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영화계 최대의 대목으로 손꼽히는 추석을 앞두고 각 영화들이 막바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명량>의 2천만 관객 돌파 여부가 관심사가 된 가운데, 여전히 흥행중인 <해적-바다로 간 산적>과 <해무>의 흥행세 역시 추석 시즌까지 이어질 예정이라 접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음식으로 비교하자면, 풍성하고 푸짐한 한정식이라기보다는, 고급지고 호화로운 단품 요리 같은 느낌이 드는 라인업이다. 추석시즌 흔히 볼 수 있던 가벼운 코미디 영화 대신, 잔잔한 감동을 주는 가족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성인 관객들을 타깃으로 더욱 화려해진 <타짜 2>, 그리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루시>의 삼파전이 예상된다.
가족을 위한 <두근두근 내 인생>
송혜교가 한때 아이돌 가수를 꿈꿨지만 실수로 17세에 엄마가 된 여자로, 강동원이 기존의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버리고 철부지 아빠 역으로 캐스팅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여기에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섬세한 화법으로 인정받은 이재용 감독의 연출까지 더해져 영화에 대한 기대감만은 블록버스터 못지않다. 훌륭한 배우와 감독이 뭉쳤지만, 영화의 승부수는 역시 원작이다.
김애란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는 17세에 부모가 된 철부지들과 세상에서 가장 늙은 아들이 나누는 사랑이라는 따뜻한 소재와 함께 삶의 다양한 순간을 아우르는 재치 있고, 관조적인 문체를 선보인다.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지만 원작소설은 주로 유쾌하고, 아련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다가 극적인 순간에 울컥 울게 만든다. 원작의 결을 제대로만 살린다면 눈물을 강요하는 최루성 신파 영화가 아닌, 삶을 관조하고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따뜻한 영화가 될 조건은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
12세 관람가 등급과 배급사 CJ의 영향력, 배우들에 대한 기대감, 추석 유일의 가족영화라는 유리한 조건으로 시작했지만 주인공의 탈세의혹이라는 복병을 맞이했다. 송혜교는 시사회장에서 공식입장을 밝히는 등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별점 테러를 벌이고 있다.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개봉시점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성인을 위한 <타짜-신의 손>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최동훈 감독의 <타짜> 2006년 추석 시즌에 개봉하여 기대 이상의 흥행 수익을 얻었던 작품이다. 탄탄한 원작의 이야기에 더해, 명품 배우들의 연기에 쫄깃한 감독의 연출력까지 더해진 작품이었다. 8년 만에 나온 2탄 <타짜-신의 손>은 성인관객을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꽤 수위가 센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전작과 어쩔 수 없이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젊은 배우들로 주인공을 바꾸고, <과속 스캔들>과 <써니>로 명절기간 흥행 신화를 새롭게 쓴 강형철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다. 빅뱅의 탑이 아닌 배우 최승현은 <포화 속으로>에서 호평을 얻었지만 <동창생>의 흥행실패로 아쉬움을 남겼다. 신세경 역시 TV 드라마 이후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작품이 없다. 젊은 배우들에 대한 불안감은 곽도원, 유해진, 김윤석, 이경영, 오정세 등 연기파 배우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모양새로 불식시킨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팬을 위한 <루시>
그래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을 원하는 관객을 위해서는 뤽 베송의 <루시>가 있다. 마약을 운반하던 중 초능력을 얻게 된 여주인공 루시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 액션물이다. 섹시하고 강인한 여전사 루시 역할에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된 것이 화제가 되었고, 국내 관객에게는 최민식이 루시와 혈투를 벌이는 마약조식의 보스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이 더 화제가 되었다. <명량>을 통해 국내 최고의 흥행배우가 된 최민식의 할리우드 영화 데뷔작에 대한 기대감이 흥행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또한 <루시>는 무거운 생각을 내려놓고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오락영화이다. 미국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이미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넘기는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흥행 배우가 된 최민식에겐 요즈음이 인생 최고의 시기일 것 같다. 할리우드에 데뷔한 한국 배우들이 비중이나 역할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던 것과 비교해 최민식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 보자.
소수의 열정적 관객을 위한 <자유의 언덕>
한국영화 4파전의 틈에 끼었지만 <프란시스 하>는 개봉 한 달 동안 7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도 개봉한달 만에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40대 이상 관객을 타깃으로 한 소피 마르소의 <어떤 만남>도 적은 스크린 수에 비해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추석시즌에도 작은 영화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남들 다 보는 영화 말고, 나만을 유혹할 만한 깊이 있는 영화를 찾는 관객을 위해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이 자리 잡았다.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올해부터 경쟁부문으로 변경된 오리종티 장편 부문에 공식 초청된데 이어,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는 등 해외에서의 반응이 국내보다 훨씬 빠르고 뜨겁다. 67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관객에게 도전해볼만한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고, 모호한 대화를 나누고, 어색한 관계를 이어가는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일상의 공간을 낯설게 만들어 오던 홍상수 감독은 어느 순간 해외의 낯선 이방인들을 통해 이야기에 더 진한 거리감을 만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자벨 위페르와 제인 버킨에 이어 홍상수의 세계로 들어온 남자는 일본배우 카세 료이다. <하하하>와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했던 문소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옥희의 영화>에 출연했던 서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으로 새로운 홍상수의 얼굴이 된 정은채와 중견배우 윤여정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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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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