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목요일 저녁, 논현역에 있는 콜라보 서점 북티크에서 『손지애. CNN. 서울』 출간 기념 저자 손지애의 강연회가 열렸다. 강연회는 70분 남짓 진행되며 저자 손지애와 책에 대한 궁금증을 잔뜩 안고 온 청중들의 열띤 질문을 통해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손지애는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 사실에 대해 쓸까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여태까지 겪었던 많은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에 대해서 쓰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그렇게 완성된 이 책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세상은 참 넓어요. 할 일은 참 많고요. 제 삶도 여태까지 그런 식으로 흘러왔어요. 여러분들 역시 삶에 있어서 어느 시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앞으로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제 딸에게도 늘 말합니다. 인생의 모든 단계는 그다음 단계를 가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요. 그러니 성공했다고 여기에 너무 매달리거나, 실패했다고 너무 좌절하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 손지애는 누구나 인생의 새 페이지를 열 때는 절반은 두렵고, 또 절반은 설레는 감정을 느낀다고 말하며 그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도록 청중들을 격려했다. 관객들은 손지애의 기자 생활 당시의 궁금증에 대한 질문부터 삶에 대한 조언까지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다.
언론인으로서 오랫동안 계셨는데, 많은 뉴스를 접할 때 그중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New이기 때문에 뉴스(News)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일 보면 오늘의 뉴스도 하나의 역사입니다. 요즘은 뉴스의 홍수다 보니 오히려 뉴스에 무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북한 관련 문제가 그렇죠. 저는 이러한 문제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안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미칩니다. 국제 흐름에 대해 무뎌진 감각을 좀 더 날카롭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CNN과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에서 외국인 동료와 일할 때 갖춰야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글로벌한 사회에서 함께 일을 할 때는 글로벌 시민 정신을 갖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에 있건 미국에 있건 아프리카에 있건 사람의 선과 악은 거의 비슷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궂은일을 마다치 않는 그런 모습들 말이죠. 그런 사람들은 모두 좋아합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글로벌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자기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과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글로벌 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질적인 요소가 오히려 두 사람을 이어주는 교량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면모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상대방과 인간적인 공통점을 찾아 나가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어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입니다. 그런데 최근 6년 만에 슬럼프가 왔습니다. 기자 생활 당시에 슬럼프를 겪으셨다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일했던 <비즈니스 코리아>는 처음에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잡지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잡지사가 작은 것이 결코 저의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일하는 회사가 작다는 것의 최대 장점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거든요. 한참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은 모두 배우고 하면서 기사를 열심히 썼어요. 그러면 이번 기사가 저번 기사보다 더 나은 것 같으면서 성취감이 들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이번 달 기사가 지난달 기사보다 좋은 것 같지가 않은 겁니다. 내가 열심히 뛰어도 튀어 오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때 제가 쓴 기사를 모두 출력해서 돌아다니면서 외신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내 역할이 뭔지 답이 안 나올 때, 여기가 더 이상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는 슬럼프가 찾아왔고, 그때 저는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났어요.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해서 무조건 그만두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른 방식의 자극을 추구해야 할 시기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는 성공 가도를 쭉 달린 것 같은 사람으로 비치는데, 그럴 수 있었던 노하우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제가 직장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느꼈던 건 직장이 잘 돼야 내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전하고 잘 되어야 직장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었어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충실하게 일을 하면 그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맡아도 단순히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위해서 내가 배워야 할 것, 해야만 하는 것, 이를 통한 성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못 하는 것도 많아요. 저 같은 경우는 숫자에 굉장히 약해서 지국장으로 지낼 당시에는 회계 일까지 맡는 경우가 있었는데, 정말 고생했습니다. 저도 못하는 것은 못합니다. 하지만 잘하는 건 잘해요. 그래서 잘하는 것은 계속 발전시키고, 못하는 것은 조금씩 줄이고 하면서 잘하는 걸 더욱 잘해서 남들이 저에게 못하는 걸 시키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렇게만 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습니다.
책의 내용에 한 우물을 파서 열심히 한다면 차근차근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이 종종 나오는데요, 저는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게 조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시작해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느꼈거든요. 손지애 작가님의 이런 시각이 한국의 상황에는 조금 맞지 않는다고 느끼지는 않으시나요?
제가 보기에도 차근차근히 한 회사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흔히 대기업 입사나 명문대 진학과 같이 가장 좋은 트랙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틀린 생각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만이 행복하고 성공한 길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길을 걸어갔던 사람 중에서 성공한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어요. 정형화된 길을 가지 않고 아예 피라미드에 들어가지 않거나, 자기만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등 다른 길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분명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시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같은 길로 달려왔는데 우리 모두 행복하지는 않잖아요. 잘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면서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길을 걷기를 요구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저는 모두 같이 모르고 가는 길이라면, 가고 싶은 길로 가서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3년 차 직장인인 26살 여자입니다. 저의 능력과는 별개로 젊은 여자이기 때문에 겪고 감수해야만 하는 시선이나 불편함이 분명 있다고 느낍니다. 작가님 역시 이런 시기를 겪으셨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여성으로서 겪는 약간의 무시는 한국에만 한정되지 않고 아직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많이 고쳐졌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죠. 어떻게 극복하셨냐고 했는데, 사실 저도 좋은 대처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커피 심부름 같은 걸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보기도 하고, 모른 척 해보기도 하고, 열심히 거부하기도 해봤는데 잘 고쳐지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분들이 포기하고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5년, 10년 후에 일하는 여성들도 같은 불편함을 느껴야 합니다. 제 시도가 만족할 수준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제 뒤를 따라오는 여성분들에게는 조금 더 편하게 길을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모든 여자는 하얀 눈의 첫 발자국이에요. 그 첫 발자국을 잘 내디뎌 주셔야지 뒤의 여성분들도 잘 따라오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으로서 직업적인 커리어와 가정 모두를 지키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두 가지를 잘 꾸려나갈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이었나요?
모든 여성의 고민이죠. 이제는 여자들이 다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모든 남성이 가져야 할 고민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굉장히 힘들어하는 이유는 한 사람만 감당해서 그래요. 어디까지나 가족이라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모여서 꾸려나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의 열쇠는 다름 아닌 자기 파트너에게 있어요. 나는 내가 다 할 수 있어,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저는 불가능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분명 어딘가 균열이 생겨요. 여자의 몸이 망가지거나, 아이들이 불안해하거나, 남편이 외톨이가 됩니다.
스웨덴이 비교적 남녀평등이 잘 이루어져 있는 나라인데, 스웨덴에서는 육아 휴가를 남녀가 동등하게 나누어 써야 한다고 합니다. 아빠가 6개월에서 1년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보게 돼요. 제게 그 이야기를 해준 스웨덴 남성분은 그런 시기를 보내고 나니까 진정한 아빠라는 것이 뭔지를 깨달았다고, 아이의 인생에서 자신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꼈다고 해요. 그렇게 남성분들도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충실한 아빠가 되어준다면 부부가 그런 부분에서 갈라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하던 일에 회의감을 느껴서 작년 말에 퇴사하고 새로운 일을 하려고 준비 중인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가진 자아와 임신과 육아라는 것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자아가 계속 갈등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좋을까요?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려나가는 것에 있어서 적절한 타이밍이란 없어요. 모든 타이밍이 나쁜 타이밍입니다. 새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새 일을 시작했을 때, 이제 막 인정받았을 때,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직장 동료들이 자기를 싫어할 때, 직장 동료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좋아할 때……. 이 모든 조건이 가족을 꾸려나가기 안 좋은 조건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꾸려나가면서 길을 찾으시되, 부부 둘이 함께 길을 찾으세요. 가족 구성원이 다 행복해야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어요. 엄마가 가족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면 처음에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선택 같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건 가족을 꾸려나가고 싶다면, 미루지 마세요. 가족을 꾸려나가되, 단단한 마음의 각오를 하고 길을 찾아가세요.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에 있어서 작가님만의 요령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멀티태스킹을 한다고 해도 우선순위는 필요합니다. 그래야 순서대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할 때는 다른 일에 대해서 전부 잊어버려야 합니다.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엄마의 역할에 완전히 몰입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완전한 직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맡은 역할을 혼동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5분을 나눠서 한다고 하더라도 5분에 충실한 엄마와 5분에 충실한 직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여자 화장실을 가보면 학원 시간을 닦달하는 전화를 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러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사에 출근했으면 아이의 일을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게 하세요. 모든 것을 다 안내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큽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기회를 가져요. 왜냐하면 남과 같이 일할 줄 알게 되거든요. 엄마가 모든 것을 지나치게 잘 챙겨주면 아이가 남에게 뭘 빌릴 필요가 없습니다. 근데 엄마가 모든 걸 챙겨주지 않으면 남에게 빌리기도 하고, 다음에는 무언가를 빌려주고 하면서 타인의 어려운 점을 더 잘 이해하고, 훨씬 더 세상을 넓게 볼 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1등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세상에 훨씬 득이 되는 사람이 돼요. 저는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집단에서 살고 싶고, 그런 사회가 훨씬 더 좋은 사회일 것이라고 가슴 깊이 믿습니다. 그러니까 아이 낳으시면 직장에선 직장인으로, 가정에선 엄마로서 충실하시면서 자신 있게 기르시고, 절대로 아이에게 죄지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엄마가 행복하고 아이에게 잘해준다면, 그건 절대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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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애.CNN.서울 손지애 저 | 김영사
25년간의 외신 기자 생활, G20 정상회의를 통한 공무원으로의 변신, 최연소 최초의 여성 아리랑 국제방송 CEO까지. 그녀의 성공 뒤에 숨은 노력과 도전의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끝없는 도전으로 존경받는 멘토의 자리에 선 그녀가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열정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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