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난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 1995, 김건모, ‘잘못된 만남’
의리로 뭉쳐진 끈적한 야근문화, 최선인가?
우리는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학습되고 만들어지는 사회적 존재다. 또한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 학습되고 만들어지는 인간이라는 존재다. 복잡한 그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고 관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때론 법, 때론 관습, 때론 문화라 부르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관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필자의 오래전 사회 초년병 시절 이야기 한 자락 들려드리겠다.
꽤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필자는 첫 회식에서 피할 수 없는 난관과 마주치게 되었다. 바로 ‘술잔 돌리기’였다. 부장님으로 시작된 술잔은 직급별로 타고 내려와 막내 신입사원인 필자에게까지 오게 되었다. 본래 술을 잘 하지도 못했지만, 입에서 입으로 여러 명을 거친 술잔에 따른 술을 대체 내가 왜 억지로 마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필자는 과감하게 술잔 돌리기 파도의 맥을 끊었다. 분명하게 “마시지 않겠다”고 거부했던 것이다. 회식자리의 분위기는 마치 얼음물을 들이부은 것 같았고, 선배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상황에서 “술을 못 마신다”는 필자의 말은 그저 변명이 될 뿐이었다. “사내 새끼가 술 한 잔도 못 마시냐?”는 인격 모독성 발언까지 나왔을 때는 필자의 이성도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별 거지 같은 말을 다 듣겠네. 그럼 대한민국 진짜 사나이들은 알코올중독 병동에 다 모여 있겠네?”
필자의 젊은 시절이 패기가 차고 넘쳤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파릇파릇한(?) 취업 준비생들이 엄청난 경쟁을 뚫고 사회 초년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다음에 그들을 기다리는 환란의 일부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렇게 학습되어 약 이십여 년을 사회인으로 살아온 형님과 누님들의 지금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는 상하관계가 있고, 한 공간 안에 다른 세대가 공존한다. 여기에서 종종 선후배들 사이에 갈등의 핵으로 등장하곤 하는 것이 바로 ‘본전생각’이라는 것이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하며 본인 스스로도 당시에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감내해야만 했던 그 무언가를, 과거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뜨겁게 되돌려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 말이다. 그런 것들 중 대표적으로 대물림되는 본전생각이 바로 화끈한 회식문화와 의리로 뭉쳐진 끈적한 야근문화가 아닌가 싶다.
이전 기사에서도 필자의 이력을 잠깐 밝힌 바 있다. “고객님들, 독자 분들! 시간 내서 운동하고 건강관리 하셔야죠!”라고 하면, 체육관으로 출근하는 트레이너가 직업이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계시다. 이전에 필자, 누구보다 빡세게 야근하는 야근부대의 선봉이라 불리는 IT개발자 출신이라 밝힌 바 있다. 습관적으로 야근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안다. 독자 분들 마음이 어떻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나라들은 각자 고유의 음식 문화가 존재한다. 음식과 음식의 궁합이라는 것도 있어서 어떤 음식과 함께 먹으면 서로의 풍미를 더해주는 찰떡궁합 식재료가 있게 마련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동동주나 막걸리에는 두부김치나 보쌈이 어울리고, 소주에는 얼큰한 국물이나 삼겹살이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맥주에는 역시나 치킨이고, 와인에는 간단한 치즈 정도가 좋다. 이렇듯 각자 어울리는 안주가 술의 풍미를 더하는 것은 바로 음식과 음식의 궁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건강과 몸매를 망치는 필살의 궁합은 무엇일까? 일차로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고, 그 위에 잦은 음주와 야근을 얹으면 그보다 더 좋은 궁합은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잦은 음주-습관성 야근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앙상블을 인생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소위 중견 사회인이라 불리는 우리의 생물학적인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삼위일체는, 세 개나 맞춰둔 알람과 사랑하는 와이프의 닦달에도 아침에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드는 원시데이터이자, 오늘 할 일을 되도록 내일로 미루는 무기력함의 원동력이며, 거울 속 자신의 액면가를 십 년 앞당기는 부스터이다. 일상적인 습관으로 굳어버린 어른들 사회의 이런 흐름을 ‘잘못된 만남’으로 강하게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본전 생각으로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도 그랬으니 너희도 배워야 하고, 사회생활이란 게 다 그런 거라는 생각부터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술자리와 야근, 허리사이즈를 줄이는 것보다 급한 일일까?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다는 것은 유토피아적 이상론이라는 걸 필자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술을 사랑한 나머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술자리를 만들고 찾아다닌다는 것도 안다. 정말 바빠서 야근에 야근을 거듭한다는 것도 아주 잘 안다. 그러나 그것들의 순위가 내 자신보다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대가는 언젠가 반드시 치러야 한다. 이것은 출발한 기차가 종착역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일이다.
대가에 대한 책임 역시 누가 대신 져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피할 수 없다”고들 하는 술자리와 야근, 정말 이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허리사이즈를 줄이는 것보다 급한 일일까? 정말 이것이 계단 몇 개만 올라도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라 한다면 왠지 설득력 있을 것 같지만,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가족을 부양하다가 병원신세라도 지면 어쩔 텐가? “보험금이 있으니까” 하고 호기를 부릴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지금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귀찮아하는 우리의 궤변일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것들이 습관화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저항보다는 순종하게 되고 무뎌지게 된다. 이것들은 때론 악습으로 고착화되고 대물림되곤 한다. 우리의 ‘잘못된 만남’에 대해 한발자국 떨어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대한 개혁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지금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우리의 일상 패턴에 관한 이야기다.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좀더 활기찬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좀더 정열적인 남자로서의 인생을 생각해볼 시기다. 이 땅의 모든 중년 남성들이 조금만 더 자신의 모습을 가꾸는 데 시간을 투자해보길 권유하는 바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음주와 야근으로 서서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면, 그 기간만큼 조금씩 허리사이즈를 줄이고 허벅지 사이즈를 늘리는 습관을 들여 보시길 바란다. 그리하여 그 멋진 모습을 이제 사회를 알아가는 인생 후배들에게도 아름답게 대물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본 칼럼을 쓰면서 필자가 들었던 앨범 리스트
김건모 3집- <잘못된 만남 >1995
김민기 1 - <김민기 1 / 가을편지> 1993
Gate Flow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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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
운동칼럼니스트와 기능성 운동 전문 트레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 국가대표 선수가 선수 출신 지도자가 아닌 저자에게 코칭을 받는 걸 보면 그의 운동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부터 블로그나 각종 매체에 건강과 운동에 관련된 칼럼을 기고했고, 그 인연으로 몇 권의 책을 냈다. 여전히 호기심 많은 40대로, 최근에는 오리엔탈 피트니스의 세계에 눈을 떠가고 있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 《불량헬스》《강한 것이 아름답다(공저)》가 있다.
샨티샨티
2015.01.19
감귤
2014.10.02
runraven
2014.10.02
글 쓰면서 들으셨던 앨범 리스트들 유투브 비디오로 바로 아래에 올려주셔도 좋을거 같아요.
들으면서 읽으면 더 감질 나겠죠?
출간하신책은 아껴서 읽고 있습니다 ㅎㅎ
운동에 관한 책이라 샀기도 했지만 같은 연배의 남자로써 공감,위로를 주는 책이라 더욱 좋은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