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밤, 『시밤』
너인줄
알았는데
너라면
좋았을걸
- 하상욱 『서울시』 금요일 같은데 목요일 中 -
하상욱은 제목과 함께 읽어야 의미가 완성되는 일명 ‘반전시’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시를 읽어 내려가던 독자들은 반전을 접하고 뒤늦게 아! 소리를 내며 크게 웃는다. 이러한 위트가 담긴 하상욱의 첫 시집 『서울시』는, 그가 바라본 일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두 번째 시집 『시밤』은, 모두가 한 번 쯤 겪어보고 생각해봤던 일상의 순간과, 그 순간에서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집어낸다. 그의 시집에는 연애의 설렘, 이별의 아픔과 같은 사랑의 감정과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이 모두 담겨있다.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으며 “어? 나도 그랬는데”, “아 맞아 내 말이 이 말이야.” 라고 공감하며 울고 웃는다. 시 전반에 깔린 B급유머는 시를 더 쉽고 가볍게 즐기게 해준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의 시는 분명 강렬한 한 방이 있다.
지난 10월 22일 목요일 홍대 레진코믹스 브이홀에서는 하상욱의 2번째 시집 『시밤』 출판 기념 북 콘서트가 열렸다. 하상욱의 글빨 못지않은 말빨(?)덕분에 지하 홀은 2시간 내내 독자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200여명의 독자가 함께한 북 콘서트는 시 낭독, 옥상달빛의 축하 무대, 독자들과의 질문타임 등으로 순서로 진행되었다. 하상욱은『시 읽는 밤 : 시밤』이라는 제목답게, 직접 책에 실린 시 몇 편을 낭독하며 감성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
“시밤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쓴 책”
니가 있을 땐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었다.
니가 떠난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하상욱 『시밤』 中“
“안녕하세요. 유아인이 팔로우 하고 있는 남자. 하상욱입니다.” 라는 하상욱의 유쾌한 멘트가 북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오늘은 조금 슬픈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왜냐면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거예요. 커플이신 분들은 미리 대비하는 시간이 되겠죠? (웃음) 다 같이 이별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상욱의 말대로 이번 북 콘서트는 사랑, 특히 이별에 대한 하상욱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는 자신이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진심이 담긴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저도 몇 번 이별을 겪어 봤어요. 몇 번의 이별을 겪고 나서 항상, 이별은 당연한 거고 늘 준비되어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나를 성장시킨 건 이별이 아니라, 함께 했던 순간 그 자체였구나.’ 라는 걸 느꼈죠.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들, 참아왔던 순간 속에서 내가 진짜 많이 성장했고, 내 감정이 성숙해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운 거니까, 혹시 이별 후에 새로운 사랑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사랑의 그 모든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고 감정도 충만해지는 시기니까요.”
하상욱은 『시밤』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로 “그리운 건 그때 일까, 그대일까”를 선택했다. 어떤 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과 아련함은 시집 『시밤』에서 자주 등장한다.
“『시밤』이라는 책은 대부분의 페이지가 잠깐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고, 예전에 어떤 시간을 떠올리면서 생각에 잠겨볼 수 있는 느낌으로 글을 써봤어요. 저도 시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상황들이 많이 생각이 났어요. 여러분들도 제 글을 읽으면서 그 시간 속에 잠기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여러분들이 저를 생각하면서 많이 웃으시는데, 저는 정말 감성에 빠져서 눈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에요. (웃음) 저는 여러분들이 이 책을 보고 마음을 많이 누르시고, 슬픔의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감성적인 노래를 들려준 옥상달빛과의 짧은 토크 이 후 독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요?
저는 인터넷에서 주로 받아요. 그리고 예전의 기억과 경험에서 영감을 받죠. 특히 『시밤』 같은 경우는 제 예전의 기억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가요?
이런 질문 좋네요. 시밤에 어울리는 질문. (웃음) 저는 나를 위해서 연기를 해줄 수 있는 남자가 좋은 남자 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나를 위해서 지쳐도 안 지친 연기를 해줄 수 있는 배려심 있는 남자. 사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 게 먼저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좋은 남자인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사실 저는 작가를 꿈꾸어 본 적이 없어요.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늘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작가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직업을 꿈꾸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연애를 할 때를 생각해보면, 연애 자체가 목적일 때는 연애가 잘 안되잖아요? 그렇지만 상대방이 좋아져서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다보면 좀 더 평탄하게 잘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직업에 대한 개념도 똑같은 것 같아요. 글을 좋아서 글을 쓰다보면 어느 날 누군가 저를 작가로 불러주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과 생각하시는 게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잘 쓰는 법이 있나요?
저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할 법한 생각만 해요. 새로운 사랑이야기, 새로운 이별이야기를 찾거나 쓰는 게 아니에요. 저도 겪어 봤고 여러분도 경험해봤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들을 주로 쓰죠. 그리고 공감이라는 게 바로 그런 감정고요. 글을 잘 쓰려면 다른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만 집중하면 되는 것 같아요. 자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하상욱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분위기를 유도하며 매끄럽게 북 콘서트를 이끌었다. 많은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던 2시간여의 북 콘서트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여러분들이 오늘 집에 돌아가셨을 때 지난 슬픔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
시 읽는 밤 : 시 밤하상욱 저 | 예담
『서울 시』에서는 기발하고 재치 있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다면, 『시 읽는 밤 : 시 밤』에서는 여전히 재치 넘치면서도 조금은 진지한 하상욱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상욱 시인만이 쓸 수 있는 144편의 사랑시, 여기에 감성 가득한 사진들과 캘리그라피를 함께 실어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선물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추천 기사]
- 내게 맞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 김지영,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방귀 트는 친구’
- 김중혁 “픽션이 너와 함께하기를”
- 스타강사 유수연 “지금의 20대는 사슴 같아요”
- 만화가 허영만 “나에게 커피란, 사랑할 수 없는 여인”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