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여행을 떠났다. 봄이 오는 게 아팠다.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그런데 충동적으로 떠나는 바람에 음악을 깜빡 잊고 챙기지 못했다. 음악도 없이 5시간 이상 운전할 신세가 된 걸 깨달은 건 수원을 지날 무렵이었다. 동행한 친구와 나는 낑낑거리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절망은 일렀다. 매달 자동결제 중인 음원 사이트가 기억났다. 차 오디오에 스마트폰을 연결해 엄선한 리스트를 재생시켰는데 정작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Aux 케이블이 맛 간 것이었다.
결국 한 곡도 들을 수 없었다. 엄청난 풍절음과 엔진음을 자랑하는 내 경차에서 조악한 스마트폰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다. 사실 우린 소리 지르는 수준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말자고. 라디오가 있잖아.”
라디오 주파수를 계속 돌리자 록 음악을 틀어대는 방송이 하나 잡혔다. 우리는 볼륨을 높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좋아하는 지미 헨드릭스의 곡까지 나왔다.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좋았다. 하지만 라디오는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잡음이 많이 섞이더니 아예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방송을 찾아 주파수를 돌렸더니 어떤 방송이 짱짱하게 잡혔다. 가요만 틀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오래된 가요 위주라 신남이 좀 떨어졌지만 어째선지 잘 아는 음악들이 많이 선곡되어 다시 고무되었다. 우리는 전주만 듣고 노래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며 즐겁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알아맞힐 수 없는 곡이 덜컥 나왔다. 남자가수가 부르는 노래였는데 1절 후렴구 앞까지 전혀 모르는 곡이었다. 멜로디가 평범하다 못해 전형적인 발라드 흐름이라 볼륨을 줄이고 다음 곡을 기다리려 했는데 목소리가 굉장히 비범해 다시 볼륨을 높였다. 듣다보니 두껍고 깊은 음색에 가슴이 쿡쿡 쑤셨다.
“이런 목소리는 임재범만 낼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임재범 아저씨가 맞았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유니크하다. 평범한 멜로디도 그가 부르면 훌륭한 명곡이 되어버리는 걸 오랜만에 재확인한 셈이 되었다. 우리는 임재범이라는 진짜 가수이자 아티스트에게 거듭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에서 나온 곡은 드라마 OST였던 **였다. (멜로디가 전형적이라고 깠으니 제목은 못 밝히겠다)
그 곡을 끝으로 긴 터널이 나왔고 라디오 방송은 다시 주파수를 잃었다.
“이렇게 된 이상 라이브로 가자.”
오랜만에 임재범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나선지 그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기억 속에 남겨진 그대모습~’ 이란 노랫말로 시작하는 <그대는 어디에>를 불렀다. 노래방에서 도전하면 고음 부분에서 반드시 음이탈을 하게 되어있던 노래였다. 역시나 후렴구에서 ‘삑사리’가 나자 친구가 견디기 힘들어하며 노래를 중단시켰다.
친구는 <낙인>을 불렀다. ‘가슴을 데인 것처럼 눈물에 패인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괴롭다’ 그렇게 우리는 임재범 님의 주옥같은 음악들을 메들리로 망치며 서로에게 욕을 하며 부산까지 꾸역꾸역 내려갔다.
부산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회와 장어구이와 술을 영접했다. 그리고 3차 입가심으로 바닷가에 있는 한 선술집에 들어갔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흐르고 있었다.
“요맘때 이 노래만 트는 거 좀 지겹지 않아?”
친구가 술집 스피커를 가리키며 말했다. 봄에 딱 어울리는 명곡임에는 틀림없지만 나 역시 좀 감흥이 떨어졌다. 봄에 <벚꽃엔딩>을 함께 듣던 연인과 작년에 헤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해마다 봄노래로 듣던 Vinnie moore의
그런데 우리의 3차 주제가 임재범의 로커시절부터 그의 주옥같은 음악 얘기로 흐르자 술집 주인이 슬그머니 임재범의 음악을 틀었다. 좋은 술집이었다. 우리가 불렀던 <그대는 어디에>와 <낙인>등이 그의 진하고 두터운 목소리로 흐르자 가슴 어딘가가 몹시 아팠다.
그제야 나는 이 봄이 왜 아픈지 생각해보았다. 벚꽃과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는 아름답고 화사한 계절이지만 이젠 황사와 미세먼지가 뿌옇게 밀려와 콧물과 기침이 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또한 꽃피지도 못한 생명들이 작년 봄 뿌연 바닷물 속에 침몰했다. 내게 4월의 봄은 그날부터 잔인한 계절이 되었다. 나는 이 어이없는 재난 때문에 아직 슬프고, 해마다 슬플 것이다. 이토록 생동하는 봄과 안타까운 죽음의 선명한 대비가 너무나 잔인해서다. 이토록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후진 사회에 살며, 심지어 원인규명과 문제의 해결 의지는커녕 힘으로 눌러 덮으려는 자들이 지배적인 후진 현실이 절망적이다. 일 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해결 안 된 세월호 비극 얘기가 지겹다는 여론까지 있어 충격적으로 절망적이다. 생명과 인간다움에 대한 모욕감을 느끼는 봄이다. 비슷한 위도의 나라에서 누군가는 완전하게 아름다운 봄을 맞더라도 우리의 봄은 이제 봄 같지가 않아졌다. 겨울에 비하면 너무나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마음은 겨울과 다를 바 없이 차갑고 처연하다.
1997년에 발표된 <그대는 어디에>와 2010년에 드라마 삽입곡으로 나온 <낙인>은 두곡 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이별노래지만 부산의 선술집에서 감정이 축축해진 내겐 마치 세월호 사고로 가슴이 구멍나버린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노랫말로 들리기까지 했다.
‘…내가 사는 것인지 세상이 나를 버린 건지 하루가 일 년처럼 길구나….’(낙인)
‘아직도 함께 했던 그 많은 시간들을 그리며 나의 한숨 시간 속에 남아 나를 눈물 짓게해….’(그대는 어디에)
임재범의 목소리에는 망연자실한 슬픔과 절망의 감정이 진정으로 녹아있었다. 이별이란 이토록 참 지독한 것이라는 걸 절절히 동감할 수 있었다. 하물며 지난봄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영 이별한 유가족의 심정은 지옥보다 더 지독할 거라는 생각으로 이입되자 참담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마음은 전혀 화사해지지 않았다. <낙인>과 <그대는 어디에>를 반복해서 들으며 산다. 임재범 아저씨의 지독한 음색만이 이런 봄을 사는 심정을 공감해주는 것 같아서다.
이 코너는 정치 사회 주제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가벼운 칼럼인데도 오늘은 결국 이렇게 썼다. 그런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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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봄봄봄
201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