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크롤러’라는 단어는 우리에겐 많이 생소하다. 동명의 영화 <나이트 크롤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신종 직업 ‘나이트 크롤러’는 한마디로 강력범죄 현장을 쫓는 파파라치 정도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모두가 잠들었다고 생각되는 밤, 빠른 차와 고가의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경찰 무전을 훔쳐들으며 로스앤젤레스 일대를 누비는 이들은 차량 충돌, 화재, 살인, 각종 폭력 사건을 쫓고 촬영된 필름을 지역 TV 뉴스에 팔아넘긴다. 이들은 때론 경찰보다 빠르며 당연히 방송사 보다 늘 앞선다. 누구도 촬영하지 못한 영상을 선점한다면 더욱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동하기에 자격도 검증도 필요 없어 나이트 크롤러의 세계는 치열한 경쟁 그 자체이다. 때문에 마치 피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이들은 더욱 강력한 사건이 일어나길 바라며 범죄 현장을 뒤쫓는다. 그리고 대중을 현혹시킬 자극적 특종에 집착하는 언론사(방송국)은 이들을 이용한다. 댄 길로이 감독의 <나이트 크롤러>는 생소한 나이트 크롤러들의 생생한 현장을 보며주면서 동시에 부패한 언론의 속살과 그 맨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철조망과 맨홀 뚜껑 등을 몰래 훔쳐 파는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은 무슨 일도 최선을 다해 할 자신이 있다며 훔친 물건을 파는 사장에게 자신을 취직시켜달라고 하지만, 도둑놈을 쓸 수는 없다며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길을 운전하다 교통사고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그 영상을 방송국 보도팀에 팔아넘기는 일을 하는 일명 ‘나이트 크롤러’를 목격한다. 사건 현장을 촬영하는 것이 돈이 되는 일이란 사실을 알게 된 루이스는 카메라와 경찰 무전 도청기를 구매하여 각종 사건, 사고 현장을 돌면서 ‘나이트 크롤러’가 된다. 한편 지역 방송국의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 영상을 여과하지 않고 내보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늘 계약직 지원으로 방송국을 전전하던 니나는 재계약 시점을 앞두고 시청률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런 니나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 영상을 제공하면서 동맹관계가 된 루이스와 니나는 더 선정적이고, 더 자극적인 특종에 열을 올리게 된다.
<본 레거시>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댄 길로이는 장편 데뷔작 <나이트 크롤러>를 통해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언론과 돈을 위해서는 도덕 같은 건 하찮게 여기는 한 인간의 모습을 파헤치며 타인의 목숨보다 자신의 삶과 성공에 더욱 집착하는 현대인의 폐부를 헤집는다. 그리고 붉게 드러난 상처에 소금을 뿌려, 관객들의 시선과 마음을 쓰리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루이스 블룸이라는 소시오패스가 아니라, 그런 괴물을 만들어내는 사회라는 점을 성공적으로 화면에 담아낸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에 놀라지 않는 루이스의 무감각은 자극적인 뉴스에 매일 노출되는 우리들 자신의 무감각과 다르지 않다. 솔직히 루이스 같은 나이트 크롤러를 양산하는 이면에 바른 정보를 전달한다는 언론의 윤리의식 대신, 자극적 영상으로 시청자들을 수동적 시청자로 만들어내는 저열한 언론의 상업성이 움트려있다. 수많은 매체들 사이에서 시청률 경쟁이라는 치열한 환경 속에서 누구도 언론의 윤리를 논하지 않는 시대에 서 있다. 이렇게 공감능력이 결여된 루이스의 모습을 보자면 이미 언론으로 제 역할을 못하는 한국의 현실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면서 씁쓸함을 안긴다. 게다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언론의 부패상은 막상 그 이면 속으로 파고들어 보면 상상이상으로 썩어있어 더 불쾌하고 더 충격적이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는 2001년 브라질의 범죄 고발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직접 살인을 지시한 제작자의 실화를 방영한 적이 있는데, <나이트 크롤러>의 내용과 묘하게 겹친다. 실제로 브라질의 프로그램은 흉악 범죄 사건을 방송해 시청자들에게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지역 범죄율 하락에 공헌하기도 했다. 하지만 범죄율이 낮아지면서 함께 떨어진 것은 시청률이었다. 이에 제작자인 형제는 시청률을 위한 살인사건을 계획했다고 한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 속 루이스 역시 카메라 앵글을 위해 시체의 위치를 바꾸거나, 살해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범죄 현장을 신고하지 않고 범죄가 일어나길 기다린다. 소시오패스 역할을 위해 13kg을 감량, 성공에 목메는 광기어린 청년이 된 제이크 질렌할은 댄 길로이 감독의 각본에 반해 직접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범죄 현장이 더욱 자극적일수록 환희에 찬 미소를 짓거나 섬뜩한 눈빛으로 동료의 죽음을 카메라에 담는 루이스에 완전히 동화된 제이크 길렌할은 초창기 영화 <도니 다코>에 필적할 만큼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면 관객들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과 마주서게 된다. 과연 당신은 주목받지 못하는 지루한 진실과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거짓 중 무엇을 원하는가? 어쩌면 ‘나이트 크롤러’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당신 자신은 아닌가? 그리고 아마 그 누구도 묵직한 이 화두에서 명료하게 달아나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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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rkem
201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