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효재 “노동 없이 성찰이 될까요?”
난 노동이 즐거워요. 노동 없이 성찰이 될까요? 한 번 노동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 봤어요. 절대 성찰할 수 없어요. 오만 잡생각만 떠올라요. 노동의 대가는 엄청나요. 하물며 내 가족을 위해 하는 살림만큼 더 빛나는 일이 어디 있어요?
글ㆍ사진 엄지혜
20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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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요. 지금 배고플 때죠? 우선 배추전 좀 들어요. 앉지 말고 서서 먹어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어요.” 30분간 배추전 시식을 하고 성북동 ‘효재’를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들과 얼결에 고수레 놀이를 한 후, 겨우겨우 바닥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복 디자이너이자 자연주의 살림꾼으로 유명한 효재 선생의 이야기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유쾌한 이중생활’을 담은 책 『효재의 살림풍류』는 생각보다 매우 예쁜 책은 아니다. 아기자기한 느낌도 없다. 물감을 아껴 써서 스케치가 더 살아 있는 느낌이다. 반은 사진이고 반은 글인데, 사람에 따라 눈길이 더 오래 머무는 사진이 있고, 글이 있다. 효재 선생은 가끔 독자로부터 “선생님, 다 연출이죠?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아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선생은 따로 답하진 않는다. 몸으로 보여준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독자는 자신의 질문이 우문이었음을 깨닫는다.

 

『효재의 살림풍류』에는 지난해 성북동 살림을 날라다 만든 ‘제천 시골집’ 이야기부터 제비꽃떡 찌는 법, 산야초 구절판 만드는 법, 겨울에도 봉숭아 물 들이는 법 등이 정성스레 담겨 있다. 청소기 쓰는 시대에 빗자루를 쓰는 살림꾼 ‘효재’ 선생. 그가 제천에서 5일, 서울에서 2일을 지내는 까닭은 시골이 주는 정신적 풍요로움 때문이다. 경계 없는 이웃들이 좋아, 폭풍한설이 몰아쳐도 안면 근육이 떨리는 증상이 와도 부지런히 제천 집을 완성한 효재 선생. 일상이 예술인, 그는 누구보다 노동을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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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도 흥을 더하면 놀이가 된다


꽤 오랜만에 책을 쓰셨어요. 서울과 제천을 오가며 지낸 근황이 담겨 있습니다. 부제가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유쾌한 이중생활’이에요.


효재의 고정 독자들이 책을 많이 기다렸어요. 책을 읽고 문자를 보내준 독자도 있어요. 내가 눈이 떨려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읽고는 마음이 아팠다면서요. 고맙더라고요. 책을 읽어주시니 고맙죠.

 

책 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온 계절이 들어 있어요. 지난 1년 동안의 선생님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돌멩이와 책이에요. 책이 제본될 때, 저는 흥분해 있어요. 아기를 낳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의 심정이랄까요? 이번 책을 만들면서도 ‘아 나는 정말 책을 사랑하는구나’, 느꼈어요. 우리나라는 지구를 기준으로 보면 작은나라지만, 정말 알토란처럼 아름다워요. 『효재의 살림풍류』가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좋은 교본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방자치단체에서 많은 간행물을 만들잖아요. 지도도 넣고 맛집도 소개하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잠깐 보고 승용차 뒷자리에 박아놔요. 왜 그럴까요? 갖고 싶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나는 이 책이 사람들이 가져가고 싶은 책이었으면 해요. 좋은 교본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제천 살이를 시작한 계기가 배우 김수미 선생님의 전화 한 통이었다고요. 제천에서 본 구절초에 마음이 빼앗겨 새 터를 지으셨어요.


김수미 선생님이 제천으로 밥 먹으러 가자고 하신 게, 2014년 10월이었어요. 제천에 가보니 온통 쌀가루 뿌려놓은 듯 구절초가 하얗게 피어 있었어요. 이런 곳에 살면 좋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그럼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살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눌러앉은 곳이 충분 제천 백운면이에요. 난방은커녕 비까지 새는 둥근 양은집을 근사한 화덕이 있는 요리 스튜디오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고속버스를 자주 탄 해는 처음이에요. 날이 추울 때도 많았지만 고달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제천에 내려가면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결정이 빠른 편이세요?


빨리라는 것도 길어요. 그냥 해요. ‘이거 좋겠다’ 싶으면 벌써 하고 있어요. ‘여기 좋겠다’ 하면 벌써 살고 있고요. 힘들겠다는 생각은 크게 안 해요. 본능이고 성격이고 운명인 것 같아요. 앞뒤 생각 안 해요.

 

책을 읽다 보니, 제천 사과와 백운 막걸리, 가마솥 손두부가 먹고 싶었고, 전통빗자루를 쓰고 싶었어요.


시골에서 지내다 보면 소개랄 것 없이 저절로 알게 돼요. 찾아 다니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돼요. 무심코 지나쳤던 간판인데 어느 날 길을 잘못 든 덕분에 두부집을 알고, 이웃 분들의 정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어요. 제천은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의 모습이 그대로예요. 신기할 것도 없이 익숙한 모습, 나만 뻥튀기처럼 뻥 튀겨서 늙어 있어요. (웃음) 제천에 갔다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면 양손이 무거워요. 백운 막걸리를 친구에게 소개했더니, “묵은 김장 김치와 탁주가 치맥을 눌렀다”고 술자리 사진을 찍어 보내줬어요.

 

아무래도 여성, 주부 독자들이 효재의 살림법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또 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하기 싫어하는 주부들도 많아요. 이유가 뭘까요?


생각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북동 ‘효재’ 직원들은 설거지 할 시간이 없어요. 손님들이 무척 많으니까요. 행사를 치르고 나면, 싱크대에 그릇을 더 이상 포갤 수 없을 정도로 그릇이 나와요. 그러면 직원들에게 그냥 퇴근하라고 해요. 설거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요. 왜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생각해보면, 온통 그릇이 섞여 있어서 건드리기가 싫은 거예요. 나는 설거지 할 때, 그릇을 종류별로 정리한 다음 닦기 시작해요. 설거지를 다 마치고 주방을 빠져나오면 개운해요. 설거지를 통해 기도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행위 자체가 자기를 정화해요. 물을 틀어놓은 것 자체로부터 사람 마음이 씻겨요. 뭔가를 헹구잖아요. 이 과정이 기도가 되고 수양이 돼요. 설거지 할 때 나는 고무장갑을 안 껴요. 장갑이 뜨거운 물에 녹아서 그릇에 자국이 생기고 미끄러워서 그릇을 자주 깨요. 맨손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릇을 잡으면 느낌이 달라요. 가정집에서 아무리 설거지 양이 많아도 우리 가게만큼은 아닐 거예요. 사람이 설거지하는 게 힘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요. 세상에서 가장 힘들 때를 생각해봐요. 이런 설거지하는 게 뭐가 힘들어요.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효재 주방에 있는 설거지 더미를 보면 무섭대요.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충격 받았어요. (웃음)

 

그래도 “효재 선생님처럼 살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으시죠?


들어요. 하지만 직접 우리 가게에 와서 하루 동안 내 모습을 지켜보면 전혀 그렇지 않대요. 인터뷰를 해도 풀 뽑으면서 하니까요.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으니까, 자기 팔자가 제일 좋다고요. 자기는 이렇게 고달프면 효재처럼 안 살겠다고 해요. (웃음)

 

인터뷰하기 전까지도 계속 서 있으셨어요. 배추전을 부치시느라. (웃음)


원래는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자주 해요. 오늘은 제천에서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평소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편이시잖아요. 달리 운동이 필요 없으시겠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움직이니까요. 배추 사러 갈 때도 걸어가요. 비가 오면 비옷을 입는데, 저만 걸어 다녀요. 배추는 무거우면 배달을 시키고 와인은 배달이 안 되니까, 가방에 넣어 품고 와요. 이렇게 살아도 감기는 많이 안 걸리는 편이에요. 감기 신호가 오면 양말을 두 개 신고 목을 따뜻하게 수건으로 감싸고 있어요. 그러면 감기가 비들비들 오다가 나가버려요. 목을 싸매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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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처럼 사는 법? <삼시세끼>처럼


최근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가 잔잔하게 화제를 모았어요. 『효재의 살림풍류』를 보는데 이 프로그램이 생각나더라고요.


집에 TV가 없어서 보진 못했는데,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알아요. 궁한 데 있으면 누구나 차승원이 될 수 있어요. 궁함에서 오는 기발함이 있는데, 『효재의 살림풍류』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창조의 신이 있어요. 제천 집 옆에 쿠킹 스튜디오 ‘달’을 만들 때, 철사 값만 80만 원이 들었어요. 원래 있던 둥근 양은집에 철사줄을 천장에 매달아 완성했어요. 나머지는 있는 살림 나르고, 말린 옥수수며 돌은 자연에서 가져왔어요. 비용은 적게 들었지만 공간의 균형미를 맞추는 데는 두 달이 걸렸어요. 머릿속에서는 백만 개의 가구를 뺐다 집어넣었다 했어요. 하지만 어울리지 않았고 돈이 많이 들고 아름답지 않았어요. 돈 안 들이고 하는 인테리어는 자칫 구질구질할 수 있어요. 그 경계를 잘 지켜야 정다운 공간으로 완성돼요.

 

앞치마, 행주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주부를 가장 빛나게 하는 파티 웨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주부들이 앞치마를 안 쓰는 이유는 예쁜 앞치마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예쁘면 입고 싶어져요. 앞치마를 하고 요리를 하다 보면 음식물이 튀고 자국이 안 지워지는 경우도 있어요. 전 이 자국이 그 사람의 살림의 역사라고 생각해요. 요즘 강의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아이 키우면서 작아진 옷을 한 두 개씩 남겨 놓았다가 조각이불로 만들라는 이야기예요. 나이 때마다 하나씩 옷을 남겨 놓았다가 등판을 잘라서 실로 이으면, 예쁜 작품이 돼요. 천사의 날개 옷이에요. 아이가 집에서 잘 때, 여행가는 길 차 안에서 그 이불을 덮어줘 보세요. 조각 이불의 옷들을 만져 보면서, “이 옷은 네가 세 살 때, 앞집 아이와 함께 놀 때 입은 옷이야”, “이 옷을 입었을 때는 어금니가 빠졌을 때지” 이런 이야기를 아이한테 해주는 거예요. 그리움이 별 건가요? 이런 이불은 집에 도둑이 들어와도 안 훔쳐가요. 도둑이 훔쳐가지 않는 게 가보예요.

 

“그리움이 있는 사람은 부자”라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성공한 사람을 만났는데 오만하고 교만해요. 이유를 찾아보니 이 사람은 추억이 없어요. 추억이라고는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기억뿐이에요. 어렵게 그 분과 시간을 맞춰 짧은 여행을 갔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갔는데 가는 길은 꽤 고달팠어요. 그 분께 제가 말했어요. “일정이 힘들었어도 지금 이 풍경이 내일 아침에 또 생각날 거”라고요. 다음 날 문자가 왔어요. 내 말이 맞았다고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기준이 뭐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준은 유명하거나, 성취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았거나, 돈을 많이 번 경우겠지요.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 사람이 된 게, 정말 좋을까요? 내 경우는 엄청 불편해요. 나는 약간 오타쿠 같은 성격이 있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평소에도 투쟁하면서 살아요. 택시를 탔는데 내 얼굴을 알아보는 기사님이 있어요. 이건 불편한 일이지 성공한 게 아니에요. 성공이란 자기 내면을 극복했을 때 얻는 거예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애가 있어요. 장애를 극복하는 게 성공이에요. 되게 뻔한 이야기 같은데요. 이 뻔한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면 뻔해지지가 않아요. (웃음)

 

효재처럼 사는 법, 살림에 관한 이야기를 여쭈려고 했는데 자꾸 사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책에 담긴 사진도 좋았지만, 단상도 좋았어요. 요즘 사람들의 인사말을 지적하셨는데, “예전에는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어요’가 인사였는데 지금은 ‘땅값 얼마나 올랐대요? 그 정치인이 어떻다면서요?’가 돼서 아쉽다”고 하셨어요.


너무 거칠어졌고 심각해요. 자기 이야기는 안 하고 남 이야기만 해요. 그렇다고 세상 이야기도 아니에요. 어떤 여배우가 살쪘다는 이야기부터 스캔들까지, 아니면 오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혀 힘들었다고 하고요. 이런 이야기가 들리면 나는 화제를 바꿔요. 얼른 배추전 이야기를 꺼내요. 줄기가 맛있냐? 잎이 맛있냐?고 묻고, 밀가루전이 맛있냐? 메밀전이 맛있냐?”고 물어요. 사람이 동물이라 참 감사해요. 오전 11시에 미팅을 하면 아점을 먹을 시간이잖아요. 4시쯤 미팅을 하면 슬슬 배가 고플 타이밍이고요. 미팅을 하기 전에 간단히 배추전을 대접해요. 요즘 배추 한 포기가 1,300원이에요. 이틀 동안 작업실에 오는 사람들을 다 먹일 수 있어요. 배추전을 먹으면서 대화하면 이야기의 소재가 달라져요.

 

‘효재처럼 사는 법’은 뭘까요?


<삼시세끼>처럼 사는 거예요. 있는 것으로 극대화 시키면 돼요. 흥부처럼 시작해서 놀부처럼 끝나는 거예요. 흥부네는 끼니를 챙기기 바빠서 철학이 없어요. 하지만 놀부네는 문화가 있어요. 누구에게나 창조의 신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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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스타일북스

 


서재를 보니 만화책이 정말 많아요. 만화방에 온 듯한 느낌인데요. 요즘도 읽으세요?


눈이 잘 안 보여서 자주는 못 봐요. 독일제 돋보기를 써야 해서, 안타까워요.

 

가장 좋아했던 만화는요?


이미라 작가의 『은비가 내리는 나라』예요. 고추 따는 것부터 시작해서 너무 재밌게 봤어요. 서른이 넘어서 만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어릴 때는 오히려 만화책을 전혀 안 봤어요.

 

왜 성인이 돼서 만화책을 보기 시작하셨어요?


홍역은 죽어서라도 앓는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어렸을 때 안 했던 걸 결국 해요. 어릴 때는 결벽증이 있어서 만화방에 안 갔어요. 만화책이 더러워서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대신 어린이신문을 봤어요. 이모들이 학교 선생님이었거든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무척 가난한 시절이었어요. 학교에서 옥수수빵을 나눠주던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신문을 읽은 게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신문에서 잊지 못할 이야기를 읽었어요.

 

어떤 이야기요?


나사에서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전세계 언어로 우주에 쐈대요. 그 때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지금의 내 삶은 그 때 이미 지배된 것 같아요. 손을 딱 대면, 문이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아이들은 눈깔사탕, 딱지 하나에 몰입해 있는데, 나는 그 뉴스를 읽고 생각의 단계가 층층층 열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그 때부터 나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달랐어요. 애들은 땅따먹기하고 고무줄 놀이를 할 때 나는 동네 편물집에서 실을 요만큼 얻어서 인형옷을 만들었어요. 나는 인형옷으로는 50년 경력자예요. 친한 잡지 기자가 선생님은 어떻게 인형옷 치수를 이렇게 잘 맞추냐고 놀라워해요. (웃음) 동화책은 지금도 읽어요. 글자가 큰 편이니까요.

 

지금까지 ‘효재’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려보면 얼마쯤 될까요?


글쎄요. 숫자가 약해서요. 아마 엄청나겠죠.

 

독자들도 자주 만나시는 편이신데요. 어떤 이야기를 자주 들으세요?


책을 보면서 다 연출일 거라 생각했대요. 그런데 이 공간이 책이랑 너무 똑같아서 감동이라고, 책과 같은 공간이 있는 게 행복하다고 그래요. 전국에서 독자들이 와요. 팬 미팅을 하면, 책에 실린 사진을 일일이 다 찍어와서 실제랑 하나하나 다 비교해봐요. 멀리서 오신 분들이 많으니까 제철에 나는 재료로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그래요.

 

행사나 강연 제안을 많이 받으시는데요. 일하실 때 선택의 기준이 있으세요?


딱히 없어요. 방송은 되도록 신중하게 선택하고요. 강의는 대부분 하려고 해요. 책 인터뷰 같은 경우는 작은 지면이라도, 사보라도 해요. 글 쓰는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말은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지는데, 글은 평생 가요. 세상이 존재하는데, 글은 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보자기 아티스트로도 유명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대한민국이 보자기 매듭 열풍입니다.


전국이 보자기예요. 모든 백화점, 시장 떡집이 효재 스타일의 보자기 매듭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주 흐뭇해요. 우리가 신경을 많이 쓰면 뇌졸중에 걸리지만, 말초신경을 자주 자극하면 치매 예방이 돼요. 지금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잠재된 재능을 발견하는 시대예요. 사랑한다, 좋아하는 말도 계속 들으면 공허해요. 바람 잡는 말로 들려요. 그래서 마음은 손으로 표현해야 해요.

 

새해입니다. 책에 실린 남편 임동창 선생님의 신년 메시지 ‘쉿!’을 읽고, 탄성이 나왔어요. 이 말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이야기 아닐까 싶었어요. 우선 좀 조용히 들어야 하는 세상이기도 하고요. 효재 선생님께도 신년 메시지를 여쭙고 싶어요. 화선지에 한 문장만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알아서.” 사람은 누구나 창조의 신, 지혜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 알아서 해요. 누구나 지금 한 일이 최선이라고 하면서 사는데, 세월이 흐르면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실수를 통해 사람은 또 발전하니까요. 지금은 최선이었지만 6개월 뒤에는 실수였어도, 모든 건 거름이 돼서 성장할 수 있어요. 지금 최선이면 후회하지 않아도 돼요. 사람들이 너무 학문적으로 풀어놓으니까 고달픈 거죠. 난 노동이 즐거워요. 노동 없이 성찰이 될까요? 한 번 노동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 봤어요. 절대 성찰할 수 없어요. 오만 잡생각만 떠올라요. 노동의 대가는 엄청나요. 하물며 내 가족을 위해 하는 살림만큼 더 빛나는 일이 어디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 밥 주라는 거 아니잖아요. 내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이게 왜 귀찮을까 싶어요. 얼마나 귀한 일인데요.

 

『효재의 살림풍류』를 읽을 예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커피 두 잔 값이잖아요. 커피는 마시면 끝이지만 책은 없어지지 않아요. 화장실 앞에 한 권 꽂아 놓고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책보다 멋진 인테리어가 있나요?

 

성북동 ‘효재’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 여러 사람이 서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딱 한 명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면 누구에게 주고 싶으세요?


젊은 남자 줄 거예요. 집에 가서 엄마나 아내, 장모님 주라고요. “엄마가 좋아하는 그 사람 있잖아. 나 그 선생님 만났어”라면서, 책을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이 한 잔의 시원한 물 같았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집에 갈 때 빈 손으로 안 가잖아요. 롤케잌을 사고 와인을 사는데, 이건 다 서양 거예요. 대신 책을 한 권 들고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대화가 바꿔요. 여기 가봤어? 이거 먹어봤어? 묻고 답하면, 만남이 달라져요. 주부들의 수다가 바뀌면 저절로 살림이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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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의 살림풍류 이효재 저 | 스타일북스
우선은 성북동 살림을 날라 만든 제천 새 집에 대한 사연부터다. 효재 공간은 물론이고 이곳에서 만난 손두부와 막걸리, 빗자루 장인들과 인연을 맺는 동안 느낀 단상을 풀어놓은 글도 사진을 곁들여 들어보는 재미가 크다. 이어지는 효재의 제천식 살림 소개는 그야말로 ‘풍류’라는 단어에 걸 맞는 유유자적함을 지녔다. 제철 꽃놀이, 혼자라도 가능한 풍류놀이, 약초를 이용한 밥상과 자연음식 레시피 그리고 다양한 소품 만들기의 노하우까지. 효재 고유의 감각 그리고 제천의 자연에서 얻은 감성으로 완성한 책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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