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파블로 네루다의 ‘시’라는 시, 첫 구절이죠.
그는 시가, 오는 거라고 말합니다.
과수원의 농부들은 꽃이 피는 걸 ‘꽃이 온다’라고 부릅니다.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들도 소금 결정이 생겨나는 순간을
‘소금이 온다’,라고 표현하죠.
왜 형용사의 자리에 온다라는 ‘동사’를, 동사의 현재형을 쓴 걸까요?
오는 것은, 기다리기 때문에 옵니다.
‘온다’라고 말할 때, 거긴 기다림이 전제돼 있을 때가 많죠.
기다리기 때문에 온다라고 표현하고, 기다림 때문에 ‘온다’라는 말은 완성됩니다.
봄이 오고, 눈이 오고,
시도 소금도, 살구꽃도 사람도... 오는 것.
거기에서 여기로 와 주는 것.
그러니까 그때 오는 건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정현종 시인도 그래서 ‘방문객’이란 시에서 썼나 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한 사람의 일생이,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거라고요.
오늘도, 와주셨네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입니다.
독특한 상상력과 정교하게 이야기를 설계하는 능력으로 잘 알려진 김성중 작가. 그녀의 능력은 소설집 『국경시장』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책, 임자를 만나다' 시간에서는 김성중 작가를 직접 모시고『국경시장』속 작품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려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감각을 촘촘하게 풀어놓은 소설집
1) 책 소개
유려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감각을 촘촘하게 풀어놓는 소설가 김성중의 두번째 소설집. 그의 이름 앞에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최다 수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서 알 수 있듯, 김성중은 꾸준히 주목받으며 자신만의 소설세계를 단단히 구축해왔다.
첫번째 소설집 『개그맨』 이후 사 년 만에 펴내는 이번 소설집은, 그간 그가 보여준 자유롭고 개성적인 상상력이라는 강점을 유지하되 그 위치를 좀더 현실 쪽으로 옮겨와 서사에 둔중함을 더한다. 허공으로 떠오르는 아이처럼 자유롭고 경쾌했던 김성중의 세계가 현실로 중심을 한 걸음 옮길 때 벌어지는 일은 환상과 실재의 오묘한 뒤섞임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 지점인 '국경'처럼 가짜와 진짜 사이, 환희와 고통 사이, 이야기와 이야기의 근원 사이, 그리고 작품과 독자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는 움직임이 바로 김성중의 소설이 향하는 곳이다.
2) 저자 : 김성중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개그맨 』이 있다.
◆ 127-128회 <책, 임자를 만나다> 도서
전을 범하다
이정원 저 | 웅진지식하우스
교과서 속 진부한 해석에 묶여 있던 우리 고전소설의 잔혹한 속내를 파헤치며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새로운 시도의 전(傳) 해석서이다. 스스로 ‘옛 소설에 매혹당했다’고 자처하는 국문학자이자 '서사 여행자'인 이정원은 13편의 우리 고전소설을 ‘권선징악’이라는 굴레에서 해방시켜 욕망과 위선, 폭력과 일탈로 가득한 진짜 속내를 들추어냈다. 장화?홍련의 계모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양일 수도 있고, 〈심청전〉의 본질은 '효'가 아니라 '살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