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얼굴의 생김새, 그 인상이 주는 느낌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업군 가운데 하나가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의 평소 인상과 딱 떨어지는 배역을 만나 마치 한 인물처럼 몰입도를 높이는가 하면 때로는 분장과 연기로 평소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해 놀라움을 주기도 하죠. 어쨌든 배우의 인상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라는 게 있는데요. 이 배우를 생각하면 ‘선함, 순박함, 털털함’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나 싶습니다. 이 이미지를 가지고 그는 올해도 수많은 변신을 거듭했는데요. <로기수>의 냉철한 전사 로기진으로, <난쟁이들>의 귀여운 찰리로, <트루웨스트 리턴즈>의 거친 방랑자 리로, <팬레터>의 천재 소설가 김해진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순수 그 자체, 앨빈으로 돌아온 배우 김종구 씨. 개막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던 어느 저녁,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종구 씨를 만나봤습니다.
“제가 가진 이미지 중에 가장 따뜻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앨빈은 조건 없이, 한없이 주는 자연 같은 존재거든요. 아무리 아파도 아낌없이 주는, 넓은 마음으로 감싸주는 천사예요.”
연습을 막 끝내서인지 아직 앨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네요. 올 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끝내며 SNS에 ‘이제 조금 알 것 같은데... 마지막...은 언제나 아쉽다. 웃음으로 보내줄 수 있을까?’라고 쓰셨던데, 다시 만난 앨빈은 어떤가요?
“지난해에는 ‘앨빈스러운 앨빈’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앨빈은 이런 사람일 것이고, 말투나 행동은 이럴 것이다’ 그렇게 앨빈을 예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지난해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도 찾아가고 있지만 이번에는 다 내려놓고 앨빈을 바라봤어요. 그랬더니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통제가 안 되는 거예요. 생각하는 거나 마음 쓰는 게 정말 착하고 예뻐서 김종구라는 사람이 앨빈에게 감동을 받더라고요. 앨빈의 말을 곱씹으며 연습하니까 울림이 더 커요. 그래서 놀랍고 재밌고, 앨빈을 표현하는 게 벅차요. 신기한 경험이죠.”
<팬레터>도 재밌게 봤는데요. 김해진과 앨빈이 시대와 국적은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책을 좋아하고, 글도 쓰고, 일찍 생을 마감하고.
“그런데 해진보다 앨빈이 훨씬 더 큰 사람이에요. 해진은 그 상황에서 화도 내고, 결국 사랑이라는 자기 욕심에 미쳐 있거든요.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 자기가 최고라는 것에 미쳐서 어쩌면 생을 행복하게 마감했다면 앨빈은 큰 산 같은 사람이에요.”
작품을 보면 앨빈도 토마스에게 서운해 하잖아요.
“서운해 하죠. 저도 처음에는 서운함을 많이 표현하려고 했는데, 연출부에서는 해석이 다르더라고요. 앨빈의 마음을 몰라줘서, 토마스의 행동이 서운한 게 아니라 더 넓은 의미예요. ‘우리 이야기를 써라, 너와 내가 함께 했던 소중함을 잊지 말아라!’ 그게 앨빈이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앨빈 같은 친구가 있다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던데요.
“부담스러울 수 있죠. 자기 주변에 너무 천사 같은 사람이 있으면 죄책감이 들잖아요. 그래서 토마스도 힘들어 하고요.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이야기로 작가가 됐는데 그걸 부인하려니까 마음이 힘들겠죠.”
단적으로 앨빈과 토마스만 놓고 봤을 때 김종구 씨는 어느 쪽에 가깝나요(웃음)?
“저는 토마스입니다(웃음). 대다수가 토마스일 거예요. 저도 토마스가 이해되거든요. 세상을 앨빈처럼 살면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대단한 사람이죠. 사실 토마스를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이번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토마스도 하고 싶은 역할이에요.”
2인극이니까 상대 배우에 따라 무대가 많이 달라지겠죠. 고영빈, 강필석, 조성윤 씨는 지난 시즌에도 토마스로 함께 호흡을 맞추셨고, 김다현 씨는 이번에 처음인데, 각 토마스의 특징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신다면요?
“네 분이 많이 다른데, 성윤이는 동생 같은 친구, 영빈이 형은 아빠 같은 친구, 필석이 형은 형 같은 친구라고 할까요. 다현이 형은 아직 뭐라고 수식어를 붙이는 게 조심스럽네요.”
이건 그냥 나이에 맞게 표현하신 것 같은데요(웃음)?
“제가 인터뷰를 굉장히 지혜롭게 잘 하죠? 토마스라니까요(웃음).”
올해 쉬지 않고 무대에 서 오셨잖아요. 그런데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도 그렇고 이미 참여했던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무대라는 게 매회 새로운 공연이기는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1년에 많아야 5작품 정도 하실 텐데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없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주어진 걸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이 작품에 이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하려고, 그 다음에는 잘하지 못할 것 같은 역할을 많이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요. <모범생들> 할 때 종태와 수환이를 번갈아 연기하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사실 <팬레터>의 해진도 정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거절했어요. 천재 작가에 폐병이 있는 유약하고 고집 있는 사람. 그런데 제작진이 저한테 딱이라고 해서 너무 놀랐어요. 연습할 때도 힘들었는데 관객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관계라는 것도 오래 보고 길게 가는 게 좋아요. 함께 있는 사람들이 소중한 걸 아니까요.”
러브콜이 많은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있겠죠?
“일단 재밌어야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 제작진이나 스태프, 배우, 공연장 그 정도는 물어봐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도 제안이 왔을 때 연습이 겹쳐서 좀 힘들었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사실 의식적으로 감정을 끌어올리고, 마음으로 펌프질을 해야 하는 작품도 많은데, 이 작품은 오로지 상황에만 집중하면 되거든요. 노래와 대사, 상황, 인물들이 시계 안의 태엽처럼 정교하게 얽혀 있어요. 정말 좋은 작품이에요.”
올해 굉장히 알차게 보내셨는데, 혹시 후회되는 일도 있나요?
“올해 ‘한 달에 팝송 한 곡씩 기타 치면서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예 못했어요. 12곡의 팝송을 듣긴 했는데(웃음). 그게 후회되네요. 그래도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자는 계획은 지키지 않았나(웃음).”
아주 먼 훗날 송덕문에 어떤 내용이 실리면 좋을까요?
“송덕문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거잖아요. 글쎄요, 누가 송덕문을 읽느냐도 중요할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저를 예쁘게 기억해주면 좋겠죠. 팬이나 가족이 ‘당신은 저에게 있어 최고의 배우였습니다. 최고의 사람이었습니다. 큰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해 준다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웃으면서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인상만큼이나 푸근하게 인터뷰를 마친 김종구 씨는 서둘러 다음 작품 연습실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저녁에 말이죠. 12월만 해도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와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함께 오르는 김종구 씨는 2017년에도 상당수 작품에 이름을 올리기로 약속돼 있다고 하네요. 공연이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만큼 김종구 씨는 이미 누군가에게 최고의 배우, 최고의 사람, 그리고 큰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껏 깊어진 앨빈으로, 그리고 새로운 티볼트로 무대에 선 배우 김종구 씨의 모습을 확인해 보시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