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꽃, 또한 꽃의 노래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304명 죽음의 순간을 개별적으로 떠올리며 304건의 사건을 지겹고도, 지긋지긋하게 기억하는 일일 테다.
글ㆍ사진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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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문장

 

죽을 때, 적들은 다들 각자 죽었을 것이다. 적선이 깨어지고 불타서 기울 때 물로 뛰어든 적병들이 모두 적의 깃발 아래에서 익명의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 죽어서 물 위에 뜬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중략) 그들의 살아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김훈 『칼의 노래 1』 123~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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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놀이동산을 다녀 온 후배가 내 작업실에 튤립 화분 하나를 가져다 놨다. 선명한 녹색의 잎들이 엇갈려 뻗어있고 길고 가느다란 줄기가 맵시 있었으나 꽃은 아직 피기 전이었다. 설명서대로 이틀에 한 번 물을 흠뻑 주고 응달에 두었더니 봉우리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기해 더 공을 들였다.

 

그 주의 휴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무심히 본 튤립은 활짝 펴 있었다. 좀 더 바짝 다가가 꽃을 보고, 수술과 암술을 보고, 킁킁 향기를 맡기도 하며, 아아 내가 잠든 시간에도 이 아이는 저 홀로 이렇게 쑥쑥 자라고 있었구나, 감탄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식물을 통해 동물성을 보고, 관상의 꽃이 아닌 구체적 생명으로 꽃을 바라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고향 앞 산을 불지르던 진달래를 비롯해 군락으로 피어있는 숱한 꽃들을 보면서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벅찬 체험을 뒤늦게나마 한 송이 튤립을 통해 갖게 된 것이 신기했고, 고마웠다.

 

신기함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송이여서 가능했겠다 싶었다.

 

개체의 고유한 성격을 뜻하는 개성(個性)이라는 말은 개별적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 ‘그 사람’의 개성은 자연스럽고, ‘ 그 단체’의 개성은 어색하다. 개성은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별해주고, 그 다름이 바로 각각의 존엄과 아름다움의 발원지가 된다. 무리 자체가 아름다울 때는 개별의 미가 배후에 숨어야 한다. 마스게임이나 카드섹션은 일사불란한 통일성과 규격성으로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지만 개체가 드러나는 순간 그 퍼포먼스는 실패한 것이 된다. 나는 여태 무더기의 꽃을 본 것이고, 내 작업실에서 비로소 하나의 꽃을 본 것이다.

 

 

2.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이라는 『칼의 노래』는 꽃들이 아닌 꽃 한 송이로 향한 시선의 서사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 문장을 두고,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의 조사적 차이에 대해 작가는 후일담을 전했지만 나는 ‘꽃들이 피었다’가 아닌 ‘꽃이 피었다’에 더 이 소설의 알레고리를 본다. 집단, 충성, 영웅 따위의 관념어는 허깨비로 의심받는 자리에 고뇌하는 이순신과 칭얼대는 임금과 포로들의 개별적 울음과 각각의 백성과 부하가 등장한다. 이순신은 전장에서의 죽음이 곧 자신의 자연사라고 확신하는 투철한 무인이면서도 죽어가는 적들에게 개인의 우주를 보는 인문학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의 번민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다시 저 위의 노비 문장을 천천히 읽어보라.

 

비록 명량해전 대승의 증거물에 불과한 적이겠지만, 이순신이 바라보는 바다 위 시신에 집단의 죽음은 없다. 비록 그 적이 누구인지는 모르더라도, 각각이 온전하게 느껴야 할 고통을 겪으며 바다 위에서 자신의 죽음을 죽었을 뿐이다. 칼의 노래는 결국 살아있거나 죽어간 모든 존재가 각자의 소리로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꽃, 꽃, 그리고 또한 꽃의 노래.

 

노안(老顔)의 지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유독 개별성이라는 화두를 계속 떠올리게 된 것은 내가 살아왔던 집단적 삶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이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교복으로, 군대에서는 군복으로, 회사에서는 유니폼으로 나를 대신했던 시간들. 모난 돌은 정 받는다며, 어디서든 중간만 가려고 했던 몰개성의 나날들. 그러다 시나브로 내가 집단병에 감염되어 사람을 보더라도 자꾸 분석하고, 과거 경험의 그룹 속에 그 사람을 집어넣어야 안심이 되는 지금의 초상이 한심해, 저 노비 문장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전체가 아닌 개인을 바라볼 때 관용과 자비심이 생긴다는 말은 경험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성(性)과 계급과 지역과 인종과 종교 등으로 향하는 무자비한 차별적 구업(口業)과 행동은 개별이 아닌 집단을 보면서 생기는 폭력이다. 그 안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며 나처럼 그 사람도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기도 할 것이고 희망을 가꾸기도 한다고 생각할 때 인간의 마음 속에 자애가 싹튼다.

 

 

3.

 

『칼의 노래』의 개별성은 세월호를 향한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대지진에 대하여,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다고 해야 한다. 2만 가지 죽음에 각각 몸이 찢어지는 듯 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라고 말한 것을,

 

『칼의 노래』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말한다면,

 

“세월호는 배가 뒤집어져 304명이 죽은 사고가 아니라, 304명이 저마다의 고통과 무서움을 겪다가 각자의 죽음을 겪은 304건의 사건이다. 그것도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가 아닌 백주대낮에, 게다가 모든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가 된다.

 

이런 구체적인 방식으로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이 사건을 개별화할 때 세월호는 누군가 그토록 바라는 망각의 바다에 영원히 수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304명 죽음의 순간을 개별적으로 떠올리며 304건의 사건을 지겹고도, 지긋지긋하게 기억하는 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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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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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강이숨트는새벽

2016.04.04

개인이 있고 구성원이 있다는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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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j1999

2016.03.31

이번 칼럼은 다른 때와는 달리 좀 무거운 내용이로군요.

사회의 젊은 구성원으로서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

발버둥치는 중이거나 자기 자리를 아직 찾지 못하고

헤매이는 젊은 세대 들은 물론이고

삶과 사회에 대한 안목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노안세대들 마저도

치열한 삶의 현실 앞에서 갖은 핑계와 자기 합리화로

애써 눈감고 등돌리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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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