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나 시인이 2013년에 발표한 「립스틱 발달사」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보석을 갈아 눈과 입에 발랐다
립스틱의 기원이 되었다
고대인들은 빛나는 눈과 입술로 별에 닿고 싶어 했다 라고
나는 단정한다
(중략)
그러므로 당신은 아침마다
당신의 입술에 날개를 그려 넣는 것이다
입술을 칠하며 별을 건너는 것이다
당신,
반짝인다
패션과 뷰티를 모두 아우르는 트렌드 명가 샤넬에서는 자신들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으로 샤넬 No5 향수, 리틀블랙드레스, 2.55 핸드백 그리고 레드립스틱을 꼽는다. 샤넬의 블랙드레스에 레드립은 오랜 기간 동안 우아함을 완성하는 공식이기도 하다.
최초의 립스틱은 어떻게 세상에 선보였을까? 뚜껑을 열어 일일이 손가락으로 바르는 입술연지의 개념에서, 한 손으로 돌리기만 하면 내용물이 나와 쓱~ 바르면 되는 최초의 립스틱은 겔랑의 루쥬 오토마띠끄이다. 1936년, 립스틱을 출시한 명가답게 스테디셀러 제품인 키스키스 립스틱 325과 겔랑의 뮤즈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와 함께하는 이번 시즌 신제품 홀리데이 컬렉션 루즈 G 익셉셔널 컴플리트 립 컬러 821 루즈 사파이어를 선보이고 있다.
나에게 레드 립스틱의 위력을 알게 해준 사람은 방송인 추성훈의 아내이자 사랑이 엄마로 유명한 모델 야노 시호다. 아직 그녀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기 전, 추성훈이 한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예능대상시상식 무대에 올랐을 때 객석에서 응원하는 그녀가 비춰졌다. 차림도 헤어스타일도 평범했지만 메이크업은 아주 화려했다. 다시 보기를 통해 약 5초간 잡힌 야노 시호의 메이크업을 10번 정도 돌려본 결과, 그녀는 아이나 치크 등 다른 부위는 전혀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베이스메이크업을 꼼꼼히 했을 수는 있다) 레드 립스틱만을 발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피부는 그야말로 맑고 투명해 보였고, 건강하며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별다른 액세서리 없이도, 평범한 차림에도 오로지 레드 립스틱만으로 화려한 효과를 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경제적인 스타일링인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나의 발걸음은 갤러리아 명품관 WEST에 자리잡은 한 브랜드 매장으로 총총거리고 있었다. 나스 매장의 메이크업 담당 직원은 립 펜슬 ‘드래곤걸 레드’ 컬러를 쓱쓱 발라주며 립스틱은 어쩌면 민낯을 가장 빨리 커버해주는 가장 편리한 아이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과연 내 입술인가 싶을 정도로 또렷한 빨간 입술로 변신했다.
"요즘 같은 계절에 레드 립스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은 뭘까요? 퍼(fur)? 가죽?"
백화점 안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본다는 착각에 부끄러워진 나는 치아교정기가 들킬까 봐 두려운 여학생처럼 입술을 가리고 물었다.
"레드 립스틱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감이죠! 어깨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야 그 컬러를 소화해낼 수 있어요!"
매장을 나온 나는 그날 정말 떼인 돈도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해서 온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녔고, 용기나 자신감이 필요한 날이면 부적처럼 레드 립스틱을 바르게 되었다.
1년 뒤, 2013년 가을, 끌레드뽀 보떼의 뮤즈이자 영화 <레미제라블>의 코제트 역으로 인기를 끌었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내한했다. 끌레드뽀보떼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루쥬 아레브르 311번을 바르고 고혹적으로 광고 비주얼에서 웃고 있었던 그녀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글래머러스한 배우가 빨간 드레스를 입은 듯 건강하고 육감적인 레드 립을 뽐냈다. 그녀는 2016년 현재, 신제품 ‘리퀴드 루쥬 에끌라’를 바른 입술로 우리를 유혹한다.
출처_ KBS <공항 가는 길>
얼마 전 종영한 KBS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에서 승무원 역을 맡은 김하늘은 나스 벨벳 립글라이드 댄스테리아와 입고 나온 빨간 승무원 복이 너무나 잘 어울려 화제가 되었다. 혹시 립 컬러에 맞게 유니폼을 제작한 것이 아니냐는 문의가 이어졌지만, 말레이시아 항공사인 에어아시아의 공식 유니폼이라고.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제작발표회에 나타난 배우 전지현은 뷰티 브랜드 헤라(HERA)의 전속 모델답게, 취재진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레드 립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벌써 문의가 빗발친다는 ‘헤라 루즈 홀릭 익셉셔널 333호 패션’은 모던한 도시의 밤에서 찾은 열정과 관능의 컬러로 섹시함과 신비감을 동시에 발산하는 색상이라고 브랜드 관계자는 말했다. 헤라의 이진수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가을 겨울 시즌에는 역시 레드 컬러가 꾸준하게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레드는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차분함을 주는 가장 완벽한 컬러이기 때문이다. 레드 립스틱을 데일리 아이템으로 바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촉촉한 제형의 립스틱을 선택하거나 립밤을 레이어링해 건조한 날씨에도 자연스럽게 발라 연출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인다.
이화정(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퐈정리 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며 패션지 with, 마이웨딩과 조선일보 화요섹션에서 스타일 전문 기자로 일했다. 뷰티, 패션, 레저, 미식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라이프스타일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