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저택 2
조부로부터 여인의 도리가 담긴 경전들을 배우며 자랐지만 곽 씨는 형만을 보자마자 부부간의 제일은 사랑임을 깨달았다. 이미 화류계의 환락에 젖어 있던 형만은 새 가구를 들이는 것처럼 감흥 없이 혼례를 치렀다. 그러곤 열흘 만에 도쿄로 유학을 떠나 버렸다.
글ㆍ사진 이금이
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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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저택 1’에서 이어집니다)


작년 여름 80칸에 가까운 가회동 저택에서는 윤병준 자작의 회갑연이 성대하게 벌어졌다. 담장 너머 세상은 만세 사건의 여파로 뒤숭숭했지만 담장 안에서는 자작의 무병장수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연회가 떠들썩하게 펼쳐졌다. 윤 자작은 자신이 이룬 것들에 흠뻑 취해 있었다.

 

부모의 사망 뒤 양자로 갔던 집에서 뛰쳐나온 병준은 여기저기 떠돌다 일본인 거류지인 초량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무역상 고바야시 상회에 일꾼으로 들어갔다. 열여덟 살 때였다. 언어가 힘이란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다. 실력이 늘어갈수록 주인은 병준에게 점점 더 큰일을 맡겼다. 그의 일 중에는 사업을 확장하려는 고바야시와 관련 업무를 주관하는 조선 관리들 사이의 통역도 있었다. 일어에 능통하게 되자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의 지위도 높아졌다. 권력의 속성을 알게 된 병준은 아예 직업을 통역으로 바꾸어 고급 인맥을 쌓아 갔다. 그때부터 병준의 인생은 바람 탄 불길처럼 활활 피어올랐다.

 

인맥을 이용해 벼슬자리를 꿰찬 뒤 자신도 놀랄 만큼 승승장구하던 병준은 중앙으로 진출해 마침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의 병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총독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행운이 계속되면 운명에 대해 자신하게 마련이다. 병준은 점점 배포가 커져 웬만한 위험이나 위기는 코웃음 칠 정도가 됐다. 단 하나 꿀리는 게 있다면 내세울 것 없는 가문이었다. 그 부족함을 병준은 작위와 중추원 참의라는 벼슬, 온갖 짓을 가리지 않고 불려 나간 만석지기 땅, 대저택과 숱한 여자들로 메웠다. 매국 행위와 근본 없는 가문에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비웃듯 병준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회갑까지 살았다. 그리고 천수까지 주어졌다고 자만하던 순간 낯 뜨거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다.

 

한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완성되고 규정된다. 병준은 자작이자 중추원 참의, 각종 회합의 회장, 만석 지주, 또는 민족 반역자, 을사10적, 매국노라는 정치ㆍ사회적 이름을 벗어던지고 ‘윤복상’이라는 조롱 섞인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그의 죽음은 공로자로든 매국노로든 그에게 각자의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들을 민망하고 허탈하게 만들었다. 입에 올리기도 낯부끄러운 호칭이 매국노란 악명보다 높아졌지만 그건 저잣거리의 이야기일 뿐 여전히 단죄자 명단에서 ‘을사10적 윤병준’을 지우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형만이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은 순간 명단 속의 이름은 윤형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작위를 거부해 당장의 실권자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조선총독부에 배일자로 낙인찍히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다양한 무리로부터 숱한 습격을 당했다. 형만이 서너 명의 장정들로 경계를 세우면서도 밤마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윤형만 자작은 총독부에도 대를 이어 충성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편, 만세 사건 뒤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나 의열단 같은 독립운동 단체에도 은밀히 후원하는 것으로 작위와 재산, 그리고 생명을 보전코자 했다.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했다. 곽 씨의 진통이 잦아졌다. 현재의 고통과 이전의 기억이 함께 떠올라, 지옥에서 전수돼 온 불방망이가 머릿속이고 배 속이고 가리지 않고 지져 대는 것 같았다. 곽 씨가 이를 악물자 친정 고모가 무명 수건을 접어 입에 물려 주었다. 답답하다고 도리질 치는 곽 씨에게 고모가 타일렀다.

 

“잘못하다간 치아가 모두 나가네.”

 

곽 씨에겐 이미 세 번의 출산 경험이 있었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지만 한 명도 남지 않았다. 두 아이는 돌을 채 넘기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갔고 한 아이는 숨진 상태로 세상에 나왔다. 세 명의 자식이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남편은 집에 없었다.

 

10년 만의 임신에 쏟아진 형만의 관심은 곽 씨에게 기쁨보다 고통을 안겨 주었다. 형만이 임부에게 좋다는 약이며 음식들을 수시로 들여보내고, 그가 사들인 신기한 아기 물건들이 안채에 쌓일 때마다 곽 씨는 혼자 감당해야 했던 아픈 기억들로 괴로웠다. 아버지 품에 한 번 안겨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제는 얼굴 생김새조차 떠오르지 않는 세 아이가 생각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임신 기간 내내 곽 씨를 괴롭힌 것은 입덧보다 더 힘든 과거의 기억이었다.

 

오후가 되자 유치원에서 돌아온 강휘가 인사를 왔다. 건넌방을 쓰는 강휘는 안방 분위기에 기가 눌린 듯 겁먹은 얼굴로 곽 씨 발치에 앉았다. 곽 씨는 강휘를 보자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았다.

 

“아가, 이리 가까이 와.”

 

곽 씨의 힘겨운 손짓에 강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았다.

 

“어머니, 많이 아파요?”

 

강휘가 걱정스레 물었다. 곽 씨는 땀이 흥건한 손으로 강휘의 손을 찾아 쥐었다. 제법 도톰해졌지만 여전히 말랑말랑한 손이었다. 또 진통이 시작됐다. 곽 씨가 자기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을 주자 강휘가 화들짝 놀라 제 손을 잡아 뺐다.

 

“너, 어미가 싫으냐? 어미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

 

곽 씨의 사나워진 목소리에 강휘는 울상이 됐다. 곽 씨의 올케가 박 서방댁에게 눈짓을 했다.

 

“도련님, 마님이 시방 동생 낳으시느라 힘들어서 그래요. 자, 그만 저하고 나가유.”

 

박 서방댁이 강휘를 잡아끌며 일어섰다. 강휘는 퉁퉁 불고 땀범벅이 된 어머니를 불안한 눈으로 한 번 보고는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곽 씨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강휘 손 대신 요 자락을 움켜쥔 손등에 파랗게 힘줄이 솟아올랐다.

 

“다 소용없어. 남 자식 키워 봤자 소용없다구. 머리 크면 계모라고 쳐다도 안 볼걸.”

 

곽 씨가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처럼 내뱉었다.

 

“그래서 지금 배 아파 자식 낳느라 고생이잖아요. 쓸데없는 생각으로 기력 쓰지 말아요.”

 

올케가 곽 씨의 땀을 닦고 팔을 주물렀다. 강휘는 형만이 첩에게서 얻은 자식이었다.

 

곽 씨는 형만을 초례청에서 훔쳐본 순간 첫눈에 좋아하게 됐다. 병준은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며느릿감은 정치하고 거리가 먼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골랐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키는 것처럼, 수수하고 튼실하게 생긴 며느리가 무던하게 가문을 지키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여겼다. 아들 마음에 들든지 말든지는 상관없었다. 젊은 남자가 일시적으로 데리고 놀 여자는 세상에 널려 있었다.

 

조부로부터 여인의 도리가 담긴 경전들을 배우며 자랐지만 곽 씨는 형만을 보자마자 부부간의 제일은 사랑임을 깨달았다. 이미 화류계의 환락에 젖어 있던 형만은 새 가구를 들이는 것처럼 감흥 없이 혼례를 치렀다. 그러곤 열흘 만에 도쿄로 유학을 떠나 버렸다. 그 짧은 기간에 삼신할미가 아이를 점지해 주었다. 형만에게 흠뻑 빠진 곽 씨는 남편을 꼭 닮은 아들을 낳고 싶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아들을 낳아 남편한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소원대로 아들을 낳았지만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곽 씨가 아이를 낳고 잃을 때마다 형만은 유학 중이었다. 혼자 아픈 일들을 겪는 동안 남편을 향한 그리움은 더욱 절절해졌다. 곽 씨는 형만이 하루빨리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곁에 있어 주기를 고대했다. 남편이 집에 있으면 아이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졸업하고 온 형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여성 최인애와 살림을 차린 일이었다. 이화학당 출신이라는 최인애는 첩인 주제에 안방을 넘보았다. 형만은 곽 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신식 물 먹은 모던보이들이 신여성에 빠져 조강지처를 버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곽 씨는 케케묵은 기억 속 고리짝에 넣어 두었던 여인의 도리를 내세워 완강히 저항했다.

 

“신학문 배운 년들은 만나고 갈라서는 게 쉬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안 배웠소. 윤씨 집에 시집온 이상 죽어서 나갈지언정 살아서는 떠날 수 없소. 차라리 날 죽이시오.”

 

곽 씨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경전의 구절이 아니라 시아버지의 비호 덕분이었다. 병준은 형만의 어머니 박 씨에 이르기까지 세 번 상처한 뒤 더 이상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다. 대신 옆집 세 채를 사 허문 다음 별채를 지어 첩을 들였다. 가회동 저택에 입성한 병준의 첩들은 안채를 욕심냈지만 그는 어떤 미인계나 앙탈에도 꿈쩍하지 않고 안주인이라는 곽 씨의 위상을 지켜 주었다. 곽 씨는 남편의 첩 최인애가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시아버지 덕분이었음은 알지 못했다.

 

다시 아랫배를 통째로 뽑아내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해를 묵히며 더욱 독해진, 형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뜨거운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나리 불러와. 자작인지 작대긴지 내 앞에 끌어다 놔.”

 

곽 씨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형만이 곁에 있다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었다. 형만과 최인애의 사랑은 아들을 낳은 인애가 한강물에 투신자살하면서 떠들썩하지만 깔끔하게 결말 지었다. 병준은 돈으로 시끄러운 일들을 처리한 뒤 강휘를 곽 씨의 품에 안겨 주었다. 자식이 없는 며느리에게 주는 최고의 벌이자 위로였다. 그대로 내동댕이치고 싶은 갓난애를 안고 곽 씨는 다짐했다. 두 연놈 때문에 흘린 피눈물을 그대로 되갚아 주리라. 최인애를 없었던 존재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였다. 강휘가 곽 씨를 친엄마로 알고 자라는 한 형만은 드러내 놓고 인애를 추억하지 못할 것이다.

 

눈먼 열정에는 때로 당황스러운 결과가 따르기도 한다. 지극정성으로 키운 결과 강휘는 제 아버지와는 데면데면하면서도 곽 씨와는 살가운 모자 사이가 됐다. ‘애’와 ‘증’의 무게를 저울로 재자면 처음에는 증오 쪽으로 추가 기울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강휘가 일곱 살이 된 지금은, 그 아이가 자신의 배를 거치지 않았음이 가끔씩만 생각났다. 작년,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한 뒤에도 강휘에 대한 애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강휘를 통해 곽 씨는 비로소 아이 키우는 행복과 재미를 맛보았던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네 번째 임신을 한 곽 씨에게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과 또다시 그 아이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번갈아 가며 찾아왔다. 낮이면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친정 식구들을 불러들여 출산 준비를 하고 아랫사람들을 들볶으며 임부의 권리를 누렸다. 하지만 밤이 되면 끔찍한 악몽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했다. 그때마다 곽 씨는 남편 대신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의 안전을 기원했다. 곽 씨가 임신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시아버지 덕분이었다. 하지만 거인의 손이 아랫배뿐 아니라 내장까지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는 시아버지조차 원망스러웠다.

 

회갑연 때 술을 올리는 형만 부부에게 윤병준 자작이 말했다. 일본어를 배울 때만큼의 노력으로 사투리를 고친 그의 말투에선 가진 것에 걸맞은 위엄이 느껴졌다.

 

“이제 내가 바라는 오직 한 가지는 자식을 더 두어 가문을 번성케 하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 사실을 유념토록 해라.”

 

병준으로서는 당연한 바람이었다. 자신이 당대에 우뚝 세운 가문의 영화를 대대로 이어 가야 하는데 자손이라고는 달랑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아들과 밖에서 낳아 온 손주 하나뿐이었다. 회갑을 맞이한 병준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그날 밤 곽 씨는 안주인으로서 시아버지 회갑연을 잘 마무리한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자리에 들었다. 별채의 연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 시중은 아랫사람들이 들 것이다. 단잠에 빠져 있을 때 형만이 헛기침을 하며 들어섰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안채에 걸음 한 것이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곽 씨는 괴한이라도 침입한 듯 소스라쳤다. 형만은 술에 절어 횡설수설하며 곽 씨 위로 쓰러졌다.

 

곽 씨의 몸에 새 생명이 깃든 새벽, 또 하나의 목숨은 세상을 떠났다.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시아버지를 존경하며 의지했던 곽 씨는 병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곽 씨 외에 오래전부터 데리고 있었던 늙은 하인과 조부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손자 강휘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임신 기간 내내 곽 씨는 시아버지가 저승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태중의 아이를 비호해 주기를 빌었다. 

 

아직 푸른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돋아났다. 안채에선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진통 시간이 길어지자 형만은 입이 마르고 애가 탔다.

 

“어찌 이리 소식이 없는 게냐?”

 

갑수는 주인의 닦달로 온종일 짚신 바닥에 불이 나게 사랑채와 안채를 오갔다. 산모만큼이나 지친 갑수는 마님의 출산을 형만보다 더 바랐다.

 

“설마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형만은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불안함은 불길한 생각을 불러왔다. 10년 전에는 아이들만 잘못됐지만 이제는 노산인 곽 씨에게도 재앙이 닥칠 것 같았다. 이 나이에 재취를 들이는 성가신 절차를 겪고 싶지 않았다. 남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족했다. 형만은 갑수에게 명령했다.

 

“너 어서 집 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밝히도록 해라.”

 

형만은 아이가 불빛의 인도를 받아 무사히 자기에게 오기를 바랐다. 하루 종일 애태우는 동안 곽 씨가 오래전 혼자 겪었을 고통과 슬픔이 조금, 아주 조금 이해됐다. 형만은 두렵기 시작했다. 아내나 아이가 잘못되면 자신의 삶에도 악운이 닥칠 것 같았다. 가회동 저택의 새 주인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저주받은 집안의 후계자로 낙인찍힌 채 스러져 가는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형만은 곽 씨에게 한배를 탄 동지애를 느끼며 무사히 출산하면 큰 보상을 해 주리라 다짐했다.

 

곽 씨는 마지막 안간힘 끝에 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딸이었다. 대기 중이던 왕진 의사가 산모와 아기의 건강함을 알렸고, 하인들이 안채 중문에 생 솔가지와 숯덩이를 끼운 금줄을 내걸었다. 사내아이였다면 빨간 고추를 꽂은 금줄이 대문에 내걸렸을 것이다.

 

절망에 빠져 있던 형만은 딸이라서 서운한 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가문을 물려줄 아들은 강휘 하나로 충분했다. 심지어 말년의 기쁨과 위안이 돼 줄 자식으로는 이웃집 애처럼 뻣뻣한 아들보다 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만은 딸의 이름을 노래처럼 되뇌며 안채로 들어섰다. 중요한 회합에라도 참석하는 듯 양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서였다.

 

말끔히 치웠어도 후끈한 공기와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안방으로 형만이 들어섰다. 곽 씨의 친정 식구와 아랫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형만은 쥐었다 놓은 두부처럼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누워 있는 아내를 고마움과 연민이 담긴 표정으로 보았다. 아들을 원했던 곽 씨는 낙담한 채 질끈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치하의 말이든 위로의 눈길이든 받아들임으로써 남편에게 지난 잘못을 덮어 버릴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형만은 곽 씨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을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으며 비단 강보에 싸인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분유나 이유식 광고에 등장하는 달덩이처럼 복스럽고 어여쁜 아기를 상상했던 형만은 몹시 당황했다. 강보 속의 아기는 작고 쭈글쭈글하고 잔털로 뒤덮인 빨간 생명체에 불과했다. 생명체가 어린 단풍잎 같은 손을 폈다 쥐었다 하며 꼼지락거렸다. 입을 오물거리며 방긋 웃기도 했다. 배냇짓에 불과했지만 형만은 아기가 자기를 보고 웃는 거라고 착각했다. 형만의 얼굴이 서서히 환해지더니 눈 가득 물기가 어렸다. 형만은 산모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채 조심스레 강보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벅찬 음성으로 아이를 환영했다.

 

“네가 채령이로구나. 내 딸 윤채령!” 

 

 

[연속 기사]

- 가회동 저택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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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이 시대 최고의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로 꼽히는 이금이는 1984년 ‘새벗문학상’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이후, 30여 년 동안 진한 휴머니티가 담긴 감동적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소천아동문학상과 윤석중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여러 편의 작품이 실리기도 한 그는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초월하여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너도 하늘말나리야』,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유진과 유진』, 『사료를 드립니다』, 『청춘기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