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광석 씨의 노래로 엮어 내린 몇 편의 뮤지컬이 있습니다. 탄탄한 스토리에 노래를 잘 버무린 작품도, 이야기는 헐거운데 노래의 힘으로 버티는 무대도 있죠. 그런데 지난해 초연된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결을 달리 합니다. 여느 작품들이 새로운 이야기에 김광석의 노래를 넘버로 사용했다면 <그 여름, 동물원>은 김광석과 한때 그가 몸담았던 그룹 동물원의 이야기거든요. ‘서른 살’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졌을 그들이 함께 노래하고 고민하던 푸르른 젊은 날을 무대에 담았습니다. 어떻게 만났고, 또 어떻게 헤어졌는지요. 동물원과 김광석, 다섯 친구의 이야기인 데다 그들의 음악이 더해져 감동의 깊이 역시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특히 이 무대에는 ‘꼭 김광석처럼 노래하는’ 배우 최승열 씨가 있어 더욱 돋보입니다. 최근 몇 년간 김광석 노래를 원 없이 부르고 있는 최승열 씨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직접 만나봤습니다.
“저는 사실 그렇게 비슷한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김)창기 선배님도 함께 공연할 때 깜짝깜짝 놀란다고 하세요. 뭔가 결이 비슷한 느낌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난해 초연 때도 참여하셨는데, 창작뮤지컬인 만큼 달라진 점이 있겠죠?
“초연 때보다 무대 크기도 커졌고, 배우도, 그리고 넘버도 늘었어요. 지난해 여백이 좀 많았다면 올해는 코믹한 장면들을 더해서 더 알차고 재밌습니다. 관객들은 편안하게 보실 수 있지만, 나름 격렬한 댄스도 많아서 배우들은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해요(웃음). 지난해보다 젊은 층이 많이 오시고, 중국 관객들도 많아서 놀라고 있어요. 물론 동물원, 김광석 선배님의 이야기지만,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이 나오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관객들도 자신들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평소 말투는 김광석 씨와 다르네요(웃음). 원래 창법도 다른가요?
“다른 노래는 전혀 다르게 부르죠. 홍대에서 3년 정도 록밴드를 했거든요. 강산에 선배님, 장필순 선배님, 같이 공연하는 이정열 형처럼 포크 성향이기는 하지만 록적인 노래들을 많이 좋아했어요. 예전에도 광석 선배님 노래를 부를 때면 음색이 비슷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공연을 위해 연습을 많이 했죠. 말투도, 발음이 독특하시잖아요. 그게 포인트라서 잘 찾으면 더 비슷하게 들려요. 그런데 지금 누가 제 목소리로 광석 선배님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못 불러요. 이제 안 되더라고요. 제가 원래 쓰는 발성이나 노래 결이 아니다 보니까 목이 좀 힘들어요.”
2013년 ‘히든싱어’ 김광석 편에 출연해 준우승을 한 이후 줄곧 김광석 씨 노래를 부르게 되셨는데, 솔직히 좀 지겹지는 않으세요(웃음)?
“뮤지컬에 ‘다시 부르기’ 콘서트, 추모 공연 등 많이 부르고 있죠(웃음). 워낙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많이 부르기는 했는데, 그때 김광석 선배님 노래를 부르는 것과 나이를 먹어서 부르는 것은 많이 달라요. 사실 광석 선배님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는 건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노래를 그 사람이 돼서, 그 사람처럼 부르는 거잖아요. 처음 연습할 때는 조금 지겹기도 했는데, 무대에서 관객들과 눈이 마주치면 허투루 부를 수가 없어요. 다들 저를 그 분으로 생각하고 오시고, 우는 분도 너무 많아서 항상 최선을 다해 부르고 있어요.”
실존 인물이고 실제 이야기를 무대에 옮긴 만큼 인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셨겠어요. 무대 위 ‘그 친구’ 캐릭터는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배우들은 텍스트를 보고 인물을 만드는데, 실존 인물들이고 동물원 선배님들과도 친하다 보니 그냥 물어봤어요. 친형님을 뵈었을 때도 많이 여쭤봤고요. 노래할 때도 그렇고, 밝고 유머감각이 있는 친구지만 좀 썰렁했다고(웃음). 솔직히 아픈 곳인데, 절친인 (김)창기 형은 아직도 자책하시거든요.”
프로필에는 뮤지컬배우로 돼 있던데, 방송 이후 최근 몇 년간은 주로 가수로 활동하시지 않았나요?
“그랬죠. 중간에 목이 말라서 지방에서 창작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저는 배우예요. 배우로 더 오래 살았고, 노래를 부를 때도 대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연기를 못한다고 하면 신경 쓰지만, 광석 선배님과 덜 비슷하다고 하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어차피 다른 사람이니까요. 저의 다른 작품을 보셨던 분들은 김광석도 연기 변신이라고 생각하시거든요. 길게 봐서 지루하실 수는 있지만, 이것도 하나의 역할이니까. 배우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다음에는 꼭 연극이나 다른 뮤지컬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작품 콜이 안 와요(웃음).”
작품을 하고 싶은데 제작사 측에서 꺼리는 건가요, 아님 최승열 씨 스케줄이 안 되는 건가요(웃음)?
“둘 다인 것 같아요. 작품 들어가면 머리가 나빠서 겹치기를 못하고 올인하는 편인데, 공연은 연습까지 4~5개월을 집중해야 하잖아요. 현실적인 부분도 있죠. 예전에는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제 회사 입장도 있고. 최근에도 <빨래> 오디션을 회사 몰래 보려다 접었어요. 그 작품은 정말 좋아해서 초연 때부터 시즌마다 봤거든요. 연출님에게 이메일까지 썼는데, 서로 부담스러운 일은 하지 말자 싶어서 접었어요.”
방송 이후 새로운 기회는 얻었지만 배우로서 아쉬운 점도 분명이 있네요.
“그렇죠, 사실 처음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할 때 홍보 차원에서 출연하게 됐는데. 몇 번 거절했거든요. 배우로서 공연을 위해 광석 선배 노래나 말투를 연습한 건데, 방송을 하게 되면 평생 모창가수로 사는 게 아닐까... 결국은 방송에 나갔고, 덕분에 ‘다시 부르기’ 콘서트 하면서 제가 즐겨 들었던 LP판의 주인공들과 형 동생 하게 됐죠. 그건 무척 좋은 일이에요. 반면 제가 좋아하는 창작뮤지컬, 소규모의 환경을 가진 팀들과는 멀어졌어요. 제 마음은 똑같은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혼란스럽죠.”
최승열하면 김광석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면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광석 선배님 노래나 얘기를 너무 상업화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그냥 듣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몰랐던 사람들에게 알리고 계속 듣게 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도 상업적인 것보다는 의미를 가지고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또 공연을 보고 좋은 마음을 안고 가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그래서 <그 여름, 동물원>에는 애정이 많아요. 연습하면서 욕심도 많이 냈고. 이 작품에서 김광석으로 살라고 하면 앞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최승열 개인적으로는 더 바빠져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러게요, 김광석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새로운 옷을 입으셔야 배우로서 길게 활동하실 수 있을 텐데 <그 여름, 동물원> 이후에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일단 내년에는 노래 안 하고 연기만 할 수 있는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사람 냄새 짙게 나는 창작뮤지컬도 하고 싶고요. 사람 사는 얘기, 우리 정서에 맞는 서민적인 작품 좋아하거든요. 제가 서민적으로 생겼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제 노래가 담긴 음반도 내년 봄에는 발표하고 싶은데, 음반을 내는 것과 무대에서 노래하는 건 달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김광석과 동물원이 20대에 쏟아낸 노래들. 송곳처럼 날선 감성이 담긴 그 노래에는 그들이 통과해야 했던 미숙한 청춘의 시절이 녹아 있겠죠. 치열했지만 그만큼 후회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인지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 무대 위에는 그리움이 깊게 배여 있습니다. 노래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저마다 되돌아보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요.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지만 이렇게 함께 노래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배우 최승열 씨 또한 지난 몇 년간 분명 치열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그 여름, 동물원>이 그 시간을 증명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놓쳤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앞으로의 시간이 있으니 또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도 있을 테고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