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어간 안경점에서 자신이 근시안임을 알게 된 사람처럼 불현듯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간 자신의 몸은 무딘 칼날과 같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뜨거운 열기로 그 무딘 칼날을 벼리고 벼려 이 감각적인 세계를 한껏 맛볼 수 있는 쾌락적 도구로 만든다. 이로써 우리의 몸은 대상의 미묘한 차이와 결을 구분하는 기쁨을 알게 된다. 그 기쁨을 채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디테일이다.
그러므로 ‘그 해 여름, 우리는 영화를 봤다’고 말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뒤집어보자면, 디테일들을 구체적으로 회상하지 못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는 소리도 된다.
그러던 어느 밤, 열한시가 되면 힐톱극장의 출납원이 집에 가고 지배인도 자기 사무실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해 여름, 우리는 적어도 열다섯 편은 되는 영화의 마지막 십오 분을 보았다. 영화를 본 뒤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 그러니까 브렌다를 집까지 태워다 주면서 - 우리는 영화의 시작 부분을 재구성해보곤 했다. 마지막 십오 분을 우리가 가장 좋아한 영화는 <케틀네 엄마 아빠 도시에 가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그린게이지 자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아니,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서로였다.
이 두 사람, 닐과 브렌다는 전미도서상의 받은 필립 로스의 『굿바이, 콜럼버스』에 나오는, 20대 초반의 연인들이다. 이 책은 2012년 80세를 한 해 앞두고 절필을 선언한 노작가가 아주 오래 전(1959년)에 쓴 청춘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그 내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여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번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을 보내게 되니까. 그 여름에 누구에게나 엇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예컨대 두 사람의 몸이 늘 어딘가에서 닿아 있었다거나 마치 불에 데인 듯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은.
여름은, 몸은 어떻게 뜨거워지는가?
닐과 브렌다의 첫 만남은 다음과 같다. 그 해 여름, 수영장에서 브렌다가 닐에게 다이빙을 하는 동안 안경을 좀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는 다이빙대의 끝으로 걸어가 흐릿한 눈으로 수영장을 내려다본 뒤, 아름답게 다이빙을 한다. 다시 돌아와 “고마워”라고 말하며 안경을 가져가는 그녀의 눈은 물기로 촉촉했지만, 물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닐은 멀어지는 그녀를 본다. 그 때.
갑자기 그녀의 뒤쪽으로 그녀의 두 손이 나타났다. 그녀는 엄지와 검지로 수영복 밑단을 들어올렸다가 탁 놓아 드러났던 살을 다시 가렸다. 내 몸에서 피가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클리셰처럼 등장하게 될 이 장면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때로, 어쩌면 여름에,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듯 사랑에 빠진다는 것. 갑자기 찾아온 여름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논리는 동어반복이면 족할 뿐, 정교한 논리나 근거는 필요 없다는 것. 맹렬한 기세로 불타고 나면 더 정교한 회상이 나오겠지만, 지금은 예년과 다른 여름, 평소와 다른 기분 정도의 설명이면 충분하다. 물론 닐의 숙모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사람이라면 ‘꼴값하네’라는 네 마디 말로 간단히 정리하겠지만.
덕분에 처음 브렌다가 엄지와 검지로 수영복을 들어올렸다가 내리며 살을 가릴 때, 닐은 아직 자기 몸에 빠르게 흐르는 피의 움직임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깊은 밤, 둘만이 수영장에 남았을 때, 이윽고 조명이 모두 꺼지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둠 속에서 브렌다는 닐의 부모님에 대해,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브렌다가 묻지만, 닐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에 “네가 사랑하든 안 하든 나는 너하고 잘 거야. 그러니까 진실을 말해줘.”라고, 또 “네가 나를 사랑하기만 하면 아무 걱정 할 게 없을 거야”라고 말할 때 브렌다의 천진난만한 매력이 한껏 드러난다. 닐의 태도가 미적지근하자, 브렌다는 게임을 제안한다. 그건 한 사람이 눈 감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이 어둠 속에서 수영하고 돌아와 차가운 몸으로 놀래키는 일이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닐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돌아오면 거기 브렌다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브렌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브렌다는 사라졌고, 이번에는 그녀가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등을 뒤로 젖히고 9번 홀 위로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빛의 위안이라도 받고 싶으니 어서 동이 트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마침내 브렌다가 내게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내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나는 몸을 떨었다. “그만, 브렌다. 제발, 이제 게임은 그만.” 그녀를 하도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내 몸이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해.” 나는 말했다. “정말로.”
마침내 사랑을 고백한 남자에게 세상은 이제 더없이 또렷하게 보인다. 도서관에 출근하는 길에 본 풍경을 닐은 이렇게 묘사한다. “서쪽으로 워싱턴 스트리트, 동쪽으로 브로드 스트리트와 맞닿은 공원은 텅 비어 있고 그늘이 많았으며, 나무, 밤夜, 개의 배설물 냄새가 났다”고. 또 브렌다의 오빠 론의 방에서 레코드 소리가 들리던 밤의 풍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고저 없이 신음을 통하는 종소리와 그 뒤로 부드럽게 깔리는 애국적인 음악이었다. 그리고 에드워드 R. 머로의 우울한 저음이 그 모든 소리를 덮었다. “그러니 굿바이, 콜럼버스.” 그 목소리는 읊조렸다. “……굿바이, 콜럼버스…… 굿바이……”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이 또렷한 정보들에는, 그러나 의미가 빠져 있다. 브렌다를 처음 봤을 때 닐이 몸에서 피가 갑자기 빠르게 흐르는 것만 생생하게 느낄 뿐 그 의미는 한참 나중에야 알았던 것처럼, 이 모든 또렷한 디테일들의 의미는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다. 좀더 시간이 흐른 뒤, 그러니까 여름이 끝난 뒤, 다시 말해서, 사랑이 끝나고 나면.
사랑이 끝나고 나는 밤에 수영을 하네
밤에 하는 수영은 고요한 밤에 어울린다
이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지, 나로서는 자신이 없다
몇 년 전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
이 모든 것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매일매일 다른 날들이 이어진다
밤에 하는 수영, 그 밤을 기억하며
곧 구월이 찾아올 것이다
(……)
나는 널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를 나는 판단할 수가 없어서,
너, 나는 너도 나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숨결의 아래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이 사람
밤에 하는 수영
이 노래에서 마이클 스타이프가 말한 ‘구월’이 필립 로스의 소설에서는 학교가 있는 보스턴으로 브렌다가 떠나 둘이 헤어지는 가을이다.
가을은 빨리 찾아왔다. 날은 추웠고, 저지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색이 변한 잎들이 떨어졌다. 다음 토요일 나는 차를 몰고 사슴을 보러 갔지만,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공기가 너무 차가워 철사 울타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은 오후의 침침한 공기 속에서 동물들이 걷거나 뛰는 것을 지켜보다가, 얼마 뒤 모든 것에서, 심지어 자연의 사물들, 나무, 구름, 풀, 잡초만 보아도 브렌다가 떠올라 차를 몰고 뉴어크로 돌아오고 말았다. 우리는 이미 첫 편지를 주고받았고, 나는 밤늦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나 전화로는 서로를 발견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신년절인 로시 하샤나를 함께 보내기 위해 닐은 브렌다의 학교가 있는 보스턴으로 간다. 하지만 막상 만났을 때, 브렌다는 브렌다처럼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 일 분 동안은. 그럼에도 둘은 키스를 하고 서로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닐은 ‘우리 사이에 두꺼운 코트가 느껴져 이상했다’고 말한다. 둘은 함께 밤을 보내기 위해 호텔을 찾아가지만 닐의 강요에 의해 브렌다가 병원에서 받아온 페서리를 브렌다의 어머니가 발견한 일을 두고 크게 다툰다. 소설을 읽으면 알겠지만, 둘 다 서로에게 잘 해보려다가 생긴 일이라 이 말다툼은 더욱 안타깝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소리친다.
“나는 너를 사랑했어, 브렌다. 그래서 걱정을 했던 거야.”
“나도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애초에 그 빌어먹을 걸 얻으러 갔던 거야.”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말한 시제를 들었고, 우리 자신에게로, 침묵으로 물러났다.
시제. 그러니까 ‘나는 너를 사랑했어’라는 과거시제. 연인들이 지금의 빛, 지금의 열기, 지금의 뜨거움에 더 이상 몰두하지 못할 때 여름은 끝난다. 여름은 언제나 갑작스레, 때로는 절정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끝난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순간, 그러니까 사랑과 마찬가지로. 여름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니 구월은, 가을은 ‘곧’, 그리고 ‘빨리’ 찾아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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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ㅡ 그건 됐으니 (응?) ...가을 오라고 해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