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시를 본다 ‘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의 중심에는 늘 시가 자리했다. 그리고 시의 중심에는 본질과 서정이라는 두 개의 축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작품이 평이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 고통과 아픔까지도 감사히 받아들이는 낮은 자세와 무관치 않다.
글ㆍ사진 박성천(소설가)
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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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성천이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를 통해 만난 문화예술인 7인에 대한 인터뷰 후기를 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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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에게서 시(詩)를 본다.”

 

정호승 시인의 말이다. 그의 말은 생전의 마더 테레사 수녀가 했던 “모든 인간에게서 신(神)을 본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정호승 시인은 매우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말을 했지만, 그것은 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일 터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타고난 시인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뼛속까지”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진로를 정한 이후 단 한번도 주저하거나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걸어왔다.


사람이니까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정호승 시인은 원초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아련히 펼쳐진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곡조를 붙이면 하나의 서정적인 노래가 된다. 

 

“어떠한 경우에 시가 되었다 또는 시가 되지 않았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시가 이루어지는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랜 성찰과 고통의 통과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제 시 중에「이슬의 꿈」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이슬은 햇볕에 말라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햇살과 한 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시인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대상을 형상화할 때 비로소 시가 이루어집니다.”

 

그는 시든 소설이든 문학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사실 예술만큼 본질이 강조되는 분야도 없다. 본질이 장르 자체뿐 아니라 그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의 존재 이유와도 직결되기 때문일 터이다. 정 시인에게 ‘본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만의 시 정신이 아닐까 싶다. 

 

 

깊은 울림, 전통가락 그리고 맑은 서정

 

“저는 늘 시에 감사하며 독자에게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시가 있었기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며 또한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973년에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올해로 시를 쓴지 만 41년이 됩니다. 오랫동안 시업(詩業)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늘 감사하는 마음과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에 담긴 빛나는 서정성, 삶에 대한 관조의 시선은 한 구절의 잠언을 읽는 것 같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순천의 선암사 해우소에서도 그의 잠언같은 시구를 접할 수 있다. 시인은 눈물이 나는 날에는 열차를 타고 선암사에 가보라고 권한다. 그곳 해우소에서 마음껏 울다 보면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암사의 해우소가 명소가 되어버린 건 전적으로 그의 시「선암사」때문이다.


시를 써서는 온전히 밥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는 그렇게 시를 붙들고 42년째 묵묵히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불현듯 그가 ‘모든 인간에게서 시를 보는 것’처럼, 나는 인간에게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자인 내가 사람에게서 봐야 할 것은 무엇이며, 또한 독자들은 내게서 무엇을 보길 원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시인은 시를 써야 시인입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시를 쓸 작정입니다. 시란 자기 자신과 한 시대를 이루는 인간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니까요. 마더 테레사 수녀는 모든 인간에게서 신을 본다고 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모든 인간에게서 시(詩)를 본다고 말하고 싶네요. 우리는 이제 영혼의 양식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의 시작(詩作)이 영혼의 양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작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석굴암을 오르는 영화」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진다. 오랜 시간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1989년 소월시문학상, 2000년 정지용문학상, 2009년 지리산문학상, 2011년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슬픔이 기쁨에게』,『서울의 예수』,『새벽편지』등이, 시선집으로는『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등이, 어른이 익는 동화로 『연인』,『항아리』,『모닥불』,『기차 이야기』등이, 산문집『소년부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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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박성천 저 | 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23명에게 책이 작가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고, 또 그로 인해 어떤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표 소설가, 시인, 지성인과 문화예술인인 공지영, 조정래, 은희경, 최재천, 김병종, 유시민 등 자신만의 색깔로 책을 짓는 작가들의 내밀한 고백을 한데 모았다. 이들은 왜 책을 쓰게 되었고, 책은 어떻게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이 인터뷰집에 모두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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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소설가)

소설가이자 광주일보 기자인 저자는 다양한 영역에 걸친 글쓰기를 통해 사람과 세상, 문화에 대한 지평을 넓혀가는 인문학자다. 문학 기자와 『예향』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학 관련 기사뿐 아니라 우리 시대 화제가 되는 인물 인터뷰, 다양한 문화 담론, 인문학적 주제, 학술 전반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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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등이, 동시집 『참새』,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모닥불』, 『기차 이야기』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 오히려 체온으로 그 슬픔을 감싸 안는다. 오랜 시간동안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였다. ‘슬픔’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일구려던 시인의 시학이 마침내 다다른 ‘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윤리적인 완성으로서의 ‘사랑’의 시학이다. 이 속에서 꺼지지 않는 ‘순연한 아름다움’이 있는 한 그의 언어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