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이 작품으로 만났던 배우가 몇 명이던가! 오만석, 엄기준, 김재범, 김무열, 신성록 등 쟁쟁한 스타 배우들이 거쳐 간 데다 2010년에는 공유, 임수정 주연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졌으니 기자도 인터뷰할 사람이 오죽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내로라 할 배우들의 명성과 달리 작품은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달랑 세 명의 배우가 만들어 갑니다. 그 저력 덕분에 국내 창작뮤지컬의 신화로까지 불리는 이 작품, 바로 뮤지컬 <김종욱 찾기>인데요. 지난 2006년 6월 초연됐던 뮤지컬 <김종욱 찾기>가 어느덧 10돌을 맞았다는 소식에 황급히 대학로로 달려가 봤습니다. 이번에는 항상 찾던 ‘김종욱’이 아니라, 그를 찾아 나선 ‘그 여자’를 만나보기로 했는데요. 가수에서 이제는 뮤지컬배우로 불리고 싶다는 선데이 씨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아담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사랑스럽고 털털하고, 캐릭터는 제게서 특별히 벗어나지 않게 잡았어요. (장유정) 작가님이 배역의 이름을 정하지 않고 ‘그 여자’로 한 것도 맡은 배우들의 매력이 그대로 묻어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캐스팅된 네 여배우가 만들어낸 ‘그 여자’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요.”
첫사랑 ‘김종욱’을 찾아 나선 여자와 그 첫사랑을 찾아주려는 남자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랑 이야기. 그러네요,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진 사람은 ‘김종욱’뿐입니다. 그 남자, 그 여자, 그리고 21명에 달하는 수많은 나머지 인물을 연기하는 멀티맨. 무대에서만 펼쳐 보일 수 있는 약속된 상상의 세계죠. 물론 세 명의 배우가 한 편의 극을 끌어가야 하는 만큼 배우들이 느낄 책임감은 무겁습니다.
“대극장과 달리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아요. 무대 전환도 저희가 하고, 의상도 직접 챙기거든요. 그러다 보니 작품은 물론 공연장 자체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고,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공연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많이 배우게 되고, 좀 더 살아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제가 약간 야맹증이 있어서 익숙해지기 전에는 무대로 나갈 때 세트에 잘 부딪혔는데, 이제 관객들의 반응도 느껴지고, 여러 반응에 대응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 같아요.”
그녀에게는 대학로 소극장, 게다가 3인극이 더욱 낯설겠다 싶은 게 그룹 천상지희로 화려한 무대에서 활동했고, 뮤지컬 공연도 주로 대극장 무대만 서왔기 때문입니다.
“대학로가 낯설지는 않아요. 예전에 <젊음의 행진> 할 때도 대학로에서 연습했고, <환상의 커플>도 대학로에서 공연했어요. 또 제가 연기를 더 공부하고 싶어서 뒤늦게 중앙대에 들어갔는데, 학교 연극원이 대학로에 있어서 친구들하고 지하철 타고 많이 찾아왔죠. 그런데 소극장 공연이 작품을 접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대극장과 다른 것 같아요. 좀 더 디테일하고, 배우들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요. 연습 초반에는 제 의견을 제시할 생각도 못 했는데, 나중에는 저도 의견을 내보고, 배우들과도 작품에 대해 많이 논의했어요.”
대학로에서는 워낙 유명한 작품인데, 예전에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본 적이 있나요? 10주년을 맞아 기존과 달라진 점은 어떤 걸까요?
“작품은 보지 못했는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넘버도 정말 좋더라고요. <김종욱 찾기>에 참여할 것 같다고 주위에 말했더니 동료 가수들도 다들 부러워했어요,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10주년이지만 작품의 뼈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좋은 점은 남겨두고, 드라마 라인을 살리기 위해서 율동을 줄이거나 좀 더 시대에 맞게 바꾼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바에서 노래 부르던 장면이 이번에는 클럽으로 바뀌었죠(웃음).”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대표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이잖아요. 인터뷰를 너무 조신하게 하셔서 원래 성격도 그런지, 무대 위에서 어떻게 ‘그 여자’를 연기하실지 상상이 안 되네요(웃음).
“평소에는 유쾌하고 엉뚱한 편이에요. 그래서 상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때도 남들보다 특이한 상황까지 가보는 편이에요(웃음). 그런데 제가 천상지희로 활동하기 전에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거든요. 일본에서 10년간 생활하면서 인터뷰할 때 존칭어를 많이 쓰거나 차분하게 말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 여자의 첫사랑 ‘김종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보니 첫사랑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또 시간이 지나면 극 중 그 여자처럼 남자를 보는 눈도 달라질 테고요.
“일본에서 활동할 때 제 솔로 두 번째 싱글이 첫사랑에 관한 노래였어요. 제목이 ‘거짓말쟁이 소년’이라고. 그 노래도 생각나고, 그 당시 천상지희 준비하느라 일본에서 한국 왔다 갔다 했던 기억도 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풋사랑이죠. 다시 돌아가도 아마 똑같았을 것 같은. 어렸을 때는 저도 외모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사람 속을 볼 줄 몰랐으니까. 지금은 같이 있을 때 편안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아는 남자가 멋지더라고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정의로운 남자가 매력적이에요.”
천상지희 멤버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린아, 다나 씨도 뮤지컬 활동 많이 하시잖아요.
“린아 언니는 최근 뮤지컬 <뉴시즈> 끝내고 <노트르담 드 파리> 준비하느라 바쁘고, 다나는 요즘 연애하느라 정신없죠(웃음). 동물보호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고요. 스테파니도 잘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일본에서도 많이 활동했는데, 일본에서는 가수들이 방송 외에도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요. 라이브 무대에 많이 섰기 때문에 다들 무대를 잊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 출 수 있는 장르가 뮤지컬이니까 확실히 더 희열을 느끼고요.”
요즘 다시 활동하는 그룹들이 많잖아요. 천상지희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할 계획은 없나요?
“생각은 언제나 하고 있어요. 그런데 다들 바쁘고, 린아 언니는 결혼생활도 해야 하니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다시 뭉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아직까지 1년에 한 번씩은 팬들과 체육대회도 하면서 천상지희로 팬들을 만나고 있답니다.”
대학에서 연기도 전공하고 계시니까 가수는 물론이고 뮤지컬배우로서도 계속 길을 걸어가시겠죠? 어떤 배역들을 해보고 싶나요?
“사실 어렸을 때 아역 탤런트를 했었고, SM에서도 연기로 시작했어요. 공연 후기를 보면 ‘배우인줄 알았는데 가수라서 놀랐다’는 얘기가 간혹 있어요. 기분이 좋더라고요(웃음). ‘뮤지컬배우 선데이’라는 기사가 있으면 좋아서 캡처해 놓을 정도예요. 앞으로 좀 어둡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나 차지연 선배님이 하셨던 <드림걸즈>의 에피, 정선아 선배님이 연기했던 <위키드>의 글린다도 해보고 싶고요.”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그 여자’는 과거의 첫사랑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되잖아요. 선데이 씨는 새로운 무대에서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싶나요?
“일을 계속 하다 보면 자신감이 넘치기보다는 오히려 줄어들 때가 있어요. 나이가 많아지고, 여자들은 결혼 문제로 흔들릴 때도 있고요. 20대에는 어리고 당차고, 어쩌면 누구나 갖는 자신감이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탄탄하게 실력을 쌓고 입지를 굳게 다져야만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쌓인 자신감이 더 멋지지 않을까. 당차고 멋있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생각해 보니 지난 10년간 이 무대에서 김종욱을 찾아 나섰던 수많은 남녀 배우들이 탄탄하게 실력을 쌓아 더 다양한 작품으로, TV로, 영화로 그들만의 입지를 굳게 다져갔네요. 극작가인 장유정 씨도요.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해를 넘겨 내년 1월까지 대학로 쁘띠첼 씨어터에서 공연될 예정입니다. 선데이 씨 역시 이 긴 여정에 참여할 텐데요. 김종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연 그녀는 무대 위에서 무엇을 찾게 될지 궁금하네요. 아마도 ‘그 여자’처럼 지금보다는 더 당차고 멋있는 여자가 돼 있겠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