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박 “을질 연애에서 벗어나려면”
쇼파에 제멋대로 식빵자세를 하고 핸드폰 메모장을 두드리는 한 여자, 지니박. 그녀는 자신을 “누구에게나 열심히 귀기울여 주는 들을 줄 좀 아는여자”로 소개한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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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펜끝을 누르는 소리가 아닌 손가락 검지 타법으로 다라라라락 눌러 한 두 마디 써놓았던 문장이 반 페이지 혹은 한두장의 분량으로 늘고, 그것을 페이스북에 붙여 넣는다. 글에는 외롭고 쓸쓸한 인간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 줄, 혹은 한 장짜리 짧은 글에 피식피식 웃는 사람이 늘어갔다. 서글퍼진 독자도 있었다. 글에서 과거의 씁쓸했던 내 모습을 발견한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좋아요’를 누르고 만다. 아쉬웠던 연애 시절과 비루한 일상을 웃음으로 승화한 지니박의 글에 페친들은 열광했다.

 

그녀가 “이 따위 글”이라 표현한 문장이 모여 책으로 나왔다. 제목은 『빡쳐! 연애』. 예스24 블로그에도 조금씩 공개했던 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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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박

 

지니박, 이라는 이름에서 왠지 교포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요.

 

유진박 따라해 봤습니다. 박씨 성을 가진 지구상 모두의 고민. 박박사는 좀 그렇고, 뭐하지 하다가 그냥 지니박 혹은 지니파그(공원)이라고 불리웁니다. 헤헤.


글에 딱 어울리는 삽화도 재밌습니다. 차승민 저자와는 어떤 계기로 함께 책을 만들었나요.


책으로 나올 줄 몰랐지만 출간 제의가 오기 시작하면서 걱정되더라고요. 제 글은 웹툰을 글로 쓴 느낌이 강해서 그림이 없으면 망할 것 같은 조짐이 보였어요. 그래서 자비를 들여서라도 어울리는 선생님을 염가에 모셔보려고, 여기저기 허드렛 일도 해드리고 용쓰던 중 편집장 박은정 선생님의 도움으로 과분한 선생님을 만난 듯합니다.


책의 장르가 프리스타일 같습니다. 마치 만화 『멋지다 마사루』나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를 연상시킨다고 할까요. 저자 본인이 정의하는 이 책은 어떤 장르인가요?
 
글로 읽는 웹툰 같아요. 제가 만화책을 좋아해요. 쓰다 보니 소설인지, 만화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코믹함. 딱 그 정도로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그야말로 차승민 선생님이 살린 책이죠. 어서 인세를 받아서 선생님께 달려가 치킨에 맥주 무한 제공 쿠폰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제가 ‘인생과 연애에서 갑질하는 쌍년되는 법’인데, 갑질하기가 쉽진 않잖아요. 책에도 갑질하는 법을 다뤘다기보다는 나에게 을질을 강요한 사람과 사회에 대한 사자후가 주를 이루는데요. 갑질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여러가지 사례를 코믹하게 기술해 보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내가 갑인 줄 알았는데 실제는 을이었다, 이 정도를 알려 주고 싶었어요. 저 또한 갑질 연애인 줄 알고 했다가 끝나고 보면, 어느 여자에게나 그렇게 해 주는 몸에 벤 습관 같은 을(배려) 짓이 많았어요. 알아서 잘하는 남자는 누구에게나 잘하거나 혹은 경험이 많거나 여성을 잘 요리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고 말하는 남자는 “말하지 않아도 미숙이 영숙이 숙자 미자를 다 알아!” 이것이 정답이라고 봅니다. 조금 미숙한 미숙이 같은 남자가 좋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는 중입니다.


책에 욕이 자주 나오던데, 이렇게 욕 쓰는 사람이 실제 만나 보면 점잖던데요.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 


저는 태어나서 욕이라고 한마디도… 는 아니고, 실제는 아주 친해지기 전까지 매우 조용한 타입이에요. 직장에서도 제가 책 쓴지도 몰라요. 아주 친한 친구에게는 좀 시원한 입담을 하는 편이지만요. 화를 해소하기 위한 욕은 그 기운이 전이되서 저에게도 안 좋죠. 재미로는 좀 합니다. 아, 욕 매니아 분께서 책에 사인으로 썅욕을 써달라고 하셔서 비밀리에 써서 보내드린 적은 있어요 어찌나 재밌던지. 크크크 허허허. 그리고, 낯선 사람 만나기를 아직 매우 두려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면 왜 이렇게 정중하냐 하시는데 그럼 만나자마자 막 소랑 개 찾아 드려요? (농담)


모 대기업맨과의 연애, 국 좋아하는 남자와 연애 등 다양한 유형의 빡치는 연애를 썼습니다. 이 중 최악의 연애는?
 
대부분 막말이 심한 빡치는 연애는 허구가 많았고, 재미로 지어낸 것들이 많으니 이 자리를 통해 오해 없길 빕니다. (최근 하도 악플을 받아서.) 가장 최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착하지는 않구나를 깨닫는 연애, 내가 못할 때 너무 잘 해주던 그, 그리고 내가 잘하자 점점 등을 보이던 그 등…… 여성들이 빡치는 순간은 이렇게 소소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썅년되는 법인 것 같네요. 제가 존경하는 고영성 작가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하는 보상적 행동(흔이 을질)이 일정하고 변동이 없을 경우보다는 그것이 변화했을 때 그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다시 말해 항상 똑같이, 한결같이 좋아해주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변화될 때 뇌가 더 크게 반응한다.” 무릎을 탁 치게 되죠?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타고 책까지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페친들이 몇 부 정도 살 거라 예상하는지.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에 2쇄 인쇄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으로 페친들, 그리고 그의 지인들까지 모든 구매가 완료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망하는 것인가… 엉엉. 감사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그 동안 글 읽어 주시고, 책도 구매해 주셔서 정말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꼭 은퇴하는 것 같네요.


인기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제 글 속의 주인공인 ‘호구형 인간 지니박’의 일상이라고 믿고 읽기 때문이며, 그녀가 보통의 내 직장동료, 혹은 아는 언니, ‘보통’ 민간인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민간인이 페친들의 요구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어 드렸어요. 무료로 대본을 써주거나, 회사이름을 지어 드리거나, 아주 소소하지만 신경 써서 연애 상담도 해 드리기도 했고요. 창업가의 고충을 알기에 특별히 그런 분들은 더 홍보해 드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인기라기 보다는 많은 추억이 쌓인 결과 같아요. 제가 낮선 사람 만나는걸 잘 못하는 대신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생겨서 기쁩니다.


실패 총량의 법칙(102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패를 자주 겪은 듯한데, 자주 하다 보면 앞으로 다가올 실패도 어느 정도 예측되지 않나요. 가까운 미래 닥칠 실패를 예상해 본다면? 책은 성공할까요? 


실패라고 볼 수도,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요. 이미 악플과 이상한 쪽지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이미 예상은 한 일이고, 저같이 평범한 잉여인간이 책을 마구 갈겨 썼으니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그래도 스크래치가 좀(새가슴). 쪽지로 욕하신 분들 빨간 글씨로 이름 쓰겠음. 데스노트!! 이번 책은 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의외의 장년층의 공감이 많고, 그리고 빡친 분들이 공감 한다는 부분에서 만족합니다.


연애와 결혼을 고민하는 모든 30대 여성에게 한 마디 한다면.


내가 한 살만 어렸어도 이런 남자를 만나지 않았을 거야, 라는 심정으로 결혼을 위한 연애를 이어가거나, 빡치는 그놈에게 계속 질질 끌려 다니는 연애를 하시는 분들께 나에게 편지를 써 보는 거 한번 해 보세요. 정말 처음엔 손가락 발가락이 파마를 하고, 오글오글 하지만 정말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게 돼요. 질질끌려 다니는 연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호구남 잡아서 빨대 꼽아 평생 빨아먹고 살자, 이런 주의가 아닌 이상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여자친구가 아닌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약할 때 더욱 끌려 다니는 연애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책에도 썼지만, 이세상에 왕경태는 없습니다. 내가 어리고 예쁠 때만 당연히 받게 되었던 (왕경태 같은) 호의를 사랑이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아니면 내가 김성령이 되든가, 계속 예쁘든가. 그게 아니면 당연히 사랑에도, 만남에도 노력이 필요하겠죠. 30대가 되어도, 아마 40대가 되어도 물론 20대처럼 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파리의 질은 떨어졌겠지만요. 파리와 진국을 가려내는 눈을 키워야 해요.


이건 책에 안 들어간 부분인데요


[금요일밤 , 주말 밤 , 새벽 여자들이 받는 흔한 카톡 메시지 ]
아는오빠 - 뭐해? 자니? 어디니? 뭐하니?
뒷집오빠 - 자는구나 잘자고 좋은 꿈 꿔 ~
친한오빠 - 게임아이템 신발이 도착했습니다.
개저씨(이상한 아저씨의 신조어) - 영국을 감동시킨 고양이의 실화(동영상)


여자들의 파리 천국 인생 !! 여기서 진국은 누구 일까요??
여러분 파리의 사탕발림을 조심하세요 !!!!!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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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쳐! 연애 지니박 저/차승민 그림 | 라온북
페이스북 인기 페친 지니 박에게 배우는 망할 놈의 연애로 배우는 갑질 인생 이야기. 연애에도 갑을 관계가 있다는 걸 연애가 몇 번 망해본 후에야 알았다. 언제까지 을로만 살 수 없어서 연애에서 당한 일을 페이스북에 글로 쏟아냈다. 저자의 격한 실연 감정에 공감한 페친들은 대리 배설의 통쾌함을 경험했고, 덕분에 자신들의 연애를 돌아보고 연애 관계에서 갑이 되는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 미혼이라면 공감하고도 남을 연애, 사람, 일상, 일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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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박 #빡쳐연애 #사랑 #결혼 #여성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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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4.09.28

현실에 민감하게 반영하는 전형적인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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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bin98

2014.09.17

빡쳐 !!!!!!!!!!!!!! 아오 빡쳐 , 2030의 속시원한 글들 ...마구마구 공감합니다. 남자인데 뭐이리 아프지 . 나는 그녀에게 썅놈이렀구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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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9.15

빡쳐라는 단어 넘 좋지않네요. 그냥 블로그 카톡에 끄적 거리는거 모아놓은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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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