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예스24 대학생 리포터들이 ‘10년 전 베스트셀러’라는 제목으로
2004년 큰 인기를 모았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그들은 도대체 왜?
1985년 에티오피아는 극심한 궁핍과 혼란으로 국제 사회에 원조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경제는 무너졌고, 수년에 걸친 가뭄과 내전으로 식량 수급도 악화되었다. 기아와 질병으로 국민들이 수천 명씩 죽어나갔다. 도움이 절실한 에티오피아에 멕시코가 5000달러 상당의 구호자금을 보냈다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구호자금 전달 방향은 정반대였다. 에티오피아 적십자 회원들이 같은 해에 발생한 멕시코시티의 지진 피해자들에게 5000달러를 보낸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900여명의 신도들을 모아놓고 집단 자살을 명령한 가이아나 존스타운 집단 자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은 별다른 저항 없이 질서정연하게 앞으로 나와 독약을 마셨다고 한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일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지만 우리는 사건의 이유를 따지기 전에 질문의 본질을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로 옮겨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그 사람들 역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어.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했을 거야.” 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사람들과 나 자신을 분리시키고 그들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무책임한 태도다.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사람은 얼마나 상황과 맥락에 좌지우지되는 존재인가. 따지고 보면 사람은 얼마나 이리저리 변하는 존재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이 『설득의 심리학』 속에 드러나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4년 이 책은 한국을 강타하며 전국에 심리학 열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그 열풍 이후 과연 우리는 얼만큼 사람들의 심리와 설득의 상황들을 이해하게 되었는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이 텍스트를 만나야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득의 기제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한다. 사회가 발달하고 고도화될수록 자신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사용하는 의사소통의 기법인 설득도 발전하고 있다. 설득은 단순히 언어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 심리와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내 뜻대로 설득시키기 위해선 그 사람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설득 행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도 심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설득의 심리학』 속에는 다양한 설득의 기제들을 제시되고 각 기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 나타나고 있다.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의 프로세스를 무기에 비유한다. ‘누르면, 작동한다’ 의 단순한 프로세스가 설득의 기본 구조라는 것이다. ‘작동한다’라는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누르다’라는 행위인데, 여기에는 상대방이 나에게 베풀면 나도 베푼다는 상호성의 원칙, 처음 했던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일관성의 원칙, 다수의 행동을 따르려는 사회적 증거의 원칙, 명령에 따르려는 권위의 원칙 등 다양한 심리학적 원칙들이 숨어있다. 설득 행위는 이처럼 다양한 심리학적 원칙들의 결합과 강화로 이루어진다.
한 가지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가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대다수의 방송제작자들은 녹음된 웃음소리를 프로그램에 삽입한다. 시청자들은 그 웃음소리가 녹음된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웃는다.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웃음을 들으면 우리는 왜 더 많이 웃게 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특정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는지 살펴본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적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보다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수의 행동을 따르려는 인간의 성향은 실수를 만들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득, 두 얼굴의 심리학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취약점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사회적 증거에 맹목적이고 반사적으로 반응을 보이면 부분적인 증거나 거짓 증거에도 쉽게 속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설득이 가진 얼굴의 이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다양한 설득의 기제들을 남을 설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일까? 설득은 일종의 싸움이다. 담론의 싸움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된다. 이 싸움에서 우리 자신이 먼저 무장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공격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패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너무나도 많은 담론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현대인들이 자신의 입장정립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너무 복잡해서, 너무 바빠서, 혹은 현실에 염증을 느껴서 우리들은 점차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나의 입장을 정립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기계적인 웃음소리에 따라 웃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할 때 우리는 ‘다원적 무지’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기 쉬운데, 바로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처럼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다원적 무지는 소수의 이익층이 의도하는 대로 여론을 형성하게끔 만들어주는 중대한 원인이 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권력층의 독재 정치 혹은 지배이데올로기의 공고화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일어나기 쉽다.
뿌리 깊은 나무가 비바람에 쉽게 뽑히지 않듯, 우리 역시도 각자의 마음 속에 심지 굳은 신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 신념이 삶의 가치관이고 선택과 결정의 기준이 된다. 다른 사람의 부당한 ‘설득’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내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확고한 입장 정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관성의 원칙’에는 ‘한 발 들이밀기(put in the door)’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작은 요구에서 시작해 결국 그와 관련한 더 큰 승낙을 얻어내는 전략으로, 예전 판촉사원들이 집 앞에 찾아와 ‘물건을 사지 않아도 좋으니 안에 들어가서 설명만 하게 해주세요’ 식의 설득 전략을 펼친 것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정립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처음의 사소한 행동이 이후의 중대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삶에서 작은 것 하나에 나태해지거나 스스로 관용해지면 큰 나태와 범죄에도 관용해질 수 밖에 없다.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렇다. ‘가까운 사이니까’, ‘편리하니까’, ‘발전에 필요하니까’ 와 같은 현실 논리로 하나하나 허용하다 보면 나중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불러온다. 한 번 눈감아주는 행태가 얼마나 큰 참사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바로 얼마 전 뼈저리게 겪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를 뒤집어 생각해본다면 우리 삶의 의미와 스스로의 자주권을 챙길 수 있는 기회는 나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은 것에서부터 흔들리지 않으면 큰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확신과 입장을 정립하면 우리는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남이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입장 정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다. 입장정립이 적극적이고, 공개적이며, 수고스럽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핵심은 수고스러워야 한다는 것에 있다. 내 신념이 치열한 고민과 갈등 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쉽게 얻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신념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삶의 진정한 다짐은 내가 열심히 고생하고 치열하게 고민할 때에만 얻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의 심지가 곧게 선 사람만이 개인과 사회의 모든 결정의 순간들에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건전한 설득의 싸움,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나도 많고, 빨라진 현대사회에서 정보에 피로감을 느낀 현대인들은 종종 생각하기를 포기하곤 하지만 이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결국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은 더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켜내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설득에 방어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수사학은 그 축을 점차 ‘설득’에서 ‘의미 공유’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상대방을 내 의견으로 포섭하기 보다는 담론의 장에서 의미를 공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설득이라는 도구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남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혹은 무비판적으로 휩쓸리기 보다는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정립한 후에 공개적인 담론의 장에 나오는 것, 그리고 서로 건전한 설득의 싸움을 하는 것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올바른 삶의 기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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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니 저/황혜숙 역 | 21세기북스
애리조나 주립대학 심리학과 석좌교수이자 유명 강사로 활동 중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번 개정판에서 쉽고 재미있는 기존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되, 새로운 제안과 결론 등을 뒷받침하는 명확하고 세밀한 실험적 증거들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인터뷰와 인용문, 개인적인 관찰 등을 통해 흥미를 배가시키는 한편 설득의 원칙을 더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참고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물론 기본적인 틀, 즉 이 책에 나오는 불변의 원칙들은 정식 심리학 실험에서 도출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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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4.05.21
azen2
201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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