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 김민섭 “한발 물러서야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내가 갑일 때는 기침 한 번만 해도 을의 자리에 선 사람은 왜 기침을 할까, 왜 찡그릴까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돼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을이 되잖아요. 그걸 인식하는 게 먼저 필요할 것 같아요.
글ㆍ사진 정의정
201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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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동 1201호. 김민섭 저자가 살던 공간의 이름이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며 사용한 필명이기도 하다. 지방 대학에서 대학원을 나오고 연구실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며 글쓰기 과목을 강의했던 저자는 일주일에 이틀은 강사로, 사흘은 맥도날드 알바생으로 살았다. 대학은 시간강사에게 보험 혜택을 제공해주지 않았고, 재직증명서 발급도 되지 않았다. 대학에서 지식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지며 누적 조회 수는 200만에 이르렀고, 2015년에는 같은 이름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끝에서 그는 ‘계속 연구하고, 강의하며, 아카데미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2015년 12월에 대학에서 나왔지만 그 다짐은 여전히 유효했다.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하면서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나와 거리에서 세상을 응시하고자 했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깨달음도, 거리에서 만난 인문학적 성찰이었다. “내가/우리가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309동 1201호’가 아닌 ‘김민섭’으로 쓴 『대리사회』가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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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연구실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이후로 사회에 알려지셨어요. 처음에 ‘지방시’를 썼을 때는 계속 대학에 남아있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대학을 나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서 8년 넘게 인문학을 공부했어요. 거리에서 배운 인문학이 그동안 대학에서 배운 인문학보다 결코 못 하지 않더라고요. 저는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대학 바깥에 크게 펼쳐져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세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연구실이고 강의실이었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왔고, 그걸 확인하는 계기가 『대리사회』였어요. 반쯤 믿고 나왔는데, 나오길 잘한 것 같아요.


대학을 그만둘 때 아내한테 허락을 받은 게 아니었다고 나와요.


대학을 그만두려 한다고 형식적으로는 허락을 받았죠. 아내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요.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저만 버틴 게 아니라 아내도 버티던 시간이었고, 아내도 힘들었을 테죠.


부모님이나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한테는 처음에 티를 안 냈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셨는데, 아버지한테 너의 결정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이제부터 아버지가 응원한다고 문자가 왔어요. 그걸 보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이한테는 『대리사회』 말고도 제가 쓴 책들을 많이 물려주고 싶어요.


맥도날드 일이나 대리기사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가족이 아니었을까요?


가족이 거의 90%의 이유였죠. 맥도날드에 갔던 건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했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거든요. 가족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했고,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를 살 만큼의 조금 더 많은 생활비가 필요했어요. 가족 때문에 밀려난 덕분에 뼈아프게 배웠죠.


 ‘지방시’ 이후로 일간지에서 많이 인터뷰가 나갔어요.


인터뷰는 ‘지방시’ 때나 지금 『대리사회』 내고 나서나 비슷하게 하고 있어요. ‘지방시’ 때는 맥도날드에서 일했다는 게 자극적으로 소비되면서 맥도날드보다 못한 대학교라는 식으로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그런 기사 때문에 대학 동료들이 더 세게 반응한 게 아니었을까요?


제가 겪은 일들을 어떤 특정 공간의 일로 썼다기보다는 대한민국 대학의 모든 문제를 다루면서 썼거든요. 제가 있었던 대학이 맥도날드보다 못하다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대학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공적 비판이었어요. 그걸 사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썩어버린 먹물들’이라는 표현도 있었어요. 대학을 나와서 대학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고요.


대학 안에 있어도 비판은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대학의 좁은 연구실과 강의실보다 세상에 있는 더 넓은 강의실과 연구실로 나오고 싶었어요. 그 이유가 더 큽니다.


대학을 나와 배운 건 뭔가요?


대리기사를 하면서 타인의 운전석이 그 어떤 연구실보다 훨씬 많은 걸 배울 수 있게 해줬어요. 거기에서만 느끼는 감각도 있고, 손님들에게 배우는 것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제가 글로만 배웠던 공간에서의 환대라든지, 노동, 사람을 상대하는 관계를 몸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처음 시작한 대리운전


대리기사 일을 시작하고 사고가 나는 악몽을 자주 꾸셨다고요. 대학에 있을 때도 비슷한 악몽이 있었나요?


대학 있을 때 악몽은 자주 안 꿨는데, 가위에 엄청 눌렸어요. 논문 쓰는 꿈은 꾼 적 있어요. 계속 논문을 쓰다가 논문 심사장에 들어가는 꿈이요. 지금은 차 사고가 제일 엄청난 악몽이죠.


대리운전 시작하면서 처음 ‘아저씨’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대학교에서 나온 지 반년쯤 되었을 때인데, 제 신체가 아직 대학에 젖은 채로 한 발은 대학에 걸쳐져 있었어요. ‘아저씨’라는 호칭이 저를 잡고 패대기를 치는 기분이었죠.


승차감이 좋았던 차를 나중에 검색해 보니 마세라티였던 에피소드가 나와요. 차에 따라 차 주인의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나요?


어떤 차를 몰고 있느냐에 따라서 자신이 어떻게 불리기를 바라는지는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자신이 탄 차는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담고 있어요. 차의 가격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차종에 따라서 느껴지는 것들이 다르죠.

 

고객들한테는 ‘사장님’이란 호칭을 쓰시나요?


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편해서 그렇게 불러요.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필요할 것 같은 손님들이 있어요. 그럼 섞어서 사장님이라고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은 사장님이 탈 것 같은 차를 타고, 사장님 같은 표정을 짓죠. (웃음)


재밌었던 부분 중 하나가 대리기사를 찾는 사람들 앞에서 ‘저도 대리기사입니다.’ 라고 말한 부분이었어요. ‘대리 찾으시나요?’ 등 여러 가지로 발화될 수 있었을 텐데요.


‘대리 찾으시나요?’ 하면 뭔가 간절하지 않잖아요. 의도한 건 아닌데 간절한 마음이 튀어나온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대리를 부르려고 했기 때문에, 당신이 찾으려는 사람뿐 아니라 나도 대리기사라는 다급한 마음이 튀어나온 거죠.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창문을 열었을 때 손님이 화를 내자 ‘저는 여기에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라는 말도 인상 깊었어요.


제가 창문을 연 게 아니라 같이 탄 동료가 조수석에서 창문을 열었어요. 저한테 왜 창문을 열었나 화를 낼 때 말했던 거였어요. 그것도 어떤 간절함이 들어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수백 번 운전을 하면서 그런 경험이 늘 있던 건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 딱 그정도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콜이 많이 들어와서 보니 김영란법 시행 하루 전날이었다고요.

 

안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날에 이상하게 콜이 많이 들어왔어요. 왜 많은가 싶다가 대리기사 카페 들어가니까 김영란법 시행 하루 전이라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고 누가 적어놨더라고요. 그다음 날에는 진짜 부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제일 콜 많이 받았던 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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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몸의 언어를 기록하다


‘대학도 누군가를 대리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성찰은 대학의 기업화를 말씀하신 건가요?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 지식의 전당 이런 수식어가 붙지만 학문의 주체로 선 게 아니잖아요. 책에서 말했지만 대학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업들 역시 얼마나 대학이 자본이라는 욕망을 대리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도 민영화 사업 등을 실제로 겪었나요?


마지막으로 본 건 학과 인원을 스스로 몇 퍼센트 감축하면 지원금을 주겠다는 사업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나온 건 아니었지만, 학교를 나올 때쯤 한창 그런 사업이 많았어요.


근대문학을 전공하셨지만 문학보다는 문화기술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의 형식을 의도하고 쓰신 건가요?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어느 날 대학에서 제가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나, 이 사회 안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나 의문이 들어, 저를 규정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글을 썼어요. 대학에서의 시간은 제 평생을 바친 공간이지만 저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할 수 없었어요. 건강보험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이 없었고, 결혼하면서 대출받으려면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규직 교수가 아니면 재직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고 해서 강의 경력증명서를 떼야 했고요. 은행 직원이 서류를 보더니 이런 건 처음 본다면서 웃더라고요. 그 순간 저는 대학의 유령이 되었고, 8년 동안 대학원에서 있었던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하게 됐어요.

 

문학 전공 이력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글쓰기 교양 수업 선생님이었기도 하고, 조세희 씨 소설을 좋아해요. 문장을 짧게 쓰는 법을 조세희 씨 소설에서 배웠고, 박민규 씨 소설에서는 문장을 길게 쓰는 법을 배웠어요. 유시민 씨에게는 길고 짧은 문장을 정갈하게 쓰는 방법을 배웠죠. 현대든 고전 문학이든 연구하면서 좋은 글을 많이 읽었고, 글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대리운전을 다녀와서 계속 메모하고 적었다고 하셨어요.


운전을 하고 내릴 때마다 메모했어요. 집에 오면 피곤해도 오늘 겪은 일을 기록해 두고요. 운전할 때마다 경험했던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당장에라도 글을 쓰고 싶어서 일을 접고 집에 온 날도 있었어요.


 ‘지식과 노동을 양손에 들’고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요새 그 둘 사이의 균형은 어떤가요?


제가 생각해도 독특한 이력인데요. 대학에서 한 인문학 연구는 지식이 될 테고, 거리로 나와서 기록하는 건 몸의 언어가 될 거예요. 그것들의 균형을 잘 맞추고 싶어요. 계속 균형을 맞춰나가는 상태입니다.

 

문학이라기보다 이제는 인문학 전반에 걸친 연구가 되겠네요.

 

이제 문학 연구는 좋은 글 찾아보는 정도로만 할 것 같고요. (웃음) 책에 경계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경계인으로서의 어떤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거리에서 몸의 언어를 기록하고 싶어요. 경계에 서면 사회의 균열을 바라볼 수 있거든요. ‘지방시’에서 대학의 균열을 이야기했다면, 『대리사회』에서는 사회의 큰 균열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다음 책에서는 한 발 더 들어가 대리사회의 괴물이 어떤 것을 무기 삼아서 개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지 다룰 생각이에요.

 

 

주체라는 환상


첫 운행 에피소드에서 몸과 호칭이 모두 내 것이 아닌 상태가 나와요. 상실의 경험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나요?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나의 것이라고 믿었는데, 나의 호칭, 신체, 언어, 사유가 타인에게 귀속되는 것을 경험하니까 상실할 수도 있는 거였구나 느끼는 거죠. 타인의 운전석뿐 아니라 대학에서든, 사회의 어느 공간에서든 주체로서 호칭, 신체, 언어, 사유의 주인이었나 생각해보면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 네 가지를 가진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한발 물러서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쓰셨어요. 재정비할 시간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걸까요?


강연에 가면 다들 노력해서 한발 나아가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한발 물러서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경쟁하면서 밀려나기는 쉬워요. 물러서는 게 오히려 몹시 어렵고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한발 물러선 사람은 자기에게 질문할 수 있거든요. ‘나는 이 공간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요. 저는 그런 질문을 대학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하다가 맥도날드라는 생계의 공간으로 저를 내몰고 나서야 그 질문을 던질 수 있었거든요. 그걸 되게 어렵게 배웠어요. 밀려나기 전에 물러서서 사유하는 주체로서 나아가길 제안한 문장이에요.


대개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들 아등바등 버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떤 공간에 속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부에 있다고 믿기도 하는데, 우리는 다들 경계에 서 있어요. 누구나 한발 물러섰을 때 그 조직이 가진 균열이 눈에 들어와요. 균열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우리에게 대리시키는 괴물이 나타나거든요. 그것과 마주할 필요가 있어요.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은 자기를 갑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을은 을이라서 갑에게 덤벼들 수 없고요.


주변에서 만나는 평범한 우리는 갑의 자리에 섰을 때 자신이 갑질을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갑질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운전하면서 타인을 주체로 일으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갑의 자리에 있을 때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하대하면 자신도 을의 자리로 내려가는 거예요. 하지만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주체로 끌어올리면 모두 갑의 자리로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요새 청문회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자꾸 갑의 위치에 선 사람이 자신도 이 사회 안에서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을이 되잖아요. 그걸 인식하는 게 먼저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갑일 때는 기침 한 번만 해도 을의 자리에 선 사람은 왜 기침을 할까, 왜 찡그릴까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돼요.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우리가 어디에서 갑의 자리에 서는가를 응시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럼 을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글쎄요. 을은 어딘가에서는 갑이 되니까, 그때는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켜야 할 테고요. 완벽한 을의 자리에 있을 때 갑들이 하는 걸 보면서 기억하는 사람은 구조나 시스템을 바꿔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추억하는 사람들, 내가 갑의 자리에 서면 정의롭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올라간 사람들은 오히려 시스템을 악용하고, 지금 우리가 보는 대리인간이 되는 것이죠.

 

 

가족은 서로를 대리하는 존재


유흥을 즐기면서도 대리기사 비를 깎으려 드는 진상 남성 손님 이야기가 나와요. 여성 대리운전기사가 없다는 내용도 나오고요. 대리기사 일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사유해 보신 적이 있나요?


남자 손님들은 말을 가끔 나누다 보면 대리기사 일을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면접 방법을 물어보는데, 여자 손님들은 자기도 해봐야겠다는 말을 아무도 안 하세요. 을의 자리에 여성이라는 젠더까지 끼어들면, 저는 솔직히 상상이 잘 안 가요.


아내를 ‘아내’라고 불렀더니 손님이 놀랐다는 에피소드도 있어요.


아내가 자신의 언어,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언어가 별로 없더라고요. 아내를 뜻하는 단어가 집에 있는 사람으로 속하는 용어로 집사람이라고 부른다든지요. 손님이 와이프를 아내로 칭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하더라고요.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대학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끊임없이 저의 대리인간이 되기를 강요했어요. 일 년만 참으면 논문이 나온다거나, 집에 오늘 못 들어가니까 아이를 봐달라고 하거나요. 부부나 가족이 뭘까 생각해 봤는데 어느 한쪽이 한쪽을 대리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대리하는 게 가족인 것 같아요. 많은 남성이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욕망만을 대리시키려고 하는 일이 많아요.


‘파주 손님’과 ‘부천 손님’이라고 칭한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나와요. 도시별로 사람의 특성이 다르기도 한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든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다만 그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 높이 솟은 빌딩이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사람들을 주체로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의미죠. 물론 어느 쪽으로 가면 팁이 잘 나온다, 그런 직업적 특성은 있어요(웃음).


대리가 되니까 동료의식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지금 작가님의 동료 집단은 누구인가요?


대리기사들이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어깨도 넓고 말 걸면 혼날 것 같고, 다들 아저씨고요. 그런데 용기 내서 한 걸음 다가가면 민망할 만큼 두 걸음 다가와서 잘해주시더라고요. 정말 시골로 들어가면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사거리로 나가면 몇 명의 대리기사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동료가 돼요. 오래된 친구처럼 같이 가자고 하면서 강남까지 택시 셔틀을 타고 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많이 법시다, 열심히 합시다, 덕담을 하면서 헤어지고요. 점점이 떨어진 사람들이지만 그때마다 하나의 커뮤니티를 조직해서 동료가 될 수 있는 이들 같아요. 이제 두렵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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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대통령


우연인지 필연인지, 비선실세를 대리로 내세운 대통령 때문에 말이 많았잖아요. 지금 사태에 대해 말을 보태주신다면요.


대통령도 자기 신체와 언어의, 그리고 무엇보다 사유의 주체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누구나 이 사회의 거대한 욕망을 대리하면서 살아갑니다. 기자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요. 주체의 욕망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사회의 욕망을 일정 정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광장에 100만 명이 모였어요. 그건 나는 천박한 욕망을 대리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선언이거든요. 지금 광장에 있는 이들은 대리 된 욕망을 거부하겠다는 사유하는 주체들이고, 그 주체들이 이 사회의 가장 대리인간인 대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도 꾸준히 대리기사 일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대리운전은 지금 잠시 쉬고 있는데 다시 시작할 거고요. 반드시 대리운전이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몸의 언어를 기록하고 싶어요.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이야기할 생각이라고 하셨어요.


괴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언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을 통제하는 언어, 즉 훈(訓)이에요. 집에서는 가훈, 교실에서는 급훈, 회사에서는 사훈, 나라는 국훈이 있잖아요. 그런 언어들이 개인을 통제하는 괴물들의 가장 큰 무기에요. 대리운전을 하다가 어떤 회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커다랗게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는 등의 사훈이 건물에 붙어 있더라고요. 그걸 한참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내년에는 우리를 둘러 싼 ‘훈의 언어’들을 기록해 볼 생각이에요.


 

 

대리사회김민섭 저 | 와이즈베리
『대리사회』는 그러한 공간에서 저자가 익숙하게 체험한 3가지 통제(행위, 말, 생각)를 바탕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대리사회에서 한 인간은 더 이상 신체와 언어의 주인이 아니었고, 사유까지도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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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김민석 #주체 #대리사회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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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6.12.21

몸으로 쓴 책이라서 더욱 인상적이네요. "반드시 대리운전이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몸의 언어를 기록하고 싶어요. "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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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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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1983년 서울 홍대입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현대 소설을 연구하다가 ‘309동 1201호’라는 가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썼고, 그 이후 대학 바깥으로 나와서 ‘김민섭’이라는 본명으로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한 『대리사회』를 썼다. 후속작인 『훈의 시대』는 한 시대의 개인들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언어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교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어느 중간에 있는 경계인이었다. 저자는 그러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에게 보이는 어느 균열이 있다고 믿는다. 그 시선을 유지하면서 작가이자 경계인으로서 개인과 사회와 시대에 대한 물음표를 독자들에게 건네려고 한다. 특히 가볍지만 무거운, 그러나 무겁지만 가벼운 김민섭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어 한다. 글을 쓰고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2021년 봄부터는 바다가 좋다는 아이들의 말에 강릉 초당동에 이주해 지내고 있다. 1인출판사 ‘정미소’를 운영했고, 스타트업 북크루의 대표이다. 지은 책으로 『진격의 독학자들』(공저), 『고백, 손짓, 연결』, 『거짓말 상회』(공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공저), 『아무튼, 망원동』이 있고, 기획한 책으로 『회색인간』 등 김동식 소설집과 『저승에서 돌아온 남자』와 『무조건 모르는 척하세요』 등 ‘문화류씨 공포 괴담집’ 시리즈가 있고, 만든 책으로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와 『내 이름은 군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