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있는 데뷔 음반 < 바버렛츠 소곡집 #1 >으로 2014년 상반기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3인조 팀 바버렛츠는 근래 국내 인디 신에서 가장 핫한 걸 그룹이다. 인디 팬들에게는 이미 유명 인사들이며 인디 음악에 크게 관심 갖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적잖이 알려져 있다.
뜬금없이 등장한 이 훌륭한 걸 그룹에게 우리 이즘도 궁금한 게 참 많았다. 1950년대, 1960년대를 표방한 음악 스타일과 복고에 맞닿아 있는 패션에서부터 셋이 만나게 된 동기, 작업 방식, 심지어는 다음 음반 콘셉트까지, 알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무한히 떠올랐다.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 질문들이었음에도 친절하게 답을 해준 바버렛츠였다. 쾌활하고 밝은 셋 덕분에 인터뷰도 즐거운 공기 속에서 잘 진행될 수 있었다. 글로서는 당시의 발랄한 분위기를 채 전달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바버렛츠
굉장히 반응이 좋습니다. 실감을 하시는지 궁금한데요.
김은혜 : 실감하고 있고요. 특히 댓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걸로요. 또 만나면 좋은 이야기들 해주시죠.
음반 제작할 때도 어느 정도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김은혜 : 하고 만들지는...(웃음)
안신애 : 별 기대는 안 하고 했는데, (웃음) 그게 어떻게 될지 몰랐죠. 저희끼리는 재밌었어요.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다 각자 활동하고 있었죠?
박소희 : 제의를 받았어요. 신애 언니 주축으로 하모니 음악 연습 같은 걸 해보지 않겠냐면서요. 처음엔 동호회 식이었다가 공연도 하고 여기까지 오게됐어요.
제의 승낙이 어렵진 않았는지요.
김은혜 : 되게 쉬웠어요.(웃음)
박소희 : 쉬웠어요.
안신애: 그냥 취미로 만든 그룹, 스터디 그룹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해볼래?'하고 하다가 점점 커져서 여기까지 왔어요.
화음스터디는 왜 만들었나요?
안신애 : 코뎃츠의 「Mr. Sandman」이라는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혼자서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게 됐어요.
바버렛츠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건가요?
박소희 : 이발소 언니라는 뜻인데 재즈 아카펠라 음악 중에 바버샵이라는 장르에서 착안했어요. 거기서 바버를 따고 코뎃츠나 로네츠 같은 1950,60년대 보컬 그룹처럼 뒤에 엣츠(-ettes)를 붙였죠.
세 명이다보니 팀 내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술 담당이나.
안신애 : 술 담당 누구야.
박소희 : 언니가 운전을 하지?
김은혜 : 운전, 프로듀싱, 리더 기타, 우쿨렐레 거의 다 신애언니가 하죠.
박소희 : 거의 다 하고 있고.
김은혜 : 나머진 우리가 (웃음)
안신애 : 전 곡을 쓰고 전체적인 지휘를 해요. 소희 씨는 베이스 같은 역할. 음악 기둥처럼 중심을 잡아줘요. 톤이나 표현방식에 차분하게 잡아주는 색깔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팀 분위기 측면에도 그렇죠. 저희가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잡아주는 편이에요. 그리고 은혜 씨는 음색이 되게 에너제틱하고 바버렛츠의 색을 가장 많이 만들어주고 있어요. 높은 소리도 그렇고 파이팅 하는 느낌이 있거든요. 분위기 메이커기도 하고요.
의상이나 동작이나 콘셉트나 복고풍이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안신애 : 제일 많이 물어보시는 게 그건데, 사실 별 생각 없었어요. (웃음) 항상 옛날 영화나 옛날 문화에 흥미로운 콘텐츠들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요. 컴퓨터 배경화면도 당시 이미지로 해놓고 있고 소품을 사더라도 핀업 걸 같은 거 그려져 있는 걸 많이 사요.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콘셉트로 흘러가게 되더라고요.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대한늬우스' 이런 거.
사실 복고가 키치한 유머코드로 많이 사용되잖아요. 그럼에도 바버렛츠는 진지하고 능숙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현대적인 감각에도 맞고요. 센스랄까요.
안신애 : 일단 저희 같은 경우는 조금씩 노래 공부를 한 사람들이에요. 소희 씨나 저나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은혜 씨도 재즈 싱어로 활동을 했고요. 보통 재즈 보컬 이야기를 해보면 1950년대 이전을 뛰어넘는 가수가 나오지 않잖아요. 엘라 피츠제럴드나 빌리 홀리데이, 사라 본 이후로. 그 느낌과 녹음 방식과 사운드가 지금까지도 계속 고전 팝, 재즈로 흘러내려오고 있고 지금도 그 사람들을 대체할만한 누군가가 없으니까요. 이런 것들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아들인 것 같아요. B급이나 키치한 콘셉트는 사용하고는 있지만 재미를 위한 거죠.
음반에 들어가는 색감으로는 음악적인 요소에서 많이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해요. 어떤 분들은 꺾기, 뽕짝 기교라고도 하시는데, 맞는 얘기죠. 그런데 이난영 선생님 음반을 들어보면 뽕짝이 아니라 완전 재즈예요. 그런 꺾기 같은 경우는 사라 본이나 엘라 피츠제럴드도 그렇게 부르거든요. 뽕 같기도 하고 재즈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들을 연구했던 것 같아요. 따라하겠다고 하기보다는 계속 듣다보니 자연적으로 재료들이 하나씩 모였고요. 그런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마냥 B급 컬러만은 아니게 된 것 같아요.
바버렛츠 안신애
기본적으로 재즈의 영향이 가장 크네요.
안신애 : 재즈는 1960년대까지만. 그 이후의 재즈는 잘 몰라요. 여러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1960년대 이전의 재즈는 장르로서의 재즈가 아니라 팝 음악, 대중음악이었던 거 같아요.
곡들이 다 화음위주로 이어집니다. 구조가 그런 곡들은 애초에 작곡할 때 어렵지 않나요.
안신애 : 아 잠깐만요. (웃음) 저희가 단독 공연 때 쓸 영상을 편집하고 있어요. 이거 진짜 최초공개인데. 저희가 연습하면서 아이폰으로 녹음을 해요. 그 중에서 재밌었던 걸 모아서 동영상으로 만들고 있는데 진짜 웃긴 걸 보여드릴게요.
작업실에서 노트북을 하나 가져와 음원 파일을 틀었다.
안신애 : 차에서 썼던 거예요. 「가시내들」 만들 때. 이런 식으로 작업해요. 운전하다가.
운전하며 휴대전화 녹음기를 이용해 녹음한 음원들이었다. 젊은 보컬이 불렀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걸쭉한 목소리가 흥을 타고 있었다. 흡사 우리 어르신들이 부르는 타령 같기도 하고 선 하우스가 손뼉 치며 부르는 블루스 같기도 하다. 우리에게 들려준 서너 곡 외에도 더 많은 파일들이 있다고 했다.
할머니께서 가시다가 '허리가 아퍼'하시면서 부르는, 약간 그런 느낌이네요.
김은혜 : (일동 웃음) 아 얼굴 아파.
안신애 : 2년 동안 녹음했더라고요. 쓰려다가 까먹은 곡도 있고.
대부분의 곡들을 다 이런 식으로 만드나요.
안신애 : 많이 이렇게 했던 거 같아요. 그러고나서 제가 멤버들한테 보내주면 듣고 또 같이 불러도 보고요.
로네츠의 「Be my baby」를 커버한 영상도 화제가 됐고 비치보이스의 「Barbara Ann」 커버 버전도 인기가 상당했죠. 이런 곡들은 어떻게 고른 건가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건지요.
안신애 : 메가데스에 있었던 마티 프리드만이 저희를 만나러 왔어요.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그 친구가 오기 전에 메일로 대여섯 번 얘기하면서 해봤으면 하는 커버 곡 목록을 뽑아봤는데 다 괜찮더라고요. 저희가 듣고 좋아서 먼저 해봤어요.
메인보컬도 곡마다 다릅니다. 어떻게 정하나요.
김은혜 : 그때마다 어울리는 사람으로 해요.
음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타이틀 곡이 「가시내들」이죠. 타이틀 곡 선정에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김은혜 : 공연하러 다니면 '가시내들, 가시내들' 하는 부분에 꽂혀서 많이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뭘 할지. 많이 기억해주시는 곡을 우선으로 선정한 거 같아요.
안신애 : 저희를 제일 잘 표현해주는 곡 같아요. 원래는 「쿠커리츄」였는데 바꿨어요.
왜 「가시내들」인가요.
안신애 : 경상도에서 가스나들이라하고 전라도, 충청도에선가가 가시내들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게 또 스토리가 있어요.
박소희 :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간 일이 있었는데 저희 팀 이름이 외래어라 뭔가 어렵잖아요. 그때 '가시내들아'하고 불러주셨어요.
가사들이 재밌습니다. 옛 느낌도 나고요. 가사들은 어떻게 적었는지.
안신애 : 아까 들려드렸다시피 막 던져요. 빨주노초파남보 라임 맞추려다가 홍명보도 나왔어요. (웃음) 남정네 얘기 꺼내는 부분은, 저희가 각자 다닐 땐 몰랐는데 다 같이 모여 다니니 남자들 어텐션이 쫙 오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그리면서 만들었고요. 그전에는 공연한다 하면 기껏해야 친구들만 보러오고 그랬는데 이제는 모르는 분들도 응원해주시고 또 공연하고 술자리가면 같이 했던 남자 팀들이 와서 같이 자리하고 하니까 신기했어요. 저희도 그런 걸 좋아하고. 마음 설레여오네 하는 가사들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1960년대 정취가 느껴져요. 신애 씨 감성까지도 그런가요.
안신애 : 1970년대 들어오면서 음악도 현대화됐잖아요. 그 때 음악도 정말 훌륭하고 좋은데 그쯤부터는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직전까지는 (음악과) 주고받는 과정이 직접적이었다면 이후부터는 그 과정이 조금 꼬인 거 같아요. 이해해보면 재밌긴 하지만 저는 단순한 걸 좋아해서요. 알앤비 같은 경우도 1970년대 이전이 더 좋고요. 그 다음부터는 가사도 어려워지고 전자음도 많아졌죠.
은혜 씨 취향은 어떻습니까.
김은혜 : 지금은 두루두루 다 듣고 있고요. 사실 신애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하모니 위주의 걸 그룹은 잘 찾아 듣지 않았어요. 저는 힙합. 지금도 좋아하고 많이 들어요.
힙합이요? 의외인데요.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라면.
김은혜 :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좋아해요.
바버렛츠 박소희
소희 씨는요.
박소희 : 저도 다양하게 많이 접하긴 했는데 만나기 전엔 50년대 음악이다 이렇게 찾아 듣진 않았던 거 같아요.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레트로 음악 좋아했어요.
김은혜 : 신애 언니한테 음악적으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쿠커리츄는 영어로 된 버전과 우리말로 된 버전이 있죠. 영국 싱어송라이터에게 곡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 버전이 원곡일 텐데 한국어로 옮길 때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안신애 : 원래는 한국 버전 먼저하고 영어 버전 하려했는데... 코 프로듀서 B.A.윌러 저 외국인 친구가 바로 화음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아무래도 영어니까 바로 오는 게 있겠죠. 그렇게 영어 버전을 먼저 했고요. 영어 버전을 먼저 하고 난 후 아무런 경계 없이 대충했더니 한국 버전도 재밌는 결과가 나왔어요. 처음 한국 버전 만질 땐 녹음 초기여서 좀 잡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여기저기.
트랙 맨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안신애 : 중복되면 좀 그러니까요. 맨 마지막에 보너스트랙처럼 넣었죠.
「비가 오거든」은 어른들이 부르는 전통 음악 같기도 해요.
안신애 :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웃음) 사실 그런 게 음악적으로 분석해서 접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본능적인 소리잖아요. 블루스의 탄생도 그랬고요. 그걸 이제야 분석해서 블루스다, 노동요다, 붙이는 거죠. 요양원 같은 데서 할머니께 노래해보시라 부탁드려봐요. 그 감성이 그대로 있잖아요. 김대중 씨 「요양원 블루스」도 진짜 잘 들었어요. 거기서 영향 받은 것들도 있어요. 그런 감성들과 연결돼있죠.
그 곡엔 로큰롤 리듬도 가미됐죠. 어떻게 나온 기획입니까.
안신애 : '삘'이죠. 그 노래 1절이 되게 짧아요. 왜 「Summertime」 같은 옛날 노래들도 보면 A절, B절, 코러스 같은 식이 아니라 노래 한 덩이 한 덩이로 이뤄져 있잖아요. 아리랑도 그렇고요. 기본적으로는 그런 방식을 택하면서 앨범에 넣었을 때 심심하지 않게 끝내기 위해 하다보니 그렇게 나왔어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과정도 듣고 싶습니다.
안신애 : 안국동에 만요 같은 옛 노래를 전문으로 재현하시는 최은진 씨라고 계세요. 그때 「봄맞이」의 이난영 씨나 김해송 씨 음악 접하면서 그런 게 만요라는 장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봄맞이」는 음질도 독특하죠.
안신애 : 디지털 플러그인을 이용했어요. 옛 느낌 내려는 의도도 있지만 「봄맞이」라는 노래 자체가 제 생각엔 제일 덜 커머셜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전체적으로 추상적으로 해보고도 싶었고 보컬에 이펙터를 많이 넣기도 했어요.
바버렛츠는 프로젝트성 그룹인가요? 모두 계속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안신애 : 어떻게 생각하세요. (웃음) 얘기하세요.
박소희 : 재미없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에요.
안신애 : 너는?
김은혜 : 아 (웃음) 저도 뭐.
안신애 : 2집은 나올 거 같은데.
김은혜 : 지금 만들어 놓은 게 정말 많아요. 만들고 싶은 것도 있고. 지금이 제일 재밌어요.
안신애 : 기본적인 바버렛츠의 색깔을 억지로 유지해야하는 게 아니라면 아직은 되게 재밌어요. 기본적인 콘셉트로 아직 못 해본 것도 많고.
리메이크 곡 위주의 음반도 좋을 거 같아요.
김은혜 : 그게 다음 기획이에요.
바버렛츠 김은혜
< 헬로루키 >에서 “걸 그룹이라는 색을 뺐을 때 남는 바버렛츠의 색은 뭐냐”는 질문을 받으셨죠. 그에 대한 답을 찾았나요?
안신애 : 그게 뭘까. 우리가 찾은 답이.
김은혜 : 저희 셋이 답인 거 같아요. 우리 셋만이. 여기서 한 명 빠지면 바버렛츠가 아니듯이 여기서 더 발전시키면 그게 우리 색깔이겠죠. 이번 앨범에서 잘 표현한 거 같아요.
음반 만족도는 어떻습니까?
안신애 : 믹싱을 대부분 제가 하고 기본믹싱, 소리작업은 다 같이 했어요. 「사랑의 마음」 작업이 최종이었는데 그 곡 마지막 부분을 하다 갑자기 울었어요. 그때 정말 신나서 '잘되든 안 되든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다행히 잘 돼서. 만족스럽게 나온 거 같아요. 정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받았어요.
어떤 분들이 있었는지요.
안신애 : 늘 저희 안부 묻고 어디 있냐 물으시면서 밥 사주신 강승원 아저씨도 있었고 또 저희 제작팀 분들 중 문대현 씨라고 1980년대에 「광야에서」 작곡하신 분 계세요. 그분도 물심양면으로 계속 봐주시고. 노영심 언니도 조언 많이 해주셨어요. '너희가 이걸 재현에서 끝낼 게 아니라 뉴에이지를 끌어내야한다. 너희 게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요. 처음엔 몰랐다가 하다 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선우정아 씨도 편곡에 대한 아이디어나 사운드 소스에 관해서 진짜 많이 도와줬고. 홍대 엘피 바 세븐티스 사장님. 저희는 선생님이라 부르는 분인데 '너희가 꼴려서 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고 귀가 박히게 들었어요. 우린 잘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그러시나 싶을 때도 있었죠. 그때마다 따끔하게 '너네 그러다 오래 못 한다, 너네가 소녀시대냐, 걔네보다 연습 많이 하냐' 이런 충고들 해주셨어요. 인디 공연 하러 다니면서 저도 모르게 나도 이제 뭔가 된 거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정말 도움 많이 됐죠. 특히 노는 것과 음악 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할 때도 그랬고요. 개인적으로는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많네요.
안신애 : 우리 세대의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제일 모자란 게 있다면 옆에서 조언을 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거예요. 제대로 해보고 잡아주고 조언할 수 있는 세대가 단절됐다고 생각해요. 소통이 어려워요. 되게 건방진 얘기죠. 음악도 수직사회예요. 저도 예대 실용음악과 나오고 엄격한 위계질서, 세션, 코러스, 작곡가 분들 밑에서 일하면서 그 위계가 몸에 뱄더라고요. 팀 이끌어가면서 극복하느라 힘들었던 부분이에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벗어나기 어려웠고요. 뭐 음악을 하거나 녹음을 하거나 그럴 때. 이런 단점을 유연하게 바꿔준 게 외국 뮤지션들이었어요. 모든 것에 다 오픈돼 있어요. '이거 해봐, 이거 해보자' 아까 말씀드렸던 마티 프리드만도 그랬고요.
수직 위계질서가 음악 하는 데에 큰 방해가 돼요.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걸 빨리해야 하잖아요. 녹음실 시간도 맞춰야하고 작업한 거 넘겨줘야하고.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와서 조금 힘들어하는 것들 중 하나가 데드라인이에요. 빨리 해서 맞춰달라니까요. 그래놓고 받으면 그 건들을 취소하기도 하죠. 세계 어디를 가도 프로 세계에선 이런 일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창의적인 부분을 너무 막고 있는 일들이 많은 거 같아서. 저 친구(B.A.윌러)도 주위에서 많이 주목하는 프로듀서예요. 장기하 앨범도 하고 있어요.
자유롭다는 인디 신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은가요.
안신애 : 인디의 딜레마라고 할까요. 사실 여기 분위기가 되게 자유롭잖아요. 라이프스타일이 그렇다보니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워요. 그럴 때 멘토라는 사람들이 많이 도움 되는 거 같아요.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조금 힘들 수도 있는 게, 사실 멘토와의 관계가 위계질서로만 엮이는 것은 아닌데도 위아래의 관계 형성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어렵죠. 다행히 제 주위 멘토 분들은 그런 게 없어요. 정말 친구처럼 해주세요. 어떻게 보면 정말 쳐다보지도 못 할 선배님들인데, 저희는 완전 절해야하는 수준의 막내들인데, 그런 분들이 저희를 후배로서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0%예요. 오히려 친구로, 그분들 스스로도 '친구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전 그런 게 충격이었어요. 바버렛츠 내에서도 한 때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걸 해소하고 나니까 음악이 훨씬 좋아지더라고요.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의하자면 자유로움인가요?
안신애 : 자유로움인데 마냥 자유로운 게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수직관계가 아닌 멘토 시스템. 수직적인 게 과거에는 불편한 게 아니었잖아요. 격변을 빨리 맞으면서 불편해진 거잖아요. 사회는 빠르고 편리한 걸 추구하는데 관계는 아직도 수직적이에요. 그러다보니 병들고 창의력같은 게 무시되죠. 그런 것들이 나아질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 첫 계층이 아마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계일 것 같아요.
좋은 말씀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안신애 : 오늘 입 터졌어요. (웃음) 사실 얼굴을 마주보고 했던 대화라 말이 편하게 나와서 그렇지, 조금 셌던 것 같아요.
김은혜 : 헤드라인 뜰 수도 있어요. '바버렛츠 수직사회에 일갈! 바버렛츠 선배뮤지션에 일침!' 이런 식으로.
저희 이즘 공식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할까합니다. 각자가 꼽는 인생의 음반. 궁금하네요.
모두 : 어려워요.
안신애 : 리키 리 존스의 < Pop > 앨범이요. 그냥 정말 잘해서. 녹음도 잘 됐고요. 하나만 더 꼽으면 돌리 파튼. 돌리 파튼의 「I will always love you」 들어있는 앨범인데 < Jolene >이었나요. 아무 격의 없이 좋아서 만든 음반 같아요.
김은혜 : 저는 카니예 웨스트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 앨범 닳도록 듣고 있고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캐스트 두 번째 앨범 < The Low End Theory >도 할게요.
안신애 : 아 힙합 돼? 전 그럼 리키 리 존스 빼고 티엘씨 < CrazySexyCool > 할래요.
박소희 : 전 조안나 왕이요.
안신애 : 아 다시! 돌리 파튼 빼고 엘라!(피츠제럴드)
인터뷰 : 김도헌 김반야 이수호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한수
이수호 (howard19@naver.com)
[추천 기사]
- 라나 델 레이의 독보적인 음악성
- 청춘, 낙서의 고백
- 2014 음악 페스티벌 가이드, 골라가는 재미
- 제이 레빗, 더욱 풍부해진 어쿠스틱 감성
- 이 음악을 잘 들었다고 말하는 것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