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글을 쓰는 사람. 설령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뭔가를 써내려 가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어제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쳐가는 사람이 곧, 작가일 것이다. 명문장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의자에 꼼짝없이 잡혀있는 무거운 엉덩이와 노트 위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펜촉의 끝, 방 안의 묵직한 공기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흔들리는 나무의 기운이 한 데 모여서 완성되는 성질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난히 좋은 작품들을 써내는 작가들에게는 무엇이 있는 걸까? 특별히 이들의 글이 더 좋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마테오 페리콜리는 그들의 창 밖 너머에서 그 답을 찾는다.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는 전작 『창밖 뉴욕』 에서 뉴욕에 사는 크리에이터 63인의 창 밖 풍경을 묘사한 적이 있다. 『작가의 창』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파리 리뷰>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으로, 전세계의 작가 50명의 창을 통해 글쓰기의 다양한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창 밖 풍경들이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는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창은 궁극적으로 세계를 위한 접촉의 통로이자 동시에 밖과 안을 분리해주는 지점 이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창문처럼 구멍이 뚫린 책 표지를 열면, 작가가 직접 글로 써 내려간 그들의 작업실과 함께 마테오 페리콜리가 그린 창 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15년간 집필을 해왔다. 자신의 일부가 언제나 거대한 경관과 얽혀 있어, 자연의 움직임을 쫓다 보면 이 세계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 베이징의 원룸 아파트에 사는 작가 시 추안은 고층 건물의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는 더 이상 창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한 편, 창 밖 풍경은 계절의 변화처럼 느리고 보이지 않는 과정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상실감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고를 떠나, 글을 쓰면서 반복해서 봐 온 그 풍경들은 일에 집중하려 할 때 시각화되어, 작가적 상상력의 문이 되기도 한다.
창을 통해서 본 바깥 세상은 왠지 아득하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사색이 필요한 순간마다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이곳의 소란스러움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하지만 창문을 열면 그 곳의 세계 역시 이 곳과 다르지 않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창 밖 너머의 풍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온다. 그것은 아름다운 해협과 무성한 야자수일 수도, 거대한 고층 빌딩과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일 수도 있다. 풍경은 사는 모습처럼 다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풍경들은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 분명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우리는 뭔가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이 들 땐, 창으로 가까이 다가가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자. 그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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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창마테오 페리콜리 저/이용재 역 | 마음산책
미묘한 감정, 차이, 진폭의 순간을 페리콜리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린 작가 50명의 창밖 풍경과 그에 해당하는 글을 모아 『파리리뷰』에 연재했다. 『작가의 창』은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이루어진 이 연재를 하나로 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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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좋은 건 좋다고 꼭 말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