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는 한국어 맞춤법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하나 칼럼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일부 단어의 경우 그대로 싣고 있습니다. 이번 편은 맞춤법에 구애받지 말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얼마 전 이스탄불에 다녀왔다. 자랑은 아니고 본격 크로스오-바 스펙터클 인공지능 퓨전 신상 칼럼 기법을 구사하려는 본 꼭지의 특징상 음악 얘기로만 일관하면 식상할 것 같아서였다. 마치 음악 칼럼인 듯, 여행 칼럼인 듯, 국제 시사 에세이인 듯 헷갈리면서도 질 좋은 읽을거리를 채널예스 독자님들께 선사하겠다는 일념으로 귀찮은데 굳이 거기까지 다녀온 것이다. -는 뻥이고, 꽃샘추위가 가뜩이나 외로움과 쓸쓸함을 자극하는 와중에 어마어마하게 싼 비행기 표를 발견해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또 카드로 긁었다. 내 여행 지론은 돈 모아서 여행 가는 게 아니다. 벌면서 열라 고생한 기억 때문에 돈 아까워서 못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일단 아무 생각 없이 긁어서 가면 일단 출발이 연하고, 내 돈 아니라는 압박감에 쫄려 여비도 절약하게 되고, 다녀온 다음엔 말끔해진 활력으로 즐겁게 그 돈을 갚아나갈 수 있어서 더 좋은 프로세스라고 본다. -는 개뿔, 비싼 이자 어쩔ㅠㅠ
터키행 항공권이 싼 이유는 있었다. 위험해서였다. 올해 들어 벌써 네 번이나 테러가 발생한 나라다. 엊그제도 수도 앙카라에서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고, 1월엔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관광지 술탄 아흐멧 광장에서 폭탄 테러가 자행되어 관광객 11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 그런 곳에 과연 여행을 가도 되겠나 싶었다. 터키는 난리통인 시리아와 국경이 넓게 맞닿아 있어 국제 정세 심란하기론 말도 못 하는 중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와 치고받는 와중에 엄한 러시아 군용기를 격추해 빡친 러시아와 갈등 중이고, 게다가 작년부터 휴전을 깨고 쿠르드인 자치구를 다시 두들겨 패면서 열 받은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보복 테러까지 이어지는 등 새빨간 여행 자제 경보가 뜬 나라인 것이다.
가뜩이나 내가 사는 동북아시아 정세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와중에 그렇게 위험한 곳에 꼭 여행 가야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푸틴식 독재 따라쟁이 같은 터키 에르도안 정부도 뭔가 신경 쓰이고. 하지만 독재나 테러리즘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글러먹은 행위이고 그에 굴복한다는 것 또한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당당히 비행기에 올랐다. -는 건 뻥이고 나는 잃을 게 없어서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IS나 PKK 테러리스트 중에 혹시나 세계적인 칼럼 박상의 턴테이블 애독자가 있다면 너 인마 좀 그러지 마라. 염병언집웃짝쇠풀뜯는짓이냐 안 되더라도 제발 좀 말로 하자. 응? 그럴 시간에 제발 이런 아름다운 음악 좀 들으면 안 되겠니.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 처음 보는 세상은 아름답고 슬펐지.
나는 비행기 안에서 이상하게 못(MOT)의 「날개」를 몹시 듣고 싶었다. 날개 옆에 앉아서 그런 것 같았다. 바보같이 앨범을 챙겨오지 않아 속으로만 계속 중얼거렸는데, 뭔가 위험한 곳에 간다는 쫄림과 처음 보는 이스탄불은 어떤 곳일까 기대되는 마음이 섞여서 이 음악이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스탄불 공항에 내린 뒤부터 이 음악처럼 아름답고 슬펐다. 양고기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들 사이에 꽉 낀 채 내가 케밥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면서 지하철과 트램에 시달렸고, 급기야 배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는데 너무 아름다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배에서 내리자 걸으면서 길빵 하는 담배 연기가 그 입으로 들어와 슬펐고, 커다란 갈매기와, 희뿌연 안갯속과, 가파른 언덕길을 낑낑거리며 걸어 아시아 지구에 예약한 숙소에 찾아갔다. 우리나라 방송에 나왔던 터키인 에네스 카야를 닮은 남자가 프런트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너 참 반듯하게 생겼군. 어디서 왔니?” (미안하다. 나는 늘 영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거 남 말 하시네. 남한에서 왔어.”
“오 형제여, 거기도 요즘 난리던데 괜찮은 거니?”
“응? 뭐 우린 괜찮은데.”
그런 대화를 나누자 일말의 경계심이 스르륵 풀렸다. 외국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뭐 세계적인 또라이 김도발 3대 세습 국가와 휴전 상태로, 만날 미사일을 쏘네 핵을 터트리네, 위협을 받는 극동의 화약고처럼 보일 테지. 하지만 우린 여기서 아무렇지 않게 삶을 지속하고 돈 걱정하고 소주 마시고 김치찌개를 끓이지 않는가. 이스탄불도 마찬가지였다. 테러가 벌어졌던 곳 옆에서 시민들은 여전히 케밥을 굽고, 개와 고양이는 길바닥에 드러누운 채 별다른 긴장 없이 삶을 지속해 가고 있었다. 도리어 경찰이 쫙 깔려서 치안이 안전한 느낌이었고 실제로 여행 내내 소매치기나 사기꾼을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자 어쨌든 본 칼럼의 정체성인 음악 얘기다. 일단 본토 케밥을 섭렵하러 거리로 나섰는데 어디선가 음악 방송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네마다 있는 모스크에서 하루 다섯 번씩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라는 음악이었다. 무슬림 국가를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그 ‘웅혼한’ 볼륨이 사뭇 신비롭게 들렸다. 악기 없이 사람 목소리만으로 복잡한 음을 얹어 신기한 발성으로 부르는데 서서히 고조되면서 꽤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도 많았다. 만약 저기서 ‘삑사리’가 나면 어떻게 되나 걱정될 만큼 높은 옥타브인 경우도 있었다. 아잔을 전담하는 ‘무에진’이라는 보컬리스트가 아무나 되는 건 아니겠지만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다. 가사엔 ‘알라는 위대 하도다’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외국어라 나는 모르겠고 그저 사람들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종교적 색채가 여행지의 색다른 경험을 끼얹어대 좋았다. 아잔이 울려 퍼지는 동안에도 홍차는 끓고, 케밥 되네르(Doner)는 돌고, 아이스크림은 치대지고,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고, 갈매기는 끼룩거렸지만 그 BGM 속에선 몹시 처연하게 보였다. 그 모든 공간과 시간을 뒤덮어버리는 강력하고 거룩한 음색 속에서 맥주 마실 데를 찾던 나는 뭔가 좀 숙연해지면서 그냥 터키식 홍차나 마시고 싶어졌다. 급기야 지나간 인생도 좀 반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그 여자한테 좀 자상할 걸…, 그때 그 친구가 좀 안 웃겼다고 약 올리지 말 걸…. 반성 뒤엔 혹시나 해서 부디 누군가와 썸 좀 타게 해주세요, 살짝 빌기도 했다. 처음 듣는 색채의 음악이 나 따위 개그 지향 개구쟁이 인생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그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참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아잔 소리는 새벽에도 어김없이 큰 볼륨으로 온 이스탄불에 쩌렁쩌렁 퍼져서 내게 더욱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가뜩이나 시차 때문에 뜬눈으로 새운 나를 날마다 거룩하게 때려 깨웠다. 며칠째 새벽에 깨 황망한 상태일 때 또 오늘의 주제곡 「날개」가 생각났다. 8년을 기다리다 최근에 3집 <재의 기술>을 낸 못, 밴드의 풍성한 사운드로 다시 돌아온 못, 더 깊은 우울의 연못에 빠진 것 같지만 못생긴 것 같지 않은 못(세계적인 칼럼이지만 PPL 아닙니다) -의 1집에 실린 오래된 곡이다. 조식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호스텔 공용구역 뒷마당에서 느린 와이파이 유튜브로 뚝뚝 끊기는 「날개」를 한없이 반복해서 듣는데 어디선가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내 무릎에 앉아 식빵을 구웠다. 못의 음악에 이끌린 것 같았다. 터키라고 길냥이가 막 ‘터키쉬 앙고라’고 그러진 않았지만 이스탄불 어디에서나 느긋하고 예쁜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는데 내게 은혜를 베푼 그 보드라운 고양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날개」를 듣는 동안 마치 깨지 않는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묘하게 슬펐다.
우린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
함께 보낸 날들은 너무 행복해서 슬펐지
우린 서툰 날갯짓에 지친 어깨를 서로 기대고 깨지 않는 꿈속에서
영원히 꿈꾸기만 바랬어
- 못 「날개」 중에서
이 아름다운 음악의 이 아름다운 가사가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나는 빚쟁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높이 날아서 이스탄불에 왔고, 처음 보는 이국의 도시는 너무 아름다워서 슬펐던 것이었다. 지나간 인연들이 불현듯 몹시 그리웠다. 돌아가기 정말 싫었다.
이스탄불에 나흘밖에 있지 않은 건 미친 짓이었지만 카드 한도를 초과하는 건 더 미친 짓이라 나는 돌아와야만 했다. 못 3집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이이언 씨의 관조적이고 묵시적인 목소리가 어쩐지 새벽의 이스탄불 ‘아잔’ 도입부처럼 들릴 지경이다. 다시 돈 벌어야 한다는 우울 속에서 마음이 아름답게 거룩해진다. 이게무슨언집웃짝쇠풀뜯는소리냐 오늘 철 지난 개그를 많이 쓴 것도 깊이 반성한다.
어쨌든 ‘아잔’이 됐든 못(MOT)이 됐든 좀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무대뽀와 전쟁과 테러에 굴하지 말고 터키와 중동이 다시 평화를 찾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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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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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