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작지만 단정하게 잘 꾸며진 트리가 무대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트리를 보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렌다. 뮤지컬이 크리스마스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정말로,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따뜻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뮤지컬의 배경은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무료 병원. 마음 깊이 상처를 간직한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새로운 병원장으로 오게 된 젊은 베드로 신부는 병원 기부금을 위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한다. 성격이 까칠한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의 격렬한 반대에도 다큐멘터리 촬영을 감행하고, 그를 메인으로 내세우기로 하면서 그와 대립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기로 한 전 날, 최병호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밖은 눈보라로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최병호는 다리를 쓸 수 없는 반신불수인데, 병원 어디에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베드로 신부는 그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정숙자, 이길례를 추궁하고 담당의사 닥터리와 자원봉사자 김정연을 닦달하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한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베드로 신부의 의심은 더더욱 심해진다.
모두가 잠든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떻게 반신불수의 환자가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걸까? 사실을 밝히기 위해 인물들 한명 한명에 집중하면서, 마냥 밝고 유쾌하게 이어지던 뮤지컬은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된다. 밝은 웃음 뒤에 감추어 두었던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들과 진짜 모습을 천천히 관객 앞에 선보인다.
상처는 치유할 수 있는 거예요
병원의 환자인 반신불수 최병호, 전직 콜걸 출신의 알콜중독자 정숙자, 치매를 앓고 있는 이길례부터 자원봉사자 김정연, 의사 닥터리까지 <오! 당신이 잠든사이>의 인물들은 모두 가슴 깊은 곳에 상처를 안고 있다. 까칠하고 독선적이고, 예민하고 위협적인 모습은 사실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그들이 스스로 만든 방패막이였다. 그 방패 덕분에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던 사람들은 방패 너머로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게 되고, 자신과 닮은 상처를 가진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인물들은 굳건했던 방패를 떨쳐버리고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서로 소통하게 된다.
사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어떻게 보자면 조금은 상투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가진다. 하지만 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적시고 감정을 자극하는 건,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이 이야기가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기 때문이고, 그 이야기 안에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묵직한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음식들로 잘 차려진 정갈한 한상차림처럼,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역시 극본과 연기, 음악의 조화가 맛깔스럽고 담백하다. 10년째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뮤지컬답게 내공이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극의 중간 관객들과 소통하며 극 안으로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연출 역시 센스있다.
요즘 따라 삶에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들이 만든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지는 특별한 하루를 얻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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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