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 뮤지컬 <헤드윅 : 뉴 메이크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과연 헤드윅만의 것일까?
글ㆍ사진 임나리
201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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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헤드윅] 조승우(Wig in a Box).jpg

 

경계선 위를 서성이는 당신의 이야기


헤드윅. 세 글자를 써 놓고 한참 동안 단어를 고른다. ‘그’라고 불러야 좋을까. 아니면 ‘그녀’라고 말해야 맞을까. 이 바보 같은 질문은, 역설적으로, 뮤지컬 <헤드윅>의 핵심을 찌른다. 남성과 여성,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을 반추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여성이 되고자 했던 헤드윅은 조악한 성전환 수술 탓에 일 인치의 살덩이를 매단 채 살아간다. 어떤 성별로도 규정될 수 없는 혼란 속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크기변환_[헤드윅] 윤도현(Tear Me Down).jpg

 

록 밴드 ‘디 앵그리인치(The Angry Inch)’의 보컬로 거듭난 헤드윅은 짙은 화장과 화려한 가발로 자신을 덧칠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여성의 그것이지만, 두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살덩이는 ‘그녀’가 온전한 여성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끝없이 환기시킨다. 이 빌어먹을 운명 때문에 헤드윅은 자신의 반쪽이라 믿었던 남자(토미)로부터 외면당했고, 자신의 곡을 훔쳐 록스타로 성공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헤드윅은 그가 공연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작은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뮤지컬 <헤드윅>은 성소수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헤드윅이 끌어안고 살아가는 ‘불안’이 그들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한 수많은 범주들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 채, 경계선 위의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는 듯한 불안. 이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어느 곳에도 없다. 그렇기에 뮤지컬 <헤드윅>은 낯선 이야기를 가지고도 강력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1994년 맨하튼의 클럽에서 시작해 미국 전역을 열광하게 만들고, 한국뿐 아니라 수십 개 나라에서 공연되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크기변환_[헤드윅] 조정석(Wig in a Box).jpg

 

 

‘골라 보는 즐거움’이 있는 공연


국내에서 10년 넘게 공연되며 올해로 열 번째 시즌을 맞은 본 작품은 <헤드윅 : 뉴 메이크업>이라는 제목으로 관객과 만난다. ‘뉴 메이크업’이라는 부제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확연히 달라진 무대를 준비했음은 물론이다. 뉴욕의 허름한 모텔이 아닌 브로드웨이 극장으로 배경이 바뀐 이번 이야기는 한층 커진 스케일의 세트를 자랑한다. 웅장함과 화려함, 역동성까지 모두 갖춘 무대가 시선을 압도한다. 음악 역시 새로운 편곡으로 재무장했다. 특히 록 밴드 ‘YB’가 ‘디 앵그리인치’의 멤버로 합류하며 변화에 힘을 실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역대 최고의 캐스팅’으로 손꼽히는 라인업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초연부터 10주년 기념 공연까지 다섯 번의 시즌을 함께한 조승우, 2009년 헤드윅으로 변신해 ‘뮤지컬 <헤드윅>의 음악을 가장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윤도현, 세 차례 헤드윅을 연기했던 조정석이 의기투합했다. 특히 조정석은 2년 만의 무대 복귀작으로 <헤드윅>을 선택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들과 함께 헤드윅을 연기할 새로운 주인공은 배우 변요한과 정문성이다. 드라마 <미생>, <육룡이 나르샤>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검증받은 변요한은 뛰어난 가창력까지 겸비한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문성 또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뮤지컬 <사의 찬미>를 통해 저력을 입증한 배우. 선 굵은 남성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헤드윅>을 통해 연기 변신을 예고한다.

 

크기변환_[헤드윅] 정문성(Wicked Little Town_토미).jpg

 

5인 5색의 매력으로 속을 꽉 채운 뮤지컬 <헤드윅 : 뉴 메이크업>은 관객들에게 ‘골라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개성이 뚜렷한 다섯 명의 헤드윅을 두고 선택이 쉽지 않을 테지만, 어떤 배우와 만나든 후회는 남지 않을 것이다. 남는 것은 또 다른 헤드윅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뿐이다. 뜨거운 록의 열기와 진한 잔상을 남기는 메시지가 있는 작품 <헤드윅 : 뉴 메이크업>은 5월 29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상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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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