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돌리면 다른 홍콩이 보인다
홍콩에 가면 세계 도시의 면모에 감탄하다가도,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풍경에 깜짝 놀라곤 한다. 소설가 백영옥이 홍콩의 트렌드를 이끄는 쇼핑 거리부터, 늘 그 자리에 있던 오래된 카페까지, 새로운 시선으로 홍콩을 바라보고 왔다.
글ㆍ사진 론리플래닛매거진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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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이 미니바를 털어도 잡혀가지 않는 어느 호텔에서

 

 

홍콩

(좌)방마다 놓인 루트 백은 과자를 담은 웰컴 선물이다.

(우)호텔의 시그너처 디자인인 달걀 모양의 설치물에 기대어 선 캐롤라인 에글리.

모든 호텔은 디자인이 다르지만 이 설치물만은 동일하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미니바’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음료수가 가득히 들어 있네”라고 좋아하면 안 된다(맞다, 이거 ‘어머니와 고등어’ 패러디다). 무심코 꺼내 마신 음료수 몇 병이 세금까지 붙어 체크아웃 때 ‘계산서’로 청구되는 기분은 여행자라면 느껴봤을 뒷맛 씁쓸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한 선배는 호텔에 오면 늘 먼저 미니바를 비우고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와 맥주를 사서 미니바 냉장고에 자신의 음료수를 가득 채워 넣는다고 고백했다. 물론 이마저도 몇몇 영악한 호텔에선 통하지 않지만 말이다(음료수를 빼는 순간, 냉장고 안의 센서가 작동해 비용을 체크하는 호텔이 등장했다)

 

오볼로(Ovolo) 호텔의 매니저 캐롤라인 에글리(Caroline Egli)가 말한다. “들어서는 순간 더 이상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우리 호텔의 가장 큰 특징이죠.” 그녀의 말처럼 이 호텔에 온 뒤로 돈 쓸 일은 없다. 미니바의 모든 음료가 무료(매일 채워준다). 홍콩에서 가장 빠르다는 와이파이도 무료다. 24시간 열려 있는 라운지의 모든 음료(각종 티, 커피, 콜라, 사이다, 생수)와 맥주, 간단한 스낵(쿠키, 브라우니, 마시멜로)도 무료인데, 6시에서 8시까지 진행하는 ‘해피 아워’에는 보드카와 위스키, 진, 와인까지 공짜다. 친구 여럿과 여행 중인 이에게 특히 희소식인 건 추가 비용 없이 ‘엑스트라침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돈에 있어서 오볼로는 ‘안전 호텔’인 셈. 또 호텔에선 ‘키 카드’가 있어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수 있는데, 심지어 자신이 묵는 층의 버튼만 누를 수 있는 것도 특유의 안전 시스템이다. 다른 층에 묵는 친구의 방에 가려다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그럴 경우 프런트에 요청할 것.

 

호텔의 디자인은 주변 환경을 반영한다. 호텔이 자리한 에버딘(Aberdeen)은 삼판선(三板船)이 오가는 홍콩의 어촌 지역. 호텔 엘리베이터의 반짝이는 조명은 푸른 바닷빛이고, 로비에는 홍콩의 생선 가게에서 쉽게 볼수 있는 등을 모던한 분위기로 재해석해 달았다. 호텔에는 홍콩에서 유일하다고 자부하는 벙커 베드(2층 침대)방이 있는데, 이 역시 선박의 객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그래서 2층의 침대가 아주 좁고, 아주 높다). ‘서비스 레지던스’ 사업으로 숙박업을 시작한 오볼로 호텔은 센트럴(Central)에 있는 1호점을 시작으로 홍콩에 호텔 4곳과 서비스 아파트먼트 2곳을 운영하고 있다. 호주에도 지점 1곳을 열었으며 향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 호텔은 각 지점이 속한 지역의 특성에 맞춰 인테리어와 콘셉트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딜럭스 룸 기준 900홍콩달러(약 12만 원) 정도기 때문에 가격 대비 효율성도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대식가’ 와 ‘주당’에겐 이런 희소식이 없다. 호텔 방문을 여는 순간 웰컴 선물 봉투 안에 가득 담긴 쿠키와 초코바가 무엇보다 달콤하게 느껴질 테니까.

 

추가 정보


-펜타호텔 홍콩(Pentahotel Hong Kong)은 주룽(Kowloon)의 카이탁(Kai Tak) 지역에 자리한 부티크 호텔이다. 조리 공간이 있는 라운지, 게임 공간 2곳, 뮤직 스테이션, 피자 바, 야외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 미팅 룸 등을 갖췄으며 공간마다 뛰어난 감각으로 스타일리시하게 꾸몄다. (788홍콩달러부터 pentahotels.com/hotels/hkgph-kowloon)

 

 

정작 즐거운건 아니가 아닌 어른일지도

 

 

홍콩

(위)디즈니 캐릭터 상점의 귀여운 간판

(아래)골든 미키쇼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마이타 혼스와 캐릭터들


일본도, 미국도 아닌 오직 홍콩의 디즈니랜드에만 있는게 있다. 바로 홍콩 디즈니랜드 출범과 함께 시작한 ‘골든미키 쇼(Golden Mickey Show)’다. 하루 4~5회 진행하는 이 쇼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을 땐, 이미 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좌석 1,000여 개가 순식간에 찰 만큼 인기 있는 쇼는 오직 홍콩에서만 볼 수 있다. <노트르담의 꼽추>의 주인공 콰지모도의 노래로 시작해 타잔, 미녀와 야수, 미키와 미니마우스, 구피 등 디즈니의 16개 캐릭터가 나와 아름다운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골든 미키 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못지않게 꽤나 박력 있다. 타잔 역할을 맡은 배우가 〈인어공주〉장면에선 불가사리가 되고, 〈미녀와 야수〉에선 왕자로 분하는 걸 알아채는 깨알 같은 재미도 있다. ‘비비(Bebe)’ 라는 이름으로 쇼의 MC를 맡아 맹활약 중인 마이타 폰스(Maita Ponce)는 공연 전체를 이끌뿐 아니라, 피날레로〈피노키오〉의 주제가 ‘When You Wish upon a Star’를 부르며 대미를 장식하는 골든 미키 쇼의 히로인이다.

 

 

“전 필리핀 사람이고, 전엔 연극과 영화배우로 활동했어요. 골든 미키 쇼에 합류한 건 2008년부터고요.” 활짝 웃는 얼굴이 무대에서보다 훨씬 아름다운 폰스가 말한다. “가장 힘들었던 건 언어예요. 광둥어는 성조(음의 높낮이)가 9성이라서 연출자에게 이래저래 지적을 많이 받았거든요. 비비는 춤추고, 노래하고, 사회 보고, 모든역할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긴장하지 않으면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지요.” 흥미로운 건 홍콩 디즈니랜드의 ‘쇼’와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대부분의 단원이 필리핀 출신이란 점이다.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매년 필리핀으로 날아가 홍콩 디즈니랜드를 빛낼 배우를 직접 스카우트하는데, 이유는 필리핀 사람이 음악과 예술에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면 서울의 호텔 로비에서, 발리의 리조트에서, 미국의 레스토랑 바에서도 신나게 노래하던 ‘밴드’의 많은 사람이 필리핀 출신이긴 했다.


처음 디즈니랜드에 갔을 땐, 이른 봄의 우중충한 홍콩 날씨 때문에 시큰둥했다. 페더 빌딩(Pedder Building)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갤러리스트조차 홍콩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날씨란 얘길 했으니 말을 말자. 게다가 ‘나이 마흔에 생뚱맞게 무슨 디즈니랜드?’라며 냉소를 머금기도 했다. 하지만 디즈니랜드의 정문 앞에 다다르는 순간! 〈알라딘〉과 〈미녀와 야수〉의 음악이 울리는 그곳에서 나는 인도 백설공주와 중국 신데렐라, 홍콩 엘사를 만났고, 머리에 덤보 탈을 뒤집어쓴 배불뚝이 중년 남자와 마주쳤다. 말하자면, ‘디즈니랜드적인 삶’이란 그런 것 이었다.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릴 법한 서른여덟 살의 여자가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쓰고 깡총거리고, 퇴직 직전 마흔아홉 살의 남자가 구피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실연당한 스물두 살의 여자가 인어공주의 노래를 들으며 감격에 차 눈물을 흘리는 곳 말이다.


밤 8시. 디즈니 성 앞에서 열리는 불꽃 축제를 보다가 나는 디즈니 만화를 보던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다섯 살배기 딸의 꿈이 ‘공주님’이라는 말에 “남자에게 의존하는 삶은 절대로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던 선배 남편의 얘기가 문득 떠올라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일곱 살 즈음 내 꿈 역시 전 세계를 누비며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 아니라, 그저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공주였으니까. 물고기가 사람이 되고(인어공주), 나무 인형이 인간이 되며(피노키오), 재투성이 아가씨가 공주가 되는 마법(신데렐라)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지만, 적어도 맘이 힘든 어느 날엔 디즈니랜드에 들어가, 어린아이의 고함 소리에 맞춰 “왕자님! 날 구해줘요!”라고 외쳐도 좋을 것 같았다.

 

 

 

추가 정보

 

홍콩디즈니랜드 1일 티켓 450홍콩 달러

 

- 홍콩 디즈니랜드는 홍콩국제공항과 같은 란터우 섬에 있다. 가족 여행객이라면 더 좋고, 아니더라도 홍콩 디즈니랜드호텔(Hong Kong Disneyland Hotel)에서 하루 묵으며 디즈니랜드를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호텔 내 인챈티드 가든 레스토랑(Enchanted Garden Restaurant)에서는 홀을 돌아다니는 캐릭터와 놀며 뷔페를 즐길 수도 있다. 객실요금 2,300홍콩달러부터, 디너 뷔페 488홍콩달러부터.

 

 

맥주는 손맛이라던가

 


홍콩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직접 들여온 전 세계 크라프트 맥주 진열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크리스토퍼 웡

집에서도 누구나 맥주를 만들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를 판매한다

골든 미키 쇼의 히로인 마이타 폰스

디즈니랜드 안의 얌차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딤섬과 미키마우스 모양의 망고 푸딩 디저트

 

 

국내시장을 선점하던 ‘카스’나 ‘하이트’가 수입 맥주에 위협받고 있다.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영국 기자의 기사가 이슈화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삿포로’와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같은 맥주를 넘어 보스턴에서 온 ‘새뮤얼 애덤스’나 뉴욕에서 온 ‘브루클린 브라운 에일’처럼 지역의 개인 양조장에서 만든 크라프트 맥주에 열광하고 있다. 우리에겐 영화 〈중경삼림〉의 왕페이가 량차오웨이 (양조위)의 집을 엿보던 장면으로 각인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그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소호(Soho) 근처의 HK 브루크라프트(HK Brewcraft)는 홈 브루잉(HomeBrewing, 집에서 맥주를 양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모두 양조사 자격증을 갖춘 젊은 사장 7명이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1명인 크리스토퍼 웡(Christopher Wong)을 만났다. “저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에서 회계사로 일했어요. 그러다가 샌프란시스코 크라프트 맥주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인생의 진로가 바뀐셈이죠.” 그의 인생을 바꾼 맥주의 이름은 ‘앵커 스팀 비어(Anchor Steam Beer)’.

 

1년 전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고향인 홍콩의 특징을 담은 지역 맥주를 만들기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주류세가 없는 홍콩에선 가격이 저렴한 와인과 맥주를 마음껏 살 수 있는데, HK 브루크라프트에선 해외 현지에서 직접 바잉(buying)해 온 다양한 크라프트맥주를 구입할 수 있다. 웡이 추천하는 맥주는 민타임 야키마 레드(Meantime Yakima Red)와 투아타라 더블(Tuatara Double). 민타임 야키마 레드는 캐러멜과 아몬드 향을 가미한 시트러스 계열의 맥주로, 술에 약한 여성이 선호할 만한 산뜻한 런던 맥주. 구아바 향이 은은한 뉴질랜드 맥주 투아타라 더블은 묵직하고 남성적인 맛을 자랑한다. HK 브루크라프트에서는 집에서 직접 양조할 때 필요한 모든 재료와 도구를 구입할 수도 있다. 약 3시간동안 진행하는 홈 브루잉 클래스 참가비는 1인당 680홍콩달러. 4명이 모이면 600홍콩달러로 할인해준다. 재료를 포함한 도구는 380홍콩달러다. 강의를 굳이 듣지 않고 제공하는 설명서만으로 맛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성공률은 70~80퍼센트라고. 모험심 강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는 타파스 맛 보러 홍콩으로 간다

 

홍콩

(좌)십 스트리트 길가에 마련한 야외 좌석에서 셰프 네이트 그린(왼쪽)과 직원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타파스 메뉴는 한입 크기부터 배를 채울 양까지 다양하다.

 

2년 전, 조용하던 완차이(Wanchai)의 십 스트리트(ShipSt.)에 한 영국인 셰프가 타파스 바를 연다. ‘22십스 (22SHIPS)’의 헤드 셰프 네이트 그린(Nate Green)은 런던에서 프렌치 요리를 전공한 요리사로 홍콩에 온 지 이제 막 1주일이 지났다고 했다. “영국은 요리사끼리 경쟁이 아주 심해요. 그렇기 때문에 가깝게 지낼 시간이 늘 부족했죠.” 자신의 팔뚝에 새긴 요란한 문신을 보여주며 투덜대듯 이야기하던 그는 아무래도 홍콩의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듯하다. 이곳의 실제 오너인 제이슨 애서턴(Jason Atherton)은 미슐랭의 별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든 램지(GordonRamsay) 밑에서 일했던 셰프로, 세계 이곳저곳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스페인의 스타일리시한 타파스 바를 고스란히 홍콩의 거리로 옮겨온 듯한 22십스는 애서턴의 두 번째 레스토랑이다. 좁은 원형 테이블, 다리가 긴 딱딱한 의자, 가게 바깥쪽에 앉아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마련한 테이블까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타파스 가게의 외관을 빌려왔지만 내부는 블랙 앤드 화이트로 모던하고 심플하게 꾸몄다. 대개 ‘타파스’ 하면 작은 접시에 나오는 반찬 같은 술안주를 떠올릴 터. 22 십스는 스페인식 타파스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홍콩의 분위기에 맞게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사이즈로 부풀렸다. 앙증맞은 미니버거와 잘 숙성시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돼지고기 바비큐는 이곳의 베스트 메뉴다.

 

 

추가정보

 

-22 십스 타파스 약 60~200홍콩달러, 22ships.hk

 

-22 십스와 같은 십 스트리트에 자리한 햄 앤드 셰리(Ham& Sherry)는 제이슨 애서턴이 운영하는 또 다른 레스토랑이다. 식사를 주로 하는 22 십스와 달리 와인과 하몽, 셰리주를 즐길 수 있다. 안과 밖을 꾸민 푸른색 타일 덕에 거리 자체가 돋보인다. 와인 1병 230홍콩달러부터 hamandsherry.hk


 

오래된 빌딩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홍콩

(위부터 시계방향으로)마이클 차우의 작품을 전시 중인 펄램 갤러리즈 내부
리만 머핀 갤러리, 펄램 갤러리즈 입구

 

세계 모든 브랜드가 모여 있는 듯한 화려하고 번잡한 지역 센트럴. 이곳에 위치한 ‘페더 빌딩’은 홍콩에서도 유서 깊고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이 낡은 건물은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를 비롯해 ‘한 아트 갤러리(Han Art Gallery)’ ‘펄램 갤러리즈(PearlLam Galleries)’ ‘리만 머핀(Lehmann Maupin)’ 같은 여러 갤러리가 속속 입주해 ‘갤러리 빌딩’이라는 새로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단, 미국 의류 브랜드 애버크롬비 앤드 피치 매장의 입구와 헷갈리기 쉬우니 잘 보고 들어갈 것. 그중 리만 머핀 갤러리는 뉴욕 소호와 첼시에 본점이 있으며, 지난해 3월에 홍콩 쇼룸을 오픈했다. 한국작가 서도호와 이불이 소속돼 있어 더욱 흥미로운 곳. 페더 빌딩의 낡은 기둥을 그대로 살려 과거의 시간을 갤러리 안에 적극 끌어들인 공간에는 개관전으로 선보인 이불의 전시를 시작으로 소속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의 설치 미술가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가 전시 중이다. 중국 광저우의 미국대사관에서 구입했다는 스타인캠프의 작품은 떨어지는 꽃 잎사귀를 표현한 미디어 아트로, 스크린에 투사되는 꽃잎과 가지가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해 독특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광화문에 있는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의 오너 마이클 차우(Michael Chow)의 개인전 같은 재미 있는 전시도 있다. 유명 레스토랑 체인의 오너인 그는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으며, 한때 인테리어 디자이너였고, 아트컬렉터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첫 개인전을 이곳 페더빌딩의 펄램 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장갑과 달걀, 금박,진짜 돈이 붙어 있는 그의 그림은 양손에 불을 든 셰프가 각각의 재료를 섞어 하나의 그릇 안에 담아놓은 듯한 콜라주 스타일이다.

 

지난해부터 세계적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ArtBasel)’이 홍콩에서 열리고 있다. 홍콩은 예술품에 대한 세금이 없고, 전 세계 주요 국가를 6시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최근 예술 거점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 통 큰 중국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라는 점 역시 홍콩이 매혹적인 이유일 테다. 크리스티(Christie’s)와 소더비(Sothby’s) 같은 대형 경매회사 역시 홍콩에 들어와 있다.

 

 

어느 차찬탱에서 마주한 스타킹의 재발견

 

 

홍콩

분주한 손길로 라이차를 우려내고 있는 캄풍 차찬탱의 요리사.

그가 들고 있는 망을 자세히 보면 스타킹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홍콩 사람들은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아침이면 길게 줄을 늘어선 얌차(飮茶) 가게의 풍경은 ‘홍콩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 바로 이 ‘보통의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완차이의 캄풍 차찬탱(金鳳茶餐廳)에서 진짜 홍콩을 체험할 수 있다. 아침 7시면 문을 여는 이곳은 홍콩식 분식점이라 할 수 있는 차찬탱. 마주 앉으면 무릎이 맞닿을 만큼 좁은 테이블에 합석은 기본이고, 앞뒤 가릴 것 없이 좋은 좌석은 먼저 온 사람 차지다. 게다가 잘되는 가게엔 언제나 상존한다는 ‘무서운 점원’도 있는데,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손님에게 이쪽저쪽 자리를 지시하는 목청 좋은 ‘홍콩 아줌마’를 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혼자 먹는다고 외로울 새도 없다. 언뜻 일행 같아 보이는 이들도 알고 보면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니까. 차찬탱에선 보통 라이차(?茶)나 홍콩식 프렌치 토스트, 파인애플 번(굵직한 버터를 끼운 곰보빵) 그리고 간단한 면류를 맛볼 수 있다. 홍콩의 라이차는 밀크티와 비슷하지만 우유 대신 연유를 넣는다. 게다가 누가 언제부터 고안했는지 몰라도 차를 거를 때 촘촘한 여성용 스타킹을 사용한다는 게 특징. ‘라이차 경연 대회’가 있을 정도로 가게마다 자부심을 갖고 만드는 라이차는 대표메뉴인 파인애플 번이나 프렌치 토스트와 잘 어울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파인애플 번과 라이차 세트는 26홍콩달러로, 한 끼를 떼우기에 충분하다. 빵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오믈렛이나 오향장육 비슷한 고기를 얹은 몇 가지 국수를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추가 정보


-맵고 화끈한 음식이 당긴다면 히키(喜記)로 가자. 기름에 튀겨낸 다진 마늘을 수북하게 올린 커다란 게요리 비펑탕(避風塘)을 전문으로 하며, 다양한 조개 요리나 채소볶음도 주문할 수 있다. 2인 450홍콩달러 Shop H, G/F 392 Jaffe road, Causeway Bay.

 

 

영국의 풍요로운 시절에서 안식을 찾는 사람들

 

홍콩

바(Bar) 로커빌리

 

〈오만과 편견〉〈이성과 감성〉〈설득〉같은 소설을 쓴 제인 오스틴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소설가다. 고백하자면 나는 제인 오스틴의 광팬이다. 고난 끝에 사랑은 이루어지고, 실패는 성공을 낳는 어머니이며 나쁜 사람은 반드시 단죄받는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은 늘 나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그건 열린 결말이나,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현대 소설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란콰이퐁(Lan Kwai Fong)의 윈덤 스트리트(Wyndham St.)에 숨듯 자리한 스톡턴(Stockton)의 매니저 라리사 혼(Larisa Hon) 역시 빅토리아 시대를 이야기한다. “스톡턴의 모든 것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모티프로 하고 있어요. 찾는 이들이 걱정 근심 없이 풍요롭던 이 시대를 떠올리며 편안히 쉬었다 갔으면 하는 거죠.” 스톡턴엔 창문이 없다. 시간에 구애하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사방이 어두운 이곳에서 유일하게 환한 공간은 칵테일 바. 몸에 달라붙는 하늘색 슈트를 입은 믹솔로지스트는 여기에 드나드는 다양한 국적의 손님을 위해 맵거나, 달거나, 신 칵테일을 제조하고 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란콰이퐁에서 보기 드문 넓은 공간은 동굴이나 미로처럼 이어진다. 가드(guard)가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벽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비밀 공간’에선 시가를 피우거나 술을 키핑해 놓고 마실 수 있는 개인보관함이 구비돼 있다.

 

공간을 채운 빈티지 가구와 가죽 의자는 모두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주인이 직접 공수해 온 것. 19세기와 20세기 초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꾸민 것도 특징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기차역을 재현한 한구석에선 기차의 식당칸에 탄 것처럼 ‘피시 앤드 칩스’나 ‘초리소를 넣은 메추리알 튀김’ 같은 간단한 식사와 주류를 즐길 수 있다. 여기서 퀴즈 하나. 가게의 이름인 스톡턴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묻자 라리사 혼은 ‘소설가’라는 힌트만 주곤 맞춰보라고 했다. 아직 나도 답을 찾지 못했다.

 

 

홍콩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네온사인이 밤의 흥취를 더하는 란콰이퐁 거리

스톡턴에서는 이곳 믹솔로지스트가 개발한 다양한 칵테일을 선보인다

스톡턴의 매니저 라리사 혼

 

 


추가 정보


-스톡턴 stockton.com.hk
   

-스톡턴이 편안함을 추구하는 바라면, 로커빌리(Rockabilly)는 이름처럼 활기를 추구하는 진정한 란콰이퐁 스타일의 바다. 입구는 거리를 향해 열려 있고, 앉거나 서서 즐길 수 있는 높은 좌석이 있다. 슬러시 칵테일과 직접 만든 케첩(정말 맛있다)이 일품인 곳. 슬러시 칵테일 50홍콩달러부터 rockabilly.com.hk


 

쇼퍼홀릭이 스타의 거리 뒷골목으로 향하는 까닭

 

 

홍콩

(좌)WDSG 아트 앤드 크라프트 디파트먼트의 오너인 켄 수엔

 팔을 기대고 있는 옷걸이 역시 고객이 원하면 판매한다.

(우) 세인트 프란시스 거리 정경.

 

 

랜드마크(홍콩의 거대 쇼핑몰)에 계신 아르마니여, 아버지의 구두가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프라다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쇼핑이 파리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센트럴(홍콩의 거대 쇼핑몰)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저희에게 남편의 비자 카드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수수료를 떼어간 자들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바닥난 은행 잔고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미쓰코시 백화점에 빠지지 말게 하시며, 윙 온(wing on, 홍콩 최대 여행사)에서 구하소서. 샤넬과 고티에와 베르사체, D&G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멕스~

? 데이비드 에번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라이 시(Lai See) 칼럼에서

 

 

내 소설 〈스타일〉의 프롤로그는 홍콩에서 가장 유력한 영자 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한 칼럼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시 홍콩하면 떠오르는 건 뭐니뭐니해도 쇼핑. 퍼시픽 플레이스, 랜드마크, 하버 시티,IFC몰 같은 대형 쇼핑몰에 ‘그랜드 바겐’이란 말이 붙으면 전 세계 쇼핑족은 홍콩으로 속속 모여들어 세일 가격의 물건을 낚아챈다. 이런 대형 쇼핑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완차이의 풍경은 꽤나 흥미로울 듯하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과 필립 림(Phillip Lim), 모노클 숍(Monocle Shop) 등 최신 부티크와 디자인 숍이 뒤섞여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황금비율로 섞어놓은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완차이의 숨은 보석 같은 부티크 거리 세인트 프란시스 스트리트(St. Francis St.)에 자리 잡은 의류, 빈티지 가구 숍 ‘WDSG 아트 앤드 크라프트 디파트먼트(WDSG Art & Craft Department)’. 숍의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켄 수엔(Ken Suen)은 완차이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세세히 들려준다. “스타스 스트리트라고 부르는 이곳은 원래 조용한 주택가였어요. 최근 2~3년 사이에 디자이너들이 개인 부티크를 속속 열기 시작했죠.”


이 일대의 스타 스트리트(Star St.), 문 스트리트(Moon St.), 선 스트리트(Sun St.) 그리고 세인트 프란시스 스트리트를 통칭해 ‘스타스 스트리트(Stars Street)’라고 부른다. 1명의 소유주가 무려 80퍼센트 이상의 토지 지분을 가진 ‘문 스트리트’에 가장 먼저 독특한 상점이 입점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시작으로 의류 부티크는 물론 하몽을 파는 와인 숍, 빈티지 숍, 타파스 바, 영국풍 세탁소 등이 들어왔고, ‘자라’나 ‘H&M’ 같은 대형 브랜드에 질린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 어쩐지 초창기 가로수길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흥미로운 건 거리에 남성복 전문 매장이 꽤 많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 유일하다는 ‘더 멘스 숍 바이 클럽 모나코(The Men’s Shop by Club Monaco)’도 이곳 스타스 스트리트에 있다.

 

WDSG 아트 앤드 크라프트 디파트먼트에도 옷뿐 아니라 우산이나 선글라스 등 다양한 남성용 소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배트맨을 테마로 꾸민 WDSG의 어두컴컴한 실내는 파이프로 만든 행어, 독특한 조명과 옷걸이, 빈티지가죽 의자 등 감각이 뛰어난 소품으로 꾸몄다. 독특하게도 가게 안의 모든 물건은 손님이 원하면 전부 판매한다. “저희 직원만 빼곤 뭐든지 구입하실 수 있어요.” 수엔이 웃으며 말한다. 자세히 보면 옷이 진열된 옷걸이나 행어, 손님이 D앉을 수 있는 의자 등에도 모두 가격표가 붙어 있다.

 

 

 

추가 정보


-WDSG 아트 앤드 크라프트 디파트먼트 wdsg.com.hk
 

-더 멘스 숍 바이 클럽 모나코는 세계에서 유일한 클럽 모나코의 남성 부티크다.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로 꾸민 실내는 감각이 뛰어난 옷과 소품으로 채웠다. 클럽모나코의 제품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수입 부티크 제품도 구비하고 있다. 그루밍 족이라면 지갑을 다 털려버릴 만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4B St. Francis yard.

 

 

글 백영옥

사진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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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4월 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일정이나 비행기 탑승 시간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혼자만 현지에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오랜 외유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터라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들뜬 사람을 혼자 배웅하는 기분은 썩 좋을 리 없다. 혹시 현지인에게 박대라도 받는다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다 찢어질 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마음이 가득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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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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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

2014.09.30

홍콩은 늘 영화와 연관이 되어서 생각이 나는데 이런 모던한 느낌도 존재하는군요.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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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

2014.07.24

요즘 동남아 여러나라들이 시끄러워서 그런가 지인들이 가까운 홍콩으로 많이 다녀오더라구요.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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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2014.07.24

홍콩, 하면 예전에 본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그리움이 더해집니다.
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일 것 같아요. 언젠가 꼭, 가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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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을 쓰는 일이 고독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명랑한 노동이라 믿고 싶은, 예술가라기보다 직업인에 가까운, 오전 5시에서 오전 11시 50분까지의 사람. 네 권의 장편소설, 두 권의 소설집, 다섯 권의 에세이를 써내는 동안 때때로 야근. 자주 길을 잃고, 지하철 출구를 대부분 찾지 못하며, 버스를 잘못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는 일이 잦은, 외향적으로 보이는 내향성인, 아주 보통의 사람. 2006년 단편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08년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다이어트의 여왕』, 『애인의 애인에게』, 소설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다른 남자』,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를 펴냈다.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는 작가 백영옥이 연간 500권이 넘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 수집한 인생의 문장들 중 정수를 담은 에세이다. 매일매일 일상 곳곳에서 밑줄을 수집해, 아픔을 토로하는 사람에게 약 대신 처방할 수 있는 문장을 쓴다. 상처의 시간을 겪은 사람들에게 잠이 오지 않을 때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과 같은 문장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 작가의 오랜 기쁨이다. 조선일보 ‘그 작품 그 도시’, 경향신문 ‘백영옥이 만난 색다른 아저씨’, 중앙SUNDAY S매거진 ‘심야극장’, 매일경제 ‘백영옥의 패스포트’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한겨레21, 보그, 에스콰이어 등에도 책과 영화에 대한 폭넓은 글을 발표하고 있으며, 조선일보에 ‘말과 글’을 연재 중이다. 교보문고 ‘백영옥의 낭독’과 MBC 표준 FM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 ‘라디오 북클럽 백영옥입니다’의 DJ로 활동했다. 현재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에서 골목을 여행하며 동네 책방을 소개하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