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으로 신분이 추락한 인목대비와 정명공주
1614년부터 1618년 사이 정명공주는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생활의 곤궁도 겪어야 했다. 광해군이 생필품을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궁녀들은 신을 것이 없어서 헌 옷을 뜯어 노끈을 꼬아 짚신처럼 만들어 신거나, 헌 신을 뜯어 신을 것에 기워 신기도 하였다.
글ㆍ사진 신명호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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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화정>속 정명공주.

영창대군의 죽음 후 모친인 인목대비와 함께 신분이 후궁의 딸로 강등되었다.

 

 

인목대비의 폐위, 정명공주의 신분 강등

 

그러나 정명공주와 인목대비에게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명공주는 서인으로 강등되고, 인목대비는 후궁으로 강등되는 치욕이 그것이었다. 그 치욕스런 사건은 정명공주가 16살 되던 1618년(광해군 10) 1월 28일에 일어났다.


이어서 1월 28일,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더 이상 대비라 부르지 말고 ‘서궁(西宮)’으로만 부르라 명령했다.  ‘서궁’을 굳이 풀이하자면 ‘창덕궁의 서쪽에 있는 후궁’이란 뜻이었다. 인목대비는 왕실의 최고어른인 ‘대비’에서 한갓 ‘후궁’으로 강등된 것이었다.


인목대비가 후궁으로 강등되자 정명공주도 따라서 강등되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후궁의 딸은 옹주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정명공주는 정명옹주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정명공주는 옹주 이하의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가난한 시절, 더욱 돈독해진 인목대비와 정명공주

 

1614년부터 1618년 사이 정명공주는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생활의 곤궁도 겪어야 했다. 광해군이 생필품을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궁녀들은 신을 것이 없어서 헌 옷을 뜯어 노끈을 꼬아 짚신처럼 만들어 신거나, 헌 신을 뜯어 신을 것에 기워 신기도 하였다. 그러나 금방 해져 견디지 못하자 화살촉을 빼내 송곳을 만들어 짚신을 삼기 시작했다.

 

또 겨울이면 눈 위에서 신을 것이 없으므로, 큰 신을 뜯어 사슴 가죽으로 눈 신을 짓기 시작하였다. 봄에 손질해 두었다가 겨울을 지냈는데, 사슴 가죽창으로 겨우 한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을 겪으면서 오히려 정명공주, 인목대비, 그리고 대비전 궁녀들 사이의 유대감은 더욱 강력해졌다.

 

 

서궁 유폐 시절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의 곤궁한 생활

 

그 5년 동안 정명공주, 인목대비, 대비전 궁녀들의 생활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곤궁 속에도 살 길을 찾아 나갔다. 쌀을 일 바가지가 없어 소쿠리로 쌀을 일었다. 그런데 하루는 까마귀가 박씨를 물어 와서, 한 해 걸러 두 해가 되자 쪽박이 열리더니, 세 해째는 중박이 되고 네 해째는 큰 박이 되었다. 궁녀들은 솜도 없이 몇 년 간 겨울을 지냈다. 햇솜이 없어 추워 벌벌 떨었는데, 우연히 면화씨가 섞여 들어왔다. 그것을 심어 씨를 냈더니, 두세 해째는 많이 피어 솜을 두어 옷을 지어 입었다. 또한 사계절이다 지나도록 햇나물을 얻어먹을 길이 없었는데, 가지와 외와 동화씨가 짐승의 똥에 들어 있었다. 그것을 심어 나물 상을 차려 먹을 수 있었다. 또 어느 날은 꿩의 목에 수수씨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심으니 무성히 열렸다. 가을이 되어 베어 보니 찰수수였다. 또 상추씨가 짐승의 똥에 있어서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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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화정> 속 광해군에 의해 아들인 영창대군을 잃고 신분이 강등된 인목대비의 한이 맺힌 맹세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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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정명공주신명호 저 | 생각정거장
요즘 드라마 〈화정〉으로 인해 17세기 조선왕실의 역사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당대 여성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될 만큼 뛰어난 필체로 남자보다 더 기개 있는 작품을 후대에 남긴 정명공주. 파란만장한 그녀의 일대기를 통해 17세기 혼란의 조선, 궐에서 일어난 음모와 암투의 역사를 살펴보고 어떻게 위기를 이겨냈는지 역사 속 이야기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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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정명 #인목대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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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

1965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를 특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사를 전공하여 『조선초기 왕실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를 거쳐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