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면서까지 먹어대는 똘똘이의 캣그라스 사랑
우리 집 고양이 세 마리는 모두 캣그라스를 매우 좋아한다. 귀리나 밀 등의 새싹인 캣그라스는, 끊임없이 자기 털을 핥아대는 고양이들의 위장 속으로 들어간 털을 배변을 통해 배출하는 데 필요한 섬유질을 공급한다.
아내가 화분에 심어둔 캣그라스를 잘라서 먹이기 위해 가위를 들고 화분 앞으로만 가면 집 안 곳곳에 숨어들어 있던 녀석들이 동시에 기어 나와 화분 앞에 도열한다. 특히 똘똘이가 가장 열성적인데 문제는 이 녀석은 그 좋아하는 캣그라스를 허겁지겁 먹고는 죄다 토하곤 한다는 점이다. 내가 주로 똘똘이 캣그라스 급식 담당이라 천천히 먹여도 보고 짧게 잘라서 줘보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3,4회에 한 번꼴로 토하고 만다. 그런데 그렇게 토해놓고서도 다시 다른 녀석들이 캣그라스 먹는 곳에 쪼르르 달려가서 자기 몫이 없는지 기대하곤 한다. 정말, 못 말리는 캣그라스 사랑이다.
똘똘이의 행동은 학습심리학 시간에 배웠던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미각혐오학습’이라는 것이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에게 뭔가를 학습시키려면 대개 십여 번에서 최대 백여 번 반복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단 한 번 만에 학습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음식을 먹고 탈이 난 경험에 대한 학습이다.
인간이건 쥐건 상관없이 어떤 음식을 먹고 한 번 배탈이 난 다음에는 그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즉 그 음식 맛에 대한 혐오감을 학습한다. 이것을 ‘미각혐오학습’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학습심리학자들은 쥐에게 설탕이 5퍼센트 함유된 물을 먹이고 방사선을 쬐어 배탈이 나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 쥐가 다시는 5퍼센트 함량의 설탕물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음식에 대해서만 그렇게 빠르고 명확한 학습이 가능한 걸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만약 어떤 동물이 특정한 풀이나 열매를 수십 번 먹어보고 나서야 ‘아, 이건 먹으면 탈이 나는구나’라고 배우게 된다면 그 동물은 진즉에 멸종해버렸을 것 아닌가. 고로 우리들은 음식을 한 번 먹어보고 배탈이 나면 다시는 그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않음으로써, 위장과 컨디션을 지켜낼 수 있었던 선조들의 자손인 것이다.
똘똘이가 캣스라스를 끊지 못하는 이유
똘똘이 녀석은 벌써 캣그라스를 먹고 수십 번은 토했다. 미각혐오학습의 원리에 따르면 이제 똘똘이는 캣그라스는 쳐다보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나 캣그라스를 자르는 가위 소리가 들리면 제일 먼저 허겁지겁 뛰어나오는 놈이 똘똘이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된 걸까?
아마도 캣그라스가 배탈을 유발한 게 아니라, 그저 헤어볼을 토하듯 위 속의 내용물을 토하게 만들 뿐이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정말로 캣그라스가 복통을 동반한 배탈을 일으켰다면 똘똘이는 미각혐오학습을 했을 것이다. 캣그라스가 발휘하는 효과를 생각해보면 캣그라스에 대해 미각혐오를 학습한다는 것은, 다른 미각혐오학습의 후보들과는 달리 똘똘이의 생존에는 오히려 불리하다. 그렇다면 똘똘이는 위장 속에서 뭉쳐져 있는 헤어볼을 배출하기 위해서 캣그라스가 필요하다는 몸의 신호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런 구차한 설명도 필요가 없다. 인간에게도 미각혐오 학습의 원리에 위배되는 섭식 행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술 말이다. 많은 인간들이 술을 잔뜩 퍼먹고는 뒷골목 길바닥 위에서 그 날 하루 먹은 것들을 재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꼴을 겪은 인간들 중에 술에 대한 미각혐오를 학습해 그 이후 술만 봐도 구역질이 올라온다는 사례는 나 자신을 포함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다음날 아침에 해장을 해야 한다며 또 술을 먹으러 가는 진상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똘똘이에게 캣그라스는 인간에게 술과 같은 모양이다. 인간들이 술을 퍼먹고 그동안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을 (가끔은 음식과 함께) 배출해내듯, 똘똘이는 캣그라스를 먹고 그동안 그루밍하며 위장 속에 쌓아둔 헤어볼을 토해낼 뿐이다. 인간에게든 고양이에게든 그것이 힘든 며칠을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모양이니 미각혐오는 잠시 잊어두자.
-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장근영 저 | 예담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는 심리학자가 세 고양이와 함께 살며 겪은 일상의 이야기들과, 고양이와 현대인의 다르고 또 같은 심리를 대조하며 유머와 감동, 위로를 전하는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심리 에세이’다. 저자는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카툰을 직접 그리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찍어가며 고양이들과 동고동락한 일상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든, 인간과 동물 사이든 그렇게 서로 길들이고 서로 인정해주며 관계를 맺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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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심리학자)
혼자서 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사는 젊은 심리학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게임·드라마 등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일러스트레이터, 16년차 고양이 집사이기도 하다. 아침형 삶, 집단주의, 복잡한 대인관계를 멀리하는 그는 코치이자 매니저인 아내와 이 책의 주인공인 무심한 고양이 소니, 똘똘이, 삼돌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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