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우석훈에게는 모처럼 주어진 금요일 저녁의 바깥자리였다. 두 아이를 돌봐야 하고 집과 직장만 오가는 생활에서 모처럼 독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술 한잔 할 수 있는 자리가 꽤나 반가웠나 보다. 지난 3월 20일, 서울 합정역 부근의 한 카페는 떠들썩했다. 최근 『잡놈들 전성시대』(새로운현재), 『성숙 자본주의』(레디앙)를 펴낸 우석훈 박사(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과 스무 여명의 독자들이 술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도 끝도 없이 성원을 보내주고 싶다는 60대 독자부터 20대 독자까지 ‘우석훈 팬심’이 가득한 가운데 우 박사는 “주변과 대화가 잘 되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췄다. 대부분 주변 사람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고 겉돈다는 말이 많았다. 오히려 고양이와 더 대화가 잘 된다는 답변도 있었다. 가장 이해받고 싶은 가족에게 되레 이해를 받지 못해 슬프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만큼 우리는 소통이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에 우 박사는 건배를 권했다.
“『불황 10년』때부터 독자들과 술을 마셨다. 이게 강연보다 훨씬 편하다. 1년 만에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술을 마셔본다. 아기가 태어나니까 금요일에 술을 못 마시고 있다. 『잡놈들 전성시대』를 쓴 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크다. 이명박정권 때 사십대가 됐는데, 박근혜정권까지 들어서니 사십대가 없어지고 오십대가 돼서도 이리 살려니 갑갑하더라. 특히 내 아이들이 자란 세상을 생각하니 정권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MB정부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마흔이었다. 5년씩 두 번, 그렇게 두 번의 정권이 지나면 쉰 살이 된다.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40대가 그렇게 가버린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그런데 50대에도 이 악몽 같은 시대가 계속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99~100쪽)
우석훈 박사는 녹색당원이었다. 스스로 “무정부주의와 정당 사이에 있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그는 정권을 바꾸겠다며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갔다. 정확하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그는 부원장으로 2003년 이후 10여년 만에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됐다. 갓 태어난 아이까지 두 아들을 돌보던 전업 아빠는 절박한 마음에 정치권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한 달을 지내보니 왜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에서) 졌는지 알겠더라. 크고 작은 선거에서 25전25패를 했다. 내부에서도 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않더라. 새 책이 나왔는데, 의원들은 책을 사기는커녕 달라고만 하더라(웃음). 『불황 10년』에서 ‘각자도생’이라고 결론을 냈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더라. 바꿔야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특별법 서명자가 600만 명이 넘는데 이중 10%만 정당에 가입했어도 지금과 같은 특별법이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정당들의 모습을 보면 잘 안 될 것 같으나, 그래도 해야 한다. 좋아서가 아니다. 같이 해야 한다.”
“‘알아서 살아남으라….’ 그러고 나서는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게 뭐란 말인가? 정말 개인이 알아서 생존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가? 도대체 우리는 뭔가?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나?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남기라도 해야지.”(11쪽)
글을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잡놈들 전성시대』는 구성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감정을 쌓아나가는 형식으로 했다. 중간부터 속도를 높였다. 처음부터 감정을 높일까 하다가 그러면 잘 안 될 것 같더라. 제목도 ‘형가의 노래’라고 하려고 했었다. 출판사에서 ‘잡놈들 전성시대’로 하자고 해서 지금 제목이 됐는데, 20~30대는 형가가 누구인지 모르더라.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몰라서 내가 쓰고자했던 제목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1장은 세 번이나 고쳐썼다. 움베르토 에코를 생각하며 쓰고 싶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하니 잘 안 되더라(웃음).
“형가는 자객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자객이었다. 그는 막 중국을 통일하려던 진시황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진시황 사후에 환관 조고가 권력을 잡으면서 결국 진나라는 붕괴된다. 그의 뜻이 언젠가는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형가의 이야기는 아련한 슬픔이 있으면서도 마냥 비극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101쪽)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시대다. 그래도 삶이 중요한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기 주관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삼시세끼-어촌편>을 즐겨봤는데, 차승원을 좋아한다.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차승원이 그것을 보여준다. ‘차줌마’(차승원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별명)가 꽃빵을 만드는 것을 보고, 차승원이 자상하게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승원과 만나서 술 한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바빠서 못 간 것을 후회하고 있다(웃음). 차승원은 전략적으로 살지 않은 것 같다.
“소시민인 나는 그저 대선 이후에도 내 목이 그대로 붙어서 집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이보다 큰 개인적 희망사항은 존재하지 않는다.”(129쪽)
야당에서 대안이 나올 수 있을까?
기술적 대안을 만들 수는 있으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의원들은 사실 내년 총선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대선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나쁜 점이나, 대신 내가 뭔가를 하는데 훼방을 놓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웃음). 여기 와서 일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길 것 같으면 이미 다 왔지(웃음). 많은 사람들은 새누리당으로 갔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이 14.5%일 때 내가 와서 지금 30% 가까이 올랐다. 문제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하는데, 단기간에 만들긴 어렵다. 지지율이 35~40%까지 오르면 사람들이 더 올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와서 나와 나눠서 경제 강의를 맡으면 좋겠다. 10년 정도를 지면 그게 습관이 된다. 한 가지 괜찮은 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바뀔 수 있다.
“내가 새정치민주연합에 처음 올 때 당의 지지율은 14.5퍼센트였다. 초상집도 그런 초상집이 없었다.(중략) 세 계절이 지나고 그사이 당의 지지율은 33퍼센트까지 올라갔다. 한 것은 별로 없다. 여기는 아무것도 안 하면 기본은 간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눌 것이 생겼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이 다시 생겼다.”(13쪽)
정권이 바뀌어도 지금의 신자유주의 추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늦추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고 추세를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뀌는데 있어서 제도도 중요하다. 유럽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고 무상교육을 제도화해서 자리를 잡으니까 정권이 우파로 바뀌어도 무상교육은 계속 갔다. 우리도 집권해도 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만, 집권을 했을 때 잘 할 수 있는 통치전략을 세우자고 말하고 있다. 통치 실력을 키우는 게 더 좋다고 말하면서 그 능력을 키우자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위치에 있든 대선까지는 관여할 것 같은데, 공약보다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통치 실력을 높이고자 한다. 대선 때 공약을 걸기보다는 지금 법을 바꾸든 제안을 하든, 지금 하자고 말하고 있다.
“나는 경제공부는 선거 과정에서 힘을 발휘하기보다는, 선거에서 이겨서 집권하면 유효할 거라고 생각했다. 성공한 통치를 위해서는 여러 명의 힘이 필요하고, 그런 걸 위한 집단 진화 혹은 공진화 같은 것을 하고 싶었다.”(189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을 대상으로) 경제 강의를 시작한 것이 지도부부터 경제 소양 교육을 하기 위함이었다. 의원들 중에서도 강의에 오고 싶지 않은데 내가 욕할 것 같아서 오는 사람도 있다(웃음). 정당사에서 이렇게 모여서 경제 공부를 한 적은 없을 것이다.
“보통은 경제공부모임이라 부르고, 사업명으로는 ‘경제정책 심화과정’이라는 공식 타이틀을 가진 사업이 있다. 야당사에 한 번도 없던 일이라는데 시작부터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거창한 일은 아니다.”(182쪽)
앞으로 다가올 대선에 ‘킹메이커’로 활동해라(웃음).
대선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지면 잡혀갈 것이다. 새누리당이 나를 엄청 싫어한다고 하더라(웃음). 정직한 사회를 내 자식에게 남겨줘야겠다고 생각한다. 페어하게, 한 만큼이라도 주는 그런 사회.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다 떼어먹고(웃음). 정치를 그대로 두고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을 하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못살면 사람들이 그의 말을 안 믿는다. 문학, 사회학, 정치학 등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경제학자가 경제적으로 못살면 “자기나 잘 살지”라고 말한다.
내 힘은 독자로부터 나온다. 내 책을 본 사람들에게서 그 힘이 나온다. 나는 경제연구를 많이 하는데 정권이 바뀌면 고성장은 아니더라도 불황은 피할 수 있다고 본다. 올해로 박사 20년, 저자 10년이 됐는데, 어깨가 무겁다. 밤에 주로 글을 쓰는 타입인데, 이번 책은 전당대회 전후 3주 동안에 미친 듯이 써서 손가락이 아플 정도다. 나는 책 쓸 때가 마음이 가장 편하다.
“형가는 칼과 지도를 들고 길을 떠났지만, 나는 “명분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다”라는 문장 하나만 들고 빈 몸으로 길을 나선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 그것은 바로 명분이다.”(113쪽)
예전 대선을 앞두고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여의도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었다. 우리도 유럽의 ‘68혁명’ 같은 것이 가능할까?
되게 어렵지. <나꼼수>와 같이 비판으로 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권이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비판으로 되기 어렵다. 68혁명 때는 낙태를 제도화시켜달라는 주장이 있었다. 지난 대선 때 <나꼼수>는 MB를 반대했는데 뭘 할 것이냐를 이야기하진 않았다. 69혁명은 뭔가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우리도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것을 함께 해야 한다. <삼시세끼-어촌편>의 차승원은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단품 메뉴를 만들었다. 누가 가져다 준 것을 먹기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만들자. 그렇게 작지만 직접 만든 것에 열광하는 사회가 결코 나쁘지 않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것 같나?
사회적으로 복지시스템이 바뀌면 인간적으로 일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생산양식은 바뀌지 않으나 생활 양상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유럽은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간극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진다. 밑을 올리고 경제적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경제구조를 만들 것이냐가 관건이다. 뭔가를 저지르라고 하는 사회는 나쁘다. 빚을 내서 집 사라고 그러고. 적정한 수준을 넘어 욕심이 과하면 망한다. 얼마 전 일본에 갔다가 놀란 것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피케티(『21세기 자본』의 저자)의 수업을 지상파 TV로 틀어주더라. 일본은 그래서 선진국이구나 싶더라. 우리는 장하준 교수의 강의도 안 틀어주는데 말이다.
“경제적으로 위가 ‘폭망’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약간은 모양새 빠지는 입당원서와 1000원이라는 물리적 지불을 요구한다. 그 수치가 몇 십만이 되면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중략) 여러분의 1000원을 기반으로 우리가 만들 새로운 정부는 여러분에게 몇 백만 원을 돌려줄 것이다. 이제 시작된 장기 불황을 당장 없앨 수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난 8년, 한 번에 몇 십 조씩 ‘잡놈들’이 정부 돈과 개인의 돈을 털어다가 자기네들끼리 나눠 갖는 것이 한국 경제의 핵심 아니었는가? 그렇게 다 빨아가고 나니 남은 돈이 어디 있나? 이런 것을 막고, 필요 없이 주머니에서 새어나가는 돈을 막으면 사람들의 삶은 지금보다 나아진다.”(294~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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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 자본주의우석훈 저 | 레디앙
자본주의를 ‘전복’시킨다거나, ‘극복’한다거나, 몰라볼 정도로 ‘뜯어고치자’는 것이 통상 진보 또는 좌파 경제학자들의 입장이다.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지만, 시장 실패 또한 예견돼 있는 것이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또는 합리적 규제)을 옹호하는 케인지안도 신자유주의 전성시대에서는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된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케인즈 경제학을 ‘수정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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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놈들 전성시대 우석훈 저 | 새로운현재
자신이 진짜라고 우기는 '가짜'들만 살아남은 꼬질꼬질한 나라, 증오 위에 세워진 미움의 정치가 권력의 목적인 뒤끝 쩌는 나라, 네 개의 강과 미제 벤또가 국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우기는 나라. 대한민국 정치1번지에서 벌어지는 '진짜 잡놈'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통해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선출한 권력의 민낯을 낱낱이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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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