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아도 청춘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명제가 아픈 청춘을 위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슈퍼우먼이 된 도라희가 대다수의 청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것 역시 아쉽다.
글ㆍ사진 최재훈
20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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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에서 시작해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얻은 <미생>과 최근 <송곳>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날카롭게 때론 낭만적으로 담아낸 작품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개봉된 <오피스>는 정갈한 공간이지만, 꽉 막혀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무실과 사원, 그리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채 격무에 시달리는 인턴사원의 이야기를 호러 스릴러 장르 속에 녹여내었다. 연간 근로시간 2,090시간으로 세계 2위에 달하는 대한민국 근로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직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처절한 생존이기에 도발을 쉽게 꿈꾸지 못한다. 자조적 88세대에서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네 가지를 포기한 사포세대에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해 총 다섯 가지를 포기한 2030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인턴 제도를 통해 겨우 기회를 잡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열정’을 위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식의 기득권층의 목소리는 청춘들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직설적인 제목의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개봉했다. 직설적 풍자와 속 시원한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 동감, 혹은 후련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되리라 기대했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는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를 통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춘들이 현실에서 겪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먼저 보여준다. 도라희는 찬찬히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 하나 없이 덜컥 취재 현장에 내던져진다. 사회초년생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단정한 정장과 하이힐은 불편하고 운동화와 편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밥을 먹을 시간도 없고, 일을 수습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루 종일 바깥을 떠돌다 들어오면 제대로 된 기사 하나 못 가져 왔냐는 부장기자 하재관(정재영)의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연예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일반적인 회사와 다른 색다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몸싸움으로 이어지는 취재과정과 희귀할수록 칭찬받는 기사의 속성, 그리고 연예 매니지먼트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잔재미를 준다. 도라희와 하재관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이어지고, 수습기자 도라희가 능숙한 기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재미를 잃지 않고 중심에서 든든하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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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제목이 주는 뉘앙스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동감, 공감, 후련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과 연결고리가 생각보다 약하다. 신문사의 수습기자로 일을 시작한 도라희(박보영)를 통해 영화는 사회 초년생의 애환과 고군분투, 그리고 그것을 멋지게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줄 거란 기대를 하게 만들지만 실제로 보이는 것은 기자군 중에서도 연예부에서 일하는 기자들의 특수한 상황과 그 속에서의 갈등이다. 무엇보다 공감을 얻기 힘든 지점은 도라희라는 인물이 겪은 고난보다 훨씬 더 앞서 있는 그녀의 능력이다. 우리의 주인공 도라희는 열정에 소진되지 않고 상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시스템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특종을 잡아내기 위한 방법을 손쉽게 터득하는 슈퍼우먼이다. 정기훈 감독은 ‘열정 페이’라 불리는 사회적 이슈와 그 때문에 아파하는 청춘을 다독이기보다는 선정성 논란과 조롱 속에서도 직업 정신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연예부 기자들의 생활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여기에 술수와 눈속임을 통해서라도 특종을 잡아내야만 겨우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기자들의 애환과 ‘기레기’라 불리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기자들의 자부심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담긴다. 늘 꺼내놓지 못하는 사직서를 품고, 구조조정에 끙끙 앓는 상사의 애환도 에피소드로 담아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지점에서 정기훈 감독은 공감이라는 하나의 큰 고리를 엮지 못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제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제 몫의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누구 하나 선뜻 마음을 주고 싶은 인물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인공 도라희는 응원해줄 필요 없이 기대 이상의 능력을 제가 알아서 발휘하고, 라희와 연애감정을 나누는 서진(류덕환)이라는 인물은 연애라는 에피소드를 위한 기능적 인물일 뿐이다. 게다가 유일한 영화 속 악역인 매니지먼트사 장대표(진경)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라는 띄어쓰기 없는 제목처럼 방점도 쉬어갈 틈도 없이 흘러간 영화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 훌륭한 배우들의 활용법이다. 정재영, 박보영, 오달수, 배성우, 류덕환, 류현경, 그리고 진경에 이르는 배우들이 모여서도 신뢰감 있는 고리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명제가 아픈 청춘을 위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슈퍼우먼이 된 도라희가 대다수의 청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것 역시 아쉽다. 극중 인물이 아니라 네티즌과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봉합되는 결론 역시 헛헛하긴 마찬가지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 <페이퍼>

 

론 하워드 감독의 1994년 작품 <페이퍼>는 가상의 신문 뉴욕 썬 편집국의 이야기다. 특종경쟁과 마감전쟁 속에 선정주의에 매몰되는 기자이자 직장인의 삶을 가벼우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한다. 마이클 키튼, 로버트 듀발, 글렌 클로즈, 마리사 토메이 등 화려한 배우들이 빛나는 연기 경쟁을 펼치며 기자들의 삶과 고민,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윤전기를 멈춘다는 극적 엔딩은 완벽하게 구성된 허구의 세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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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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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