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할머니와 사랑에 빠졌던 19세 소년(<19 그리고 80>)부터, 광기에 빠진 햄릿(<햄릿>), 방황하는 문제아 청년까지(<청춘예찬>), 동안의 외모, 크지 않은 키가 콤플렉스였던 때도 있었지만 콤플렉스가 오히려 자신에게 ‘빛’이 되어주었다는 배우 김영민. 자신만의 길을 차근차근히 닦아가고 있는 그를 <혈우> 연습실에서 만나보았다.
<혈우> 포스터를 보니 두 배우님의 에너지 격돌이 대단할 것 같은데요, 작품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릴게요.
<혈우>는 고려 무신정권 말기시대의 힘의 정치를 그린 강렬한 무협활극이에요. 포스터에 나온 김준(김수현 배우)과 최의(김영민 배우)는 극 중 대립관계로 생사가 갈리는 처절한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지금까지 연극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액션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대극장 무협활극이라니, 관객들이 그동안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일 것 같은데요. <혈우>만의 연극적 강점은 무엇일까요?
다른 작품보다 집중한 부분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난이도 높은 액션과 무술장면이에요. 그간 무협활극이라 하더라도, 어느 순간 무술과 액션 장면이 확 사라지고 드라마에 집중되는 연극들이 있었는데요, <혈우>는 드라마를 끌고 가더라도, 순간순간 살아있는 배우들의 合(합)과 군무, 그리고 그 속에 살아있는 ‘언어의 맛’-함경도 사투리-까지 보여주고 있어요.
그리고 출연 배우가 저 포함 26명인데, 26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군무도 멋지지만, 배우 하나하나가 무대에서 다 보이는 작품이라는 게 더 마음에 들어요.
무술연습이 엄청날 것 같은데요, 연습하실 때 힘드시겠어요.
사실 이 나이되면 이렇게 힘든 역할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지금도 팔에 알이 배겨서 담배를 피울 수가 없어요(웃음). 액션 배우가 아니다 보니, 처음에는 무술연습이 거의 중심이었어요. 무술감독님께서 아주 혹독하게 기초체력부터 기본기를 가르쳐주신 이후에 배우들 간의 합, 액션의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액션 배우가 아닌데 이런 신을 다 소화해내야 하는 게 힘들지만, 그게 또 우리 배우들의 임무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함께 하는 배우나 연출과의 합(合), 소통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고 들었어요. 이지수 연출과 김수현 배우와의 합은 어떤가요?
이지수 연출님은 개인적으로 각별한 인연이 있어요. 제가 고2 때 처음으로 연극에 입문하게 한 형의 친구거든요.(웃음) 같이 연극작업을 하면서도 한참을 못 만나다가, 이렇게 <혈우>로 다시 만나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로워요.
그리고 김수현 배우님은 연기도 연기지만, 사람이 너무 좋아요. 연배가 제일 높은데도, 후배들을 대하는 마음이나 연극에 대한 성실도가 높고, 힘든 상황에서도 차근차근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셔서 후배로서 정말 고맙죠.
그동안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셨는데요. 이번 <혈우>에서 맡은 ‘최의’는 어떤 역할인가요?
‘최의’는 극의 갈등을 만드는 ‘악’한 사람이고 콤플렉스나 자기 과거로 인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인간이에요. 어찌 보면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이죠. 그런데 배우로서 그렇게 단편적인 인물로만 표현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인간으로서, ‘최의’의 이런저런 모습을 찾는 과정에서 ‘최의’만의 마음을 갖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최의’의 잘못된 선택과 잘못되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관객들께는 우리의 현실과 세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하고 싶었어요.
<혈우>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이 어울릴까요?
글쎄요. 아마도 <혈우>는 ‘자리’에 관한 이야기,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는, <혈우>가 ‘권력’에 대해, 힘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출님과 공연을 만들어가면서 ‘자리’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고, 더 가치 있는 작품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권력’은 정치나 힘의 논리로 재단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약간 먼 이야기로 보일 수 있잖아요. 하지만 ‘자리’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간다면 지금의 내 ‘자리’는 무엇이며, 그 ‘자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자리’를 욕심내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희생당해왔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걸 그냥 모른 척할 것인지, 아니면 같이 참여해볼 것인지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혈우>가 더 기대되네요.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오실 관객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으세요?
어느 뉴스앵커가 엔딩멘트로 항상 이런 말을 해요,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말이 배우로서도 많이 와 닿았어요. 배우로서 내 작품에 최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지금 저는 ‘혈우’를 준비하는 배우로서 ‘내 안에서 한순간도 혈우를 놓치지 않겠습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좋은 작품,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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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미