 쓰기 어려워요. 자칫 잘못하면 ‘개그하냐’는 식으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요(웃음). 그래서 결국은 제 작품은 약간 희비극이 되는 것 같아요. 두 가지 욕망이 만나서. 그런 게 있죠. <이>라는 작품도 그런 부분이 있고. 사실은 제가 더 많이 생각하는 건 광대들의 세계, 생을 긍정하고 삶의 희열을 주체하지 못해서 웃고 떠드는 식의, 그걸 더 좋아해요 사실은. 그걸 보여주려면 대비가 되어야 되니까 허무와 싸워야 하잖아요. 그런 세계가 서로 상조하면서 생을 긍정하고, 그것 때문에 유희하고 노는 광대처럼 사는 세계가 해보고 싶었던 얘기고요. 그리고 제가 역사적인 소재나 비극으로 가면서 비판적인 부분을 얘기하는 건, 그런 기쁨의 희열과 긍정의 세계를 못하게 하는 어떤 부분에 대한 약간의 저항인 것 같아요. 그것도 결국은 광대의 입장인 거죠. 광대의 공격성이죠. 사실은 기쁘게 살고 싶은데 못하게 만드는 구조나 문제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만들었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또 역사와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역사적으로 실천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제가 하는 작품 활동 범위 내에서 담아내고 싶었죠.
김경주 : 학생들과 수업을 하거나 만나는 과정과 무대 현장이 결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태웅 : 다른데,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노는 세계는 비슷해요. 아이들도 그걸 알고요. 같이 술 마시면 ‘저 선생은 저 세계에 빠져있고, 저 세계를 보여주려고 하고, 저 세계를 전해주려고 하는구나’ 이런 느낌은 비슷하게 받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보고 싶고 그리워하고 늘 만나면 좋죠. 연극 만드는 과정, 연습하고 공연하면 너무 좋고 즐거워요. 그게 삶의 여건이나 환경이라는 현실의 부분하고 만나지면서 저를 힘들게 하는 건데요. 그걸 빼고 작업할 때나 수업할 때는 너무 즐겁고 재밌어요, 사실. 제가 좀 모자란 게 탈이죠(웃음).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똥되기 욕망은 자본되기 욕망의 뒷면이다. 자본이 되기 위해 똥이 된다. 자본의 추구는 온갖 추악한 행태를 요구한다. 수탈, 겁박, 인간의 사물화, 상품화, 생명경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자본화. 그것들이 더럽다는 것을 안다. 아직 자본이 아닌 것이다. 똥세례를 받으면서 진정한, 냉혹한 자본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똥, 거짓, 예술, 명품으로 자기를 치장하면서. 그러나 거듭나지도 못하면서. 그것이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위와 아래, 미와 추, 선과 악, 성스러움과 추악함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길항하는 것인가? <헤르메스>는 이분법으로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와 ‘배설’과 같은 극과 극에 위치해 있는 소재를 통해 역으로 추악함을 성스러움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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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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